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매일의 일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갑옷(armor)같은 거죠.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건 문명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이의 갑옷은 푸른색 프렌치 워크 자켓(French work jacket)과 투박한 면바지, 어깨에 둘러맨 작은 카메라 가방, 편한 스니커즈였다. 그는 뉴욕 패션 사진계의 거장 빌 커닝햄이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뉴욕 시내를 누비면서, 그가 좋아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은 누구든 찍었다. 낮에는 거리에서, 밤에는 여러 파티와 행사장을 누볐다. 그렇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뉴욕 타임즈에 'On the Street'과 'Evening Hours'라는 이름의 포토 에세이로 실렸다.


  리처드 프레스(Richard Press)가 2010년에 만든 다큐 'Bill Cunningham New York'은 빌 커닝햄의 사적인 모습을 담았다. 그는 뉴욕 패션계의 유명인사들을 담는 사진 작가였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커닝햄을 감독 리처드 프레스는 8년 동안 설득했고, 마침내 다큐를 찍을 수 있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감독이 다큐가 끝나갈 무렵에 묻는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있냐고.


  "그러니까, 내가 '게이(gay)'냐고 지금 묻는 거 맞아요?"


  리처드 프레스가 'Yes'라고 외친다. 커닝햄의 대답은 이러했다.


  "난 항상 일하느라 바빴어요. 밤낮없이 일했죠."


  그랬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옷'만이 가득했다. 그는 많은 셀럽(celebrity)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들이 그의 마음에 드는 멋진 옷을 입었을 때만 찍었다. 카트린 드뇌브를 거리에서 보았지만 그는 찍지 않는다. 별로 흥미있는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파파라치(paparazzi)가 아니며, 시대의 패션을 기록하는 사진 작가라고 말하는 빌 커닝햄의 표정에는 대단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자세는 '수도승'같다. 그는 자신이 초대되는 연회나 행사장에서 술과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곳에 가기 전에 미리 3달러 안팎의 식사로 끼니를 때운다. 오직 그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입은 '패션'이다.


  그가 평생 동안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유명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뉴욕 타임즈에 오랫동안 기고한 'On the Street' 칼럼에는 온전히 거리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의상 사진으로 채워졌다. 그 기록은 일종의 패션 사회사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패션에서 다가올 유행의 흐름을 읽어내고, 자신만의 안목으로 시대를 기록했다. 뉴욕 역사 협회에서 빌 커닝햄의 사진 작업들을 소장하고 기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옷에 미쳐서 산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찍는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카네기홀에 딸린 그의 작은 스튜디오는 소박한 침대 하나와 네거티브 필름이 가득한 여러 개의 캐비닛, 패션 관련 서적들이 전부였다. 화장실은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썼다. 그러다 카네기홀 재단에서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입주한 예술가들을 퇴거시키게 되는데, 커닝햄도 어쩔 수 없이 재단에서 마련한 아파트로 옮기게 된다. 그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집주인에게의 주방 시설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에게는 사진을 보관할 장소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돈이란 건 가장 값싼 거에요. 자유가 세상에서 제일 값진 거죠(Money is the cheapest thing. Liberty is the most expensive)."


  빌 커닝햄은 자신의 사진 작업에 돈이 물드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그가 입은 푸른색 프렌치 워크 자켓은 프랑스 지하 상가에서 파는 작업복이었다. 파리 청소부들이 입는 것과 같은 옷이었다. 그 옷은 그가 타고 다니는 슈윈(Schwinn) 자전거와 함께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다큐에서 그는 자신의 29번째 자전거를 소개한다. 28번째 자전거는 도난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뉴욕을 누비는 패션 수도승, 빌 커닝햄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빌 커닝햄의 눈이 가장 빛나고 반짝거리는 순간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때, 그의 얼굴은 설레임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20대 때 징집되었던 그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군복무하면서 패션에 눈을 뜬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만의 모자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가 파는 모자는 마릴린 먼로와 진저 로저스 같은 유명 여배우들이 쓸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패션 사진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일생은 옷에 바쳐졌다.


  오직 '옷' 사진으로만 꽉 채워진 삶.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화려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 옷이나 찍어서 내다파는 인생 아니었냐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특히 예술 분야는 실제적인 유용성과는 대부분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한번 생각해 보자. 영화가 세상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영화 감독과 비평가들이 하는 일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을까? 지나간 청춘의 날들에, 나는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었었다.


