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펭귄클래식 48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아. 1984를 완독했다.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후련함 보다는 사실 뭔가 모르게 찜찜함이 더 많이 남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완독을 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는데 맛만 본 것 같은 그런 아쉬움이 든다. 먼 훗날에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는 결심해 본다. 

맛만 봤음에도. 그럼에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은 대작임이 분명한 것 같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뭔가 울림을 주는 두 가지 점만. 

첫째는 인간성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이 책은 플롯상으로는 윈스턴이 당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시점부터 당에 반대하고, 저항하고, 고문당하고, 압도당하고, 사랑하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은 또한 인간성에 대한 발견에서 파괴까지를 나타내고 있고. 그리고 그 인간성을 파괴하는 거대한 당이 모습은 다르지만 현대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고 느꼈다. 인간성은 파괴는 시간의 지배에서 시작. 과거를 지배하기 위해서 기록들은 날조된다. 매일매일 새로운 과거로 거듭난다. 현재를 지배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는 철저하게 통제 되고, 사고는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이론이 많이 있는데, 언어를 통제함으로 사고까지도 봉쇄하는 것이지. 또한 개인적인 기록을 불허하고 버젓이 거짓인 것을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사실로 믿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판단 모두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포기하도록(아니 자연스럽게 그 지경이 되도록) 만든다. 물론 이런 내재적인 지배 뿐만 아니라 외적인 지배도 수반됩된다. 곳곳에 있는 사상경찰, 텔레스크린과 마이크 장치+알파는 각 사람의 사생활을 빈틈 없이 감시하고. 

이 1차 통제 단계를 뚫고 나온 의식 있는 윈스턴과 같은 자들은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인 당의 승리욕을 충족 시켜줄 재물이 된다. 윈스턴이 끌려간 애정성에서 2차 통제 및 교화 작업이 진행된다. 의식은 인간성 파괴의 최후는 신기하게도 육체적인 접근으로 시작. 교묘하게 전반부와 후반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앞에서 윈스턴이 얘기했던 결국 어떤 영웅들도 대의는 잊고 moment-to-moment로 자신의 고통 앞에서 씨름하는 레벨이 된다는 말처럼 결국에는 인간의 삶이 내 육체적인 안위를 떠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육체적인 굴복에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 윈스턴이 마지막까지 쥐고 싶어했던 줄리아에 대한 사랑도 의식적 혐오감 앞에서 마침내 굴복하고 만다. 

인간성이라는 것. 그것 참 연약한 것. 아무리 의식있는 사람일지라도 거대 통치제도가 유도하는 사회 전반에 흘려 버리는 분위기와 슬로건을 벗어나 깨어있기 힘들고, 다시 육체적인 고통, 심리적인 고통  앞에서 꼼짝 못하고 엎드러져 버릴 수 밖에 없음이 조금은 절망스러웠다. 

둘째는, 사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 이 역시도 인간성의 파괴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혼란스러웠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모든 절대적인 것들은 상대적인 것으로 나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정말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개개인이 지닌 사실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101호실의 정체가 특히나 더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자극했다. 상상하는 것 그것이 곧 사실이다는 것을, 실재하지 않아도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따.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내 의식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인지가 안되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한 사실이 되겠지. 그런데 내 의식이 학습, 이해, 수용이라는 단계를 밟아가면서 이미 변질되어 있는 상태라면 내가 인식을 한들, 의식을 한들 그것은 틀 자체가 틀려버렸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해도 틀린 사실이 되겠지. 그리고 책에서는 그 마음이라는 도구를 당이 완전히 장악을 함으로써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권력을 쥐고 있는 상태 그 자체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겠지. 한편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거짓된 사실을 믿음으로써 나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면. 능력이 모자라지만 과잉 신뢰를 한다면, 결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를 수 있다고 믿어서 기적적으로 그 원하던 바를 성취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을 부인하고, 기억 속에서 사실이 아닌 일로 지워버려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저 자신도 수많은 거짓을 사실로 믿고, 사실을 거짓으로 믿는 내 마음의 이익을 따라서 이중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사실 은폐와 왜곡도 100%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을 거다. 어떤 사회이든 통제하려는 권력자들과 자유하려는 개인들의 대항은. 그 권력자들이 권력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든, 겉으로만 만인의 행복을 표방하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자본주의 사회이든. 그 속에서 변치 않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복의 요소가 무엇인지. 그 행복의 요소를 뒷받침하도록 하는 튼튼한 마음의 도구를 만드는 학습, 이해, 수용의 기제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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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버전의 아쉬운 점은 미리보기 페이지에 본문이 아닌 서문만 미리볼 수 있어서 실제 번역의 스타일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윈스턴과 줄리아의 대화체 번역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 종이의 질과 편집, 표지 그림은 모두 마음에 드는데 정작 번역의 어색함 때문에 몰입이 방해 되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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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2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런 책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걸까요. 완독하신 님이 존경스러워요^*^

