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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 굳게 닫힌 연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
제인 오스틴 지음, 조희수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6년 10월
평점 :
두 번째로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사실 나 자신이 매우 설득 당하기 쉬운 사람이라서 이 문제를 저자가 어떻게 풀어갔을지 너무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 선택과 설득에 대한 어느 정도의 힌트는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8년의 터울을 두고 재회한 준남작 엘리엇 가문의 둘째 앤 양과 해군 장교 출신의 웬트워스 대령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로맨스로 읽으면 철저하게 로맨스 소설인 샘이다. 8년 전 스무살도 되지 않았던 시절 대모의 설득에 굴복하여 약혼을 파기했던 앤이 여전한 사회적 신분와 허영, 속물근성에 쩔어 있는 가족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사랑을 결국에는 이루고 마는 해피엔딩.
근데 나는 로맨스 자체보다도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가?의 문제가 더 관심이 있었다. 맨날 남에 의해 설득 당하던 앤에게 희망이 있는지..『이성과 감성』에서 맛보았던 연애사 뿐만 아니라 인생사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성품, 기질, 가치를 친절한 심리적 해석으로 분석하면서 독자를 끌고 나가는 제인 오스틴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남에게 설득 쉽게 당하는 나는 그녀에게 그러한 지혜 또한 친절하게 전수 받고 싶었다.
8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에 사람은 많이 변할 수 있나? '별로 변하지 않는다'가 결론이다. 여전히 남들의 말에 설득 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하는 듯 보이는 주인공 앤. 아이구. 답답아~ 똑똑한 머리로 문제가 터졌을 때 자기가 다 수습하고 해결하지만 정당한 대우는 전혀 받지 못하고 늘 뒷전 자리로 내몰리는 앤. 너 어쩌면 좋니. 좋아하는 거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집안 분위기도 분위기 였지만 남들의 시선과 타인의 논리적인 설득에 홀랑 넘어가서 정말 사랑하는 이와의 약혼도 파기하고. 그리고 그렇게 솔로로 8년 간 지내 버린. 그렇게 혼기 조차 넘겨 버린. 집안의 문제 수습만 해주면서 살고 있는 앤. 어찌나 답답하고 안쓰럽던지..
기질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베푸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내 이익을 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고생하더라도 남이 편하게 되면 좋은 거지 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이런 과라고 할 수 있다; 별로 고생은 안하고 있지만) 그리고 8년 후 웬트워스와의 재회. 앤 자매님은 여전히 그 기질, 그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눈 앞에서 자신이 8년간 지우지 못했던 웬트워스 대령이 남의 여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어도 그녀는 체면과 예의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고, 대모는 사회적 신분과 재산을 보장 받은 켈린치 저택 상속자인 윌리엄을 짝으로 밀고 있는 상황. 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웬트워스를 향한 감정은 속으로 삭히고 있고, 윌리엄에 대한 갸우뚱한 심정은 끊임 없이 대모인 러셀 부인과 상의를 하려고만 한다. 윌리엄의 숨은 계략을 알고 나서도 이 사실을 얼른 러셀 부인에게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만 가질 뿐이다. 이렇게 앤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웬트워스 대령이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보낸 편지를 받고서. 그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 숨길 수 없었던 그 감정을 느끼고 나서야. '이제 그 사람으로부터(대모, 가족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죠?"라는 웬트워스의 물음에 "제 자신을 믿으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즉 결정은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설득.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책임져야 할 어려움들을 감내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설득 되었는가? 문제와 선택의 기로에서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사항. 나는 누구로부터 설득 당하고 있는가? 그 누군가는 내적인 가치를 알아보는 공정한 시선을 가진 사람인가? 이것이 두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
결정에 대한 책임은. 삶은 결코 타인이 대신 짊어질 수가 없다. 결국에는 책임 소재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현재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나는 또 특유의 책임 회피하기 전략으로 남편을 마구 괴롭히고 있다. "오빠 생각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말이지?" 꼭 남이 나를 설득 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이. 하지만 오빠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뿐, 대신해서 선택해 줄 수는 결코 없다. 몇 년 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했다. 앤은 결국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문제(웬트워스와의 사랑)를 잡았기 때문에 남은 문제들(무심한 아빠와 언니의 불만, 러셀 부인의 우려, 더 지위 높은 신랑을 둔 여동생의 시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들이고 점차로 해결해 나갔다.
난 현재의 선택 후에 닥칠 잠재적인 심란한 문제들에 설복 당해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에게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뭔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남은 문제들은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되는 거니깐. 내가 정말로 원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은 무엇일지. 누군가를 의지하려 들지 말고 잠잠히 생각해보자. 근데 시간이 얼마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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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좋다니깐.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