  빌 커닝햄은 2016년, 87세로 세상을 떴다. 죽기 전까지 그의 사진 작업은 계속 이어졌었다. 다큐에 나왔을 때는 80에 가까운 나이였는데도 변함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 같은 옷차림에 자전거를 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나이까지 이런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이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커닝햄은 이렇게 외친다.


  "아이구, 이젠 그만 찍읍시다. 나 일해야 한다구요."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에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오직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평생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누군가가 만드는 영화 속에 있을 것이다. 그 영화에 들어있는 그 무언가가, 그것이 꿈이든 매혹이든 어떤 이의 삶을 흔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의 삶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구원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영화를,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빌 커닝햄의 삶을 담아낸 이 다큐는 그 열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다큐는 archive.org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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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음악 선생님이 낸 여름방학 숙제는 클래식 음악프로그램 듣고 선곡표를 노트에 적어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실시간으로 선곡표가 올라오는 시대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이므로 모든 신청곡은 엽서나 편지로만 가능했다. 선곡표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생방송 듣고 그냥 적는 수 밖에. 처음에는 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듣다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고 참 좋았다. 원래 정해진 1시간 이외에 두세 개 프로그램을 더 들을 때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렇게 정리한 노트가 2권이 넘었다. 나중에 보니, 제대로 숙제를 해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모두들 그 숙제가 진저리나게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클래식 음악에 입문했다. 유일하게 KBS 1FM 클래식 채널만 들었다. 


  '당신의 밤과 음악'을 그 당시 진행했던 이는 아나운서 황인용 씨였다. 사연을 보낸 이들 가운데 선정이 되면 KBS 로고가 새겨진 파이로트 펜 선물 세트를 보내주었다. 내가 보낸 사연이 당첨이 되어서 받아보니, 금색의 샤프 펜슬과 볼펜 세트였다. 신청했던 음악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전곡 연주를 들려주는 '명연주 명음반'의 정만섭 씨는 처음에는 저녁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왔었다. 그러다가 낮 방송으로 프로그램이 옮겨 왔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들은지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 기억으로 마리아 칼라스 노래를 들려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마도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자신은 칼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프리츠 분덜리히의 열렬한 팬으로서 1년에 한번은 꼭 그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려준다. 이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한 해가 다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독일 가곡을 노래했던 이 뛰어난 테너는 친구들과 별장 휴가를 갔다가 실족사로 3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클래식 전용 채널이지만, 국악 방송도 나온다. '흥겨운 한마당'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FM 풍류마을'만 남았다. 별로 즐겨 듣지 않아서, 그 시간에는 이각경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해피타임 4시'로 채널을 돌린다. 주로 1980년대에서 2000년대를 아우르는 가요를 들려준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트로트도 가끔 나오지만, 김수희의 '남행 열차'와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 파티'를 듣는 것도 괜찮다. 다양한 청취자들의 이런저런 사연들이 정적인 클래식 채널의 청취자들 사연보다 더 생동감 있다.


  저녁 9시 40분부터 10시까지는 우리 가곡을 들려주는 '정다운 우리 가곡'이 있다. 전에 진행하던 배창복 아나운서의 진행이 참 좋았다. 가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차분한 진행이 좋아서 그냥 들을 때가 많았다. 그는 KBS의 여러 다큐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했는데, 최근에 기억남는 것은 '우주에서 본 지구 4부작'이었다. 발성, 발음의 고저와 장단, 그 무엇 하나 빈틈이 없어서 탄복을 했다. 다큐도 좋았지만 4부작을 보는 동안 배창복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 정도 중견 아나운서라면 어느 정도 매너리즘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직업에 대한 프로 의식이 대단한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방송 잘 보았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쓰려고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진행자가 바뀌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그 20분 동안 이상호의 '드림팝'을 듣는다.