카르멘 2010-04-29 11:01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근데 고전은 정말 고전으로 불릴만큼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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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인에게 추천 받은 책. 법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데. 얼마전에 오빠가 읽어보라며 건낸 민법개론(-_-;;;)서도 그렇고 어떻게 이 책 강추라면서 추천을 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맛배기로 법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저자의 자기 인생 소개로 시작한다. 어떻게 법대를 갔고, 어떻게 검사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며, 어떻게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2년간 전업 주부를 했는지. 어떻게 다시 공부를 하고, 어떻게 한동대 교수가 되었는지.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한 설명을 꽤나 자세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가서 '정답은, 바른 길은 하나가 아니다'는 전체 주제를 뒷받침 하는 다양한 소주제들을 통해서 '법'과 '사회'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느낀 것은 '똘레랑스!') 또한 골수 법조인의 삶에서 벗어나 지방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법조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내면화 된 특권 의식이 탄생하는지, 그 위계 질서 안에서 법조인들의 삶은 어떠한지. (여기서 느낀 것은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권력층에서 살아가기가 정말 쉽지 않겠다!) 국가의 권력, 소수자의 권리 등등을 매우 쉽게 실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소개한다.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TV를 통해서 보았던 사건들. 에이 또 비리 얘기잖아. 또 검찰 얘기잖아 하면서 획 채널을 돌려 버렸던 그 사건들을 이렇게 또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이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내가 보는 그 화면들 배후에 어떠한 이들의 어떠한 노력들이 있어왔는지를 이해할 수도 있었다. 

책은 그야말로 '교양서'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점은 신앙 말고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한때 아빠가 좋아하셨던 문구처럼.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다양성을'이라는 말처럼. 정답이 있을 것만 같은 법 안에서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그 법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사건에서도 모든 것에서 양 극단 사이의 조화를 이루어라. 똘레랑스. 그 말을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강추하는가?  

- (고개 갸우뚱하며) 음...... 

- 그래도 문턱이 높은 법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고,

- 막연하게 느껴지는 어려움을 없애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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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전거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0
마리온 데인 바우어 지음, 이승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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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어버렸다. 뉴베리 수상작은 다 원서로 읽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원서로 읽으면 속도가 한글책보다 읽기가 더딘 것은 어쩔 수 없다. 책 표지의 느낌은 참 마음에 들고, 그 톤 역시도 책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준다. 강이 아닌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것은 편집 디자이너의 미스 인 것 같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서 강 또는 바닷가를 바라 보았을 때 분명 표지의 사진처럼 그런 톤의 정서를 느낄 것 같다. 

잃어버린 자전거. 제목이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읽고 나서 나름의 의미들을 부여하니 이 또한 괜찮은 것 같다. 잃어버린 자전거. 잃어버린 친구. 그리고 잃어버린 해맑기만 했던 유년기. 이 잃어버림. 이 잃어버림이 텍스트를 이끌고 간다. 

1987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On My Honor. 번역제목 잃어버린 자전거. 가슴에 쿵. 하는 울림. 

워킹맘을 둔 조엘은 꼬마 때 부터 옆집 토니와 함께 자라난다. 이 둘의 성격은 참으로 다르다. 지나치게 모험심 강해서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토니와 대비 되는 조금은 소심하고 소극적인 조엘. 인기 많은 토니를 독차지 하고 싶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기는 또 주저하는 그런 캐릭터. 토니는 자전거를 타고 '아사의 절벽'을 탐험해 보고 싶다. 조엘은 속으로는 가기가 겁나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어렵게 조엘 아빠에게 허락을 받은 이들은 함께 자전거 탐험길에 오른다. 아무래도 사고도 많이 잃어나는 절벽에 가기 싫었던 조엘은 토니에게 강가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고 제안한다. 더러운 강가에 첨벙첨벙 들어가 버리는 토니. 절벽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여기서 헤엄 대결을 펼치자고 하고 이들은 수영을 시작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토니가 보이지 않는다. 토니는 수영을 못했고 물에 빠져서 소리도 없이 익사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전반부. 

