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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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ㅣ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평점 :
만화책인데 이렇게 책장이 안넘어 가는 만화책은 또 처음이다. 아.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이건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다. 그냥 그림만, 윤곽만, 분위기만 쓰윽 파악하고 책장을 넘기기에는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작가의 노력이 눈에 밟히기 때문에, 그냥 무심결에 넘겨 버리기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숱하게 많이 들은 김태권이라는 이름. 처음에는「십자군 이야기」를 보던 남편이 '어, 이 책 꽤 괜찮네?'하는 말에 '누구?'하며 슬쩍 만화책을 펼쳐 봤다가 부드러운 로맨스 만화풍이 아닌 딱딱한, 조금은 꺼끌꺼끌한 그림에 호감이 가지 않아서 바로 덮어 버렸고, 그 후 얼마 안있어서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이 작가가 언니 연구실 후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어떠한 사람이고, 얼마나 실력 있는 중견 만화가인지도 차차 알게 되었던 참이었다. 그렇게 기억의 언저리, 관심의 언저리에 있던 작가 김태권의 책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다. 서평단을 한다는 것은 일단은 서평을 나의 관심 여부와 상관 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타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독서와 취향 편식의 경계를 조금 허무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사실 신랑이 먼저 이 책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중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다음날 집으로 중국 역사에 관한 묵직한 책 세권이 덜컥 배달되어 왔다. 신랑은 그림 순서상의 오류를 꼬집고, 주석이 글 읽기를 방해한다는 점과, 극 전개가 너무 느리고, 정보가 많지 않다고 솔직히 혹평을 하였다. 그래도 바로 다음날 중국 역사 책을 주문한 것을 보면 이 책이 꽤나 큰 동기부여를 한 모양이다. 뭐 이 정도의 예비 지식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실제로 주석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는 않았다. 내가 원체 중국 역사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일단 이 책을 보는 태도는 일반 순정 만화를 볼 때의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다. 신랑의 말처럼 정보가 아주 많지도 않고, 책장이 많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대신에 그려져 있는 그림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한' 고심 끝에서, 조사한 고증 사료 끝에서 나왔다는 것은 척하면 누구의 눈에라도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충 윤곽만 보고 상황만, 극의 진행만 확인하며 수루룩 읽었던 여타의 다른 만화를 보는 자세와 매우 다른 자세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한나라 이야기」는 10권짜리 시리즈로 기획되었고, 이 책은 '진시황과 이사'라는 소제를 가진 그 첫편인 1권이다. 진시황의 정치 무대 데뷔에서부터 죽음까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승상 이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시대적 무대로 가진 이 책에서는 낯설고도 익숙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숱하게 외웠으나 어느덧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중국의 나라 이름들, 철학자들, 왕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윤리 시간에 배웠던 여러 철학들. 세계사 시간에 외웠던 국가간의 생성과 멸망. 아. 이 얼마만에 보고, 생각해 보는 낯설고도 익숙한 글자들인지. 이사는 기억 속에 없는데 이 책을 통해서 1인자, 황제가 아닌. 그를 만들고, 그를 보좌했던 승상 이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 같다. 어떠한 사상으로 나라를 통치할 것인가는 군주가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런 것을 볼 때 과연 우리나라가 토대로 삼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뿌리가 얕은 실용주의와 자본주의만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여튼, 이 시기의 묵가, 유가, 법가 사상들의 흥망성쇄와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기저 철학이 함께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고독한 황제 진시황을 보면서 작년에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의 모습이 살짝 오버랩 되어 스쳐 지나갔다. 거기서 어렴풋이 나마 느꼈던 권력의 세계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얼마전 읽었던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인 1984의 오세아니아가 미래의 모습이 아닌 이미 기원전 동아시아 세계에 존재 했었던 세계라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느 곳에나 절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통제가 필요하다. 그 권력에의 독점욕구는 역사를 퇴보 시키고. 권력의 맛을 모르는 나 역시도 권력을 잡았을 때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될까. 내가 권력 때문에 괴물로 변하지 않기를 하고 바랄 뿐이다.
이 외에도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에 여러가지 힌트를 준 것들이 많이 있으나 일일이 쓰기는 좀 그래서 여기까지만. 과연 역사는 과거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조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 인간의 속성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보태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만화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난 워낙에 만화를 거의 안보고, 최근에는 웹툰만 조금 보고 있을 뿐이다. 웹툰은 드르르륵 마우스를 빠른 속도로 1-2분 남짓 스크롤하면 한 화를 다 볼 수 있다. 만화를 보는 데에 이런 스피드에 익숙해진 나라서 김태권씨의 만화가 선보이는 스타일은 매우 생소했다. 이건 스크롤을 할 수도 없고, 페이지마다 있는 주석은 또 어쩔건데!
초반에는 에이 몰라. 주석 빼고 읽을래. 하다가. 어느샌가 주석에 눈이 갔고, 그림을 읽은 후 페이지 하단에 나온 코멘트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읽는 식으로 읽어나갔다. 근데 코멘트를 읽는 다는 것 자체가 흐름을 끊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느낌은 스무스 하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덜컥덜컥 거리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 덜컥 거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코멘트에는 그림에 나타난 인물들이 한 말이 '사기'나, 다른 여타의 책들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 원어(한자)가 소개되고, 그 인물이 했던 사자성어나 배경, 작가의 순수한 코멘트하며, 그림에 그려진 수많은 문양들, 인물들이 쓰고 있는 관, 의복이 어떠한 자료에 근거해서 그려졌는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정보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무늬의 고증 사료에 대한 설명은 '어련히 잘 찾아서 하셨을까'하고 조금은 스킵했다만;;;
또한 코멘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 역사 만화를 그린다는 것'의 고단함이랄까. 그 작업 과정을 엿보게도 해주었다. 보통이 아니구나. 이렇게 많은 사료들을 찾아보고, 고증하는 작업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구나 하는 기본적인 사실도 깨우치게 했다.
과거의 언어를 위트있게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하여 사용한 점, 똑똑한 선배 오빠가 중요한 포인트만 콕콕 찝어주는 듯한 느낌의 절제된 언어, 자료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정보는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하겠다. 단, 중국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에게는 다소 정보가 부족하게 비춰질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모르는 사람에게는 썩 친절한 소개책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이 책의 타깃 독자로 어떤 독자를 설정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