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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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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인도 경찰로 일했던 시절에 느낀 백인들의 행태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고백담과도 같은 소설. 얼굴에 커다랗게 나있는 푸른 모반 때문에 백인도, 흑인(황인)도 아닌 회색분자로 원주민 의사 베라스와미와 친하게 지내던 벌목회사 직원 플로리. 아마도 플로리의 고민이 오웰의 고민이었을테다.

단지 타고난 국적과 혈통 때문에, 지배자의 입장에서 피지배자인 흑인들을 얕보고, 폭행을 일삼고, 인간 이하로 보는 백인들의 시선. 그러는 그들은 고귀한가. 클럽에서 만나 하는 일이라고는 술 마시고,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말싸움 하는 것 밖에 없는데. 자신들은 고귀하고,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동양은 추하고, 더럽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실제로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데. 

가난하지만 허영 많은 아가씨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한번의 태풍이, 사악한 원주민 관료 우 포 킨의 계략으로 또 다단계의 태풍이 밀려 오면서. 자신의 것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가 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제국주의 시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군상들이 나오니깐. 특히나도 서술이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도, 한 챕터가 한 사람의 심리에 포커스를 맞춰 기술을 하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들의 심리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제국주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 지식인들이 느꼈을 법한 고민이 현대라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자와 없는자. 순수한 한국 가족과 다문화 가족. 가진 자로서, 또는 무언가 박탈 당한 자로서.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가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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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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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별 다섯개 짜리 책? 읽기는 한참 전에 읽었는데. 그러고보니 책 읽고 리뷰를 안올리는 책도 많구나.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미래의 책은 어떠한 형태를 띌까? 킨들과 같은 전자책뷰어는 왜 그렇게 자주 미디어에서 접하게 되는 걸까? 정말 미래에는 다른 형식의 책을 소비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을 수가 있다. 특히  애플의 아이팟, 아이튠즈를 시작으로 하여 미디어의 소비 시장의 변화를 소개한다. MP3의 등장에 따른 Biz. Model을 생각해 낸 잡스의 천재성 그리고 음악 시장에 불어 닥친 개혁. 이건 이해가 가는데 아무래도 e-북에 따른 미래의 시장 변화는 아무래도 예측하기에는 또 흐릿한 부분이 많다. 이게 훤하게 보였으면 이미 회사를 차렸겠지? 

책의 앰비언트 화. 그리고 기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기대되는 에티튜드의 변화. 그에 따른 폭풍과도 같은 변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근데 이 정보는 나름 큰 깨달음이라서 쉽게 알려주기는 싫다. ㅎ  

이제 컨텐츠는 그 자체와 그것을 담고 있는 매체와의 인터랙션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로 평가 받게 될 것 같다. 점점 더 Human-매체+기계-Interaction이 중요해 지겠네. 전자책 시장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꽤 유익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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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 굳게 닫힌 연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
제인 오스틴 지음, 조희수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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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사실 나 자신이 매우 설득 당하기 쉬운 사람이라서 이 문제를 저자가 어떻게 풀어갔을지 너무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 선택과 설득에 대한 어느 정도의 힌트는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8년의 터울을 두고 재회한 준남작 엘리엇 가문의 둘째 앤 양과 해군 장교 출신의 웬트워스 대령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로맨스로 읽으면 철저하게 로맨스 소설인 샘이다. 8년 전 스무살도 되지 않았던 시절 대모의 설득에 굴복하여 약혼을 파기했던 앤이 여전한 사회적 신분와 허영, 속물근성에 쩔어 있는 가족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사랑을 결국에는 이루고 마는 해피엔딩. 

근데 나는 로맨스 자체보다도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가?의 문제가 더 관심이 있었다. 맨날 남에 의해 설득 당하던 앤에게 희망이 있는지..『이성과 감성』에서 맛보았던 연애사 뿐만 아니라 인생사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성품, 기질, 가치를 친절한 심리적 해석으로 분석하면서 독자를 끌고 나가는 제인 오스틴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남에게 설득 쉽게 당하는 나는 그녀에게 그러한 지혜 또한 친절하게 전수 받고 싶었다. 

8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에 사람은 많이 변할 수 있나? '별로 변하지 않는다'가 결론이다. 여전히 남들의 말에 설득 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하는 듯 보이는 주인공 앤. 아이구. 답답아~ 똑똑한 머리로 문제가 터졌을 때 자기가 다 수습하고 해결하지만 정당한 대우는 전혀 받지 못하고 늘 뒷전 자리로 내몰리는 앤. 너 어쩌면 좋니. 좋아하는 거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집안 분위기도 분위기 였지만 남들의 시선과 타인의 논리적인 설득에 홀랑 넘어가서 정말 사랑하는 이와의 약혼도 파기하고. 그리고 그렇게 솔로로 8년 간 지내 버린. 그렇게 혼기 조차 넘겨 버린. 집안의 문제 수습만 해주면서 살고 있는 앤. 어찌나 답답하고 안쓰럽던지.. 