사건의 전말이 모두 소개가 되었고, 캐릭터들의 속성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크나큰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의식 변화이다. 이러한 의식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뭐냐하면 실제 말과 함께 머리에만 머무는 생각들을 함께 적어줬다는 것이다. 즉. 겉으로는 당당하게 "아빠! 허락해 줘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빠. 제발. 제발 허락하지 마.'하는 아이의 말과 마음 간의 간극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 나는 참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딜레마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는 씩씩한척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지만 사실은 상처 받기 쉽고,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은 어린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이렇게 주인공의 내면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본다. 

위험한 절벽에 가자고 꼬신 것도, 강에 먼저 뛰어든 것도, 모든 것이 토니의 탓이었지만, 조엘은 그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끔찍한 죄의식. 그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 그 죄의식은 죽은 물고기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조엘의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해도, 부인하려해도 자꾸만 후각적으로 상기되는 죽음의 냄새. 죄의식의 냄새.  

적절한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 두고 부모에게, 토니의 부모에게 말을 했으나. 결국에는 경찰들까지 대동한 자리에서 사건을 밝히고 만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의 그 죄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엘과 아버지의 대화가 참 인상 깊었다. 

'...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조엘에게 우리는 '만약에'에 의존해서 삶을 살 수는 없으며, 앞으로 힘든 일을 하나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얘기를 한다. 또한 모두가 '선택'을 하고 살아가며, 토니는 자신의 '선택'에서 돌아오지 못한 거라고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갔을 거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조엘이 잠들기까지 그 곁을 지킨다. 

아. 저런 아버지. 저런 부모가 되어야 겠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무조건적인 위로를 하지 않았다. 안그래도 상처로 뭉개진 마음을 가진 조엘에게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또한 특별한 교훈을 가르치려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핸디캡이 있을지언정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나의 책임과 더불어 타인의 책임을 구분하여 지나친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지혜. 그리고 그 책임을 애초에 절벽으로 가는 것을 허락한 본인에게도 부과하여 '혼자'가 아닌 '함께' 그 짐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 말들이 내게는 참 와닿았다. 

하루 한나절 동안의 이야기였으나. 매우 짜임새 있게. 또 삶에 대한 지나친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모두가 녹아져 있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또한, 앞서 썼듯이 남자아이들의 또래 관계의 문제들, 사고를 당한 어린이/청소년의 의식 흐름, 문제를 직면했을 때 부모의 역할 등에 대해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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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실험실 랜덤소설선 21
장은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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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 문학동네 수상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 혹하여 오늘도 장은진 소설집을 펼쳐 들었다. 표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어제의 책보다는 한층 어두운 내용이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로 묶인 소설집인 이 책은 욕망 중에서도 '식욕'을 중심 주제로 잡고 있다. 그리고 '식욕'이라는 주제를 쭈욱 잡아당기면 거기에 주렁주렁 '배설', '배고픔', '성욕' 등등의 다른 욕구들이 딸려 나온다.작가는 글을 쓰면서 살짝 배가 불러온 걸까? 어제의 달콤한 희망에 비해서 몇 년 전 쓴 이 책은 다소 과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소설속의 인물들에게서 왠지 모를 질퍽한 느낌이 감돈다. 뜨악한 장면도 많아서 조금 읽고 책을 덮었다.(흑. 놀랬잖아! 너무 리얼한 그닥 예쁘지 않은 장면들;;) 언젠간 말랑한 소설이 아닌 터프한 소설도 제대로 읽게 될 때. 그 때 다시 읽으리라 마음을 먹고 두 편만 읽고 싹 덮어버렸지. 

