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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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은 점점 파괴되고 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이 외면을 언제까지 지속하고 있을까?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고 작가 새시 로이드는 한 아이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심각하거나 적나라하거나 눈이 번쩍 뜨이는 일갈이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아무렇지 않은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가상이다. 2015년 1월 8일 영국 정부에서 60퍼센트 탄소 배급이 시작된다. 탄소 배급제란 전 국민에게 의무적 탄소 카드를 발급하고 일인당 월간 200포인트만 탄소를 쓸 수 있게 한다. 탄소부를 설치하여 국민이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제도가 한 가족에 폭풍 같은 혼란을 가져온다. 편리한 생활로 무제한 탄소 배출을 했던 가족은, 점점 불편함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혼돈에 빠진다.

브라운 가족의 로라 브라운은 탄소 배급제가 신청되던 2015년 1월부터 일기를 쓴다. 로라 브라운의 눈으로 보는 탄소 배급제 과연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생각이 드는 것일까? 어린 학생의 눈은 아이답게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투로 하지만, 정직하다. 처음에는 모두 현실 부정 모드였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 되고 나니 우왕좌왕이다. 누구나 똑같이 주어지는 탄소 포인트. 포인트를 아껴서 필요할 때 사용하려면 자동차, 비행기 이용은 꿈도 꿀 수 없다. 이것은 여행이나 여가생활도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 TV, HD, 오디오를 사용하는 것도 제한되며, 난방, 목욕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심지어 드라이, 토스터, 전기 주전자, 전등, PDA 등도 선택 사항이다. 쇼핑도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람의 행위가 탄소 배출을 불러오는 일은 무엇이든 줄여야 한다. 

이것은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익숙하지 않은 일이 사람들에게 달가울 리 없다. 탄소 배급제 때문에 과제도 바뀌었고, 아빠의 관광 교수라는 직업도 유명무실해졌다. 탄소 배급제로 여행은 사양 사업이 되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배우려 하지 않는다. 탄소를 대책 없이 사용했을 때는 탄소부에 끌려가 적절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아주 고약하고 두려운 사건이다. 

로라 브라운은 밴드 활동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의 즐거움도 나누어야 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일 터진다. 엄마와 아빠 사이는 틀어지고, 아빠는 실직자가 되고 언니는 탄소부에 끌려가고 밴드 활동을 하려면 탄소 포인트를 아껴야 한다. 모든 것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이해할 수 없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서는 터에 가족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조차 어렵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전기를 끄고, 농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기른다. 이러한 변화가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익숙해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앞에는 가혹한 시련만 이어진다.

탄소 배급제를 열심히 했는데도 가뭄이 들자, 물까지 제한당한다. 사람들은 점차 지쳐가고, 폭풍이 몰아쳐 홍수까지 난다. 아비규환,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 모두가 힘을 모아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에 있다는 것은 책 주인공보다 독자가 느낄 수 있다. 아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에요! 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날 있었던 일과 자기의 감정들을 아이처럼 적어 나간다. 하지만, 탄소 배급제는 가족의 해체와 생활의 불균형으로 조금씩 조금씩 어린 아이의 삶을 좀먹는다. 

2015년은 멀지 않다. 멀지 않은 날을 배경으로 이 책을 구성한 작가의 메시지는 더욱 위협적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일이지만, 올 수 있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일들을 불편하게 만드니, 탄소 배출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편리한 삶을 조금 포기하니 탄소 배출이 줄어든다. 역시, 실천이 중요하다.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아이의 일기로 전한 경고는 새롭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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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밥벌이 -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사는 17인의 열정 토크
홍희선, 김대욱 지음 / 넥서스BOOKS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웰빙과 여유와 여행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살만해졌다는 이야기다.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조금 줄이고, 다른 일로 고개를 돌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정말 먹고사는 게 '다' 인 것일까? 그것만 충족되면 그냥저냥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먹고살기는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시대에 안착했다. 이런 시대에는 먹고사는 것보다 뭘 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나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고 있는 거지?

