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해 구질구질해지는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비우지 못해 구질구질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무언가를 바꾸기 보다는 차라리 비워보면 어떨까요? 방 안에 있는 것을 비우고 덜어내다보면 우리 마음도 그만큼 비워지지 않을까요? 마음이 비워지면 주위 사람과 나 자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길 겁니다.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는 수고가 따르지만 그 수고는 그에 값하는 정신적인 보상을 가져다줍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못 참는다’고 말하는 데는 그 미학적 보상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샬롯은 어두운 탑 안에 갇혀 세상을 거울로만 보도록 허락받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운명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씩씩하고 잘 생긴 원탁의 기사 랜슬롯 경을 처음 본 순간 그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사랑을 위해 숙명을 어기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거울은 그렇게 깨져버렸고, 그녀는 랜슬롯 경이 있는 카멜롯으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배를 타고 정처 없이 흘러가게 됩니다. 며칠 후 배가 카멜롯에 이르렀을 때 기사들이 본 것은 그 배 안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레이디 샬롯의 아름다운 주검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 다음이 개의 사랑이며, 그 다음이 연인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
기억은 고통의 거주지라 할 만합니다. 기억은 크든 작든 통증을 지니고 있지요. 아름다웠던 날들을 기억할 때도 우리는 그리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에 따른 아픔을 느끼곤 합니다. 아름다웠던 추억이 왜 통증을 띠고 떠올라야 할까요? 그것은 그때만 못한, 오늘의 현실에 드리운 이런 저런 삶의 그늘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려 오늘의 나아진 현실과 비교한다고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지요. 그 기억은 더 많은 눈물을 자아내곤 합니다.
이렇게 기억 속에 거주하는 통증은 우리의 과거를 잊고 싶은 그 무엇으로 만들 때가 많습니다. 망각이 하나의 축복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런 인간의 조건과 무관하지 않지요. 바로 이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죽음도 하나의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죽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레테 강은 널리 알려져 있듯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다섯 개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슬픔과 애통의 강인 아케론 강, 시름의 강인 코키토스 강, 불의 강인 플레게톤 강, 증오의 강인 스틱스 강, 그리고 망각의 강인 레테 강, 이렇게 모두 다섯 개의 강이 있다고 하지요. 레테 강물을 마시면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기억을 다 잊는다고 합니다. 옛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는 사람들이 다시 육체를 얻어 태어나기 전에 이 물을 마셔서 저승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온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모나리자란 ‘리자 부인’이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모나’는 유부녀에 대한 경칭이고, ‘리자’는 엘리자베타의 약칭이지요. 모나리자는 아마도 서양 미술사의 여성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일 것입니다. 이상적인 여성상의 대명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