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사랑>

남자란 늙은 아이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기쁨을 얻기 위해 무엇엔가 헌신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온전한 헌신이란 다른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만 알려질 헌신이라야 하며 그분의 시선과 상만을 기대하는 것이라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겸손을 잘 가르쳐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믿는다. 내가 나에게 부족한 것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로베르의 곁에 있을 때이며, 그래서 비록 나는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에게 헌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좋은 거울이 못 되지만, 물이 멈추어 쉴 때에는 사람들이 거기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볼 수가 있는 거지요.

제가 정열을 쏟아 사랑한 사람은 제가 차츰차츰 발견한 당신이란 분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어요.

다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인가.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떤 의무나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고 사랑에 대한 회의론에 빠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느낌이니까. 사랑하는 순간.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니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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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그녀의 미소와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때문에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있는 생각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라곤 말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님이여,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을 위해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처럼 짜여진 사랑은 그처럼 쉽게 풀려 버리기도 한답니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애정어린 연민으로도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음을 잊게 되고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을 누리실 수 있도록, 사랑의 영원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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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의 시였죠? 전에 한번 읽어 본 것 같긴한데, 기억이 통...

젊은느티나무 2004-02-2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우닝의 시입니다^^
 

여행의 목적이란 다른 게 아니라 환상을 없애는 것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은 그 만남으로 또는 눈물로  그쳐선 안 될 일이었다. 만남도 눈물도 사랑에서 오고 또 사랑을 요구한다. 또한 그 사랑은 사회 안에서 반드시 앙가주망(참여)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다만 '나 자신과 끝없는 싸움'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 다니엘 에므리 교수의 사회에선 사랑의 앙가주망이 그 출발부터 가능했다면 우리 사회에선 우선 증오의 벽을 깨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강요된 증오의 벽은 워낙 두꺼웠기때문에 그 벽을 깨려는 몸부림은 흡사 달걀로 바위를 치는 행위와 같았다. 또 바로 그 증오의 그물에 걸릴 위험을 항상 안고 있었다.

에뜨랑제라는 말이 멋있게 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일 때의 이방인은 다만 덧없는 외로움의 대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처지가 달라지면 의식도 달라진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를 통하여, 냉전논리의 골이 이젠 너무 깊어져 뒤집어도 날카로운 날이 서 있다는 것을 보아야 했다. 냉전의 이데올로기인 반공이 실제로 인간에 대한 증오로 나타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반공논리의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이 반공논리와 똑같이 인간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반대하고 비방하려는, 바로 반공논리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특히 해외에서 간첩이 아주 쉽게 만들어지듯이, 안기부의 끄나풀 또한 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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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냥 칭찬의 힘을 강조하는 제목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다니!!(사실은 묘기였다..^^)

고래반응과 뒤통수 반응에 관해 읽으며 당근과 채찍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보상'에 대한 교육학 개념들이 떠올랐다. 벌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배웠음에도 난 가끔 벌이라는 채찍을 사용한다. 아직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솔직히 벌이 효과가 영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벌주고 야단치면서 내가 받는 상처와 미안함이 더 큰 것 같아 나를 위해서(?!) 벌주는 것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내가 어릴 때 야단을 많이 받아봐서 아는데(^^;;) 나같이 소심하고 맘이 여린 아이에게는 확실히 벌은 독이된다. 그런 아이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벌을 받고 있는 것이기때문에!

내가 작년에 6학년 담임으로서 처음으로 교단에 섰을 때 많은 선배들이 내게 충고했다. '절대로 처음 한 달간은 웃지말고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안 웃으며 살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나처럼 잘 웃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는 생각과 '무조건 인간적인 것이 최고다.'라는 생각에 나는 애들을 만나는 첫날부터 줄곧 미소와 칭찬이라는 당근을 아이들의 두 팔에 가득 안겨주었다. 결국은 좋게 말해서 좀 자유분방한 교실이 되고 말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혹시 나만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칭찬을 할 때는 '제대로 칭찬'하는 것(즉,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칭찬받는 사람도 금새 입에 발린 말임을 알아차리고 칭찬받았음에도 시큰둥해지고 만다. 그런 칭찬은 차라리 안하고 말지!!

'제대로' 칭찬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다. 칭찬받을 대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계속 그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래야 올바르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고래반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래 반응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잘해내도록 돕는 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목적이고 수단이고를 떠나서 칭찬 그 자체로 얻게되는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들에도 큰 가치를 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명령을 내릴 만한 위치에 있으면서 명령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는 말이 정말 맘에 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새학기에 사용할 맛있고 신선한 당근을 엄청 준비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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