제인 에어 을유세계문학전집 64
샬럿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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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이야기는 시시하던 소녀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잘한 일 중 하나가 글자를 깨우친 후로 거의 매일 같이 책을 읽어왔던 것이라고 생각할 것만큼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왔지만 그럼에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읽지 않은 책도 많다. 나는 호불호가 심하고 취향도 뚜렷해서 그만큼 편견도 많다. 어릴 때부터 그러해서 ‘여자 아이’라는 성별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소녀들의 이야기는 시시했다. 동화책을 읽어도 내 동생들을 비롯해 내 또래 소녀들이 좋아하는 공주 이야기는 시시했다. 고작 왕자나 기다리다 뽀뽀받고 행복해하며 눈물 겨워하는 꼬라지가 너무 시시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책들은 <보물섬>이나 <왕자와 거지>나 <15소년 표류기>나 <톰 소여의 모험>처럼 소년들이 세상으로 나가 모험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직접 떠나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상상으로 모험하기를 즐기는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이런 확고하고 편협한 취향 때문인지 중고딩 시절 책 좀 읽는다는 아이들이 그토록 빠져들던 <제인 에어>나 그, 비슷한 이야기들(<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등) 그러니까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등 한때 ‘여류’ 작가라고 불리던 여성 작가들이 쓴 소녀, 또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다, 읽지 못했다. 대개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가정교사가 된 그녀들이 결국 고작 그 집안의 주인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 어린 시절 내게 이런 종류의-여성 작가들이 쓴 저 시절의 문학들은 결국 여자와 남자가 티격태격 쏘아대다 어느 순간 사랑이 싹터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성(城)에 갇혔거나 감옥에 갇혔거나 마법에 걸려 잠든 공주에게 입맞춤 해주는 왕자, 그리고 그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동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제인 에어> 같은 소설에서의 감옥은 화려한 궁전이 아닌, 가난한 환경이고, 그녀들에게 입맞춤 해주는 왕자는 왕자가 아닌 주인- 그러니까 그녀들이 가정교사로 취직한 집안의 남자 주인이라는 게 달라졌을 뿐.

정작 해당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으면서도 이런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은 저 문학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들, 그러니까 영화화된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이 대개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아아, 지겹다! 소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서 곳곳을 모험할 때 왜 여자들은 남자의(주인님 또는 왕자님의-오 마이 갓 이 단어들도 너무 싫다) 눈빛, 말투, 손짓, 몸짓, 하나에 쓰러지고 죽고 살면서 스스로 영원히 그 로맨스라는 관계 안에 갇혀 있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영영 이 소설들-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등등은 읽지 않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잔 구바, 그리고 샌드라 길버트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갇힌 소녀들을 찾아서
며칠 전 드디어 마침내 그리하여 급기야 결국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집사2가 내 방을 지나치다 내 손에 들린 문제의 책을 보고 물었다. “그걸 또 읽어?” “나 처음 읽는 건데.” 집사2는 깜짝 놀랐다. “처음? 진짜? 니가? 그걸 지금까지 안 읽었다고? 와우.” 그러더니 곧 덧붙였다. “시시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역시 나를 잘 알아. 바로 알아맞힌다. “근데 그거 재미있는데....” 아니 너마저도 읽었단 말이냐?! 띠용...... 아, 하긴 너는 전공이.... “어 그냥 러브러브하는 로맨스 소설이려니 했지. 근데 생각보다 재미있네. 일단 꼬마가 못된 거 같아서 마음에 드는데.” 내가 <제인 에어> 재미있다고 하니까 집사2는 마치 자신이 샬럿 브론테라도 된 듯한 얼굴로 흡족해하면서(왜지?) 내 방에서 나갔다. 집사2는 내가 취향이 확고한 만큼 편견도 많다는 걸 알아서 내가 그 편견이나 취향의 벽을 무너뜨릴 때 좀 좋아하는 눈치다. 나를 더 갱생시키고 싶은 너여.... 그러나 사실 내가 이 늦은 나이에 <제인 에어>를 읽게 된 것은 취향이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진 리스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제인 에어>를 읽지 않고는 시작할 수 없으며,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더더욱 읽을 수 없다는 것을-아니 흥미롭게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두 책, ‘사르가소 바다’와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위해 드디어 마침내 그렇게 돌고 돌아 <제인 에어>를 마주한 것이다.

