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봐 젊은 친구, 명심하라구. 기회라는 건 늘 망설이 a속에 달아나는 거니까.


◆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만약 이쪽 길로 나오지 않고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졸업은 했겠지만 이쪽으로 나와보지 못한 것에 대해 더 큰 후회와 더 큰 미련이 남았을지 모르죠. 학교를 그만두고 이쪽으로 나와 얻은 거라면 그거예요. 내 인생에 더 큰 후회와 더 큰 미련은 남기지 않았다는 거요. 지금까지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해가고 있는 중이지만.


◆ 그래, 글만 써온 내 삶이 지금까지도 실패했고, 앞으로도 이쪽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다 하더라도 다른 길로 나가 성공하는 것보다는 이 길 위에서의 실패를 내 인생에서 더 의미있는 것으로 여기겠다고 말이죠.


◆ 누구도 모를 마음 하나가 내 마음에서 그녀의 마음으로 건너가고, 그녀의 마음에서 내 마음으로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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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받아들이라구. 우리 모두는 ‘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레빈이란 현명한 사람이 제대로 지적했네. ‘사랑이야 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말야.


♥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 느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믿게 만들려면, 여러분 역시 그들을 믿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둠 속에 있을 때조차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뒤로 넘어지고 있을 때에도......


♥ 스승은 영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디서 그 영향이 끝날지 스승 자신도 알 수가 없다. - 헨리 애덤스


♥ “죽을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다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지”


♥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 “죽음과 직면하면 모든 게 변하나요?”

  “그럼. 모든 것을 다 벗기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이네.”


♥ “미치, 나도 ‘영혼을 개발하는 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면으로 참 부족하다는 점은 잘 알지. 우린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계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서조차 만족을 얻지 못하네. 사랑하는 관계, 우리를 둘러싼 우주... 우린 그런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구.”


♥ “우리가 이야기한 어떤 주제보다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가족이 없다면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 안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과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겠지.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 가족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 돈도, 명예도.”


♥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 “벗어난다고 해서 경험이 우리를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야. 반대로 경험이 자네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해야 하네. 그렇게 해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 “나이 먹는게 그렇게 귀중한 일이라면 왜 모두들 ‘아, 다시 젊으 stlwjf로 돌아갔으면...’하고 말할까요? 누구도 ‘빨리 65살이 되면 좋겠다.’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그게 어떤 것을 반영하는지 아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야.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보고 싶어하지 앟아.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더하지. 아마 65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 돈이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네. 그리고 권력도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지. 분명히 말할 수 있네. 이렇게 앉아서 죽어갈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네.,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아도, 이렇게 죽어갈 때 필요한 감정을 거기서 얻을 수는 없네.


♥ 존경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것


♥ 미치, 마일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고 애쓰는 중이라면 관두게. 어쨌든 그들은 자네를 멸시할 거야. 그리고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 한다면 그것도 관두게. 그들은 자네를 질투하기만 할 테니까.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열린 마음만이 자네를 모든 사람 사이에서 동등하게 해줄 걸세.


♥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야말로 내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 자동차나 집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해. 내가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때, 그들이 슬픈 감정을 느낀 후에 내 말을 듣고 미소지을 때, 그럴 때의 느낌은 건강할 때의 느낌과 거의 비슷하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 “나는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것은 함께 있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있는 것을 뜻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의 ‘중요성’을 믿는 것


♥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라는 뜻이야.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다 무시하라는 뜻으 s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은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 - 혹은 사회가 -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 “죽어가고 있을 때는 사람은 모두 다 같다는 게 참말임을 알게 되네. 우리 모두 똑같이 시작하지, 출생으로 그리고 똑같이 끝나네. 죽음으로.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거야? 인류 대가족에 관심을 가지라구.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일세.”


♥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네.”


