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실험실 랜덤소설선 21
장은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 문학동네 수상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 혹하여 오늘도 장은진 소설집을 펼쳐 들었다. 표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어제의 책보다는 한층 어두운 내용이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로 묶인 소설집인 이 책은 욕망 중에서도 '식욕'을 중심 주제로 잡고 있다. 그리고 '식욕'이라는 주제를 쭈욱 잡아당기면 거기에 주렁주렁 '배설', '배고픔', '성욕' 등등의 다른 욕구들이 딸려 나온다.작가는 글을 쓰면서 살짝 배가 불러온 걸까? 어제의 달콤한 희망에 비해서 몇 년 전 쓴 이 책은 다소 과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소설속의 인물들에게서 왠지 모를 질퍽한 느낌이 감돈다. 뜨악한 장면도 많아서 조금 읽고 책을 덮었다.(흑. 놀랬잖아! 너무 리얼한 그닥 예쁘지 않은 장면들;;) 언젠간 말랑한 소설이 아닌 터프한 소설도 제대로 읽게 될 때. 그 때 다시 읽으리라 마음을 먹고 두 편만 읽고 싹 덮어버렸지. 

내가 읽은 소설은 책 타이틀인「키친 실험실」과 「달을 위한 요리」이 두 편. 두 소설의 느낌은 매우 유사하다. 요리를 매개로 한 욕구의 분출. 요리, 음식의 짝은 배설이라는 사실. 이러한 두 측면의 지나친 커플링이 사실은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답게만 보고 싶은데, 요리와 배설을 너무 직접적으로 나란히 놓는 듯한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작가는 음식을 통하여 '결핍'을 얘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소외 상태의 불구 상태의 또는 배고픈 상태의 결핍된 주인공들은 소통의 통로로서 음식을 선택한다. 그 음식은 본인을 먹여주는 에너지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 형성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이 관계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도 같은 것. 키친의 남편은 사고라는 비극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마지막으로 취할 수 밖에 없던 부엌에서 자신을 위한, 또 아내를 위한 요리를 만든다. 준비된 아내의 요리에는 상상하기 힘든 거리의 비밀 재료들이 녹아져 있다. 하루 두끼 밥을 제공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여 가난 상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여자는 그녀가 준비한 밥이 건드려지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요리 대신 음식 쓰레기를 들고가 주인 달에게 (쳐)먹이고는 그믐달 처럼 사라져 버린다. 

서로 다른 음식. 같은 공간에 공존하나 함께 할 수 없는 부부. 

같은 음식. but 공유되지 않았고, 연결 되었다고 생각한 관계는 허상이었던 달과 그녀.  

이렇게 관계의 시도는 실패, 또는 그대로 유지되고, 여전히 삶은 진행된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어휘들이 있었다. 

------------------------------------------------------------------------------------무덕무덕 쌓여있는 잡지들: [부사] ‘무더기무더기’의 준말
부픗해진 요리책: [부사] 무게는 나가지 아니하지만 부피가 매우 큰 듯한 모양
아귀아귀 먹다: [부사]음식을 욕심껏 입 안에 넣고 마구 씹어 먹는 모양
그림자는 부엌을 음음하게 만들었다: [형용사]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흐리고 어둡다.
광휘 같은 존재: [명사]  환하고 아름답게 빛남.  눈부시게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표현
------------------------------------------------------------------------------------등등등. 

* 작가의 책을 검색하다가「앨리스의 생활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랏. 이 책 표지 어디서 봤는데' 하고 생각해 보니 작년에 YH오빠네 놀러 갔을 때 책상 위에 떠억 하니 놓여져 있던 장면이 벌컥 떠올랐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거니깐 오빠한테 줬겠지? 그 책을 읽고 국문학 교수인 오빠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심히 궁금해진다. 근데 이 책 도서관에는 없고. 살까. 말까. 아님 도서관에 신청할까. 음. 서점에서 읽고 오는 방법도 있긴 하네. 오늘 카드 명세서 보고 오빠도 나도 깜딱 놀랬는데. 아무래도 책 사는 거 좀 자제해야 하겠지;;; 우리 집은 엥겔계수 보다 책 구입계수가 더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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