공부하기 위해 태어나서, 또 공부하기 위해서 자식을 낳는다. 이런 지루한 삶은 싫다. 결국,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에 얽매이고, 체면에 얽매인다. 보여주는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사는 삶은 없다.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면, 허울 좋은 학벌도 사생활이 없는 대기업 사원 생활도 내가 진정하게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막의 신기루처럼 진짜가 아닌 삶이 된다. 진짜가 아니지만 배부른 걸로만 만족할 수 없다면 할 말이 없다. 그것도 만족이기에 그게 행복한 삶이고 행복한 밥벌이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아 정신 차려! 당신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행복한 밥벌이>에 나오는 17명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이들에겐 먹고사는 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먹고사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니, 꿈꾸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배부른 소리라고? 이들은 원초적으로 배부르지 않다. 아직도 배고프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이제 시작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제 꿈꿔온 것들 안에서 조금씩 가슴 속을, 뱃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을 뿐인데 무슨 배가 부르다고. 0부터 10까지 나뉜 눈금에서 이제 1쯤 왔을 뿐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달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언젠가 최고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최고'라는 말에 발목 잡히지 않고, '최고'라는 말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부유'한 것 같지도 않다. 물질적인 것으로 보상받는 삶만이 행복할 리 없다. 이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돈을 쫓아가는 밥벌이는 돈의 노예만 될 뿐. 꿈을 쫓아가는 밥벌이를 할 때 가끔은 돈이 쫓아와 준다. 그렇게 먹고살 수 있으면, '돈'은 개의치 않는다.

'당신들 멋져!'라고 말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사업 수완'이 좋아 보여서, '타고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원하는 삶을 쫓아가기에, 그러다 지친다 하여도 원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에, 자기의 위치에 당당하기에, 그리고 그것을 행복한 밥벌이라고 말하기에. '당신들은 멋지다!'라고 말할 수 있다. 노래를 하기 위해서,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연기를 하기 위해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 작곡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리기 위해서 그들은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10년 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요. 10년을 했는데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면, 이 길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10년 뒤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멋진 삶을 이루어 냈을 테니까.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나만의 철학과, 나만의 굳건한 신념, 의지가 있기에,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기에 달린다.
치열하게 살았으니, 타인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대범함과 솔직함, 열정이 부럽다. 정당한 욕망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 행복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책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누군가 내 글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시인 김경주
지금까지는 시작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영화감독 & 배우 양익준
붕가붕가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18평짜리 임대 아파트 하나와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 1차 목표라는 붕가붕가 레코드 고건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된 과정을 이겨낸 완벽주의자 아트디렉터 김소영
아직은 45등쯤, 1등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겠다는 개그맨 한민관
생각만 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가열차게 외치는 밴드 국카스텐
언제나 '청년'이고 싶은,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슬퍼하지 말자는 뮤지컬 배우 김산호
지금은 만들어내고 뿜어내고 공유하면서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그림 노동으로 빛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만화가 최규석
최고라는 착각의 벽을 당당히 부셔내고 다시 그려내는 그래피티 작가 JNJ CREW
모두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포토그래퍼 전소연
Just be yourself-Dream and go for it! - 팝아티스트 낸시 랭
맥주 한 잔 마실 돈만 있다면, 내가 재미있고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다 현대음악 작곡가 신나라
어려운 미술, 재밌고 즐겁게 소통하길 원한다 큐레이터 몰라
미친 듯이 두드리고, 두드리며 미친다 라퍼커션 리더 전호영
자기만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맑은 배우 한지민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직접 전화하는 꿈을 꿔온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박선희


그들의 열정과 행복과 즐거움을 흡수해 보시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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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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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불균형하게 형태화 되어 있다.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더 상황이 나쁜 가족도 있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폭력적일 수 있을 수도 있으니, 따지고 보면 이 가족은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은 아니다. 냉랭한 기운, 무관심한 상태, 말을 섞지 않으며 서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가족. 가족은 그렇게 묶여 있다.
새엄마는 화교. 아빠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사람. 외로움에 치를 떨며 어리광부리는 누나. 의대에 입학하고도 대학에 다니지 않는 나. 배다른 동생. 사실 화자는 나가 아니다. 그들은 각각의 이름이 부여된다. 옥영, 상호, 은성, 혜성, 유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관심이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모인 가족은 이미 서로를 잘 모르는 가족일 뿐이다.

사건은 가족의 막내 유지가 사라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표면적으로 유지는 집 안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유지의 존재는 가족의 공간, 시간, 생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라지고 나서야 존재를 인식 당한 것처럼. 유지가 사라지면서 수면에 가려졌던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들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진동이 없었던 가족에게 진동이 시작된 것이다. 멈췄던 메트로놈이 작동을 시작한 것처럼.