  '드림팝'은 아주 옛날 팝송부터 최신 음악까지 두루두루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백미는 시청자 사연인데, 아주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얼마 전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는 육아에 지친 아기엄마가 주인공이었다. 드림팝을 들으면서 수학 문제집을 푸는데, 그것이 육아 스트레스 해소에 정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같은 수학 포기자에게는 정말 신박한 사연이었다. 야근하면서 듣는다는 직장인, 아이 학원 앞에서 차 세워놓고 듣는다는 학부모 등등, 여러 삶의 모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그렇다.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온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라디오는 앞으로 100년 후에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전달해 주는 그 따뜻함, 소통한다는 느낌이 라디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전자책이 나온 지가 꽤 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진짜 종이로 된 책을 사고 있다. 종이를 직접 넘기는 그 촉감과 무언가 소장한다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출판 시장은 지금의 전염병 시대에 더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서 읽을 책을 사고, 음악을 들으려고 음반을 사고 있다.


  영화는 어떨까? 나는 100년 후의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의 영화에 어떤 인간적인 온기, 물적인 느낌이 있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뭔가 곽티슈의 티슈,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냥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별 의미 없는 것. 자신이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에 오늘 업데이트 되는 동영상이 무엇인지 관심있는 사람은 많지만, 신작 영화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영화를 생각하면 설레임을 느낀다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은 그래야만 할 것이다.


  작년에 드디어 비디오를 버렸다.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가 꽤 되었는데, 공부할 때 쌓아둔 비디오 테이프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고서 버렸다. 비디오 테이프는 그래도 추억이 있는 거라 버리지 못했다. 우스운 것은 클리너 테이프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다시 비디오를 살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비디오 테이프들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 지는 나도 모른다.


  며칠 동안 갑자기 방문자 수가 폭증해서 무척 놀랐다. 이 블로그에 늘 방문하던 이들의 숫자는 30명에서 50명 안팎이었다. 뭔가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숫자였다. 내가 유튜버라면 정말 신나고 좋았겠지만, 나는 매일의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으므로 솔직히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다. 내 글은 대부분 길고, 그다지 재미도 없는 글이므로 왜 오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요새도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삼켜버린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영화에 대해 애정이라기 보다는 해탈 내지는 관조의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가끔씩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EBS의 '비즈니스 리뷰'라던가 클래스 e의 창업 비결, 같은 것을 본다. 얼마 전, 마케팅에서 말하는 타깃 설정, 그러니까 고객 설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아주 흥미있게 보았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시제품을 만들 때, 자신들이 물건을 사려는 가상의 고객을 설정해놓고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객에게 진짜 이름도 부여하고, 그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다 써놓은 지침이 있단다. 예를 들면 '에밀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에밀리의 나이, 수입, 취미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그 가상의 에밀리가 싫어할 것인지 좋아할 것인지를 검토한다고 했다. '이건 에밀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든지, 또는 '에밀리라면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거에요'라고 하면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이름을 준영, 은주로 붙여보았다. 나이는 30대 후반부터 그 이후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오래된 드라마 리뷰를 읽어볼 정도라면 젊은 친구들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20대 친구들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유튜브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아무튼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에 애정을 가진 이들일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준영 씨와 은주 씨를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내 글이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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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후배 L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L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요?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벌써 여러 군데 생겼는데, 아마 점차 더 늘어날 거에요. 우리가 공부하는 영화와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화 산업계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기술적인 발전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크리스토퍼 케닐리가 2012년에 만든 'Side by Side'는 영화 산업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대한 영화적, 산업적 성찰을 담아낸 다큐이다. 이미 그 시기에는 디지털 영화 제작이 안착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여러 유명 영화 감독, 촬영 감독을 비롯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들이 아주 흥미롭게 구성되어있는데,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여기에 나온 인물들을 분류해 보면, '오직 필름 사랑'을 외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콜세지 같은 중도파, '새로운 기술 디지털 최고'의 편에 선 조지 루카스와 제임스 카메론,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큐는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사건이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필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고, 영화 제작의 최전선에 있는 저런 뛰어난 영화인들의 고민과 성찰은 더 치열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영화를 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다큐에 나온 이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한 조지 루카스에게 필름은 너무 구식이고 돈도 많이 들고 불편했다. 그가 디지털 신기술을 열렬히 환영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제임스 카메론은 떠버리 흥행사 같다. 자신이 만든 '아바타(2009)'가 3D로 제작한 선구적 작품임을 내세우면서 신기술 예찬론을 펼친다. 그 영화에 무슨 대단한 영화적 성찰이나 깊이가 있었던가? 영화관에서 본 '아바타'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영화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는 작품 같았다. 오직 기술만을 내세운, 영혼이 실종된 영화였다. 다큐에서 3D 기술에 대해 다른 영화인들은 새로운 술책(gimmick)이거나, 흥밋거리(intrigue)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영화적 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그래서 이런 영화적 기술의 진보 앞에서 묻게 된다.


