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펭귄클래식 48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아. 1984를 완독했다.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후련함 보다는 사실 뭔가 모르게 찜찜함이 더 많이 남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완독을 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는데 맛만 본 것 같은 그런 아쉬움이 든다. 먼 훗날에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는 결심해 본다. 

맛만 봤음에도. 그럼에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은 대작임이 분명한 것 같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뭔가 울림을 주는 두 가지 점만. 

첫째는 인간성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이 책은 플롯상으로는 윈스턴이 당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시점부터 당에 반대하고, 저항하고, 고문당하고, 압도당하고, 사랑하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은 또한 인간성에 대한 발견에서 파괴까지를 나타내고 있고. 그리고 그 인간성을 파괴하는 거대한 당이 모습은 다르지만 현대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고 느꼈다. 인간성은 파괴는 시간의 지배에서 시작. 과거를 지배하기 위해서 기록들은 날조된다. 매일매일 새로운 과거로 거듭난다. 현재를 지배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는 철저하게 통제 되고, 사고는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이론이 많이 있는데, 언어를 통제함으로 사고까지도 봉쇄하는 것이지. 또한 개인적인 기록을 불허하고 버젓이 거짓인 것을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사실로 믿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판단 모두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포기하도록(아니 자연스럽게 그 지경이 되도록) 만든다. 물론 이런 내재적인 지배 뿐만 아니라 외적인 지배도 수반됩된다. 곳곳에 있는 사상경찰, 텔레스크린과 마이크 장치+알파는 각 사람의 사생활을 빈틈 없이 감시하고. 

이 1차 통제 단계를 뚫고 나온 의식 있는 윈스턴과 같은 자들은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인 당의 승리욕을 충족 시켜줄 재물이 된다. 윈스턴이 끌려간 애정성에서 2차 통제 및 교화 작업이 진행된다. 의식은 인간성 파괴의 최후는 신기하게도 육체적인 접근으로 시작. 교묘하게 전반부와 후반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앞에서 윈스턴이 얘기했던 결국 어떤 영웅들도 대의는 잊고 moment-to-moment로 자신의 고통 앞에서 씨름하는 레벨이 된다는 말처럼 결국에는 인간의 삶이 내 육체적인 안위를 떠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육체적인 굴복에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 윈스턴이 마지막까지 쥐고 싶어했던 줄리아에 대한 사랑도 의식적 혐오감 앞에서 마침내 굴복하고 만다. 

인간성이라는 것. 그것 참 연약한 것. 아무리 의식있는 사람일지라도 거대 통치제도가 유도하는 사회 전반에 흘려 버리는 분위기와 슬로건을 벗어나 깨어있기 힘들고, 다시 육체적인 고통, 심리적인 고통  앞에서 꼼짝 못하고 엎드러져 버릴 수 밖에 없음이 조금은 절망스러웠다. 

둘째는, 사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 이 역시도 인간성의 파괴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혼란스러웠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모든 절대적인 것들은 상대적인 것으로 나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정말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개개인이 지닌 사실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101호실의 정체가 특히나 더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자극했다. 상상하는 것 그것이 곧 사실이다는 것을, 실재하지 않아도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따.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내 의식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인지가 안되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한 사실이 되겠지. 그런데 내 의식이 학습, 이해, 수용이라는 단계를 밟아가면서 이미 변질되어 있는 상태라면 내가 인식을 한들, 의식을 한들 그것은 틀 자체가 틀려버렸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해도 틀린 사실이 되겠지. 그리고 책에서는 그 마음이라는 도구를 당이 완전히 장악을 함으로써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권력을 쥐고 있는 상태 그 자체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겠지. 한편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거짓된 사실을 믿음으로써 나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면. 능력이 모자라지만 과잉 신뢰를 한다면, 결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를 수 있다고 믿어서 기적적으로 그 원하던 바를 성취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을 부인하고, 기억 속에서 사실이 아닌 일로 지워버려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저 자신도 수많은 거짓을 사실로 믿고, 사실을 거짓으로 믿는 내 마음의 이익을 따라서 이중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사실 은폐와 왜곡도 100%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을 거다. 어떤 사회이든 통제하려는 권력자들과 자유하려는 개인들의 대항은. 그 권력자들이 권력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든, 겉으로만 만인의 행복을 표방하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자본주의 사회이든. 그 속에서 변치 않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복의 요소가 무엇인지. 그 행복의 요소를 뒷받침하도록 하는 튼튼한 마음의 도구를 만드는 학습, 이해, 수용의 기제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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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버전의 아쉬운 점은 미리보기 페이지에 본문이 아닌 서문만 미리볼 수 있어서 실제 번역의 스타일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윈스턴과 줄리아의 대화체 번역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 종이의 질과 편집, 표지 그림은 모두 마음에 드는데 정작 번역의 어색함 때문에 몰입이 방해 되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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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2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런 책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걸까요. 완독하신 님이 존경스러워요^*^

카르멘 2010-04-29 11:01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근데 고전은 정말 고전으로 불릴만큼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