♥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진정으로 그리워할 스승이 있었는지? 당신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로, 닦으면 자랑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준 그런 스승이 있었는지? 혹시 운이 좋아서 그런 스승을 찾아낸다면, 그에게 다시 가는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그럴 수도 있고, 나처럼 선생님의 침대곁으로 직접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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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가락나무늘보는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운 초식동물로 살아간다.  터를러는 "나무늘보의 입에는 언제나 맘씨 좋은 미소가 걸려있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그 미소를 본 적이 있다. 난 동물ㅇ게 인간의 특징과 감정을 투사하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브라질 밀림에서 고개를 들다가 쉬고 있는 나무늘보를 볼 때면, 물구나무서서 명상하는 요가 수행자나 기도에 몰두한 은자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과학적인 접근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상상력 넘치는 사람을 사는 현자 앞에 있는 느낌이랄까. / 가끔 내 전고은 뒤섞여 버렸다. 종교학을 전공하는 친구들 - 위가 어디인지 모르고, 엉터리 같은 이성의 노예가 디어 갈피를 못 잡는 불가지론자들 - 을 보면 세발가락나무늘보가 떠올랐다. 생명의 기적을 보여주는 세발가락나무늘보를 보면 신이 떠올랐다.

살면서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해가는 아픔은 참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소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ㅡㄴ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린다. '사람을 잘못 골랐어. 넌 삶을 믿지 않을지 몰라도 난 죽음을 안 믿거든. 저리가!' 해골은 낄낄대면서 다가오지만, 난 놀라지 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 시기심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우울은 구름의 그림자를 지나칠 뿐이고.

 정직하게 말해야겠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다. 한때는 의심도 쓸모 있는 법. 우리 모두 겟세마네 동산(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곳)을 거쳐야 한다. 예수가 의심했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 예수가 기도하며 분노에 찬 밤을 보냈으니, 십자가 매달려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었으니, 우리도 의심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나아가야 한다.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모두 가톨릭 신자처럼 태어난다. 그렇지 않은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에서, 종교도 없이 그렇게 있다가 누군가에 이끌려 신을 소개받지 않는가. 대개 그 만남 이후 이 문제는 끝이 난다. 변화가 있다 해도, 사소한 변화도. 많은 사람이 인생여정을 따라가다가 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무신론자들이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을 상상할 수 있다. "하얗군. 하얀색이야! 사 - 사 - 사랑! 아, 하느님!" 죽으면서 믿음이 생긴다. 반면에 불가지론자들이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누룩없느 ㄴ사실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면, 몸을 감싸는 따스한 햇살에 "뇌 - 뇌 - 뇌의 산소가 부 - 부족하군"이라고 하리라. 마지막까지도 상상력 부족으로 더 좋은 이야기를 놓치고 말겠지.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 푼을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느 ㄴ작은 공토인 것을.....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너무 힘들다. 그러니 독선적인 자들이 편들어주러 달려갈 곳은 신이 아니라 그런 이들인 것이다.

내 목숨이 위협받을 때는 생존을 향한 이기적이고 무시무시한 갈망에 동정심도 가려버린다.

공포심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공포심만이 생명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명민하고 배반 잘하는 적이다.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접근해, 쉽게 약점을 찾아낸다. 공포심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딘다. 언제나. 우리는 잠시 차분하고 안정되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다가 가벼운 의심으로 변장한 공포심이 스파이처럼 어물쩍 마음에 들어선다. 의심은 불신을 만나고, 불신은 그것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불신은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병과 다름없다. 의심은 간단히 불신을 해치운다. 우리는 초조해진다. 이성이 우리를 위해 싸워 온다. 우리는 안심한다. 이성은 최신 병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부인할 수 없는 여러 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성은 나자빠진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초조감에 끔찍해진다. / 이렇게 공포심은 우리 몸에 깃들고, 몸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미 인식한다. 벌써 폐는 새처럼 날아갔고, 창자는 뱀처럼 스멀스멀 빠져 나갔다. 이제 혀가 주머니쥐처럼 축 늘어지고, 턱은 그 자리에서 덜컹댄다. 귀는 들리지 않는다. 근육이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처럼 떨리고, 무릎은 춤추듯 흔들린다. 심장은 지나치게 경직된 반면 괄약근은 지나치게 이완된다. 몸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분이 서로 떨어진다. 눈만 제대로 작용한다. 눈은 언제나 공포심에 쏠려 있다. / 곧 우리는 무모한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 연합군인 희망과 신뢰를 버린다. 이제 스스로 패배한 것이다. 인상에 불과한 공포심이 승리를 거둔다. / 이것은 말로 옮기기가 어렵다. 근본을 흔드는 공포, 생명의 끝에 다가서서 느끼는 진짜 공포는 욕창처럼 기억에 둥지를 튼다. 그것은 모든 것을 썩게 한다. 그것에 대한 말까지도 썩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힘껏 싸워야 한다. 거기에 말의 빛이 비추도록 열심히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피하려 하고 심지어는 잊으려 하는 고요한 어둠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더 심한 공포의 공격에 노출된다. 우리를 패배시킨 적과 진정으로 싸우지 않았으므로.

