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사진 한 장 - 사랑하는 나의 가족, 친구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베아테 라코타 글, 발터 셸스 사진,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뇔커는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병원을 나선다. 그전에 그는 루트 글란더에게 코트찬이 죽기 2주 전인 1월의 어느 하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은 밤새도록 함박눈이 내렸다. 뇔커는 병원 문 앞에서 솜처럼 하얀 눈을 뭉쳐 큰 눈덩이를 만든 다음 허겁지겁 뛰어서 코트찬의 병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이 서서히 녹아 물이 되는 걸 지켜보며 물이 다시 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런 변화에 큰 관심을 보였죠."
뇔커가 그날 일을 회상한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었을 거예요."
220p <마지막 사진 한 장> 中
"당신의 삶이 한 달쯤 남았습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며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상상해보지 않았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베아테 라코타와 발터 셀스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죽을 준비를 하러 호스피스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의 生과 死를 찍는 것이다. 살아있었던 순간과 죽고 난 순간의 얼굴을 담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묶여 이 책이 나왔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후회한다. 해왔던 일보다, 해보고 싶은 일이 아직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의 삶을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나중에, 나중에를 읊조리지만,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나중에'는 없다. 오늘이라도 죽을지 모르는 시간만 있을 뿐.
어제 <그레이 아나토미 6>-4화를 보고 있는데, 이런 에피소드가 나왔다.
82세의 노인이 닥터 슬론(성형외과 의사)에게 음경 보형물 시술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다. 발기가 되지 않는 남자에게 발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적인 시술이었다.
아들은 반대한다. 나이가 많아 위험하다고 길길이 날뛰며, 그런 시술에 남은 예금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노인은 화를 낸다. 나이가 들었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고 싶은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고생해서 모은 돈을 쓰고 싶을 때, 내 행복을 위해 쓸 권리가 있다며 싸운다. 아들과 며느리가 양로원에 있으니,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며 집으로 다시 모시고 들어가겠다는 말까지 한다. 노인과 자식은 냉랭하다.
닥터 슬론과 단둘이 있게 된 노인은 이런 말을 한다.
"애들은 이런 게 다 부질없다고 생각한다우. 난 정말 이 수술이 필요해요.
어느 날 일어나보면 모든 일들이,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갖고
손자를 갖는 그런 큰일들이 다 지나갑니다.
다 끝나는 거죠.
남는 것은 다 옛일들이고 미래는 얼마 남지 않아요.
내 아내가 죽고 20년까지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싫었소.
그러다 어느 날, 어느 날 밤 빙고 탁자에 앉았지.
매리언과 함께 말이오.
그녀가 내 미래라오."
그는 살아온 날보다 살 수 있는 날이 더 적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기 때문에, 용기를 낸다. 비록, 내일 죽게 될지라도 오늘이 행복하다면 상관없다. 삶은 그런 것이겠지?
<마지막 사진 한 장>에 등장한 많은 사람이, 삶을 안타까워한다. 평생 고생만 한 사람도 있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다. 일만 하다가 인생을 돌아보지 못한 사람도 있고, 채 펴지도 못하고 죽는 아이도 있다. 자신의 존재를 잊어가며 죽어가거나, 피를 토하고, 먹지 못하고, 숨 쉬는 것도 힘들고, 의식이 없이 죽어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자식과 화해하고, 헤어진 남편과 화해한다. 나를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한다. 며칠의 시간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며 죽고 싶지 않아 죽음을 빨리 부르기도 한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살고, 추억하고, 기억한다.
영혼이 사라진 후, 육체만 남게 된 사진에는 경건함이 느껴진다. 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온 마지막, 고통의 시간도 편안하게 마무리된다.
삶과 죽음, 죽음과 삶.
그들이 또 한 번 원하는 삶을 나는 살고 있다. 그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살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수도 없이 말했다. 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죽는 순간까지 살려고 살았지, 죽으려고 살지는 않았다.
그 순간과 사연들이 살게 될 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았다.
살아갈 자들은 죽어가는 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들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