소녀답지 않아서 갇히는 소녀
그렇게 만난 제인 에어, 제인이라는 소녀는 착하구 순진무구해서 온갖 구박과 멸시를 꿋꿋이 참고 인내하는 그런 답답한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가난하기에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학대도 당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학대라는 것을 알 정도로 똘똘하고, 그 못된(그러나 제인이 비뚤어지고 이상한 아이이지, 자신들은 선하다고 굳게 믿는) 친척들에게 바락바락 대들면서 할 말은 하는 아이이다. 그러나 아이는 힘이 없고 조그맣다. 그래서 종종 벌을 받는다. 이 말 많고 똘똘하고 되바라진 소녀, 순종적이지 않고, 그래서 착하지 않다고 평가받는 제인이 받는 벌은 다름 아닌 붉은 방에 갇히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홀로 방 안에 그것도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방 안에 몇 시간이고 감금당한다. 꽤 자주. <제인 에어>는 그런 의미에서 시작부터 참 의미심장한 소설이다. 애초부터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사회적으로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던 소녀가 소녀답지 않다는 이유로, 착하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다고, 똘똘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가정 안에서 또 갇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붉은 방 안에....

그래도 이 소녀에게는 탈출의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만고불변의 진리인 ‘배움’. 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 저주스러운 가정을 떠나 기숙사로 향한다. 그리고 그 특유의 영특함으로 학업에서도 빛나는 성취를 이루고 드디어 홀로서기에 성공. 가정교사로 어느 집에 취직하게 된다. 붉은 방에 갇혔던 소녀가 또 다른 갇힌 여인이 사는 손필드의 대저택으로 떠나는 것이다.

볼 수는 있으나 눈을 감은 소녀
그런데,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고 경험도 부족한 이 젊은 여성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다. 로체스터라는 이름의 이 남자주인. 제인 에어보다 무려 스무 살이나 더 많은 주제에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가 잘생겼느냐고 묻지를 않나(나참 뭐래니.......), 당신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고 치켜세워주면서 살살 꼬드기지를 않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무려 독신이라고 한다(이미 <제인 에어>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이 정도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제인이 가르치게 될 아델과 로체스터 그 자신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다. 딸인지 입양아인지 후견인의 역할을 맡은 것인지 아리송한 이 아이, 로체스터는 아델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한다. “재수 없게 6개월 전에 바랑이 내게 이 여자아이, 아델을 보낸 거요. 그녀 말로는 내 딸이라는 거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요. 얼굴을 보면 내 딸이라는 증거가 확실치 않지만 말이오. 아델이 딸이니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적도 없고, 지금도 이 아이 아버지가 아니므로 어떤 의무도 인정할 수 없소.(....)이제 당신도 저 아이가 프랑스 오페라 댄서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았으니.”(209쪽)- 배드파더의 전형적인 말투 아닌가! 사실 나는 로체스터의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샬럿 브론테도 제인 에어도 거기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렇게까지 만들면 안 그래도 쓰레기인 로체스터가 재활용도 불가능할 지경이 되리라고 생각했나보다.

게다가 로체스터 이놈 봐라? 자기가 다락방에 가둔 아내 ‘버사’가 얼마나 로체스터 이놈이 가증스러운지 잠든 침대에 불을 질러버렸는데 그걸 또 다른 여자 하인이 지른 거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 이 남자의 거짓말, 이 남자의 맨스플레인, 이 남자의 오만방자함이 역겹기 짝이 없는데도 순진한 제인은 무려 스무 살 차이의 이 남자에게 서서히 반해간다. 아이고야.... 원체 똘똘하니 이 남자의 이상한 점, 이 집안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 죽일놈의 로맨스가 무엇인지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진실로부터 스스로 눈을 감기를 선택한다.