기질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베푸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내 이익을 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고생하더라도 남이 편하게 되면 좋은 거지 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이런 과라고 할 수 있다; 별로 고생은 안하고 있지만) 그리고 8년 후 웬트워스와의 재회. 앤 자매님은 여전히 그 기질, 그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눈 앞에서 자신이 8년간 지우지 못했던 웬트워스 대령이 남의 여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어도 그녀는 체면과 예의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고, 대모는 사회적 신분과 재산을 보장 받은 켈린치 저택 상속자인 윌리엄을 짝으로 밀고 있는 상황. 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웬트워스를 향한 감정은 속으로 삭히고 있고, 윌리엄에 대한 갸우뚱한 심정은 끊임 없이 대모인 러셀 부인과 상의를 하려고만 한다. 윌리엄의 숨은 계략을 알고 나서도 이 사실을 얼른 러셀 부인에게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만 가질 뿐이다. 이렇게 앤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웬트워스 대령이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보낸 편지를 받고서. 그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 숨길 수 없었던 그 감정을 느끼고 나서야. '이제 그 사람으로부터(대모, 가족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죠?"라는 웬트워스의 물음에 "제 자신을 믿으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즉 결정은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설득.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책임져야 할 어려움들을 감내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설득 되었는가? 문제와 선택의 기로에서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사항. 나는 누구로부터 설득 당하고 있는가? 그 누군가는 내적인 가치를 알아보는 공정한 시선을 가진 사람인가? 이것이 두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 

결정에 대한 책임은. 삶은 결코 타인이 대신 짊어질 수가 없다. 결국에는 책임 소재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현재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나는 또 특유의 책임 회피하기 전략으로 남편을 마구 괴롭히고 있다. "오빠 생각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말이지?" 꼭 남이 나를 설득 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이. 하지만 오빠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뿐, 대신해서 선택해 줄 수는 결코 없다. 몇 년 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했다. 앤은 결국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문제(웬트워스와의 사랑)를 잡았기 때문에 남은 문제들(무심한 아빠와 언니의 불만, 러셀 부인의 우려, 더 지위 높은 신랑을 둔 여동생의 시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들이고 점차로 해결해 나갔다. 

난 현재의 선택 후에 닥칠 잠재적인 심란한 문제들에 설복 당해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에게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뭔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남은 문제들은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되는 거니깐. 내가 정말로 원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은 무엇일지. 누군가를 의지하려 들지 말고 잠잠히 생각해보자. 근데 시간이 얼마 없다..... ㅠ.ㅠ 

*

고전은 좋다니깐.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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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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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씨가 번역을 해서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그렇게 씹으면서 욕할 만큼 재미 없는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변호하기 위해서 번역하셨다는 번역자님의 해설 속 말씀에 따라서 이 책 재미 없지 않았다. 아니 참 좋았다. 

외국 작품을 한국말로 번역해 올 때 번역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영어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칭의 문제를 어떻게 한국말로 풀 것인가. 미묘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독자로서 읽을 때 이런 미묘한 처리들이 가지고 오는 총체적인 효과는 실로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본들과는 다르게 대화체의 번역에 있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었다. 닉과 개츠비가 서로 말을 놓는 설정으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닉도 개츠비도 중심인물들 모두 이십대와 많아 봐야 서른인 것이다. 

자신의 청춘을 자신이 세운 이미지에 맞춰서, 사랑이라는 이미지에 내어 던진 개츠비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 맹목적으로 내가 내던지고 있는 이미지의 타당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참 좋았다.!

* * * * * * * * * * *  

정말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결코 책장을 넘겨 본 적이 없는 소설. 드디어 넘겨봤고 끝 장을 덮었다. 초반은 읽기 쉽지 않았지만 중반 넘어가면서 몰입해서 읽은 것 같네. 뒷편에 실려 있는 김영하 작가님의 해설의 덕도 톡톡히 봤다. 

줄거리는 생략. 

