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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ㅣ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당신에게 한 다스는 몇 개입니까?" 일반 상식에서 한 다스는 12개다. 그러나 마녀의 세계에서는 13개가 한 다스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좋은 숫자에 해당한다. 이처럼, 같은 숫자라도 각자의 상식과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녀다. 하지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마리 여사의 <마녀의 한 다스>를 읽으며 이번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에 살면서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느끼는 생소함과 생경함, 이질감은 문화적 차이와 삶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녀가 갔던 나라, 견문들을 모아 세계 속에 있는 개개인들 안에서 느껴지는 '차이'라는 것을 그녀만의 위트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 절대적으로 여겨오던 '정의'나 '상식'이, 다른 문화에서 이어온 발상이나 가치관에 비추어지는 순간, 또 시간이 흐르고 그 문화권 자체가 변화하면서 맥없이 무너져가는 현장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한편, 인간은 지치지도 않고 절대적인 가치를 찾아 헤매는 동물이기도 하다. - 23p
<마녀의 한 다스>에서는 비교적 세세한 분류로 각 나라에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 삶, 생각 등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녀의 직업병과 취향은 곳곳에 발현되어 있다. 언제나 그녀가 염두에 두는 것은 말과 맛, 문화.
시작은 그녀가 마녀 집회에 참석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취재차 모스크바에 갔을 때 당시 소련 공산당 청년동맹 기관지에 유능한 기자가 마녀 이야기를 건네며 마녀와의 만남을 주선해준다. 마리는 마녀를 만났지만, 어떤 신비로움이나 특이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기자'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 이성적인 판단의 편견에 사로잡혀 기자에게 마녀의 문화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그가 과학부 기자였기에 그녀의 생각은 더 굳건했다. 하지만, 그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마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에게 화를 내며 사라졌다. 문화라는 것은 개인이 살아온 '상식'이나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 마리는 이 문화의 충돌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단이 있는 풍경들을 이 책에 소개한다. 베를린의 조선인, 이스탄불의 일본인, 바르나의 이란인, 모스크바의 베트남인, 마닐라의 스위스인, 시베리아의 일본인, 나라의 러시아인, 도쿄의 후쿠시마인, 시베리아의 프랑스인, 베니스의 미국인, 아프리카의 일본인 등등.
나라와 나라는 물론, 지역과 지역의 문화와 방식을 대비하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상식, 문화들이 다른 곳에 놓여 있을 때는 얼마나 이질적인 되는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이해와 관용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낸다.
사실, 식수가 절실한 아프리카인에게 '에비앙'이냐 '삼다수'냐가 중요할까?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아파트'냐 '정원 딸린 집'이냐가 중요할까? 한국인에게 '일본인'은 괜히 라이벌인 것처럼. 우리가 전부라고 믿는 문화는 사실 작은 부분임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산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공간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이 전부라고 믿는 이가 얼마나 많은 편견에 휩싸여 좁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새삼, 그녀의 풍부한 인간관계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좁은 시야, 오만한 강요, 무지하고 자만에 가든 찬 독선,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한 상상력, 이런 사고가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게다가 이런 정신의 소유자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 비극이다. - 145p
그녀는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하다. 문화의 이해와 관용. 올바른 역사적 지식과 사회적 배경에 관한 지식이 한 나라의 분위기, 삶,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결국, 우리는 개인과 개인이 맞서도 결국 타인일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마녀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