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 주는 옛이야기 1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문성원 옮김, 발터 트리어 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캐스트너'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에리히 캐스트너가 쓴 책도 처음 읽어본다. 원작은 많이 알려진 것들임에도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새롭고 재미있었다. 내가 어릴 때 이 책을 읽어보지 못 했음이 너무 아쉽다.

에리히 캐스트너는 모든 이야기들을 정말 있었던 일인 것 마냥 들려준다. 그래서 더더욱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 내가 아직 순진한 어린이였다면 그의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나 역시 걸리버가 다녀온 릴리펏이나 브롭디냑에 가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릴리펏이나 브롭디냑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젠 아이처럼 순진하지 않은 내 자신이 '릴리펏이나 브롭디냑 따위'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 솔직히 나는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을 믿는다.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잠자고 있던 기억 어딘가의 한 편을 되살려 주었다. 즉 그는 내게 어린 시절이후로 잃어버렸던 또다른 세계를 다시 찾아주었던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에게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우리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두번째편 속에는 걸리버 여행기와 쉴다의 시민들이라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과 거인국을 등장시켜 무척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어릴 때 자주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국이나 대인국등을 떠올려 본다. 정말 그런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걸리버 여행기’는 아이들로 하여금 브롭디냑이나 릴리펏이라는 나라가 진짜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도 심어준다.

두번째 이야기인 쉴다의 시민들은 원래 무척 똑똑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너무 똑똑했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언을 해 주느라 자기 가정과 지역을 돌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일부로 어리석은 척을 하며 자기 지역에 남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역에 와서 돈을 쓰고 가게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짓을 하느라 진짜 어리석어진 쉴다의 시민들에게 어리석은 것의 대가가 자기의 나라를 잃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장면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쉴다의 시민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현실의 틀에 고정되어 있던 내 사고를 무한히 연장시켜 새로운 세계로까지 확대시켜 주었다. 늘 갇혀지내던 현실의 고민을 빠져나와 재미나고 기발한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음껏 웃고 즐기게 해주었다. 에리히캐스트너가 말하는 세계는 분명 우리 모두의 머리와 가슴 속에 존재하는 세계이면서 우리가 찾지 않고 혹은 모르고 지내던 세계였다.

에리히 캐스트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자던 잠재의식들을 흔들어 깨워 무한히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게 해주는 점인 듯 싶다. 다소 잔인하고, 과장되지만 재치있고 기발한 이 이야기들은 요새 말하는 소위 ‘엽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은 세월을 더해가도 지금까지 그래왔었던 것처럼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늘 사랑을 받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진기행 범우문고 13
김승옥 지음 / 범우사 / 198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무진이라는 곳이 아주 한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는 생각을 했다. 작중의 나가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점을 보아서도 그렇지만 무진이라는 장소의 이름도 안개와 바다와 관계되어 있으니 아마 ‘무진’이라는 장소는 작가가 소설을 쓴 의도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적인 공간이 아닌가 싶다.

작중의 나는 서울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살다가 잠시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공간인 무진으로 내려온다. 나는 글을 읽으며 무진이라는 공간이 ‘무진의 안개’가 잘 대변해 주듯이 아주 어둡고 습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진의 안개에 대해 묘사한 글 중에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라고 한 부분이나 주인공이 ‘무진의 골방에서 불면의 밤과 수음. 담배 꽁초와 편도선, 6 25 전쟁의 상처,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 등 어둡던 청년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부분, 하인숙이 서울행을 목표로 무진탈출을 꿈꾸고 있는 점을 보아서도 그렇다.

지금 도시에 살고 있는 나도 가끔은 환상적인 공간으로 도피해서 본연의 나의 모습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난 순수한 ‘나’가 정말 순수한 경험을 해보고픈 환상....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정말 환상일뿐이다. 무진기행에서의 무진도 환상적이긴 하지만 그의 후배인 박을 제외하고는 새롭고 순수한 곳은 아무 것도 없다. 주인공은 무진에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들게 되지만 즉, 무진에서 현실을 도피한 ‘순수’와 만나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환상’일 뿐이다. 나는 글을 읽으며 참 슬픈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이란 없다는 작가의 비관적인 세계관 때문이다.

사실 모든 인간이 ‘가면을 쓴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가끔은 그런 사실이 무척 견디기 힘든 답답함을 주곤한다. 나역시 별사이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알고 있지만 가끔은 정말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의 심연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인간이 본연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하지만.. 나는 가끔 그 외로움이 너무 싫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행복한 바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진기행에서 나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하인숙과 사랑을 느끼고 관계를 맺으며 잠시 순수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내의 전보(다시 ‘나’를 현실적인 존재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를 받고 ‘나’는 하인숙을 서울로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혼자 서울로 되돌아간다. 잠시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나의 모습’이었던 하인숙에게 썼던 편지를 찢어버리면서 그는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만약에 그가 정말 하인숙을 서울로 데려간다거나 그녀와의 사랑을 지속시킨다면 이야기는 현실적인 것에서부터 멀여졌을 것이다.