5년 전 만난 데이지라는 상류층 여자를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제이 개츠비.
개츠비에게 그토록 집요하게 사랑을 받을 만한가? 생각해 보면 썩 그렇지 않은 허영쟁이 데이지.
데이지의 남편이자 대 놓고 불륜을 저지르는 전통 있는 부잣집 아들 톰 뷰캐년.
그들을 바라보는 서른의 한 남자. 닉 캐러웨이.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대목은. 결국은 허상인 이미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의 모습이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한 때 만났던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쟁취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부를 축적하고, 그녀의 집이 내다 보이는 맞은 편에 집을 구해서 사는 남자 개츠비. 그녀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 관심도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밤이면 밤마다 불러 들여서 파티를 열곤 하는 개츠비. 그의 그 열심은 과연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모습. 참 열심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청춘을 모두 불사른다. 요즘은 그 마저 자발적인 동기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욕망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어쨌건 간에 그렇게 '성공'과 '돈'이라는 목표에 목숨을 걸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목표는 실제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하고 환상으로 가져가고 있는 맹목적인 신념이기 때문에 목표한 바를 손에 쥔다고 해도 그 것은 내 머리 속의 이상과는 괴리 될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고 함께 떠나고 싶어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닌 자신의 남편 톰을 선택한다. 그리고 누명을 쓰고 톰의 애인의 남편인 윌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찾아오지를 않는다. 그 숱한 날들을 문지방 닳듯이 오갔던 수많은 파티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관심 조차 보이지를 않는다. 사랑을 원했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한 인간의 치열한 인생의 끝이 참 씁쓸하기 짝이 없다. 

닉의 표현처럼. 휘황찬란했던 파티장이 한 순간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져 내려버렸다. 치열했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 체 싸늘하게 죽어갔다. 

1925년에 발간된 소설. 그때와 지금. 크게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달음질. 그 달음질은 결국 허무하게 끝날 거다. 이미지라는 괴물과의 싸움. 나 역시 싸워야 할 것이며. 데이지가 홀렸던 세속 문명의 아름다움 또한 나 역히 조심해야 할 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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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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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셰익스피어의 MacBeth를 읽었다. 그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이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인과 악인으로 갈리는 지점. 의도했건 안했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내 심연 속에 있는 정체성,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바닥에 있는 가치들을 표면 위로 부상 시킨다. 특히나도 전쟁과도 같은 상황은 물리적으로 변화를 촉구 시키며, 닥쳐 오는 위험들은 내가 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들 중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또한 일종의 전쟁이다. 내 의식, 상식으로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큰 사건. 

맥베스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이 마녀들의 예언 아닌 예언으로 발동이 걸린다. 그 야망은 마음 속 전쟁과 실제 살인과 폭동을 일으키게 한다. 이때 맥베스가 한 말들이 인상 깊었다. 머뭇거리던 강을 넘어가면 그 후는 쉬워 진다고. 돌아서 나오기가 건너가 버리는 것 보다 더 어려워 졌노라고. 그렇게 강을 건너 갔지만, 그래서 폭군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끊임 없이 불안과 위기 속에서 괴로워 하다가, 끝내 맥더프의 칼에 죽는다. 

전쟁과 욕망. 다시 말해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욕망. 자극이 욕망을 발동 시키기도, 욕망이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끔찍한 순간이다. 생존을 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지니고 있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그러한 열악한 조건은 드러나지 않았던 개개인의 가치와 욕망을 모두 벌거벗기듯이 노출 시킨다. 그리고 시계의 전지가 있는 한 0초를 떠난 초침이 한바퀴 돌아 다시 0초로 돌아오듯 그러한 욕망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서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상처를 주기도, 심지어 죽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후회의 장막 안에 가둬 버리기도 한다. 

아무런 갈등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의 모습. 그 현실에 폭탄 하나 떨어지면 모두가 어떻게 돌변할지 어떠한 유형의 인간으로 변신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변하는 모습에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각자가 가진 가치가 다르고, 각자가 두려워 하는 것이 다르고, 모두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인데. 

50년대 클레어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는 단락이 참 멋있었다.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가족, 체면 모두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그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거리로, 못 나간다고 단정지어버렸던 그 곳으로 나서기만 하면 된다는 것. 윌이 두려워서 끝내 트루디를 잡지 못했던 것, 그래서 후회 속에서 십여년을 갇혀 지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발 내디디는 것. 그것은 악의 길로도 빠지게 하는 시발점이기도 하지만, 후회로 점철된 과거에서 희망의 미래로 자신을 옮기는 용기있는 행동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결코 내딛어서는 안되는 한 발짝. 내가 꼭 내디뎌야만 하는 한 발짝.
나의 인생에서 지켜내야 하고, 깨버려야 할 것들이 각각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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