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 울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자꾸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또르륵. 또르륵. 흐르던 눈물을 닦지도 않고 들고 있던 종이 뭉치만 보던 은이 힘차게 눈물을 스윽 스윽 닦고는 하얀 종이 뭉치를 다시금 고쳐 든다.
은이 청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것은 정말 잠깐이었다. 아빠가 퇴근해서 혹시 라면이라도 찾을까 싶어 슈퍼에서 라면 몇 개랑 빵을 샀었다. 목줄은 했지만 좁은 골목길에서 혹시라도 갑자기 튀어 나오는 자전거나 자동차에 청이가 다칠까봐 은은 슈퍼에서 나오면서부터 청이를 안고 있었다. 청이가 아직 새끼지만 크기가 큰 종인데다가 짐까지 더해지자 은이 제자리에서 쉬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거기다가 언제부턴가 운동화 끈까지 풀려서 젠 걸음으로 가다가 넘어질 뻔 하기를 몇 번. 불현듯 자신이 넘어져서 청이를 깔고 엎어질 게 걱정이 된 은이 결국 청이를 내려놓고 대신 목줄을 밟고는 운동화 끈을 묶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반대쪽 발도 앞으로 끌어다가 느슨해진 끈을 풀고는 정성스레 매듭을 만들어서 몇 번이고 세게 잡아 당겨 다시 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풀려서 청이를 내려놓는 일이 없게 몇 번을 힘차게 묶고서야 안심하고 허리를 폈다. 그때까지도 은은 생각을 못했다. 은이 운동화 끈이 풀어지지 않은 발을 앞으로 당기는 순간 청이를 잡고 있던 줄이 놓아 질 거라는 걸. 허리를 펴며 검은 색 비닐 봉투를 들었을 때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탄식과 같은 소리가 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청이야…….”
처음에는 작게 부르던 청이의 이름이 골목 안을 가득 메우고 숨이 턱에 차도록 동네를 다 뛰어 다녔지만 은은 청이를 찾을 수 없었다. 검은 비닐 봉투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손은 언제부터인가 빈손이다. 그렇게 온종일 동네를 헤매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은은 아빠가 일하는 경찰서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빠가 놀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야 은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터진 눈물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도 때도 없이 흐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자락으로 훔치며 은은 붙여 놓은 전단지들을 차례로 확인한다. 근처 동물병원이나 온갖 가게며 상가에서 다시 물어 보기를 몇 번, 울음을 그쳤다 다시 울기를 몇 번을 하고 나서야 은의 발걸음이 집을 향한다. 하지만 오래 못 가 집 근처 학교 앞 전봇대에 다시 멈춰 선다.
“청이야,”
발꿈치를 들고는 전단지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댄다. 청이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
“찾고 싶어?”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은의 고개가 획 돌아간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아이 한명이 학교 담벼락에 기대있다. 은은 소리에 너무 놀라서 아이가 낮게 내뱉은 말을 잘 듣지 못했다.
“됐다. 그냥 두자. 갑자기 무슨……. 그 사이에 팔려도 벌써 팔렸겠다.”
아이는 귀찮은 듯이 몸을 돌렸다. 은이 그때서야 아이의 말을 알아듣고는 아이 앞을 가로 막았다.
“봤어, 우리 청이, 봤어? 어디 있어? 응? 어디 있어?”
방금 전까지 힘없이 울던 아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돌아서던 아이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다. 무슨 말이든 듣지 않고는 절대 놓아주지 않을 기세다. 모자를 쓴 아이가 고개를 약간 들고는 은을 잠시 쳐다본다.
“씨, 괜히 아는 체는 해가지고…….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이것 좀 놔.”
아이가 은이에게 잡힌 옷자락을 풀려고 한다. 하지만 은은 더 꽉 움켜쥐고는 고개를 옆으로 젓는다. 또르륵. 옷자락을 움켜쥐고 아이만 보고 있는 은의 눈에서 한 아름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진다.
“야, 너 왜 이래, 정말. 짜증나게. 알았어. 얘기 할 테니까 울지 좀 마. 아휴, 진짜.”
아이가 당황한 듯 은을 달래면 떠내려고 하지만 은은 더 달라붙는다. 아이는 그런 은을 황당한 듯 보더니 피식 웃는다.
“너, 이 학교 다녀?”
아이가 턱으로 학교 쪽을 가리킨다.
“응.”
은의 고개가 아래위로 끄덕여진다.
“좋아. 그럼 하나만 약속해. 학교에서 나 아는 체 하지 마. 절대로. 나중에 네 옆을 지나가도 본 척도 하지 말고 말 걸 생각 같은 건 꿈도 꾸지 마. 넌 날 알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는 거야. 알았어?”
“너도 우리 학교 다녀?”
은이 묻는다.
“너 지금 내말 뭐 들었냐? 됐다, 놔!”