순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찾아갔던 곳이 순수하지 못 하다면 심한 배반감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순수하지 못 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 하면서 이 세상이, 타인이 순수하지 못 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고등학교때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 ‘무의미한 대화의 나열’을 사용해서 소설의 의도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김승옥의 두 소설이 주는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가면 속의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순수하지 못 한 모습으로 타인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은 ‘무의미한 대화’가 되지 않을까? 사실 본래 인간의 존재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순수’라는 낱말의 본 뜻을 가진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처음 손에 고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이 넘어가는 순간 까지 ‘쉴라’라는 한 아이에게 내 자신을 몰입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가진 여섯 살 짜리 작은소녀 그녀의 환경은 너무나 불우했다. 어머니에 의해 버림받아야 했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당하는 그녀로서는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살아 남기 처절한몸부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의 파괴성과 분노호 가득찬 행동들은 그러한 자기 방어 수단의 하나로서 불가결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이 책을 통해 그녀를 접함으로써 난 남달리 가슴이 아팠고 또 남달리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난 그녀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지만 어쨋든 나 역시 그녀와 같은 나이에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에 가장 사랑 받아 마땅한 부모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다는 것은 안 겪어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처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폐쇄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은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가장 믿고 사랑하던 사람에게 느끼는 최초의 배신감 , 더군다나 그 배신감은 일생에서 가장 쓰라린 배신감이며 절망감이다. 어느 정도까지 그런 감정들은 치유될 수도 있지만 결코 그 본질적인 면까지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나 역시 지금 이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가슴 속 저 깊은 곳의 그 상처는 지울 수가 없었다. 다만 덮어 둘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절망적인 문제아들만을 위한 특수 학급에 배치되지만 사실 어쩌면 그곳은 그녀를 위해 마땅한 곳은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상태와 정서상태는 지극히 특수했음에도 그녀는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 멀쩡한 정신과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비정상일 테니 때문이다. 그녀에겐 무엇보다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무관심과 학대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큰 ‘사랑과 관심’ 그것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능지수가 182인 우수아였고 충분히 강인했기에 ‘사랑과 관심’만이 있다면 스스로 얼마든지 삶을 이해하고 이겨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토리 선생님이 보여준 그녀에 대한 애정은 참 위대하고 고귀해 보인다.

이 책에는 쉴라의 토리 선생님과 헤어진 그후의 쉴라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나는 실라가 남들보다 훌륭하게자라서 또다른 쉴라’에게 예전에 받은 자신의 사랑을 베풀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델마와 루이스
컬리 코울리 / 명경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여성문제를 일깨워 주었던‘델마와 루이스’라는 책을 통해 나는 여성들이 살면서 가지게 되는 여러가지 장벽과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 델마가 자신의 남편인 데릴에게 대하는 내용들을 보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여자, 쉽게 말해서 ‘아줌마’가 된 후 여성들이 당하는 문제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여성들은 결혼을 하게되면 우선 자신이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되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면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리우게 되고 여성 자신의 이름은 원래 없었던 것 마냥 사라져 버린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들은 델마와 같은 상황에 빠지기 쉽상이다. 남편 눈치나 보면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맞추어 버린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에게는 책 속의 모든 내용들이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들려온다. 물론 내 자신이 더 노력해서 그런 상황들을 조금 바꿀 수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느정도까지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이 여성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 채 끝을 맺는 것이 아쉬웠지만 사실 이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여성문제는 어제, 오늘 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뿌리 깊게 오랜 역사동안 전 사회에 걸쳐 있어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아니라 남자도 여자도 모두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며 사랑받는 여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생애의 아이들 - 바깥의 소설 25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에 텔레비전에서 이 책을 소개할 때 나는 단순히 이 책이 초임 여교사와 그 여교사가 담당하게 딘 아이들에 관한 기록으로만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책을 읽어본 결과 확실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서정적인 묘사가 곁들여진 아름다운 문체가 너무나도 순수하고 따뜻한 책 속의 내용을 한층 더 사랑스럽게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의 감동은 훨씬 더해질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하는 시골 마을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질 듯이 나타났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책 속의 여교사는 불과 18살에 이민자들의 자식들이 모여있는 작은 시골 학교의 초임교사로 발령을 받게 된다. 글을 읽으며 초임으로서의 그녀의 열정이 마음 깊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녀 역시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게 되었으면서도 그녀가 무척이나 현명하고 지혜롭게 아이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이제 막 빠져나온 그 곳에 그녀의 아이들이 서있기때문에 그녀가 아직 어리다는 점이 단점인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책의 내용들은 그들의 동심을 빌려 대체로 다정스럽고 따뜻하다. 이 책은 그에 더하여 손에 잡힐 듯, 눈에 그려질 듯한 묘사로 우리에게 더욱 큰 감동을 전해준다. 때때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작은 풍경들 덕에 가끔씩 눈시울이 젖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권해주고픈 책이다. 특히 나같은 초임교사가 읽는다면 남들이 모르고 그냥지나칠지도 모르는 행간의 작은 떨림들까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