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데믹 시대의 인간 관계, Language Lessons(2021)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Cariño는 온라인 수업의 새로운 학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업을 등록한 사람은 윌인데, 윌은 그 수업을 들을 사람은 자신의 파트너인 아담이라고 알려준다. 아담은 윌이 자신을 위한 깜짝 선물로 100회의 스페인어 수강권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카리뇨와 아담의 스페인어 수업이 시작된다. 영화는 웹캠 화면 속의 작은 대화창이 뜬 상태로 시작해서 내내 그 화면이 이어진다. 감독으로 카리뇨 역을 연기한 Natalie Morales는 아담 역의 Mark Duplass와 각자의 지역에서 촬영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나중에 편집 작업을 했다. 'Language Lessons(2021)'는 Covid-19으로 이동이 통제된 시기에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카리뇨와의 첫 수업에서 아담은 자신과 윌이 동성 부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는 매우 영리하게 앞으로 진행될 스페인어 수업이 연애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오로지 아담과 카리뇨의 대화를 통해서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아담은 5년 전, 현대 무용가인 윌의 공연을 보고 반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사는 부유한 동성애자 아담과 코스타리카에 사는 중하층의 스페인어 선생 카리뇨의 언어 수업은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사랑이 아니라면 우정? 영화는 그 흥미진진한 줄타기로 관객을 유인한다.

  갑작스런 윌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던 수업은 다시 이어지고, 아담과 카리뇨는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의지한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만이 이어질 것 같았던 수업은 어느 날, 아담이 카리뇨의 얼굴에 생긴 멍과 상처를 보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카리뇨는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인가? 영화는 인간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호기심, 친밀함, 갈등과 거리감을 맛깔나는 대사 속에 풀어놓는다.

  마크 듀플라스는 나탈리 모랄레스와 이전에 함께 한 작업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감독은 모랄레스가, 제작은 듀플라스가 맡은 이 영화에서 대본 작업은 두 사람이 같이 참여했다. 잘 이루어진 협업의 케미스트리는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웹캠 화면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쇼트 구성에도 불구하고 Language Lessons에서는 그 어떤 지루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인간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의 역동성이 이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이제 전염병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일상과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과제가 남았다. 재기발랄한 젊은 여성 감독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팬데믹 시대의 소통과 교류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소박하고도 따뜻한 코미디 영화에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2. 로버트 에거스의 실패한 신화 서사, Northman(2022)


 에단 호크는 급전이 필요했던 것일까? Robert Eggers의 2022년작 'Northman'에서 에단 호크가 연기한 아우반디르 왕은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정도 될 때 죽는다. 대사도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정말 괜찮은 배우를 저렇게 밖에 쓰지 못하다니... 에단 호크는 더 나이먹기 전에 좀 좋은 영화나 부지런히 찍을 것이지, 그냥 한숨이 나왔다. 더 황당한 건 영화에서 주술사 역으로 잠깐 나왔던 윌렘 더포였다. 긴 수염에 알아볼 수 없는 분장을 해서 그랬나, 나는 그 배우가 나온지도 몰랐다. 나중에 출연 배우들 명단을 보고 알았다. 로버트 에거스는 헐리우드의 탑급 배우들을 그냥 마구 소모해버린다. 영화 'Northman'은 바이킹 왕자 암레스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세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암레스 왕자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기 895년, 아우반디르 왕(에단 호크 분)은 해외 정복을 마치고 자신의 섬 왕국 흐라프니로 돌아온다. 구드룬 왕비(니콜 키드먼 분)와 어린 암레스 왕자가 그를 반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왕은 동생 푤니르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푤니르는 구드룬 왕비와 왕국을 차지하고, 암레스 왕자는 바이킹의 땅으로 도망친다. 소년은 세월이 흘러 바이킹의 전사로 거듭난다. 암레스는 푤니르가 왕국을 잃고 아이슬랜드에서 망명자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수를 위한 출정길, 노예로 신분을 위장한 암레스는 노예선에서 마법사 올가를 만난다. 드디어 원수인 숙부의 땅에 잠입한 암레스, 그는 복수로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언어'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 영어로 제작된 영화에 주연 배우를 비롯해 대다수 출연 배우들은 북유럽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영어 대사의 처리가 썩 매끄럽지 않다. 지독한 자막 기피증을 가진 미국 관객들은 이 영화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영어 대사들은 칠판에 거칠게 긁히는 분필 소리처럼 들렸다. 니콜 키드먼은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느라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발음을 하는데, 그것이 마치 학예회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로버트 에거스는 북유럽의 신화를 나름대로 성실히, 온전히 복원하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고고학자와 민속학자가 제작 과정에 참여해 조언을 했고, 그런 부분들은 영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술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암레스의 성인식, 바이킹의 마을 축제, 짜임새 있게 배치된 고대 가옥들의 마을 세트, 바이킹의 전투 장면 같은 것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Northman'이 펼쳐놓는 북유럽 고대 신화의 서사는 너무나도 거칠고 잔혹하다. 영화 속 바이킹의 시대는 야만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죽음과 폭력, 근친상간에 대한 암시, 강력한 주술사의 예언과 마법, 그런 묘사가 이 시대의 관객과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화 'Northman'이 판타지 게임의 서사와 다른 점은 비싼 출연료의 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신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이 영화는 그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Northman'은 거대하고 허황된 영화적 낭비라는 인상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내포한 삶과 죽음, 미움과 사랑, 어리석음과 악덕, 젊음과 늙음에 대한 성찰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인도의 감독 Vishal Bhardwaj의 2014년작 'Haider'는 카슈미르 분쟁을 배경으로 인도식 햄릿을 그려낸다. 서구의 서사는 인도 영화의 특징인 춤과 노래 속에서 독창적인 하이브리드로 재탄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전을 대하는 창작자의 태도이다. 과거의 텍스트에서 어떻게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다른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로버트 에거스의 'Northman'은 그런 점에서 철저히 실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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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만에 장편 극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1960년대 일본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그것은 좀 버겁기는 했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카토 타이(加藤泰) 감독의 'Blood of Revenge(1965)'는 18일 동안의 촬영 결과물이었다. 감독과 주연 배우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원제목은 '明治侠客伝 三代目襲名', 우리말로 번역하면 '메이지 시대 협객전 삼대의 이야기'쯤 되겠다. 여기에서 '협객(侠客)'은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협객이 아니라 '야쿠자(ヤクザ)'를 뜻한다. 영화는 메이지 시대(1907년) 오사카를 배경으로 야쿠자 세력들의 암투를 그린다.

