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흥이 방죽을 향해 다시 구룡산을 내려오는 원흥이 두꺼비들을 기다립니다
- 환경스페셜, ‘원흥이 두꺼비 생명의 여정’을 보고 -
본능이란 참 강합니다. 새끼들은 젓 빠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젓을 물을 줄 알고 물고기들은 가르쳐주는 안내자 없이도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산란을 합니다. 새들도 때가 되면 보이지 않는 하늘 길을 따라 제 갈 곳을 오고 갑니다.
원흥이 두꺼비도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일대를 오고 가며 자연의 일부로 제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6년부터 그들의 터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낯선 것 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흙은 딱딱한 시멘트로, 그늘을 주던 나무는 높은 아파트로 변해버린 고향 땅. 그래도 그들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고향 물가인 원흥이 방죽을 향해 사랑을 나누러 내려옵니다. 무수한 장애를 넘어 산란을 했고 다시 죽을힘을 다해 구룡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70일 후, 새끼 두꺼비들의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생명을 지키고 대를 이어가고 싶은 본능에 우위를 정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구룡산을 향해 제 어미도 포기한 고층 아파트를 오르는 새끼손가락만 한 새끼 원흥이 두꺼비의 모습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돌아서 가면 될 것을 애만 쓴다며 저러니 하등동물이지”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돌아서”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원흥이 방죽에서 구룡산까지가 있을 뿐, 그 사이에 “아파트를 돌아서”나 “차도를 피해서”라는 안내는 없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만든 생태통로도 그들에게는 “돌아서”입니다. 그들은 길을 찾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본능이 향하는 곳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돌아가는 법은 없습니다. 모릅니다. 그냥 가고 싶을 뿐입니다.
새끼 원흥이 두꺼비들의 대이동이 거의 끝날 때 쯤 하얀 차도는 셀 수도 없는 새끼들의 시체에 두꺼비 등짝처럼 얼룩덜룩해졌습니다. 그 속에서도 한 마리 새끼 원흥이 두꺼비가 형제들의 살갗을 밝고 피 냄새를 맡은며 구룡산을 향해 걸음을 내딛습니다. 물기 머금은 나무 아래 촉촉한 땅, 날 낳아 준 내 어미와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기다리고 있는 그 곳, 나를 부르는 구룡산을 향해.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 내 새끼인 냥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언제고 너도 당하리라. 남의 일이 아니니 두고 보라”며 손가락질하고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원흥이 방죽을 지켜내고 지금까지도 지켜나가고 있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가운 빗속에서 조심스럽게 새끼들을 담아다가 구룡산으로 옮기고 있는 그 발길을 보았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차게 찻길을 건너는 새끼 원흥이 두꺼비 한 마리 때문에.
이제 다시 봄이 옵니다. 원흥이 두꺼비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원흥이 방죽을 향해 구룡산을 내려올 겁니다. 또 다시 변해버린 자신들의 고향에서 그들이 얼마나 고생할지는 보지 않아도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기에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구룡산을 내려올 것을 믿기에 그들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