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띠의 해는 ‘길하다’
2004년 갑신년은 원숭이띠의 해다. 옛 사람들은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불렀다. 원숭이의 순우리말은 ‘나비’(납)인데, 녀석의 동작이 날쌔 ‘빠르다’는 뜻의 ‘잰’을 붙여 ‘잰나비’라고 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시골에서는 원숭이띠라고 하지 않고 잔나비띠라고 한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12지신의 동물 중에서 사람과 가장 비슷한 원숭이는 만능재주꾼이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원숭이였다. 그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갈 때 온갖 변화술과 여의봉으로 잡귀를 물리치며 스님을 구한다. 양주별산대놀이, 강녕탈춤, 봉산탈춤 등 탈춤놀이에서도 원숭이탈은 관중을 웃기는 재간꾼으로 등장한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단장’(斷腸)의 슬픔은 원숭이로부터 나왔다. ‘중국 남북조시대 진나라의 군사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배에 태우고 가자,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배를 쫓아왔다. 백여리를 가서 배가 포구에 닿자 어미 원숭이가 배 안으로 뛰어들더니, 쓰러져 죽었다. 어미 원숭이를 해부했더니 새끼를 걱정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원숭이의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고사이다.
동양 신화에서 원숭이는 가장 사랑받는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불교 설화에서 원숭이는 스님의 보좌역으로 그려진다. 민화에서 원숭이가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는 모습은 장수를, 포도송이와 함께 그려지는 그림은 부귀를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원숭이 꿈은 용꿈, 돼지꿈, 불꿈 등에 못지 않게 길몽으로 받아들여졌다. 꿈에 원숭이가 산 속에 들어가면 시합이나 시험에서 우승하거나 합격할 조짐이다. 원숭이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꿈은 승진하거나 연인을 만날 꿈이다.
원숭이는 재주가 많고 총명하기 때문에 쉽게 교만해지고 허세를 부린다. 원숭이가 들어간 속담들은 이를 경계하는 내용이 많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원숭이 흉내내듯 한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조삼모사)’ 등은 잔재주만 믿다가 일을 그르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준다. 지금은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볼 수 있지만, 옛날 우리 나라에는 원숭이가 없었다. 그러나 원숭이에 얽힌 이야기는 적지 않다. 도자기, 회화, 조각품에도 심심치 않게 원숭이가 등장한다. 원숭이의 지혜와 재치를 본받고자 하는 조상들의 뜻이 담겨 있다.
원숭이를 닮아서인지 원숭이해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 사람들이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딜리아니, 고갱, 밀턴, 바이런, 디킨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강감찬, 이율곡 등은 모두 원숭이띠 사람들이다. 원숭이해에는 각자가 부여받은 재주를 잘 발휘할 일이다. 그러려면 한해의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꾸준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 올해에는 모두가 잔꾀 부리지 않고, 지혜롭게 더불어 사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