착취당하고 끝내 갇힌 여인
로체스터는 자신이 독신이며 딸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도 불쌍해서 후견인 역할을 해줄 뿐이라면서 이 스무 살이나 어린 여성에게 구애를 해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한다. 제인이 기거하는 방 바로 위에 전처를 가둬놓고서. 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놈인가? 그런데도 본인은 내내 피해자이다. 저 여자, 다락방에 갇힌 미친 저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이 이토록 우울하게 망가졌다고 울부짖는다. 다락방에 짐승처럼 갇힌 그 여자 ‘버사 안토네이타 메이슨’- 서인도 제도 출신에, 자메이카에서 15년 전에 이 에드워드 로체스터란 놈과 결혼한 여자. 로체스터의 말대로라면 이 여자는 집안 대대로의 정신병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결혼 후 발병했으므로 로체스터 그 자신은 속아서 결혼한 피해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소음과 기괴한 일들은 모두 저 하녀의 짓이라며, 결혼하고 1년 하고 하루가 지나면 그때 진실을 말해주겠다면서 결혼부터 하자고 꼬드긴다. 에라이 이 썩을놈아. 제인에게 결혼 신청하고 마침내 스무 살이나 어린 여성을 손에 쥐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의 폭로로 그의 추악한 비밀은 벗겨진다. 그러나 그는 또 항변한다. 나는 피해자야 제인!!! 버사 메이슨은 미쳤다, 정신병력이 있는 가문 출신이다, 집안에서 3세대에 걸쳐 백치와 미친 사람들이 나왔다, 버사의 어머니는 미친 여자인 데다 술주정뱅이이다. 버사는 효녀답게 두 가지 모두 어머니 그대로 닮았다(이 비열한 인간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그런데도 이 찌질한 인간은 버사 메이슨이 매력적이었다는 것만은 인정한다. 나는 매력적인 동반자, 순결하고 현명하고 겸손한 동반자를 얻었다고 생각했다고, 집안이 부유했던 버사는 3만 파운드의 지참금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결혼 무렵 로체스터는 빈털터리나 마찬가지). 스패니시 타운에서 가장 미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로체스터 그 자신도 인정한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아름다웠다고. 키가 크고 피부가 검고 당당한 여자였다고. 자신에게 매력과 재능을 마음껏 보였다고. 그녀 주위의 모든 남자가 버사를 흠모하고 자신을 질투하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극받고 현혹되었으며 흥분했다고. 무지하고 미숙하고 경험이 없었기에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실수였고, 친척들이 부추기고 경쟁자들이 자신을 자극하고 그녀는 날 유혹했다고.....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버사와 결혼할 무렵의 로체스터가 스물다섯, 이십대라 어리고 미성숙했다고 쳐도 그때는 매혹되어 사랑에 빠져서(착각했다고 쳐도) 결혼한 여자를 이제 싫증났다고 단물 다 빨아먹었다고 저렇게 후려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인간이라면 양심과 도덕이 있다면 그러면 못쓴다. 부유한 데다가 이국적인 외모에 당당한 여자, 모든 사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그 자신도 트로피처럼 갖고 싶었으면서 싫증이 나니까 미친 여자로 몰아가고 그녀 가족 모두가 정신병자였으며 혐오스러웠다면서 매도하고 그 세월과 사랑을 묻어버린다. 로체스터의 아버지와 형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3만 파운드라는 돈을 생각해서 자신을 팔아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봐 로체스터,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손필드 저택에서의 생활이 다 버사 집안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닌가?