친정을 다녀오겠다던 옥영은 친정에 간 것이 아니었다. 무역업을 하고 있던 상호는 제대로 된 무역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다니던 척하던 혜성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고, 가끔 참을 수 없는 밤이 찾아오면 혼자만의 쾌락을 즐겼다. 남자에 집착하는 은성은 자신의 출생의 시작 속에서 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유지도, 가족 안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해소하려 잠시 외출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외출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줄지,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상호가 아이를 찾기 위해 취했던 방법은 문영광이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찾기 위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어쩐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은성 또한, 과거에 잠깐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밀담이 현실이 된 것이라고 자책했다. 혜성 또한, 그날 일찍 집에 돌아만 왔더라도, 쾌락을 제어한 채 집으로 돌아왔더라면 유지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옥영, 그녀는 대만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밍과의 질긴 인연을 끊고 이별을 고하러 갔던 여행은 그녀에게 전부인 딸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유지의 부재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은 긴장하고, 자책하고,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유지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언제 이렇게 유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가족으로서의 유지를 말이다. 모두 무관심한 채 자기 삶 안에 갇혀 있던 가족들은 갑자기 유지가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행동한다. 본인들만 제대로 느끼고 있지 못하다.

이야기는 한 명 한 명을 따라가며, 그들이 했던 행동과 생각들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낸다. 그들이 만났던 이야기, 그들의 삶이 흘러온 이야기, 유지가 사라진 날 그들에게 있었던 일들, 심지어 유지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사건에서 '밍'은 자신의 존재를 '혜성'에게 잠깐 드러낸 채 결국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지를 위한 선택이었고, 유지를 찾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결국, 하나의 진실은 묻힌 채, 가족들은 어정쩡한 상태로 처음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로 조우한다.

시간이 흐르고, 부유해지고, 가질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외로워지는 사람들. 그것은 가족이란 울타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지는 미세한 파장도 없다. 그냥 함께 그대로 사는 삶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과연 공존이고, 사랑이며, 위로일까? 서로에게 말이다. 말을 숨긴 채, 감정을 숨긴 채, 진실을 숨긴 채, 가족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타인에게 겉으로 보여지는 부유함, 화목함, 괜히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얕은 허세와 위세 정도로 가족은 가족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유지가 사라진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은 컴퓨터 비밀번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속속들이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시점에서는 절망감과 고통, 상처도 함께 따라왔다. 시간의 골은 그렇게 깊었던 것이다. 그들이 모두 모이는 순간을 기다리려면 또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리라. 그들이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데에도 몰랐던 시간만큼이 소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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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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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한 다스는 몇 개입니까?" 일반 상식에서 한 다스는 12개다. 그러나 마녀의 세계에서는 13개가 한 다스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좋은 숫자에 해당한다. 이처럼, 같은 숫자라도 각자의 상식과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녀다. 하지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마리 여사의 <마녀의 한 다스>를 읽으며 이번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에 살면서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느끼는 생소함과 생경함, 이질감은 문화적 차이와 삶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녀가 갔던 나라, 견문들을 모아 세계 속에 있는 개개인들 안에서 느껴지는 '차이'라는 것을 그녀만의 위트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 절대적으로 여겨오던 '정의'나 '상식'이, 다른 문화에서 이어온 발상이나 가치관에 비추어지는 순간, 또 시간이 흐르고 그 문화권 자체가 변화하면서 맥없이 무너져가는 현장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한편, 인간은 지치지도 않고 절대적인 가치를 찾아 헤매는 동물이기도 하다.   - 23p

<마녀의 한 다스>에서는 비교적 세세한 분류로 각 나라에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 삶, 생각 등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녀의 직업병과 취향은 곳곳에 발현되어 있다. 언제나 그녀가 염두에 두는 것은 말과 맛, 문화.
시작은 그녀가 마녀 집회에 참석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취재차 모스크바에 갔을 때 당시 소련 공산당 청년동맹 기관지에 유능한 기자가 마녀 이야기를 건네며 마녀와의 만남을 주선해준다. 마리는 마녀를 만났지만, 어떤 신비로움이나 특이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기자'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 이성적인 판단의 편견에 사로잡혀 기자에게 마녀의 문화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그가 과학부 기자였기에 그녀의 생각은 더 굳건했다. 하지만, 그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마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에게 화를 내며 사라졌다. 문화라는 것은 개인이 살아온 '상식'이나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 마리는 이 문화의 충돌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단이 있는 풍경들을 이 책에 소개한다. 베를린의 조선인, 이스탄불의 일본인, 바르나의 이란인, 모스크바의 베트남인, 마닐라의 스위스인, 시베리아의 일본인, 나라의 러시아인, 도쿄의 후쿠시마인, 시베리아의 프랑스인, 베니스의 미국인, 아프리카의 일본인 등등.
나라와 나라는 물론, 지역과 지역의 문화와 방식을 대비하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상식, 문화들이 다른 곳에 놓여 있을 때는 얼마나 이질적인 되는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이해와 관용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낸다. 

