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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뇌를 형성하고, 상상력을 열어주며,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PLAY.

아이들의 삶은 놀이로 가득차 있다. 기어다니는 것, 맛보는 것, 만져 보는 것.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놀이다. 한편, 이것들은 명백한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놀이가 곧 학습이고, 학습이 곧 놀이이던 그 때. 어느새 놀이와 학습의 개념은 분리가 되고, 학습해야 할 시간에 논다고 혼나는 유년기가 온다. 자발적으로 놀던 아이들은 이제 타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청소년기를 지나고, 일 할 수 있는 곳에 취업을 하기 위하여 취업준비, 고시준비 각종 시험 준비로 대학생 20대를 보낸다. 그렇게 취직이 되고 회사원이 되면 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고된 현대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공부하고, 일만 죽어라 했는데. 요즘 세상에선 '잘 놀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죽어라 놀고 싶은 마음 억눌러 가면서 공부하고 일했더니 말이지. 놀이를 잃은 세대. 놀이를 찾아야 할 세대. 그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다.

요즘 읽는 사회과학 교양서들은 모두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깔고 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설명을 하면 또 설명이 되니 문제다. 여튼, 그래 놀이가 왜 중요한데? 어떤 효용이 있는데? 놀이는 창의성의 핵심이다. 그리고 요즘 사회는 성실함 보다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혁신을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효용은 비단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오랫동안 내려오던 진화의 생존 방식이었다. 놀이라는 것은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채널로 동물학자들은 해석을 한다. 놀이를 통해서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관계에 대한 규칙을 학습하며, 정보를 주고 받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포유 동물들이 어렸을 때 놀이가 결핍 되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동물이 될 가능성이 높고, 도태되기 마련이다. 즉, EI(정서 지능)이 동물들에게서도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된다.

뇌과학자들은 잘 노는 동물들의 편도체와 전전두엽이 더 많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왜 잘 놀면 뇌가 발달하는가? 논다는 것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가능성으 상상을 하고,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현해 본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달하고, 경험이 풍부해 지는 것이다. 몇 달 전 산 블럭 게임. Blokus. 살짝 바둑과 비슷한 땅따먹기 게임인데. 이 게임을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공격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고, 방어만 한다고도 능사가 아니고, 한 수 더 생각해서 때로는 일보 후퇴 하는 것, 크리티컬한 선택을 상대방에게 토스하는 것, 방어이자 공격도 되는 수를 놓는 것. 다양한 각도로 생각을 하며 게임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고 생활에도 반영되겠다고 느꼈었다. (이기고 싶은? 손해보기 싫은?) 상대와의 대화에서 공격이자 방어를 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토스하는 기술. 한참 이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대화를 블럭화 하여 이런 수, 저런 수 막 고민하며 나의 말은 어떤 수였나 막 평가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여튼 이렇게 인간은 상상을 통해서 인지 회로를 만들고 뇌를 개발한다고 한다.

실제로 과학은 놀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도, MS사를 설립한 빌 게이츠도 모든 놀이에서 시작이 된 거다. 사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오,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는 공자의 말처럼, 자신의 생업이 달린 일을 미친듯이 즐기면서도 탁월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얼마나 좋으랴. 탁월성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지나치게 심각하게 진지하게만 접근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왜냐면 즐겁게 하나, 힘들게 하나 해야하는 건 마찬가지니깐. 가끔씩은 힘든 일도 놀이로 바꾸면 재미있어지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근데 문제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습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점에서 놀이적인 요소는 제거 당하고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한다는데 있는 것 같다. 그 조차도 내가 계획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닌. 엄마에 의해서 조절되고, 통제 당하는. 심지어 노는 시간 마저 '놀이 학교'에서 생산적으로 성과를 보이면서 놀아야 하는 세상. 이 아이들은 놀면서 발달하는 흥, 자유, 창의성을 개발할 기회가 있기는 한 걸까. 삶의 목표를 '성취'에 둔다면 사실 학업적으로 푸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아니라면 아이의 행복이라면 이 접근 방법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잘 놀게 해주는 것.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한 발짝 떨어져 주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튼 이와 같이 이 책은 놀이가 여러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다. 놀이에서 아이의 미래가 시작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성도 놀이에서 시작되고, 관계에 대한 학습도, 우울증을 이길 수 있는 해답도 모두 놀이에 있다고 얘기한다.

사실 놀이라는 개념의 바운더리가 살짝 모호했다. 놀이, 플로우, 재미. 놀이의 자리에 플로우를 넣어도, 재미를 넣어도 말이 되기는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흥'을 느끼게 되는 세팅을 '놀이'로, '흥'이 극에 치달을 때 도달하는 상태를 '플로우'로. 즉 놀 때 제대로 흥을 느끼면 궁극의 상태인 몰입으로 들어가면 세상을 놀랠 창의적 성과를 낸다고.  

*
놀이와 진화론, 뇌과학과의 접목 외에는 새로운 얘기는 없었다.
요즘 나오는 사회과학 교양서가 다 이 두 학문과의 접목을 꽤하는 것 같다.
정말 진화론과 뇌과학이 대세는 대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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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6-0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구달에 혹했지만 호이징거의 호모루덴스가 더 재미있는 듯 합니다. 결론은 잘 놀라는 건데 잘 놀면 날라리 취급하니...원...저도 거의 다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