아이가 거칠게 옷자락을 잡은 은의 손을 떼어내려고 한다.
“알았어, 알았어. 모르는 척 할게. 아는 척 안 할게.”
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가 얘기했다는 것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이거 농담 아니야. 그럼 나 또……. 어쨌든 절대로 얘기하면 안 돼. 안된다고. 약속할 수 있어?”
은의 고개가 아까 보다 더 힘차게 끄떡여진다.
“정확한 위치는 나도 잘 몰라.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그 사이 정말 팔렸을지도”
아이는 쉽게 결심이 서지 않는지 말을 돌린다.
“약속할게. 진짜야. 너 아는 체도 안하고 그리고 정말 아무한테도 애기 안할게. 정말…….”
은이 말을 다 못하고 울먹이며 아이에게 매달리자 눈물 한 방울이 은이 잡은 아이의 옷자락으로 떨어진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은을 보더니 아까 옷자락을 잡느라 은이 떨어뜨리면서 흩어진 전단지 하나를 손으로 주워들었다. 아이는 아까 은이 그랬던 것처럼 전단지에 손을 댄다. 은은 아이의 행동이 이상하면서도 아이가 금세 마음을 바꿀까봐 뭐라고 말도 못하고 보기만 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가 갑자기 쿡쿡대며 웃는다.
“야, 너 개한테 그거 먹이지마. 아무리 생마늘은 아니라지만 마늘이 개한테 얼마나 안 좋은데 그걸 개한테 먹이냐? 아빠 몸에 좋다고 그게 개한테도 좋은지 아냐?”
“어버버”
은이 너무 놀라서 입을 열긴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가 아빠 드시라고 사다 놓은 알약을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실 적엔 몰래 청이에게 먹이 곤 했다. 개가 먹는 건 아니지만 건강에 좋다니까 청이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근데 어떻게 그걸 처음 만난 이 아이가 알고 있단 말인가?
은이 너무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아이가 슬쩍 시선을 피한다.
“아, 몰라. 그런 건 니가 알아서 하고 근처에 세차장 있어? 삼거리 모퉁이에. 옆에 크게 자동차 정비소도 있고 맞은편에 약국 하나 있고.”
은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전히 말을 못한다.
“갈 때 혼자가지 마. 그 인간이 작정하고 가져갔으니까 벌써 팔았거나 혹시 아직까지 데리고 있더라도 너 혼자가면 쉽게 주지 않을 거야. 이제, 놔. 얘기했으니까.”
아이가 은의 손을 슬쩍 밀어 낸다. 은의 손에서 잔뜩 구겨진 옷자락이 빠져 나온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중에 혹시 또 잃어버렸네 어쩌네 하며 나 아는 체 하면.”
“아니야. 이제 안 놓을 거야. 다신 청이 안 놓을 거야.”
한동안 정신이 나가있던 은이 아이의 말에 발끈한다.
“약속 꼭 지켜. 아무한테도 말 안한다는 것도. 그리고... 어쨌든 나 분명히 얘기했어. 혼자 가지 말라고. 괜히 급하다고 너 혼자 갔다가 그 애 못 찾아오면. 그땐 정말 끝이야. 네가 아빠랑 다시 갔을 땐 분명 없을 거라고. 기회는 한번뿐이야.”
아이가 힘주어 말하고는 골목 모퉁이를 돌라 가버린다. 하지만 아이한테 청이가 어디 있는지 들은 은은 아이가 떠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실은 은은 그 날 그 세차장에도 다녀온 후였다. 그렇지만 세차장 어디에서도 청이를 보지는 못했다. 한참을 아이가 사라진 골목 끝만 보던 은이 흩어진 전단지를 하나하나 다시 줍는다. 은이 마지막 전단지를 아주 천천히 들어서 모아진 종이 뭉치 위에 올린다. 아까 아이가 들고 있던 전단지다. 은은 다시 아이가 사라진 골목길을 잠시 보고는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은아, 그 아이가 청이가 세차장에 있는 걸 봤대?”
은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봤다고는 안 했어요.”
고반장은 조금 이상했다. 은은 웬만한 일로는 자신에게 전화하는 일이 없었다. 어렸을 때 많은 일들을 겪은 아이라 다른 아이들보다도 좀 어른스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조금 어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근데 그날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집으로 빨리 와달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몇 번을 물어봤지만 그건 아니라고 할 뿐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대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딸아이의 행동이었다. 은은 몇 번을 망설이더니 얼마 전에 잃어버린 청이가 어다 있는지 안다고 찾으러 가자고 했다. 은의 말대로 청이를 찾았으면 벌써 데려왔을 성 싶어 그럼 왜 데려오지 않았냐고 묻자 또 입을 다문다. 은은 계속 같은 말만 했다.
“그 애가 있다고 했어요. 거기 청이가 있다고. 정말이에요.”