내가 읽은 소설은 책 타이틀인「키친 실험실」과 「달을 위한 요리」이 두 편. 두 소설의 느낌은 매우 유사하다. 요리를 매개로 한 욕구의 분출. 요리, 음식의 짝은 배설이라는 사실. 이러한 두 측면의 지나친 커플링이 사실은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답게만 보고 싶은데, 요리와 배설을 너무 직접적으로 나란히 놓는 듯한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작가는 음식을 통하여 '결핍'을 얘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소외 상태의 불구 상태의 또는 배고픈 상태의 결핍된 주인공들은 소통의 통로로서 음식을 선택한다. 그 음식은 본인을 먹여주는 에너지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 형성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이 관계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도 같은 것. 키친의 남편은 사고라는 비극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마지막으로 취할 수 밖에 없던 부엌에서 자신을 위한, 또 아내를 위한 요리를 만든다. 준비된 아내의 요리에는 상상하기 힘든 거리의 비밀 재료들이 녹아져 있다. 하루 두끼 밥을 제공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여 가난 상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여자는 그녀가 준비한 밥이 건드려지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요리 대신 음식 쓰레기를 들고가 주인 달에게 (쳐)먹이고는 그믐달 처럼 사라져 버린다. 

서로 다른 음식. 같은 공간에 공존하나 함께 할 수 없는 부부. 

같은 음식. but 공유되지 않았고, 연결 되었다고 생각한 관계는 허상이었던 달과 그녀.  

이렇게 관계의 시도는 실패, 또는 그대로 유지되고, 여전히 삶은 진행된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어휘들이 있었다. 

------------------------------------------------------------------------------------무덕무덕 쌓여있는 잡지들: [부사] ‘무더기무더기’의 준말
부픗해진 요리책: [부사] 무게는 나가지 아니하지만 부피가 매우 큰 듯한 모양
아귀아귀 먹다: [부사]음식을 욕심껏 입 안에 넣고 마구 씹어 먹는 모양
그림자는 부엌을 음음하게 만들었다: [형용사]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흐리고 어둡다.
광휘 같은 존재: [명사]  환하고 아름답게 빛남.  눈부시게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표현
------------------------------------------------------------------------------------등등등. 

* 작가의 책을 검색하다가「앨리스의 생활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랏. 이 책 표지 어디서 봤는데' 하고 생각해 보니 작년에 YH오빠네 놀러 갔을 때 책상 위에 떠억 하니 놓여져 있던 장면이 벌컥 떠올랐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거니깐 오빠한테 줬겠지? 그 책을 읽고 국문학 교수인 오빠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심히 궁금해진다. 근데 이 책 도서관에는 없고. 살까. 말까. 아님 도서관에 신청할까. 음. 서점에서 읽고 오는 방법도 있긴 하네. 오늘 카드 명세서 보고 오빠도 나도 깜딱 놀랬는데. 아무래도 책 사는 거 좀 자제해야 하겠지;;; 우리 집은 엥겔계수 보다 책 구입계수가 더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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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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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인데 이렇게 책장이 안넘어 가는 만화책은 또 처음이다. 아.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이건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다. 그냥 그림만, 윤곽만, 분위기만 쓰윽 파악하고 책장을 넘기기에는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작가의 노력이 눈에 밟히기 때문에, 그냥 무심결에 넘겨 버리기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숱하게 많이 들은 김태권이라는 이름. 처음에는「십자군 이야기」를 보던 남편이 '어, 이 책 꽤 괜찮네?'하는 말에 '누구?'하며 슬쩍 만화책을 펼쳐 봤다가 부드러운 로맨스 만화풍이 아닌 딱딱한, 조금은 꺼끌꺼끌한 그림에 호감이 가지 않아서 바로 덮어 버렸고, 그 후 얼마 안있어서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이 작가가 언니 연구실 후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어떠한 사람이고, 얼마나 실력 있는 중견 만화가인지도 차차 알게 되었던 참이었다. 그렇게 기억의 언저리, 관심의 언저리에 있던 작가 김태권의 책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다. 서평단을 한다는 것은 일단은 서평을 나의 관심 여부와 상관 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타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독서와 취향 편식의 경계를 조금 허무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사실 신랑이 먼저 이 책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중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다음날 집으로 중국 역사에 관한 묵직한 책 세권이 덜컥 배달되어 왔다. 신랑은 그림 순서상의 오류를 꼬집고, 주석이 글 읽기를 방해한다는 점과, 극 전개가 너무 느리고, 정보가 많지 않다고 솔직히 혹평을 하였다. 그래도 바로 다음날 중국 역사 책을 주문한 것을 보면 이 책이 꽤나 큰 동기부여를 한 모양이다. 뭐 이 정도의 예비 지식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실제로 주석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는 않았다. 내가 원체 중국 역사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일단 이 책을 보는 태도는 일반 순정 만화를 볼 때의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다. 신랑의 말처럼 정보가 아주 많지도 않고, 책장이 많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대신에 그려져 있는 그림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한' 고심 끝에서, 조사한 고증 사료 끝에서 나왔다는 것은 척하면 누구의 눈에라도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충 윤곽만 보고 상황만, 극의 진행만 확인하며 수루룩 읽었던 여타의 다른 만화를 보는 자세와 매우 다른 자세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한나라 이야기」는 10권짜리 시리즈로 기획되었고, 이 책은 '진시황과 이사'라는 소제를 가진 그 첫편인 1권이다. 진시황의 정치 무대 데뷔에서부터 죽음까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승상 이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시대적 무대로 가진 이 책에서는 낯설고도 익숙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숱하게 외웠으나 어느덧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중국의 나라 이름들, 철학자들, 왕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윤리 시간에 배웠던 여러 철학들. 세계사 시간에 외웠던 국가간의 생성과 멸망. 아. 이 얼마만에 보고, 생각해 보는 낯설고도 익숙한 글자들인지. 이사는 기억 속에 없는데 이 책을 통해서 1인자, 황제가 아닌. 그를 만들고, 그를 보좌했던 승상 이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 같다. 어떠한 사상으로 나라를 통치할 것인가는 군주가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런 것을 볼 때 과연 우리나라가 토대로 삼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뿌리가 얕은 실용주의와 자본주의만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여튼, 이 시기의 묵가, 유가, 법가 사상들의 흥망성쇄와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기저 철학이 함께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고독한 황제 진시황을 보면서 작년에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의 모습이 살짝 오버랩 되어 스쳐 지나갔다. 거기서 어렴풋이 나마 느꼈던 권력의 세계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얼마전 읽었던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인 1984의 오세아니아가 미래의 모습이 아닌 이미 기원전 동아시아 세계에 존재 했었던 세계라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느 곳에나 절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통제가 필요하다. 그 권력에의 독점욕구는 역사를 퇴보 시키고. 권력의 맛을 모르는 나 역시도 권력을 잡았을 때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될까. 내가 권력 때문에 괴물로 변하지 않기를 하고 바랄 뿐이다. 