  "과연 영화적(cinematic)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cinematic'의 사전적 의미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영화가 분명 사실이 아니며, 환상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영화로 재현된 이미지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배우와 사물, 풍경은 카메라에 담긴 진짜였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이제 구태여 현실을 담아낼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걸 특수 효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새로운 세대가 CGI(computer-generated imagery)로 인해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주는 점은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이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창작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이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평가를 내린다.


  "모두가 펜과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다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아니죠. 영화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무언가를 찍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이든, 영화 속의 음악이든, 잊혀지지 않는 대사이든, 인상적인 풍경이든 영화 속의 그 무언가는 관객에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는 문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어쩌면 그 점이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손쉽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영화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일에는 서툴다면 그건 '후진' 영화가 된다.


  이제는 '필름 vs. 디지털'의 논쟁은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 다큐가 제작되던 2012년에서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2020년인 오늘날에는 그런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제 뉴스에서는 최근에 새롭게 제작되는 영상물들이 주로 10분 안팎의 콘텐츠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동 중에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짧게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1시간 30분에서 2시간에 이르는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다큐에서 열렬한 필름 사랑을 고백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직도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필름의 현상과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유독물질의 해악은 오랫동안 환경보호론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에게 꿈과 매혹의 시간을 선사하는 영화의 이면에는 그런 문제도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영화를 보다 친환경적 산업의 영역으로 이끌었음은 새로운 진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동숭 시네마텍에서 필름으로 보았던 '안개 속의 풍경(1988)'을 잊지 못한다. '아바타'는 영화관에서 본 나의 마지막 영화였다. 어쩌면 나는 필름이 아닌 영화는 '진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언젠가 아주 아주 엄청난 돈이 생긴다면 필름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는 필름으로 된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filmmakermagazine.com(왼쪽은 키아누 리브스, 오른쪽은 데이비드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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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2016년까지 합정역 근처에 있었다던 '축지법과 비행술'학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 학원의 존재 자체가 다른 예술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부터 학원을 운영하던 이는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는 후기까지 흥미있게 읽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에 '대박 창작'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학원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무언가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대박 아이템 발굴에 대한 소망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다. 창작의 세계에서 평범한 것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무언가 특이한 것, 눈길을 끌 만한 것, 반전이 있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런 소재를 찾는 일은 바닷가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세상 속으로 나가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니 생각해 본다. 내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문학과 예술에서 자전적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다큐에서도 사적 다큐(Personal Documentary)가 어느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 우리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에서 뽑아낼만한 뭔가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과 얽힌 비밀이라던가, 특별한 사건 사고와 관련된 이들을 가족으로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어떤 이는 그런 이야깃거리를 가진 창작자를 부러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너는 그런 가족을 두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행운이나 있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머리 터지게 소재 찾느라 애써야 한다구!"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Stories We Tell, 2012)의 감독 사라 폴리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11살 때,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의 삶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감독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마도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겠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대박 아이템'이 된다. 물론 사라 폴리도 처음에는 무척 놀라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본다. '이거 가지고 뭔가 만들어 봤으면 좋겠는데...'


  감독의 생부로 판명된 이도 역시 창작자로서 같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책을 펴내려고 하는데, 폴리는 반대한다. 자신과 형제 자매, 양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생부는 아쉬움을 꾹꾹 눌러가며 포기했는데, 정작 딸인 사라 폴리는 나중에 욕심이 생긴 모양이다. 그리고 이 다큐를 만들었다. 인터뷰를 해주던 생부가 묻는다.


  "도대체 이 다큐를 만들어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게 뭐니? 이걸 보는 사람들에게 뭘 보여주고자 하는 거야?"


  감독을 이제까지 친딸로 알고서 키우고 살아온 양부도 같은 질문을 한다. 이 다큐 작업을 통해서 원하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겠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 말하는 이야기들에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겠느냐고. 딸에게 유일하게 진실을 말해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사라 폴리는 어머니와 연관된 사람들을 죄다 찾아서 불러놓고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고 진지하게 대답하던 사람들은 다큐 마지막에 가서는 한결같이 지치고, 괴롭고,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떤 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이다. 감독의 양부 마이클은 이렇게 말한다.


