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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삼총사 ㅣ 사계절 아동문고 53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김무연 그림 / 사계절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아동 문학에는 특히나도 '성장'이 주제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 환경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고 그 어려움을 결국에는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가 가장 흔한 이야기 구조일 것이다. 이 책도 한 억압된 아이의 성장기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고타미는 극도록 소심한 아이다. 스스로를 심하게 비하한다. 고타미는 스스로를 재미없고, 그래서 내 옆에 앉는 사람은 운이 없고, 어떻게 해서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아이. 사야카라는 아이에게 군림 당해서 시녀처럼 붙잡혀 살기도 했기에. 관계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지도,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 하는 안쓰러운 아이이다. 그런 고타미는 '거대녀' 시노와 '폭탄' 앨리사와 얼떨결에 (아니 순전히 그들이 먼저 접근했기에) 그들과 한 무리가 된다.
여기서 작가가 설정한 것들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고타미는 왜 그렇게 극도로 소심한 아이가 되었을까? 그것은 이혼한 엄마 본인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매간의 경쟁 의식. 의사를 남편으로 둔 언니의 행복한 삶에 대한 시기랄까. 대학 교수인 자신의 실력으로, 딸들의 학력으로 승부를, 보상을 받으려는 이 엄마의 마음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고타미를 움츠러 들게 한다. 고타미는 그래서 늘 100점만 받던 미국으로 유학간 언니와 끊임 없이 스스로를 비교할 테고, 친척 모두가 입학한 명문 초등학교를 미끄러지면서 '나는 떨어지는 애'라고 스스로 되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타미에게 작가가 붙여준 친구 두 명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아이들. 천방지축 날뛰는 망아지와도 같은 하지만 '좋은 애들' 거대녀 시노는 별명과 같이 지나치게 큰 체구 때문에 '튄다' 앨리사도 마찬가지로 머리가 폭탄이고 피부가 가무잡잡하여 '튄다' . 특히 앨리사는 필리핀 엄마를 둔 혼혈 아동이라 더 그렇다. 이렇게 일반적인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튀는 두 명의 캐릭터가. 너무 튀지 않아서, 너무 정체성이 없어서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이 고타미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왜? 놀리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튀는 세 명의 아이들. 극과 극들의 만남. 보통의 관계는 어른의 권력구조와 마찬가지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 이미 고타미는 그런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한 삼총사는 누군가가 누구를 군림하는 형태가 아닌 서로 '난장'을 벌이며 뒹구는 사이. 천방지축인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소심한 고타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하게 하지도 않고. 함께 뒹굴며 노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향해서 한 발 내딛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참 좋았다.
사건의 클라이막스는 고타미가 사와무라와도 함께 어울리는 걸 본 사야카가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했으나 말을 전하지 않은데서 터진다. 사야카는 칠판에 '고타미 도둑'이라고 쓰는 것으로 복수한다. 하지만 그 도둑 사건은 사실은 사야카가 시킨 일이었다. 여기서 힘쎈 정말로 튀는 시노와 앨리사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타미는 스스로 해결한다. 자신이 도둑 맞다고 외치고 밖으로 뛰쳐 나와 인근 언덕 나무 위에서 혼자 숨죽여 슬퍼한다. 온 학급 아이들은 이런 고타미를 찾으러 나섰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고타미를 발견한다. 그가 해주는 얘기가 참 감동적이다. 그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시노를 시작으로 각자 무언가를 훔쳤던 경험들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후회하는 도둑질을 하는 행동보다 칠판에 쓰는 행동이 더 비겁하고 나쁘다고 결론을 냈다는 것. 또한 시노도, 고타미도 '좋은 애'라고 하는 사와무라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 지는 고타미.
다 쓰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무리에 들어갈 때 소속감과 정체성이라는 두 욕망의 부딪힘을 겪는 과정이며, 소심한 소녀가 교실에서 또래관계에서 느낄 법한 감정에 대한 힌트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본인을 고타미에 감정 이입을 시키면서 그 외로움과 불안을 깊이 공감하고, 마지막에서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참 좋은 책이었다. 특이한 캐릭터들이 살아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뭉클한 장면을 연출할 법한 장면에서도 특유의 '천방지축'으로 일관 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