  TV의 등장은 영화 산업계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더이상 영화관은 관객들로 미어터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편안히 TV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한 상황은 196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오랜 검열 제도가 막을 내리고, 폭력과 성을 과감하게 내세운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흐름은 야쿠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였고, 또 다른 흐름은 로망 포르노였다. 'Blood of Revenge(1965)'는 당시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된 야쿠자 영화의 초기작이다.   

  영화는 인파로 붐비는 마츠리 행사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자객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멀리에서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다. 키야타츠시 일가의 2대 수장 후쿠이치는 아내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러 나왔다. 카토 타이는 바닥을 훑는 로우 앵글(low angle) 쇼트로 야쿠자 두목에게 닥친 불시의 습격을 보여준다. 오야붕의 치명적 부상에 조직은 동요한다. 후쿠이치에게는 유흥으로 시간을 보내는 철없는 아들 하루오가 있다. 복수를 하겠다며 혈기에 날뛰는 하루오를 진정시키는 이는 조직의 2인자 아사지로(츠루타 코지 분)이다. 적대하는 군지로 조직이 꾸민 일이라는 심증은 있다. 하지만 후쿠이치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가의 주력 사업인 건설업이 군지로 일파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후쿠이치가 죽는다. 미망인은 아들인 하루오 대신에 분별력 있는 아사지로를 후계자로 지명하는데...

  이 영화에 묘사된 야쿠자 두목 후쿠이치는 일반인의 인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지점에 존재한다. 그는 자신에게 자객을 보낸 상대 일파에 대한 보복을 자제한다. 그의 조직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 '건설업'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조직에 의탁하고자 찾아온 손님 야쿠자 이시이는 '도박판'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후쿠이치는 자신의 조직에서 도박 사업은 금지되어 있음을 주지시킨다. 에도 시대 때부터 '도박장'은 전통적으로 야쿠자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영화는 키야타츠시 일가가 고베시 건설에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야쿠자 조직은 도박이나 매춘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아사지로와 부하들은 '시멘트' 조달에 목숨을 건다.

  이러한 야쿠자 일파에 대한 묘사는 매우 흥미롭다. 야쿠자는 흔히 폭력과 범죄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이 일본 사회 내부에서 차지한 독특한 위치를 부각시킨다. 지배 계층은 필요에 따라 야쿠자를 써먹었으며, 그 결과 야쿠자들은 오랫동안 합법과 불법의 회색 지대에서 생존을 용인받을 수 있었다. 아사지로는 군지로 조직의 방해로 시멘트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자 그는 양해를 구하기 위해 건설 현장을 총괄하는 가장 큰 야쿠자 조직의 수장 노무라를 찾아간다. 노무라는 이 사업이 고베시의 근간을 만드는 중요한 일임을 강조한다.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제 그들은 범죄가 아닌 '사업'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조직의 내부 규범은 봉건 제도의 틀에 갇혀있다. 후쿠이치의 죽음 이후, 키야타츠시 일파는 후계자 문제로 분란에 휩싸인다. 오야붕의 미망인은 아들 하루오 대신에 아사지로를 지명한다. 일가의 미래는 혈족의 논리보다 뛰어난 리더의 능력에 달려있다. 다른 조직에서도 아사지로를 후계자로 인정한다. 하지만 아사지로는 후쿠이치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 자리를 거절한다. 하루오를 오야붕의 자리에 올리고, 그는 보좌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아사지로의 모습은 마치 주군의 아들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는 가신과 닮았다. 아사지로는 자신을 낮추며 고된 건설 현장을 책임진다.       

