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후배 L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L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요?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벌써 여러 군데 생겼는데, 아마 점차 더 늘어날 거에요. 우리가 공부하는 영화와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화 산업계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기술적인 발전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크리스토퍼 케닐리가 2012년에 만든 'Side by Side'는 영화 산업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대한 영화적, 산업적 성찰을 담아낸 다큐이다. 이미 그 시기에는 디지털 영화 제작이 안착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여러 유명 영화 감독, 촬영 감독을 비롯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들이 아주 흥미롭게 구성되어있는데,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여기에 나온 인물들을 분류해 보면, '오직 필름 사랑'을 외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콜세지 같은 중도파, '새로운 기술 디지털 최고'의 편에 선 조지 루카스와 제임스 카메론,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큐는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사건이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필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고, 영화 제작의 최전선에 있는 저런 뛰어난 영화인들의 고민과 성찰은 더 치열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영화를 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다큐에 나온 이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한 조지 루카스에게 필름은 너무 구식이고 돈도 많이 들고 불편했다. 그가 디지털 신기술을 열렬히 환영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제임스 카메론은 떠버리 흥행사 같다. 자신이 만든 '아바타(2009)'가 3D로 제작한 선구적 작품임을 내세우면서 신기술 예찬론을 펼친다. 그 영화에 무슨 대단한 영화적 성찰이나 깊이가 있었던가? 영화관에서 본 '아바타'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영화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는 작품 같았다. 오직 기술만을 내세운, 영혼이 실종된 영화였다. 다큐에서 3D 기술에 대해 다른 영화인들은 새로운 술책(gimmick)이거나, 흥밋거리(intrigue)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영화적 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그래서 이런 영화적 기술의 진보 앞에서 묻게 된다.
"과연 영화적(cinematic)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cinematic'의 사전적 의미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영화가 분명 사실이 아니며, 환상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영화로 재현된 이미지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배우와 사물, 풍경은 카메라에 담긴 진짜였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이제 구태여 현실을 담아낼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걸 특수 효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새로운 세대가 CGI(computer-generated imagery)로 인해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주는 점은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이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창작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이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평가를 내린다.
"모두가 펜과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다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아니죠. 영화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무언가를 찍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이든, 영화 속의 음악이든, 잊혀지지 않는 대사이든, 인상적인 풍경이든 영화 속의 그 무언가는 관객에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는 문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어쩌면 그 점이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손쉽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영화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일에는 서툴다면 그건 '후진' 영화가 된다.
이제는 '필름 vs. 디지털'의 논쟁은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 다큐가 제작되던 2012년에서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2020년인 오늘날에는 그런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제 뉴스에서는 최근에 새롭게 제작되는 영상물들이 주로 10분 안팎의 콘텐츠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동 중에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짧게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1시간 30분에서 2시간에 이르는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다큐에서 열렬한 필름 사랑을 고백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직도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필름의 현상과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유독물질의 해악은 오랫동안 환경보호론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에게 꿈과 매혹의 시간을 선사하는 영화의 이면에는 그런 문제도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영화를 보다 친환경적 산업의 영역으로 이끌었음은 새로운 진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동숭 시네마텍에서 필름으로 보았던 '안개 속의 풍경(1988)'을 잊지 못한다. '아바타'는 영화관에서 본 나의 마지막 영화였다. 어쩌면 나는 필름이 아닌 영화는 '진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언젠가 아주 아주 엄청난 돈이 생긴다면 필름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는 필름으로 된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filmmakermagazine.com(왼쪽은 키아누 리브스, 오른쪽은 데이비드 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