심지어 로체스터는 아내를 가둬버린 후 여자 없이는 못 사는 성격이라 정부를 여럿 둔다. 아델의 엄마인 프랑스 댄서 바랑이 첫 번째 정부이고, 하나는 이탈리아인 자친타. 하나는 독일인 클라라이다. 로체스터가 묘사하는 이 여성들 버사, 바랑, 자친타, 클라라를 보면 대개 제인과는 좀 다른 외모(이국적인)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자기 입으로 이 여자들이 모두 뛰어난 미인이었다고 말한다(그러면서 내내 제인은 못생겼다고 말하는 세상 웃긴 놈). 그런 걸 보면 이놈은 여자 취향이 확고하기 때문에 버사의 외모에 매혹당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남자가 하는 말이 또 전형적이다. 이 예쁜이들은 외모는 예쁜데 그 아름다움은 사실 다 무의미하더라고. 바랑은 난잡하고 방탕하고, 자친타는 부도덕하고 난폭하고. 클라라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멍청하고 그리고 버사는, 버사의 취향은 역겹고, 정신은 진부하고 저질이고 편협했단다. 근데 제인 너는 못생겼지만 똑똑해, 나랑 취향이 맞아(이것은 칭찬인가 디스인가 가스라이팅을 통한 길들이기인가). 그러면서 결국 이놈이 하는 말을 보자. “정부와 노예는 지위 상 늘 열등하며 흔히 천성조차 그렇소. 열등한 인간과 친근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타락이오.”(455쪽)- 와우, 제인, 제발 이놈을 떠나!

갇힌 로맨스여, 영원히 갇히기를
로체스터의 이런 역겨운 참모습을 제인도 견디기는 힘들었는지 그를 떠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그녀는 다시 돌아와 스스로 로체스터의 그 폐쇄된 성(城) 안에 갇히기를 선택한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면서. 제인이 그러는 중에 독립된 주체성을 가진 인물로 거듭나는가? 글쎄 나는 좀 회의적이다. 갑자기 유산이 주어져서 부유해졌지만 그 돈으로 좀 더 나은 일을 하기보다는 또 그 돈을 싸들고 로체스터 놈에게 (버사처럼) 상납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제인은 사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고 똘똘한 아이였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순간 로맨스에 눈이 멀어 진실을 마주하기를 꺼린다. 버사의 존재에도, 그녀의 참혹한 죽음을 마주하고도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누군가 타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거나 타인을 착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일 수도 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위대하신 사랑을 위해서 버사는 어떻게 미친년으로 몰려 죽어갔는가.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전처 버사에 관해 온갖 악담을 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장면은 <레베카>의 맥심 드윈터가 자신의 죽은 아내 레베카를 헐뜯으며 어린 현재의 연인인 ‘나’를 설득하는 장면과 똑 닮았다. 그런데 그 작품의 진실은 어떠했던가. 로체스터도 맥심도 예쁘고 당찼던 전 아내들을 부도적하고 타락했으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여성들로 만들어 가두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런데도 이 두 남자들이 새로이 선택한 어린 여성들은 그 남자들의 나이, 경제력, 그리고 그 나이와 경제력이 빚어내는 후광에 눈이 멀어 그들이 만든 감옥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기를 선택하고 만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모든 역경을 극복한 진실한 사랑이라고, 위대한 로맨스라고 볼 수 있을까. <제인 에어>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러한 방식-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춰 온갖 매체로 재생산되어 소비되어 왔다. 세상이 조금 달라지면서 제인이 점점 더 독립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게 좀 달라졌을 뿐. 그렇지만 이 갇힌 로맨스가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재생산된다면, 가진 것 없는 소녀들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기보다는 왕자님이 나타나 뽀뽀로 나를 깨우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짜 왕자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갇힌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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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너무 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20 11:47   좋아요 1 | URL
안 길어!!! 샌 존 욕 빠졌으니까 속편을 내놓으시오!