  아사지로에게서 그 어떤 인간적인 결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충성하며, 상대 조직과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존하고자 노력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또 다른 면모는 불운한 처지의 게이샤 하츠에(후지 준코 분)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와 사랑이다. 카토 타이 감독은 아사지로의 연정을 매우 비감하고도 아름다운 풍광 속에 담아낸다. 해질 무렵의 강둑에서 아사지로가 연인과 만나는 모습은 야쿠자가 아닌 평범한 한 남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발을 디딘 세계는 범부의 소박한 행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군지로 일파의 방해 공작은 극심해지며, 급기야 그들은 하루오를 공격해 큰 부상을 입힌다. 아사지로의 본성이 폭발한다. 그는 적들을 응징하러 갈 때 옷을 벗어 문신을 한 상체를 드러낸다. 그가 광포하게 휘두르며 내리꽂는 칼은 문신과 함께 아사지로의 본질적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입증한다. 키야타츠시 일가의 2인자로서 그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만, 한 여자의 남자로 살아가고 싶었던 그의 꿈은 부서진다. 아사지로는 연인 앞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간다.

  츠루타 코지(鶴田浩二)는 신의를 지닌 인간적 야쿠자 아사지로를 잘 연기해 낸다. 그는 현실의 야쿠자에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협객'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한다. 그가 인기 절정에 있었을 때, 야쿠자 최대 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미움을 사서 테러를 당한 일은 기묘한 울림을 준다. 어떤 면에서 전성기 야쿠자 영화의 서사들은 실제 현실과 유리된 지점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환영(幻影)이었다. 그럼에도 'Blood of Revenge'는 야쿠자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메이지 시대에 합법적 사업으로 세력 확장을 모색하는 야쿠자들, 봉건적 주종 관계로 얽힌 조직의 위계 질서, 경쟁 관계에 놓인 일파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 감독 카토 타이는 열악한 제작 여건 속에서 만들어진 양산형 야쿠자 영화에 그렇게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진 출처: eduardo.exblog.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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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작가 릴리언 헬먼(Lillian Hellman)은 매카시즘의 광풍에 굴복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헬먼이 시나리오를 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Dead End(1937)'에는 하나의 도로를 공유하는 부자와 빈자가 나온다. 이 극명한 계층 대립의 구조는 헬먼이 바라본 미국 사회의 내면이었다. 아서 펜 감독의 1966년작 'The Chase'에 이르면 헬먼의 그러한 시각은 더 날카로워진다. 인종 차별, 부패와 폭력, 성적 타락... 헬먼은 텍사스 가상의 소도시 Tarl County에 그 모든 것을 구현해낸다. 명백히, 그 도시는 철저히 썩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임이 드러난다.

  부유한 은행가 발 로저스는 Tarl County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자이다. 마을의 보안관 칼더(말론 브랜도 분)는 상식과 공정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 또한 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로저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던 버바(로버트 레드포드 분)의 탈옥 소식이 들린다. 도주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에 휘말린 버바. 칼더는 그가 마을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로저스의 집에서는 부자들의 호화로운 생일 파티가 열린다. 그곳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부행장 에드윈의 집에서 그들만의 파티를 즐긴다. 버바의 탈옥 소식에 마을은 긴장과 흥분에 휩싸인다. 자경단이 버바를 잡겠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마침내 버바가 마을에 숨어드는데...