마음 한 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 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이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 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며칠인지, 몇 주일인지, 몇 달인지 헤어리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를 갈망하게 할 뿐인 환영인 것을. 내가 살아남은 것은 시간 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 내가 기억하는 것은 사건과 만남, 일상, 시간의 바다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기억에 발자국을 남긴 일들이다. 예컨대 화염 신호기의 냄새, 새벽녘의 기도, 바다거북 죽이기. 바다 조류의 생물학 같은 것. 그 외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정연하게 펼쳐 보이지는 못할 것 같다. 기억이 뒤죽박죽이라서.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힐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죠? 사랑이라는 건 믿기 힘들지 않나요? / 사랑은 믿기 힘들죠. 어느 연인한테든 물어보세요. 생명은 믿기 힘들어요. 어떤 과학자한테든 물어보라구요. 신은 믿기 힘들어요. 어느 신자한테든 물어봐요. 믿기 힘들다니, 왜 그래요? . /  나도 마찬가지예요! 매 순간 이성적으로 따지죠. 음식과 옷과 피난처를 얻으려면 이성이 도움이 되죠. 이성은 최고의 수단이에요. 호랑이와 거리를 두려면 이성 없이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굴면, 우주 전체에 목욕물을 끼얹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죠.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 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 - 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ㅜㅇ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두 분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놀라지 않을 이야기를 기대하겠죠. 이미 아는 바를 확인시켜줄 이야기를 말이에요. 더 높거나 더 멀리, 다르게 보이지 않는 그런 이야기. 당신들은 무덤덤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붙박이장 같은 이야기. 메마르고 부풀리지 않는 사실적인 이야기.

두 분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지 증명할 수 없어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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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머리 사실은 좀 지긋지긋해서 한 1년간 파마를 했었다~

그런데 어제 다시 머리 풀었다~

익숙한 내 생머리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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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1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뒷모습 예술이십니다. 기왕 하신 김에 앞모습도 좀 보여주세요...

젊은느티나무 2004-07-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길 가다가 이렇게 생긴 뒷모습을 가진 여자에게 말 한 번 걸어보세요.
"혹시 젊은 느티나무님?" 하구요.. 혹시 저일지도 모르잖아요...^^

젊은느티나무 2004-07-1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참.. 저는 물만두님 길에서 만나면 알아볼 것 같은데요..ㅋ

물만두 2004-07-1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안 나갑니다...

젊은느티나무 2004-07-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이를테면 이 이야기는 돌멩이나 들꽃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소하지만 살인적인 고통이 될 수 있는, 보잘것 없지만 천상의 위안이 될 수 있는, 삶에서 만나는 그 모든 돌멩이와 들꽃.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아무리 전 존재를 증여한다고 해도 인간이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란 결국 돌멩이나 들꽃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인혜는 이제 사랑에 대해 어떤 환상도 품고 있지 않았다. 첫만남에서 어쩐지 낯이 익고, 두 번째 만남에서 동질감을 발견하고, 세 번째 만남에서 운명이나 인연을 거론하는, 그런 사랑의 환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한때 인혜도 그런 식의 사랑의 환상을 믿은 적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 온몸이 감전되는 전율과 함께 찾아오는 천둥 번개같은 사랑,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지고 일상과 관습이 사라지는 정전같은 사랑, 온몸과 마음을 혼곤하게 취하게하는 봄빛 같은 사랑......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사랑의 다양성이 아니라 환상의 다양성일 뿐이었다. 그때는 사랑이 순수한 열정이고 아름다운 애착이고 낭만적인 체험이며 순결한 정서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말들을 입에 담기에는 인혜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인혜는 이제 사람들이 사랑 앞에서 낯익음인, 동질감이니, 운명이니 하는 언어를 동원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모호한 상황, 불투명한 미래쪽으로 자신을 밀어붙일 때는 그런 언어가 위안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통속적이군...... 인혜는 두 팔을 벌려 흔쾌히 눈앞의 통속을 껴안는 기분이 되었다. 인혜는 통속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온몸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의 중심을 관통하는 바로 그 통속. 정선 아라리가 매혹적이었던 것도 그것이 통속의 본질을 활짝 펼쳐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인혜는 늘 세상의 중심을 온몸으로 지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엄숙주의, 유교적 허위의식, 그런 것들을 벗고 싶었다. 비가 오면 속살까지 비에 젖고, 햇빛이 좋으면 뼛속까지 볕에 그을리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통속이라는 말에 천박하고 유치하고 범박한 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을 담는 모양이지만 인혜는 세상을 뚫고 지나가는 방법은 통속밖에 없다고 믿는 쪽이었다.