  "감독으로서 넌 정말 잔인(brutal)하구나. 나에게 내레이션을 하라고 하는 것부터 해서 너무 가학적(sadistic)이지 않니?"


  진짜 사라 폴리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다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 어떤 양보도 없다. 양부의 내레이션을 녹음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칼같이 잡아내어 다시 하게 한다. 자료 화면으로 쓰겠다면서 양복을 입고 야외 수영장에 들어가라고 요구하는데, 머리가 잠길 정도로 그 찬물에 더 깊이 들어가라고 말한다.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 몸을 덜덜 떠는 장면까지 찍으니 양부는 손사래를 친다. 양아버지 마이클은 정말 보살 같다. 연극배우였던 그가 들려주는 발음 좋은 내레이션은 정말로 훌륭하기까지 한데, 그 모든 것을 다큐 작업 내내 함께 해야했던 그의 심적 고통은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진실을 알기 위한 여정. 1시간 40분에 가까운 이 다큐는 양부가 찍어놓은 감독의 어머니 다이앤의 젊은 시절의 화면들, 재연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화면들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거기에 어머니와 알고 지냈던 이들이 제각각 들려주는 사실의 편린들이 진실이라는 하나의 그림에 색을 입혀간다. 조각보를 만들어 내듯, 관객들은 그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가족의 진실에 접근한다.


  그러나 그렇게 파악되는 진실은 감독 사라 폴리 본인에게도, 인터뷰에 응한 모든 이들에게도, 관객에게도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어쩌면 그 과정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가 그렇게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과연 어머니 다이앤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다이앤은 혼외 자식인 사라를 낳아서 키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부 형제 자매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일까?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남는다.


  어쨌든 이 놀라운 사적 다큐는 감독에게 여러 명예와 찬사를 안겨주었다. 남들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출생의 비밀조차 창작의 소재로 써먹는 예술 세계의 '냉혹함'을 이 다큐에서 본다. 비난이 아니라 칭찬의 의미에서의 '냉혹함'이다. 객관적인 엄정함. 그것이야말로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요건이다. 이 사적 다큐는 어쩌면 충격적이고 선정적일 수도 있는 가족의 비밀을 통해 관객에게 '진실'의 의미에 대해 묻고, 뜻밖의 진실에 접하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고통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나'의 이야기가 '너'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야말로 사적 다큐가 지향해야할 지점이다. 단순히 내가 겪은 특별한 이야기, 소재를 구술하는 것에서 그치는 일은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소재 기근에 근심하는 창작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사라 폴리처럼 출생의 비밀 같은 대박 아이템도 없고, 놀랄만한 가족사도 없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이지 때론 '대박 맛집'의 비결이라든지, '대박 주식'을 짚어내는 귀신같은 안목처럼 '대박 창작'의 비법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재능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믿으며 매일매일을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마치 매일 그물을 엮고 손질해서 바다에 나가는 어부처럼 그렇게 살 뿐이다. 어느 날은 허탕을 치겠지만, 그 언젠가는 배가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물고기가 걸리게 될 날도 있을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평소 하던대로 했을 뿐입니다."


  영화 '기생충'이 그토록 엄청난 성공을 거둘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감독 봉준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쌓인 시간들 위에 비로소 '운'도 더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대박 창작'의 비밀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storieswetellmovie.com(사진 속의 인물이 감독 사라 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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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ientific American'이라는 미국 과학 잡지가 있다. 과학 뉴스들에 관심이 있어서 오랫동안 뉴스레터를 받아서 보았었다. 언젠가 기사 읽는데 하단에 크루즈 선전이 뜨길래 뭔가 했더니, 과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항해하는 크루즈 여행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소개글을 보니까, 무슨 남극 펭귄도 구경하고 뭐 여러가지 자연 탐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 저런 여행이라면 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염병 시대를 맞이하고 보니, 그 꿈은 어쩌면 영영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크루즈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선을 떠올린다.


  크루즈선 뿐만 아니라 지금의 이 시절에는 모든 여행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EBS '세계 테마 기행'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 프로그램 보면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고맙다는 글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새로 제작이 어려우니, 올해 방영분들은 예전 것들 재방송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싶다. 유명 관광지들은 물론, 세계 각지의 소수민족들을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볼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참 좋아했던 방송이었다.