사실, 식수가 절실한 아프리카인에게 '에비앙'이냐 '삼다수'냐가 중요할까?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아파트'냐 '정원 딸린 집'이냐가 중요할까? 한국인에게 '일본인'은 괜히 라이벌인 것처럼. 우리가 전부라고 믿는 문화는 사실 작은 부분임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산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공간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이 전부라고 믿는 이가 얼마나 많은 편견에 휩싸여 좁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새삼, 그녀의 풍부한 인간관계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좁은 시야, 오만한 강요, 무지하고 자만에 가든 찬 독선,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한 상상력, 이런 사고가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게다가 이런 정신의 소유자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 비극이다.  - 145p

그녀는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하다. 문화의 이해와 관용. 올바른 역사적 지식과 사회적 배경에 관한 지식이 한 나라의 분위기, 삶,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결국, 우리는 개인과 개인이 맞서도 결국 타인일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마녀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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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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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리 여사야!"
그녀의 눈으로 보는 문화는 날카로움과 명랑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그녀의 이론은 기분 좋게 이해된다. 다시, 요네하라 마리다. <미식견문록>, <미녀냐 추녀냐>, <마녀의 한 다스>, <문화편력기>까지. 아직 읽지 않은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올가의 반어법>도 기대가 된다. 이런 여인이라면 모두가 친해지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러시아에서의 생활, 그리고 러시아 통역사라는 경력. 그것은 그녀의 삶에 폭넓은 경험과 가르침을 준 것 같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생각이 깊은 마리 여사는 무엇하나 그냥 놓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서 러시아에 대한 애정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의 문학적 수준도 느낄 수 있는데, 그 문학적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따분하다거나 어렵지 않다는 게 즐겁다. 

* '친척인가 친구인가 이웃인가'에서는 러시와의 문화와 그 이웃하는 나라의 문화, 혹은 비슷한 문화인 듯 보이지만 다른 시각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리 여사는 러시아 속담이나 문화와 일본의 문화, 혹은 러시아와 이웃하는 나라들의 문화를 비교해서 분석하길 좋아하는데 그녀의 지식을 따라가다 보면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또한, 러시아와 유럽 등의 국가들의 문화를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동양인의 눈으로 해석되는 문화편력기는 시각의 차이를 좁혀준달까? 이해하기 쉽게 해준달까? 생소한 문화에 맞장구칠 수 있게 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옛이야기의 교훈에서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일하지 않고 응석받이로 자란 계모의 친딸들은 제멋대로이고 바보에 심술궂고 오만하지만, 일하면서 자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는 상냥하고 슬기로워 모두에게 사랑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며 현명한 어머니라면, 전통적으로 의붓자식을 괴롭히던 방법으로 아이를 키워야 잘 성장할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워낙 천연덕스럽고 명랑하여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배형의 전통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나온 사형 이야기를 예로 들어 프랑스의 사형제도에 대문호들이 충격받았던 것을 알려준다. 당시 러시아는 사형은 없고 유배형에 그치고 있었는데 이 훌륭한 전통에 수해를 보았던 레닌과 스탈린은 살아남아 수백만 명을 처형했던 걸 상기시키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고 간단하고 명료하며 위트 있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한 줄의 문장에 숨겨진 그녀의 생각을 발견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못해 숨은그림 찾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요리와 먹이의 경계선'은 <미식견문록> II 라고 할까? 미식가인 그녀의 영원한 관심사, 음식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폴레옹이 아낀 요리사에서는 닭고기에 얽힌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민담처럼 재미있게 풀어낸다. 버섯으로 보는 인생관에서는 '맛없는 버섯은 무난한 인생과 같고 맛있는 버섯은 생명의 위험이라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맛없는 버섯을 먹는 것보다 독버섯을 먹게 될지도 모르지만 맛있는 버섯을 찾아 떠나겠다는 굳은 결의를 밝힌다. 기내식 생각에서는 기내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당차게 밝히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깨갱 하는 마리 여사는 유쾌하다 못해 귀엽다.