잠자냥 2023-10-20 11:59   좋아요 1 | URL
그놈은 로체스터에 비하면 존재감 희미 ㅋㅋㅋㅋㅋㅋㅋ
그 후반 장은 좀 사족 같아요. 샬럿 언니도 쓰다 지쳤나 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3-10-20 11: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휴 기다렸다 읽은 만큼 보람찬 리뷰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는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 그 존재를 알자마자 흥분해서 읽었었는데요, 그 책은 제인 에어를 읽고 쓴만큼 기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버사에 대해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에게 들려주는 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버사가 하는 말이죠.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저는 그 대사가 진짜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진 리스가 하고자 했던 말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모두가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보고 있을 때, 진 리스는 로체스터, 혹은 그 이루어진 사랑의 다른 면을 보라고 말하는거죠. 진짜 너무 짜릿하지 않나요? 저는 제인 에어를 읽고 광막한 사르가소를 써낸 진 리스가,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통해 모든 일에는 다른 면이 있다고 말하는 진 리스가 진짜 너무 멋져요. 그 존재 자체로 짜릿합니다.

만세!!

잠자냥 2023-10-20 11:58   좋아요 2 | URL
진 리스 좋아! 리스 언니 사랑해염!
그런데 진 리스 자신이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삶을 살았으므로 버사의 존재에 더 눈을 떴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녀 자신도 출신이 버사와 동일시하기 쉬웠을 테고....

다락방 2023-10-20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제인 에어 리뷰에 진 리스 응원했네요. 흠흠. 반성합니다.

잠자냥 2023-10-20 11:58   좋아요 1 | URL
괜찮아 내가 아끼니까....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0-20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인에어를 다시 한번 읽었는데 그때도 생각했지만 결말을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결국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 모험심 가득한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소공녀 이런거 질색팔색ㅋㅋㅋ 그래도 작은 아씨들은 조라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나마 좀 읽을 만했지만 말입니다.
역시 믿고 보는 잠자냥님 리뷰!

잠자냥 2023-10-20 14:20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시대적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결혼 안에서! ㅋㅋㅋ
소공녀 저도 싫어했어요. 소공자도 있었는데 그게 더 재미...
작은 아씨들도 조가 있었으니가 그나마 읽었지만... 제 동생은 이 작품 엄청 좋아하는데 전 도무지 왜 대체? 이런 심정.

건수하 2023-10-2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전 세인트 존 때문에 로체스터에게 돌아갔다는 생각도 했어요. 혼자 살아갈 엄두는 나지 않고 이상한 놈한테 강요받느니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로체스터가 낫다..?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부분은 좀 뭥미했지만..

<제인 에어> 읽으셨으니 좀 더 나아간 <빌레뜨> 도 읽어보시지요! 이렇게 잠자냥님의 벽을 무너뜨리자...!!

잠자냥 2023-10-20 14:25   좋아요 2 | URL
네 아무래도 로체스터에게 돌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려다보니 그 세인트 존처럼 뜬금없는 인물(그러면서 로체스터랑 비교되는 인물)이 등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으으 그러나 그놈이나 저놈이나....

흠흠 저 <빌레뜨>는 창비에서 나온 버전으로 몇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것도 뭔가 읽어야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역시 지루했습니다;;;)

건수하 2023-10-20 14:37   좋아요 2 | URL
<빌레뜨> 읽으셨군요!
<제인 에어>보다 <빌레뜨>가 좀 지루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한계에서 좀더 나아가려고 한 노력(설정)이 보인다는 ^^;

책읽는나무 2023-10-20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소공녀, 작은 아씨들, 비밀의 화원처럼 여자애들 이야기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톰 소여의 모험, 삼총사, 보물섬, 피터팬의 모험 이런 책들도 재미나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중고딩 땐 책 읽기 싫어 안 읽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제인 에어같은 책을 안 읽었던 건가?싶기도 하구요. 로맨스 만화도 안 읽었구요. 뜬금없이 <동의보감>인가? 그거 읽고 음...하면서 사극에 빠져 살긴 했습니다.ㅋㅋㅋ
학교에서 책 읽으라니까 왜 그렇게 읽기 싫던지...그래서 어른이 되어 그때 좀 읽어둘걸! 조금 후회가 되긴 합니다만...지금 읽고 이렇게 리뷰로 얘기 나눌 수? 있어 또 좋네요.ㅋㅋㅋ
로체스터 싫어!
세인트 존도 싫어!
로체스터에게 돌아간 제인 바보!
코로나에 걸려 방에 감금?되어 읽었던 작년 겨울이 떠오르면서 혼자 추억에 잠겨 봅니다.ㅋㅋㅋ
속 시원한 리뷰네요.ㅋㅋ

