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음악 선생님이 낸 여름방학 숙제는 클래식 음악프로그램 듣고 선곡표를 노트에 적어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실시간으로 선곡표가 올라오는 시대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이므로 모든 신청곡은 엽서나 편지로만 가능했다. 선곡표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생방송 듣고 그냥 적는 수 밖에. 처음에는 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듣다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고 참 좋았다. 원래 정해진 1시간 이외에 두세 개 프로그램을 더 들을 때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렇게 정리한 노트가 2권이 넘었다. 나중에 보니, 제대로 숙제를 해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모두들 그 숙제가 진저리나게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클래식 음악에 입문했다. 유일하게 KBS 1FM 클래식 채널만 들었다.
'당신의 밤과 음악'을 그 당시 진행했던 이는 아나운서 황인용 씨였다. 사연을 보낸 이들 가운데 선정이 되면 KBS 로고가 새겨진 파이로트 펜 선물 세트를 보내주었다. 내가 보낸 사연이 당첨이 되어서 받아보니, 금색의 샤프 펜슬과 볼펜 세트였다. 신청했던 음악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전곡 연주를 들려주는 '명연주 명음반'의 정만섭 씨는 처음에는 저녁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왔었다. 그러다가 낮 방송으로 프로그램이 옮겨 왔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들은지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 기억으로 마리아 칼라스 노래를 들려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마도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자신은 칼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프리츠 분덜리히의 열렬한 팬으로서 1년에 한번은 꼭 그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려준다. 이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한 해가 다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독일 가곡을 노래했던 이 뛰어난 테너는 친구들과 별장 휴가를 갔다가 실족사로 3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클래식 전용 채널이지만, 국악 방송도 나온다. '흥겨운 한마당'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FM 풍류마을'만 남았다. 별로 즐겨 듣지 않아서, 그 시간에는 이각경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해피타임 4시'로 채널을 돌린다. 주로 1980년대에서 2000년대를 아우르는 가요를 들려준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트로트도 가끔 나오지만, 김수희의 '남행 열차'와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 파티'를 듣는 것도 괜찮다. 다양한 청취자들의 이런저런 사연들이 정적인 클래식 채널의 청취자들 사연보다 더 생동감 있다.
저녁 9시 40분부터 10시까지는 우리 가곡을 들려주는 '정다운 우리 가곡'이 있다. 전에 진행하던 배창복 아나운서의 진행이 참 좋았다. 가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차분한 진행이 좋아서 그냥 들을 때가 많았다. 그는 KBS의 여러 다큐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했는데, 최근에 기억남는 것은 '우주에서 본 지구 4부작'이었다. 발성, 발음의 고저와 장단, 그 무엇 하나 빈틈이 없어서 탄복을 했다. 다큐도 좋았지만 4부작을 보는 동안 배창복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 정도 중견 아나운서라면 어느 정도 매너리즘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직업에 대한 프로 의식이 대단한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방송 잘 보았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쓰려고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진행자가 바뀌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그 20분 동안 이상호의 '드림팝'을 듣는다.
'드림팝'은 아주 옛날 팝송부터 최신 음악까지 두루두루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백미는 시청자 사연인데, 아주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얼마 전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는 육아에 지친 아기엄마가 주인공이었다. 드림팝을 들으면서 수학 문제집을 푸는데, 그것이 육아 스트레스 해소에 정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같은 수학 포기자에게는 정말 신박한 사연이었다. 야근하면서 듣는다는 직장인, 아이 학원 앞에서 차 세워놓고 듣는다는 학부모 등등, 여러 삶의 모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그렇다.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온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라디오는 앞으로 100년 후에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전달해 주는 그 따뜻함, 소통한다는 느낌이 라디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전자책이 나온 지가 꽤 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진짜 종이로 된 책을 사고 있다. 종이를 직접 넘기는 그 촉감과 무언가 소장한다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출판 시장은 지금의 전염병 시대에 더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서 읽을 책을 사고, 음악을 들으려고 음반을 사고 있다.
영화는 어떨까? 나는 100년 후의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의 영화에 어떤 인간적인 온기, 물적인 느낌이 있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뭔가 곽티슈의 티슈,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냥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별 의미 없는 것. 자신이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에 오늘 업데이트 되는 동영상이 무엇인지 관심있는 사람은 많지만, 신작 영화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영화를 생각하면 설레임을 느낀다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은 그래야만 할 것이다.
작년에 드디어 비디오를 버렸다.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가 꽤 되었는데, 공부할 때 쌓아둔 비디오 테이프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고서 버렸다. 비디오 테이프는 그래도 추억이 있는 거라 버리지 못했다. 우스운 것은 클리너 테이프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다시 비디오를 살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비디오 테이프들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 지는 나도 모른다.
며칠 동안 갑자기 방문자 수가 폭증해서 무척 놀랐다. 이 블로그에 늘 방문하던 이들의 숫자는 30명에서 50명 안팎이었다. 뭔가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숫자였다. 내가 유튜버라면 정말 신나고 좋았겠지만, 나는 매일의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으므로 솔직히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다. 내 글은 대부분 길고, 그다지 재미도 없는 글이므로 왜 오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요새도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삼켜버린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영화에 대해 애정이라기 보다는 해탈 내지는 관조의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가끔씩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EBS의 '비즈니스 리뷰'라던가 클래스 e의 창업 비결, 같은 것을 본다. 얼마 전, 마케팅에서 말하는 타깃 설정, 그러니까 고객 설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아주 흥미있게 보았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시제품을 만들 때, 자신들이 물건을 사려는 가상의 고객을 설정해놓고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객에게 진짜 이름도 부여하고, 그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다 써놓은 지침이 있단다. 예를 들면 '에밀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에밀리의 나이, 수입, 취미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그 가상의 에밀리가 싫어할 것인지 좋아할 것인지를 검토한다고 했다. '이건 에밀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든지, 또는 '에밀리라면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거에요'라고 하면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이름을 준영, 은주로 붙여보았다. 나이는 30대 후반부터 그 이후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오래된 드라마 리뷰를 읽어볼 정도라면 젊은 친구들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20대 친구들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유튜브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아무튼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에 애정을 가진 이들일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준영 씨와 은주 씨를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내 글이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