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장은 11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이 얼마 없는 그의 머리를 헝클어드리자 습관처럼 올라 온 손이 머리를 매만진다. 머리를 넘기던 그의 옷소매 끝과 팔 부분에 군데군데 묻은 검붉은 자국이 유독 눈에 띈다.
“휘~이익~~~”
갑자기 그의 옆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미침 놈이네. 떨어질 거면 지나 뛰어내리지 개는 왜 던졌을까?”
어느 샌가 고반장 옆에 정민이 다가와 있다. 잘 다려있는 아이보리색 면바지며 하얀 셔츠에 입은 분홍색 니트가 세련되고 깔끔하게 보이는 게 고반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어때?”
“뭐, 현금부분은 주인이 확인해야하는 거고 액세서리는 좀 손 댄 거 같은데 다 갖고 간 건 아니니까 그것도 역시 본인이 봐야하고. 뜰 건 다 떴어.”
“저것도 챙겼냐?”
고반장이 베란다 창문 안쪽에 흥건히 쏟아져 있는 오물을 턱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챙기긴 챙겼지만 우리가 뭐 CSI도 아니고 갖고 간다고 뭐 별수 있나. 그리고 저거 검사할 거 뭐 있어? 집에 딱 들어오는 순간 소주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뭐? C? 뭐라고?”
고반장이 눈썹을 찡그리며 정민을 향해 되묻는다.
“아, 몰라. 가자고, 영감. 아침부터 설쳤더니 배고파.”
그가 베란다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고반반장에 팔을 잡아끄는 순간 두 사람 뒤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고반장의 몸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제가 한석민이 매니저라니까요. 제가 봐야한다고요. 어차피 이 집도 소속사 명의로 된 거예요.”
현관에서 남자 둘이 실랑이 중이다.
“글쎄, 좀 기다려 보세요.”
덩치 좋은 남자 한 명이 현관을 막고 있고 그 뒤로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남자 두 명이 보인다.
“들어오시라고 해, 조형사”
고반장이 현관을 막고 있던 남자를 향해 말하자 앞에 있던 남자는 막고 있던 조형사를 밀치고는 쏜살같이 문턱을 넘어 현관으로 들어선다. 잘 차려 입은 정장에 끼고 있는 선글라스가 제법 있어보이지만 손이며 목에 잔뜩 하고 있는 액세서리들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순식간에 집안으로 들어 갈 것처럼 서두르던 그의 발걸음이 단 한 걸음을 남겨두고 멈춘다. 그렇게 현관에서 깨진 텔레비전과 군데군데 떨어진 귀중품이며 사방으로 흩어진 옷가지들을 둘러보는 남자의 얼굴이 이내 구겨진다.
“아니, 이게 도대체…….”
남자가 말을 잇지 못한다.
“한석민씨 매니저시라고요?”
고반장이 남자를 마주보고 묻는다.
“네, 이준영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도둑이 든 것 같습니다만 자세한 건 조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에 한석민씨를 좀 봐야하는데 언제 오나요?”
“석민이 지금 국내에 없습니다. 촬영이 있어서. 사흘 후에나 옵니다.”
고반장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당장 한석민을 볼 수 없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군요. 그럼 현재로 본인 확인은 어려우니 대신해서 집 좀 둘러봐주시겠습니까? 없어진 거나 특이한 거 있으면 말씀 좀 해주시고요. 어떤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고방장이 조금 물러서자 준영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고반장이 조형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금세 반장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준영의 옆에 붙는다. 준영과 같이 온 다른 남자는 그제야 공간이 생긴 빈 현관으로 몸을 들이민다.
“화장대에 시계며 뭐 좀 없어진 것 같긴 하지만 다른 건 잘 모르겠습니다.”
방 두 개를 살피고 나온 준영이 고반장에게 잘 모르겠다는 듯 말하고는 계속해서 거실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흐리자 현관에서 거실만 살피던 다른 남자가 그를 보며 묻는다.
“실장님, 바리 방에 없습니꺼? 바리 말입니더.”
남자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거실 한편에 놓인 개장에 시선을 던진다.
“아, 바리! 혹시 강아지 못 보셨습니까? 석민이가 기르는 갠데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짧은 순간 고반장과 정민의 눈이 마주친다. 정민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고반장이 잠시 베란다 쪽을 보고는 준영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게, 보긴 봤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