* '심장에 털이 나 있는 이유'는 <미녀냐 추녀냐> II 라고 할 수 있는데, 통역을 하면서 겪었던 문화와 일본 문화, 혹은 말에 대한 문화를 전한다. o/x 모드의 언어 중추에서는 프라하에서 일본으로 왔을 때 봤던 시험문제에 관해 이야기 한다. 논문, 구술시험으로 시험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프라하에서와 달리 일본으로 돌아오니 (  )형 문제나 o/x 문제를 풀어야 했다. 시험의 '부품'이 된 듯한 치욕을 느낀다. 마리 여사는 획일적인 교육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토해낸다.
애매한 상황에 놓였을 때 통역하는 방법, 단어와 말에 숨겨진 의미, 통역을 하면서 애로 사항 등 언어에 대한 그녀의 분석을 읽을 수 있다. 국제 정세와 전쟁의 안타까움을 간결하게 말한 말의 힘이나 신문에 대한 새로운 견해 낡은 틀, 새소식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녀의 새로운 시각은 신선하여 짧은 글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독서에도 TPO도 크게 공감했는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읽히는 책은 모두 다르다는 생각은 나 역시 느끼고 있었던 생각이다.

*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기까지의 거리'는 현시대의 문화적 양상을 에피소드로 구성해 들려준다. 뭐라고 부르시나요? 에서는 언어 습관에 대해 설명하며 일본인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말, 진화와 퇴화는 세트로 에서는 원숭이의 영특한 식재료 능력을 설명하며 인간의 식재료 식별 능력의 무지함과 방관, 좀비 같은 젊은이들에서는 생기 없는 무표정한 젊은이들 앞에서 강의하는 괴로움, 모자람의 효용에서는 풍요와 넉넉함이 얼마나 많은 낭비를 가져오고, 사람을 좀먹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장 좋은 교사에서는 아이를 망치는 법은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몽땅 사주는 것이라는 루소의 말을 인용하며, 아낌없이 주는 교육을 하는 요즘 부모들에게 아쉬움을 토한다.
문화에 대한 생각, 너무 큰 욕망이 실현을 나약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드래건 알렉산드라의 심문'은 오해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가족이야기, 친구이야기, 선생님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경험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맞선남의 비밀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맞선남의 비밀과 그녀를 이해하게 된 후 친구가 된 이야기이다. 맞선남의 프로정신이 황당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지만, 그를 이해하는 그녀의 넓은 마음에 또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나의 실연 회복기에서 그녀의 실연과 하얀 화장지 그리고 친구의 오해가 어이없다 못해 콩트 같다. 결국, 눈물로 젖은 화장지 뭉치를 목련꽃으로 착각한 친구 덕에 마리 여사는 실연에서 회복된다. 드레건 알렉산드라의 심문에서 그녀가 러시아어로 책을 요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낯선 언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 알렉산드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느껴진다. 사프란이 남긴 수수께끼에서는 아버지 친구 지압사 M씨가 주었던 사프란을 회상하는 마리 여사를 만날 수 있다. 고가의 사프란을 선뜻 내주셨던 지압사 M씨는 아버지에게 도대체 어떤 신세를 졌던 것일까 궁금해하지만, 그 수수께끼에 담긴 애정과 사랑을 느끼는 마리 여사를 만날 수 있다.
아빠와 엄마, 부모에 대한 오해와 사랑을 담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내가 마리 여사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열린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일본인이라고 해서 일본만 편들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나라의 문화를 사랑하고, 한껏 누릴 줄 아는 마음을 가졌지만, 비판하고 싶은 것은 신랄하게 비판한다. 고정된 시각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녀의 매력이다. 그렇다고 심각하지 않다. 그녀만의 위트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상식이 쌓여감을 느낄 수 있다. 시답지 않은 농담만 늘어놓는 칼럼이 아니기에, 그녀를 자꾸 찾게 되는 것 같다.
마리 여사의 명랑한 시선으로 바라본 <문화편력기>는 이번에도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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