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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갱 할아버지의 염소 - 우리아이 처음 읽는 세계명작 그림동화
알퐁스 도데 원작, 함영연 구성, 김태균 그림 / 종이나라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블랑슈트에게
잘 지내고 있니, 블랑슈트?
지금 있는 곳의 풀은 어때? 마음에 드니?
목을 감고 있는 줄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끝도 없이 넓은 들판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다리나 다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블랑슈트!
새하얗고 긴 털에 작지만 단단한 두 개의 뿔을 가진 참 멋진 염소, 블랑슈트!
얼마나 무서웠니?
늑대가 널 행해 달려들 때.
너도 너무 무서워서 잠깐은 차라리 빨리 잡아먹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했지.
난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어.
‘왜 스갱 아저씨를 떠났니. 블랑슈트. 왜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도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니? 블랑슈트.’
난 울고 싶어졌어. 네가 너무 불쌍하고 바보 같아서.
그냥 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 늑대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두 개의 작은 뿔만 믿었던 네가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서.
그래서 소리쳤어.
‘도망가, 블랑슈트. 제발 지금이라도 스갱 아저씨의 나팔소리를 따라 아저씨의 품으로 돌아가. 어서, 뛰어, 블랑슈트.’ 라고.
그런데 넌 또 다시 날 놀라게 하더구나.
넌 도망치지 않았지. 늑대의 새빨간 혀를 보고서도 늑대를 등지고 돌아서지 않았어. 마지막까지도.
오히려 넌 그 작은 뿔을 세워 맹렬히 늑대에게 달려들었지. 그리고 싸우고 싸워서 밤새도록 늑대와 맞서 버텼어.
그때서야 난 네가 정말 원했던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단다.
그리고 난 결국 네가 그걸 가졌다고 생각 해.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네게 있었던 거겠지. 그리고 내게 있는 것이 기도하고.
아, 블랑슈트!
정말 멋진 염소, 블랑슈트.
널 생각하면서 나도 부디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렴.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죽고 싶은 순간에도 절대 등을 보이며 도망치지 않게 해 줘.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포기하라고 말하는 내가 되지 않도록 나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기를 부탁할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어느 길이 안전하고 또 어느 길이 위험한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하지만 블랑슈트.
나도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나의 길을…….
비록 그 길에서 늑대를 만나고 내 몸이 붉게 물들지라도 나도 너처럼 ‘나’로 살아가고 싶어. 내가 선택한 ‘길’위에서.
블랑슈트, 마지막 순간에도 늑대를 향해 돌진했던 용기 있는 염소, 블랑슈트!
부디 기원해주렴.
내가 널 만났을 때 나도 떳떳할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 네가 뛰어놀고 있는 그 들판 위에서 나도 내 옆에 나란히 푸른 하늘을 마주보며 누울 수 있도록.
그럼 우리, 우리가 만날 그 날을 기다리자.
늑대와 맞서서 당당히 싸운 염소 블랑슈트와 보이지도 않는 늑대 때문에 겁먹은 아라가 만나는 그날을.
2005년 11원 26일
민들레 피기를 기다리며 아라가
추신 :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늑대가 없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확실한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