이 외에도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에 여러가지 힌트를 준 것들이 많이 있으나 일일이 쓰기는 좀 그래서 여기까지만. 과연 역사는 과거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조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 인간의 속성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보태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만화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난 워낙에 만화를 거의 안보고, 최근에는 웹툰만 조금 보고 있을 뿐이다. 웹툰은 드르르륵 마우스를 빠른 속도로 1-2분 남짓 스크롤하면 한 화를 다 볼 수 있다. 만화를 보는 데에 이런 스피드에 익숙해진 나라서 김태권씨의 만화가 선보이는 스타일은 매우 생소했다. 이건 스크롤을 할 수도 없고, 페이지마다 있는 주석은 또 어쩔건데! 

초반에는 에이 몰라. 주석 빼고 읽을래. 하다가. 어느샌가 주석에 눈이 갔고, 그림을 읽은 후 페이지 하단에 나온 코멘트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읽는 식으로 읽어나갔다. 근데 코멘트를 읽는 다는 것 자체가 흐름을 끊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느낌은 스무스 하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덜컥덜컥 거리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 덜컥 거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코멘트에는 그림에 나타난 인물들이 한 말이 '사기'나, 다른 여타의 책들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 원어(한자)가 소개되고, 그 인물이 했던 사자성어나 배경, 작가의 순수한 코멘트하며, 그림에 그려진 수많은 문양들, 인물들이 쓰고 있는 관, 의복이 어떠한 자료에 근거해서 그려졌는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정보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무늬의 고증 사료에 대한 설명은 '어련히 잘 찾아서 하셨을까'하고 조금은 스킵했다만;;;  

또한 코멘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 역사 만화를 그린다는 것'의 고단함이랄까. 그 작업 과정을 엿보게도 해주었다. 보통이 아니구나. 이렇게 많은 사료들을 찾아보고, 고증하는 작업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구나 하는 기본적인 사실도 깨우치게 했다. 

과거의 언어를 위트있게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하여 사용한 점, 똑똑한 선배 오빠가 중요한 포인트만 콕콕 찝어주는 듯한 느낌의 절제된 언어, 자료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정보는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하겠다. 단, 중국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에게는 다소 정보가 부족하게 비춰질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모르는 사람에게는 썩 친절한 소개책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이 책의 타깃 독자로 어떤 독자를 설정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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