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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20대 남학생의 정서를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선물로 받은 책인데, 하루만에 후딱 읽어버렸다. 보내준 이는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읽으라고 권해줬지만 솔직히 내 취향과는 살짝 거리가 있고 곱씹을 만한 심오한 내용은 아니라서 빨리 읽었다. 하지만, 이 작가와 코드가 맞다면 아껴가면서 살곰살곰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기는 하다. 아. 나는 역시나도 스토리에 몰입을 잘 못하는가 보다. 스토리 자체보다도 구성, 번역, 편집, 아이디어 등의 요소에 지나치게 더 관심이 가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은 한 명의 화자(송신자)가 다수의 청자(수신자)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편지 묶음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독특한 것은 시간 순으로 정렬된 것도 아니고 수신자에 대해서 정렬한 것도 아니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중요 사건을 기점으로 두고 시간 슬롯에 대해서 수신자에 대해서 정렬했다고 하면 이해가 될라나. 즉, A라는 수신자에게 보낸 X개월 간의 편지 묶음, B...D라는 수신자에게 보낸 X개월 간의 편지 묶음이 나오고, E라는 수신자에게 X+Y개월, A..D 수신자에게 보낸 Y개월, F에게 보낸 X+Y개월, 다시 B가 D와 주고 받은 편지,...... (여튼 복잡하다;;;) 이러한 구성이 독특하기는 했지만 조금은 헷갈렸고, 구성에 대한 정보 없이 읽었떤지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구성]
재미있기는 재미있었다. 살짝 유머도 있고, 살짝 거드름 피우고, 살짝 .... 한 20대 남학생이 시간을 떼우기 위해 (명목은 연애 편지 쓰는 기술을 연마하여 편지 한 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휘감는 대필 작가가 되어 세계 평화에 일조한다나 뭐래나.~) 그 전 과정으로 연구실 사람들, 과외 학생, 학부 시절 동아리 선배(이 책의 작가!), 여동생,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원대한 목적과 다르게 자신의 짝사랑 대상에게 편지를 쓰려고만 하면 이상한 무드로 빠져버리는 통에 버리는 편지들은 따로 한 챕터로 묶여 있을 정도로. 순박하기도, 얼빵하기도, 그러면서도 허풍쟁이 귀염둥이 같은 그런 주인공. [재미]
아쉬웠던 것은 번역이 도무지 도무지 마음에 안들었다는 사실. 이 책을 어떤 누가 번역했어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었다 싶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일본 말투, 일본 어체. 그걸 살리기도 죽이기도 참 어려웠겠다 싶기는 해도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한자를 매우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그 한자를 그대로 국문으로 음을 따오는 것이 바람직한 번역일까 갸우뚱 했었다. 예를 들어서, '무익한' 보다는 '쓸모 없는'이 낫지 않을까? 문체도 마음에 와닿기는 조금 어려웠다. 어쩌면 지금까지 '편지'라고 하면 남녀사이, 또는 여자들끼리 주고 받는 것에만 길들여져 있어서 남자들끼리 주고 받는 편지가 사실적으로 번역되고, 쓰여졌어도 낯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문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웠다. [번역]
또한가지 몰입을 살짝 방해했던 표현 방식인데. 리얼리티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기 애매한 서술. 과연 편지를 쓰면 이렇게 쓸까? 싶은 대목들이 여러군데 나왔다. A와 B가 함께 겪은 사실들. 그 사실들을 A가 B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일일이 다 설명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 없었던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준 것일테지만 이러한 식의 부연 설명 같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았다. 또한, 주인공 편지를 쓰는 화자 모리코가 여러 명에게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같은 사실을 다른 버전으로 여러번 서술된다. 이는 여러 챕터에 걸쳐서 같은 기간의 이야기를 중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살짝 지루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상대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하고, 어떻게 각색하는지를 살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재미있다. 답장은 소개되지 않고 주인공이 보낸 편지만 수록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모리코를 둘러싼 사건을 다각도로 머리 속에서 구성해 보는 것이 재미있기는 하다.
음. 마지막으로 작가.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다. 근데, 다 읽은 다음에 느낀점. 이 작가 다른 건 몰라도 본인 홍보는 정말 확실하게 했다!!!는 것.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 받는 여자 대상들은 모조리 이 작가의 팬! 그리고 주인공 역시 작가와 '서신왕래'를 하는 사이. 이름을 잊어 먹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이 작가 이런 류의 책을 쓰는 구나. 재미있고, 가볍고, 재치있는. 모리미 도미히코. 이름을 기억해 주겠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