  사실 새로운 곳의 비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 여행을 이끌어가는 출연자가 누구냐도 참 중요했다. 아무리 멋진 풍경도 밋밋한 설명과 별다른 특색이 없는 출연자가 나오면 더이상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가끔 일반인 시청자들에게도 출연 기회를 주는데, 그런 경우에는 더 안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행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했다. 기억에 남는 출연자들과 함께 했던 TV여행은 무척 즐거웠었다. 방통대 김성곤 교수는 중국의 여러 명소에서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한시를 읊었는데, 마치 음유시인 같았다. 영화 감독 양익준의 캄보디아 여행도 의외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관광객이 아니라, 그냥 현지인처럼 보일 정도로 친화력이 돋보였다.


  유별남 사진작가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현지 사람들과 조화롭게 잘 섞이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이 있는데, 아마도 남미 안데스 여행에서였을 것이다. 정확히 어느 나라였는지는 모르겠다. 산악 원주민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열 두서너살 쯤 되는 아들과 홀어머니가 사는 집이었다. 어렵게 집안 살림을 꾸려가던 원주민 어머니는 아들 걱정으로 가득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가, 아무튼 적응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던 차였다. 아이가 눈망울이 맑고 착해서 더 안타깝고 그랬던 것 같다. 유별남 작가는 그 아이에게 힘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고 액자에 잘 넣어서 선물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렸던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방송이 나가고 나서 그걸 본 여러 사람들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문의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자, PD가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현지 코디와 연결이 되어서 사람들이 보낸 성금들이 잘 전달되었다는 후기도 읽었었다. 그 소년은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꽤 컸을 것 같다. 사람들이 보여준 관심만큼 어려움을 이기고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세계 테마 기행'은 수려하고 멋진 풍경만을 담아내지는 않는다. 때로는 고된 노동의 일상을 사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유황 광산의 노동자들, 네팔의 동충하초 채취꾼들의 삶 속으로도 들어간다. 험한 오지에서도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사는 소수민족들의 모습도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그토록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도 한번씩 돌아보게 만든다.


  가끔씩은 보다 보면, 뭔가 다 섭외(?)되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마을에 들어갔는데 원주민들이 전통의상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던지, 특별한 관광지로 안내해줄 현지인이 갑자기 나타난다던지, 아무튼 그런 장면들은 뭔가 좀 낯설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도 기획과 설정에 지쳐있어서 그런가,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전적인 행운의 만남과 우연성만을 믿을 수가 없게 된 면도 있다. 하긴 그렇다. 우리가 그런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경치와 기분 좋은 경험, 착하고 소박한 현지인들이다. 바가지를 씌우는 현지의 악덕 상인이나 소매치기와 사기꾼은 화면에서 절대로 배제되어야할 인물들일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여행지에서 만날 확률이 꽤나 높은 이들임에도 그러하다.


  언제부터인가 '세계 테마 기행'을 보면서 그냥 보는 것만으로 여행지에 다녀왔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세계 각지를 '눈'으로만 보는 TV 앞의 소파가 편하게 느껴졌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방영된 것이 2008년 2월이었다. 그러다보니 여러번 방영된 관광지도 많다. 이제는 그런 곳이 나오면 맛집이며 꼭 봐야할 곳들을 줄줄 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출연자의 동선에서 어디 한군데가 빠지면, '아니 그곳은 안가나?' 하기도 한다. 오랜 TV 관광여행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의 이 전염병 시대가 끝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페트라, 요르단에 있는 고대 도시의 유적지. TV 화면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물론 가서 보는 것이 화면 속의 그 풍경 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관광을 간다는 것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미난 영화도 있고, 의외로 별로인 영화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마주하게 되는 평범하고, 때론 지루한 일상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점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야, 좀 우습지 않아? 우린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별다를 게 없다는 거(You know, it's funny... you come to someplace new, an'... everything looks just the same)."


  아주 오래전에 본 '천국보다 낯선(1984)'의 에디의 대사를 나는 실망했던 관광지들에서 떠올리곤 했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명대사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 이 모든 어려운 시기가 끝나고 페트라에 가보고 싶다.



*사진 출처: ebs.co.kr (동충하초 채취를 하는 네팔 산악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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