잠자냥 2023-10-20 15:55   좋아요 1 | URL
아 삼총사! 삼총사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 ㅋㅋㅋㅋㅋㅋ
(소공녀, 아씨들, 비밀의 화원은.... 그 책들로 집짓기 놀이로 사용 ㅋㅋㅋㅋ)
푸하하 <동의보감> 빵터졌는데 재밌나봅니다?!
로체스터한테 돌아간 제인 바보22222 유산도 받았는데 다른 걸 하지...ㅠㅠ

유부만두 2023-10-20 19:24   좋아요 0 | URL
전 중학생 때 스탕달 <적과 흑>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심지어 그 이상한 주인공 녀석 쥴리앙을 좋아했다요? 머리 자르는 게 맘에 들었을지도 모르고요. ㅋㅋ

자목련 2023-10-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안 긴 리뷰를 읽으니 저도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네요. 간략한 동화로 대충 읽은 기억만...

잠자냥 2023-10-20 23:03   좋아요 0 | URL
동화보다는 확실히 재미납니다. ㅋㅋㅋ

은오 2023-10-20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제대로 미친 쓰레기가..........
중간에 “결혼 신청”에서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ㅋㅋㅋㅋ 잠자냥님 리뷰만 읽어도 이거 막장드라마같고 재미는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제인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마지막은 최악이지만 우웨ㅣㅔㅔ엑...

잠자냥 2023-10-20 23: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거 노리고 집어 넣은 거. ㅋㅋㅋㅋ 결혼 신청! ㅋㅋㅋ 막장이라 재미는 있어요.

은오 2023-10-20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은 더 길게 써주셔도 됩니다.

재밌으니까요!!!!!
한 줄 읽는 속도로 다섯 줄 읽게 되는 잠자냥님의 글

잠자냥 2023-10-20 23:1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이거 A4로 다섯장이에요. ㅋㅋㅋㅋ

은오 2023-10-20 23:28   좋아요 1 | URL
솔직히 A1로 다섯장 쓰셔야한다고 생각

잠자냥 2023-10-20 23:17   좋아요 2 | URL
길어서 사람들이 싫어해!! ㅋㅋㅋ아, ㅋA4인데 A5라고 썼네. 취했냐!! ㅋㅋㅋ

은오 2023-10-20 23:20   좋아요 0 | URL
알아보고 수정하시는걸 보니.. 오늘 번호 따긴 글렀구나!! 😫

잠자냥 2023-10-20 23:33   좋아요 1 | URL
아무리 루팡이지만 나도 일은 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21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안읽은 고전문학이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역시 확고한 취향의 잠자냥님~!!

저도 완전판을 읽어보려고 책을 샀던거 같은데 제인 에어 리뷰를 많이 봐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ㅋ

제인=잠자냥
버사=다락방
로체스터=은오

정리끌 ㅋㅋ

잠자냥 2023-10-21 14:51   좋아요 1 | URL
안 읽은 거 많습니다요. 특히 요 시대 여성 작가들 책-제인 오스틴 한 번도 읽은 적 없어요.

근데 응? ㅋㅋㅋㅋㅋ 새파랑 님의 인물도식도 정리를 보니 <제인 에어>는 읽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체스터 은오, 버사 다락방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

지나 2023-10-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동감가네요.

잠자냥 2023-10-22 15:58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 2023-10-24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중3때 읽다 관뒀는데 제인이 집에 갇혀있는 여자의 존재를 아는 데까지 읽다 왜인지 모르게 읽기 싫어져 그만두고 지금까지 안 읽고 있어요. 기숙학교 얘기까진 재밌었는데... 뭐 저도 언젠간 다시 읽게 되려나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잠자냥 2023-10-24 10:17   좋아요 0 | URL
기숙학교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 어린날의 케이 님도 로맨스가 싫었나 봅니다!

2023-10-24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24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