일상은 자주 허위 과장 광고인 듯했고, 우리네 삶은 통째로 농담에 가까운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삶이 은근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삶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면 사랑은 그보다 더 가볍고 사소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랑의 본질이 권력욕이라면 사랑의 형식은 통속성임에 틀림없었다.

애정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이 자주, 네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너를 버리겠다는 심리적 이유로 연인을 떠나곤 한다는 사실은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무의식이 꿈, 언어, 신체적 증상 등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타인의 호의나 친절을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내 속에서 생긴 이후부터였다.

도움을 청해 놓고 거절하고, 유혹해 놓고 거절하고. 면담자가 했던 말을 더 생각해 보았다. 분명 내 의식은 도움을 청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방어적이고 불능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나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원하지 않는데도 남성들이 끊임없이 내게 와서 부딪치곤  했다. 내게 어떤 빌미가 있었던 걸까? 내 무의식이 도움을 청하고 남성을 유혹하는가?

그게 전적인 거절이 아니라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하자 하는 잠정적인 거절, 연기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던 시기도 있었어요. 이십대 중반쯤에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전화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특별한 용건 없이도 안부 전화들 많이 주고받잖아요.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망설여요. 상대가 반가워할까, 바쁜데 공연히 번거롭게 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아 버리는 때도 있어요.

그는 사랑받으려는 욕구와 유혹될 수 없는 성적 불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심지어 여자가 마침내 유혹되는 때에도 그는 이 승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 거기서 성적인 마력을 보고 그녀를 벌주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은 성적 불능의 문제가 아니다. 유혹한다는 것은 유혹당한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서 자신을 상실하고 마법의 내기에 빠져 버린다는 이유로 대가를 치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때 모든 것은 인간과 신의 제의적 희생 관계를 결정짓는 상징적 규칙에 따른다. 유혹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제의적 행위이다.

운전하는 길 내내 울었던 것이,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바로 그 구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 나는 아무래도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 나는 아무래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 그렇다면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그 감정들은 다 무언가 하는 생각, 그런 생각들로 금세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한얼의 씨앗이 내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다구요? 그 말은 내 마음 속에 부처가 들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하네요. 저는 종교 다원주의에 동의하는 편인데, 알면 알수록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사실이 명백해져요. 요즈음은 민간 신앙에서 말하는 수호령의 존재나, 융의 초자아 개념까지도 다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서로 다른 언어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요. 모든 게 결국 내 자아의 일부, 나 자신이라는 거죠.

인체는 소우주이고 축소된 자연입니다.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자연의 이치에 맞춰 살도록 노력하세요. 요즈음은 계절 구분 없이, 밤낮 구분 없이, 몸을 함부로 움직여서 병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름 게으름뱅이도 병이 되고, 겨울 부지런쟁이도 병이 들게 마련이죠. 밤낮을 뒤집어 사는 사람도 병이 들지요. 나무처럼, 계곡물처럼 살면 병이 없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햇빛을 많이 쬐십시오. 열매나 곡식이 가을 볕에 마지막 살집을 단단하게 하듯이 사람도 가을볕을 많이 쬐면 좋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되도록 적게 움직이세요. 겨울에는 동물들도 겨울잠을 자고 나무도 몸 안의 수분을 모두 비우고 생명 작용을 멈춥니다. 인간도 겨울에는 되도록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만 잘 지키면 여러 선생님들의 몸은 늘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날것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 없는 방식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 번씩 자신의 추악함을 겪고 나면 그 증세가 많이 완화된다는 점이었다. 인혜가 더 많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분명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 가는 과정이고,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기 ㅜ이해 피나게 투쟁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머물다 떠날 때마다 내면의 공간도 그만큼 넓어졌고 그 자리에 더 많은 빛과 바람이 드나들었다. 물론 다음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도 한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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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9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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