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메일함을 열어보면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 책이 되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었다. 나 또한 글쓰기를 좋아하고 언젠가는 내 책을,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실제로 이런저런 문학상에 투고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출판사 메일함으로 자신의 원고를 보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의 일 중 하나기에 그 원고들을 열어서 검토는 한다. 어떤 원고는 처음부터 읽을 생각이 들지 않고 어떤 원고는 좀 읽다가 말기도 하고 어떤 원고는 출판사를 잘못 선정해서 보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의 눈을 뜨이게 할, 그런 원고는 솔직히 발견하지 못했다. 일에 치이다 보니 검토할 원고가 반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외면은 할 수 없어 오늘도 메일함을 열어서 첨부 파일을 열어본다. 그러나 답장은 보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회사로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 항의 전화를 걸어온 모양이다. 내가 받지 않아서 그 목소리나 어조를 생생하게 알 수는 없지만 몹시 섭섭해 했단다. 아니 몇 월 며칠 보낸 메일을 확인은 했던데 왜 여태 답이 없냐는 말이었단다. 그날은 안 그래도 월요일이었고,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신경이 날카롭던 차에 다른 부서 사람에게 이런 말을 전해 들으니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 부서 사람은 이분에게 거절 메일 하나만 보내주라고 했는데, 그런 원고에 일일이 답장을 하다 보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거절 메일을 확실히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그 사람 이름으로 메일함을 검색해보았다. 아, 이 사람, 이 원고.... 애초부터 이 사람은 메일 제목부터, 첨부한 파일 제목부터 잘못되었다. 몇 년 전에도 메일을 보냈던데 그때는 담당자가 확인조차 하지 않았더라. 그러니 이번에는 메일함을 열어서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이 사람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는 회사의 출판 방향과 맞지 않아 출간 계획이 없다는 거절 메일을 보냈다.
출판 방향과 맞지 않다는 말은 90%는 거짓말이다. 당신의 원고는 출판할 가치가-, 아니 더 정확히는 출간 비용과 여러 사람의 노력을 들여서 그만큼의 돈을 회수할 만한 매력적인 원고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거절당한 세상의 수많은 원고들 가운데에는 나중에 초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또는 불후의 고전이 되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이 머나먼 땅에서까지 읽히고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다. 출판사에 무작정 투고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그런 작가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될 것이라고, 그러나 세상이, 편집자가, 출판사가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원고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번은 교도소에서 회사로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한 번만은 아니다). 자신의 불우한 스토리를 줄줄이 엮어서 현재 범죄자가 된 사정까지 짤막하게 소개하고는 이런 내용으로 출간을 하고 싶은데, 초판은 몇 부를 찍을 것이며 인세는 몇 대 몇으로(여기서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등을 문의했다. 그런데 내가 더 어처구니가 없어 웃고 말았던 것은 그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구구절절 출간 문의를 하고는 정작 출판사 이름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봉투에는 분명 우리 회사 주소와 이름을 잘 써넣었는데, 편지 안에는 타 출판사 이름을 썼던 것이다. 아마도 그즈음 이 땅의 여러 출판사가 모모 출판사 이름이 적힌,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으리라.
또 어떤 사람은 대뜸 전화로 출판 비용을 묻기도 한다. 굳이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기에 원고를 보내시면 검토한 후 연락드리겠다했더니, 원고는커녕 그 후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쓰이지 않은 원고, 앞으로 쓰일 원고, 출간 계획은 있으나 원고지 한 장은커녕 단 몇 줄도 종이 위에, 또는 컴퓨터 화면 위에 저장된 원고는 없는 그런 저자들이, 미래의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출판사에 보낼 원고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도 원고를 보낼 때는, 그 출판사 출간 목록을 훑어보면서 내가 원고를 보내도 괜찮겠다 싶은 회사에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사회과학 도서만 출간하는 출판사에 순수문학, 그것도 소설 원고를 투고한다면 출간될 확률이 높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소소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류가 봇물을 이루고, 이런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저자들도 종종 있다 보니 누구나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 나도 베스트셀러 저자가 될 수 있겠다 꿈을 품는 시대이다. 그러나 쓰이지 않은 원고, 머릿속에서만 찬란히 빛나는 글과 소재는 글이 아니다. 단 한 줄이라도 쓴 사람, 거절 받을지라도 어딘가로 보낼 원고가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미래의 저자여, 어서 책상 앞에 가서 쓰시라. 담당자가 메일을 확인했는지 안했는지 수신 확인을 체크하고 또 할 그 시간에 한 줄 더 쓰시라. 그리고 투고할 때는 출판사를 잘 판별해서 보내시라. 과연 읽을까 반신반의하겠지만 당신의 원고가, 제안서가 남달라 보이면 일단 읽기는 읽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그리고 세상의 여러 편집자들이) 레이먼드 카버를 있게 한 고든 리시를 꿈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다부장님, 다락방 님은 대단한 분이기는 하다. 내가 이 사람 자뻑 어쩔 거냐고 놀리기도 하지만, 다부장님은 자뻑이 넘칠만한 분이다. 자뻑해도 된다. 괜찮다. 왜냐하면 이미 책 2권을 출간한 작가가 아닌가. 그만큼의 글을 썼다는 것이고, 그만큼의 글을 꾸준히 썼다는 것은 그만큼의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도 머릿속에 수많은 글감을 간직하고 있는 그대여, 책 한 권 내기 쉬워 보이겠지만 그걸 글로 풀어서, 그리고 그 행위를 그토록 오랜 시간 꾸준히 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 알라딘 서재, 구석진 외딴방에 날마다 자기 글을 올리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미 대단하다. 그러니 계속 쓰시라. 단 그 원고에 답이 없더라도 섭섭하다고 항의 전화를 걸거나, 독을 품고 어느 편집자를 저주하지는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