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경기도 마두동에 위치한 탤런트 한석민씨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한 씨는 해외 촬영중이여서 변을 면했지만 한 씨가 기르던 애완견은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입니다. 한 씨의 애완견은 유기견을 구출해서 연예인들에게 분양해주는 동물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한 씨에게 입양되었으며 구출되었을 때부터 얼마 전까지의 모습이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에 소식을 들은 많은 시민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소속사측은 촬영에 영양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 한 씨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한 씨는 사흘 후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경찰은 도난품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원한관계…….”

  “인간들이 벌써…….조용히 사무실 들어가기는 텄다, 텄어.”

  정민은 라디오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린다. 고반장과 정민이 현장을 떠난 지 이제 10분도 되지 않았다. 헌데 벌써 라디오에서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 하나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고반장이 핸들을 꺾자마자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정민처럼 입으로 불평하지 않는 고반장이라고 언론이 반가울리 없다. 당장에 고반장은 속으로 저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를 뚫고 자신의 의자에 무사히 앉는 것을 이 사건의 첫 수사목표로 정했다.



  두 사람이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끝냈을 때는 이미 오후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사무실 안이라고 서 밖이랑 많이 다르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 벨 소리에 복도에서 웅성대는 기자들 소리까지 더해져서 옆 사람이 하는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게 학생 그만 좀 끊어. 그 놈 잡는다고. 아, 잡는다니까.”

  입이 걸기로 소문난 조형사가 연신 욕을 해대며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염병할……. 부모가 뼈 빠지게 번 돈으로 학비 내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수사를 하네 마네. 아이구, 젠장 도대체 그 개 새끼 그거 얼마짜리야?”

  “바리요? 그냥 똥개에요.”

  황순경이 조형사에게 커피 잔을 내밀며 말한다.

  “황순경도 그 프로그램 봤어?”

  “네, 가끔요. 저도 개 좋아하거든요. 아이들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아무리 개지만 11층 밖으로 던지는 건 사람이 할 짓은 아니잖아요.”

  “사람이 할 만한 일 만하면 내가 지금 이 짓하고 있겠어?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지 말이야. 누가 알아 개가 스스로 뛰어내렸는지?”

  “에이, 조형사님도. 그건 아니다.”

  조형사의 황당한 결론에 황순경의 눈이 동그래진다.

  고반장은 두 사람의 대화에 조용히 웃을 뿐 말이 없다. 고반장이 잠바를 벗어 옷걸이에 걸자 잠바며 셔츠에 묻은 피가 정민의 눈에 들어온다.

  “그러게 내가 그냥 안지 말라고 했잖아. 영감 고집은. 피 흘리는 개를 덥석 그냥 안더라니.”

  고반장은 정민의 말을 짐짓 무시하고는 탁자 위에 올려진 파일을 연다. 파일 안에는 한석민의 사진과 간단한 신상명세가 기록되어 있다.

  “조형사, CCTV 갖고 왔지?”

  “네, 반장님. 대충 봤는데 건질 건 별로 없어요. 4시 반경에 올라가서 30분 뒤에 다시 타고 내려왔고. 계단을 살피면서 건을 보지 않고 바로 11층에 내린 거나 엘리베이터 처음 탈 때부터 카메라를 피하는 걸로 봐서는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애긴데. 입은 옷이나 모자도 너무 흔하지만 카메라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어서 제대로 얼굴이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조형사가 CCTV 화면을 인쇄한 종이 몇 장과 현장 사진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정민은 사진들을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서 하나씩 살펴본다.

  “한석민이 소문은 어때? 뭐 라이벌 관계나 스캔들 같은 거.”

  “아직은 특별한 게 없어요. 워낙 인간성 좋고 자기 관리가 뛰어 난 인물이라고 소문이 나서.”

  잠시 파일만 보던 고반장이 다시 입을 연다.

  “병원에서 전화는 안 왔어?”

  순간 세 사람은 모두 멀뚱멀뚱 고반장을 쳐다만 본다.

  “아, 병원을 옮겼대요. 신림으로. 출혈은 멈췄는데 의식은 없고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가 봐요.”

  고반장에 말을 먼저 알아들은 황순경이 대답한다.

  정민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하나를 옆으로 밀어내자 고반장이 그 사진을 집어 든다. 사진 속에서 까만 눈동자 가득 호기심을 드러낸 강아지 한 마리가 정면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다.