결국 고반장은 은의 손을 잡고 세차장까지 왔다. 고반장은 세차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발길을 멈추고는 허리를 굽혀 은을 마주본다.
“은아, 여기 가만히 있어. 아빠가 청이 있는지 보고 올께.”
고반장이 은이에게 걱정 말라는 듯 한번 웃고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세차장을 향해 막 몸을 돌리는데 은이 아빠의 등에 대고 소리친다.
“그 아저씨가 갖고 갔다고 했어요. 일부러 팔려고 갖고 갔다고. 나도 이상하다는 거 알아요. 아까 점심에도 세차장 갔었으니까. 난 못 봤는데, 난 청이 못 봤는데 근데 그 애는 청이를 꼭 본 것처럼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아빠랑 같이 가라고 했어요. 기회는 한 번 뿐이라고. 처음 가서 못 찾으면 그땐 정말... 정말……. 그러니까... 그러니까 꼭 거기 있을게예요, 아빠. 제발 청이 안 보인다고 그냥 나오지 마세요. 분명히 있다고 했어요. 청이 있을 거예요.”
은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고반장에게 간신히 말한다.
“은아, 아빠 그냥 안 나올 거야. 혹시 은이가 밖에서 못 본데까지 다 보이지 않는 구서구석까지 청이 있는지 다 보고 나올 거야. 그래도... 만약 그래도 청이가 없다면……. 아니다. 우리 은이가 있다면 분명 저기 있을 거야, 그치? 아빠 청이 데려올게. 은이는 잠깐 여기서 기다려.”
고반장이 은을 향해 아까보다 더 밝은 얼굴로 웃고는 세차장을 향해 걸어간다. 잠시 세차장 앞에 서서 은을 보던 그의 모습이 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언다.
“청아”
은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세차장을 나오던 아빠의 손에 청이가 들려있었다. 분명 청이였다. 은이 아빠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청이를 안고 오던 은이도 고반장도 궁금한 거 투성이었다. 은은 청이를 찾은 기쁜 마음 뒤로 아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가 없었다. 세차장에 청이가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만 아는 비밀을 아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너무 신기 한 일이었다. 다시 만다고 싶지만 설사 만나다하더라도 못 본적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말을 걸거나 아는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궁금한 게 많은 건 고반장도 마찬가지였다. 은은 끝까지 청이가 세차장에 있다고 말해줬다는 아이가 누군지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도 모르는 아이라고 했다. 은은 자신의 입으로 청이를 세차장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고 청이가 세차장에 있다고 말해준 아이도 청이를 본 건 아니라고 했다. 사실 고반장은 좀 난감했었다. 하지만 은의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은은 정말 청이가 그 곳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은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고반장은 세차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었다.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서라도 세차장을 다 뒤질 거라고. 반드시 다 확인하고서야 은이한테 돌아갈 거라고. 그리고 인사를 하면서 걸어 나오는 세차장 주인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는 웃으면서 말했었다.
“아, 우리 청이 여기 있다면서요. 이거, 참,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집 잃은 개를 다 살펴주시고.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고반장이 넌지시 세차장 주인을 떠봤다. 세차장 주인의 얼굴에 아주 잠깐 당황하는 모습이 아주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른 사람이면 알아보지 못 했을 테지만 고반장은 놓치지 않았다.
“아이고, 안 그래도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다행이네요.”
세차장 주인이 연신 웃으며 고반장을 세차장 뒤 창고로 안내했다. 그리고 낡은 알루미늄 문이 불쾌한 쇠 소리를 내며 열리자 고반장은 청이를 볼 수 있었다. 온갖 낡고 위험한 철재 고물들 틈에서 흔한 비닐 줄에 목이 묶여 잔뜩 웅크리고 있는 딸아이의 개를. 청이 앞에는 물 그릇 조차 놓여있지 않았다. 은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은이 혼자 왔다면 세차장 주인은 결코 청이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잡아 가고 싶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 자리에서 세차장 주인을 잡아 갈 수는 없었다. 고반장은 끝까지 고맙다고 말하며 웃으면서 세차장을 나왔다.
하지만 역시 가장 이상한 건 세차장 주인이었다. 혼자서 개를 안고 가던 아이를 본 순간 그는 아이가 결국 한 번은 개를 내려놓을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아이가 개를 놓고 운동화를 매는 순간 그 기회가 찾아왔다. 개를 데려오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고 개를 데려온 후에는 한 번도 창고 밖에 내 놓은 적이 없었다. 난데없이 주인이라며 찾아 온 사람이 형사라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너무 자연스럽게 개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내놓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15만에 그냥 팔 걸. 괜히. 뜸들이다. 거마저도 놓쳤네!’
자신이 한 짓은 생각도 않고 그 날 밤 내내 간만에 들어온 부수입을 놓친 세차장 주인은 아쉬운 듯 입맛만 다셔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