  “조형사랑 황순경은 사진 들고 주변 탐색 좀 해봐. 새벽이라도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누군가 봤을 수도 있어. 우유나 신문 배달하는 사람들 쪽으로는 꼼꼼히 다 확인하고. 탐문 끝나면 조형사는 한석민이 주변 사람들 명단 좀 잘 만들어서 대인관계 좀 살펴보고 황순경은 그 무슨 프로그램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거, 다 확인 좀 해봐. 작정하고 덤빈 거면 분명히 얼마 동안은 미행을 했을 거야. 촬영하면서 찍혔을 수도 있으니까 집안이 아니라 밖에서 찍은 걸로 잘 체크해보고.”

  고반장은 말을 하면서도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한참동안 고반장이 다시 사진만 보고 있자 황순경이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반장님, 왜 그 동물 프로그램에 보면 동물들이랑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가끔 나오기도 하거든요. 뭐 직접 보지 않아도 사진만 보고서도 정확히 맞추곤 하더라고요. 우리도 그 사람들 중 하나 컨택 해볼까요?”

  세 사람은 일순 모든 동작을 멈추고 황순경을 뻔히 본다.

  갑자기 조형사가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한다.

  “푸하하하.”

  “우리가 무슨 <살인의 추억>에 송강호도 아니고. 차라리 송강호처럼 점집에 가자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네.”

  정민도 그녀를 보고 황당하다는 듯이 웃는다.

  “좀 그랬나?”

  황순경이 쑥스러운 듯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고는 불현듯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고반장에게 묻는다.

  “참, 반장님, 집에 강아지 찾으셨어요? 그 콩인가 뭔가? 왜 은이 서까지 찾아와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어휴, 그 때 은이 모습 보고 놀란 거 생각하면. 전 꼭 무슨 일이라도 당할 줄 알았잖아요.”

  “어, 찾았지.”

  고반장은 잠시 그날을 생각한다. 아침에 입힌 하얀색 스커트는 군데군데 흙이 묻은 채로 잔뜩 구겨지고 하나로 단정하게 묶은 머리는 다 흘러내려서 눈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아빠, 청이가…….청이가……. 라면 사러 갔는데……. 운동화 끈이 풀어져서……. 어~~~엉.”

  처음에는 딸이 무슨 나쁜 일을 당한 줄 알고 가슴이 털컹 내려앉았다. 은이가 말문을 열고나서야 고반장은 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청이를 잃어버렸구나!”

  그제야 너무 놀라 멈춰버렸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말없이 딸을 안아주었다.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와~ 경찰아빠 좋네. 용케 찾았어. 사람 잘 찾으면 개도 잘 찾나?”

  정민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던 질 때는 이미 고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하, 황순경, 왜 그 때 반장님네 개 잃어버렸을 때 한 번 말씀드려보지 그랬어. 그럼 더 빨리 찾았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지금 이렇게 고생할 거 뭐 있어? 실력은 이미 증명됐겠다. 사진만 보여주면 되겠네.”

  한참을 웃던 조형사가 아직도 진정이 안 된 듯 연신 킥킥되며 황순경을 놀려 댄다.

  옷걸이에서 잠바를 집어 들고는 아무 의미 없이 핏자국을 툭툭 털어내던 고반장의 손이 순간 움찔한다.

  “황순경 다시 말해봐.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어?”

  고반장의 물음에 세 사람은 일 순 할 말을 잃는다. 고반장이 묻는 말투가 진지하게 들려서다.

  “뭐, 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외국 사람들은 TV에도 여러 번 나오긴 했어요. 어떤 여자는 사진으로도 죽은 동물을 정확히 집어냈고 살아왔던 삶이나 죽었을 때의 과정 같은 걸 세세히 묘사해서 보고 있던 저도 무척 놀랬거든요. 그렇지만 뭐 어디까지나.”

  황순경의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반장이 잠바를 입으며 급하게 문을 향해 걸어간다. 막 문을 미는 순간 다시 뒤돌아 와서는 탁자 위에 사진하나를 집어 거칠게 잠바 주머니에 넣고는 아까 보다도 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간다.

  “어?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정민도 서둘러 재킷을 들고 일어난다.

  “설마, 그 개 있는 병원에 가는 건 아니겠지?”

  재킷을 입으며 정민이 황순경을 본다.

  “우리 반장님이라면 당연히 ……. 가죠.”

  황순경이 놀리 듯 대답한다.

  “뭐야, 병원에서 개한테 범인은 보셨습니까? 이렇게 묻기라도 한다는 거야. 어휴~.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꼭 사람 같잖아. 미치겠네, 진짜. 어째 저 영감은 나이 들면서 일을 더 만들어요.”

  정민은 혼자서 연신 툴툴대면서도 고반장이 사라진 문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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