  Rotten to the core. 영화 속 Tarl County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로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듯 하다. 버바의 아내 안나(제인 폰다 분)는 로저스의 아들 제이크와 불륜 관계이다. 부행장 에드윈의 아내 에밀리는 유부남과 바람이 났다. 에드윈의 집에서 열린 파티 장면은 이 마을의 성적인 타락과 방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칼더로 대변되는 공권력도 무시한다. 젊은 여자는 지나가는 흑인을 보고 탈주범이라고 외치고, 남자들은 린치를 하려고 한다. 칼더는 그들로부터 흑인을 안전하게 떼어놓기 위해 구치소에 가둔다. 그러자 자경단원들은 떼로 몰려가서 칼더를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보안관 칼더는 자신이 온전히 관할하는 영역에서조차 안전하지 못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그의 모습은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는 경멸을 입증한다. 리브스 부인은 아들을 잡지 말라며 돈다발을 들고 칼더를 찾아가기까지 한다. 칼더가 거절하자 부인은 반문한다. '돈이 충분하지 않은 거야?' 칼더는 로저스의 하수인으로 취급받으며, 돈으로 매수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 썩어빠진 마을에서 그나마 온전한 양심을 지닌 이는 칼더이다. 그는 마을의 모든 것에 역겨움을 느끼고 떠나고 싶어한다. 입양을 하자는 아내의 말에, 칼더는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마을은 결코 한 인간이 온전히 성장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다.

  헬먼은 미국의 부패하고 타락한 내면을 영화 속 Tarl County에 투영한다. 칼더가 대변하는 공권력은 로저스가 가진 돈의 힘에 조롱당하고 제압된다. 구치소에 갇힌 흑인은 린치를 당하며, 칼더의 부인이 마을 사람에게 요청하는 도움은 묵살된다. 그곳 사람들의 영혼은 철저히 썩었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버바가 숨은 폐차장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불꽃놀이를 하듯 즐거워 한다. 젊은이들은 춤추며 노래를 부른다. 무언가 대단한 구경거리를 기대하며 술꾼들은 자리를 지킨다.

  이 미쳐 돌아가는 마을에서 죄가 없는 버바가 죽음에 이르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영화 'The Chase'의 세계는 너무나도 암울하다. 헬먼은 미국 사회가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있음을 직시한다. 계층의 대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을 젊은이들의 무절제와 향락은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의 타락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벌어져 있다. 버바는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를 냉담하게 외면한다. 로저스는 술에 빠져 지내는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다. 린치를 당하는 흑인은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에 대한 단면을 제공한다. 어떤 면에서 Tarl County는 다양한 집단의 정치적 목소리와 인권 운동으로 끓어오르던 1960년대 미국 사회 그 자체인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칼더는 아내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칼더의 모습은 구약 성서의 인물 롯을 연상케 한다. 구약 성서 속 죄악의 도시였던 소돔(Sodom)은 신의 징벌을 받아 파괴된다. 그곳의 유일한 의인 롯은 불바다로 변한 소돔을 뒤로 하고 필사적으로 빠져 나온다. 버바가 죽는 것을 목도해야 했던 칼더는 패배자로 그곳을 떠난다. 헬먼은 양심과 윤리가 무너져 내린 미국의 황폐한 내면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감독 아서 펜은 제작자 샘 스피겔과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편집권을 뺏겼다.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고, 이듬해 아서 펜은 'Bonnie and Clyde(1967)'로 자신의 진정한 걸작을 만들어 냈다. 그의 영화적 인장(印章)이 흐릿한 'The Chase'에서 결국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공산주의자 헬먼의 강건한 목소리이다. 헬먼은 미국의 내면을 뼛 속 깊이 파내려 가며, 그 비참한 풍경을 영화 속에 구현한다.


*사진 출처: tcm.com



**릴리언 헬먼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Dead End(193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dead-end-19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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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강에서 잡아온 작은 물고기를 수줍게 내어 보인다. 카메라에 담긴 이 마을의 시간은 매우 느리고, 평화롭게 흐른다. Naomi Uman의 증조부는 1906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나오미 우만은 증조부의 고향 마을 Legedzine(Kyiv에서 250km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여러 해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관찰자로, 마을 구성원으로 Legedzine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러닝타임 55분의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Unnamed Film', 이름없는 이 소박한 다큐는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다.

  이제 막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 가난한 시골 마을의 삶은 그저 팍팍하기만 하다. 집단 농장의 땅은 주민들에게 다시 나누어졌다. 땅에 의지해서 사는 주민들은 매일 들판에서 고된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감자, 토마토, 옥수수, 생선 튀김... 식탁에 차려진 식재료들은 그곳의 자연에서 주민들이 힘겹게 얻은 것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근처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오미 우만은 Legedzine의 풍광을 결코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마치 민속지학자처럼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의 많은 것들을 정밀하게 담는다. 중간중간 들어간 해설 자막은 이 마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농작물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외래 유입종 해충을 설명할 때에는 벌레를 자세히 비춰주며 뭉그러뜨려 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시간은 꽤 흥미롭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교사를 따라 영어 문장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얼어붙은 강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벽돌 공장의 노동자들, 시골 장터의 시끌벅적한 모습... 나오미 우만은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우유를 짜는 여인의 옆에 있는 작은 고양이, 마당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개, 비를 맞는 염소도 나온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소리들이 풍경 속에 흐르도록 놓아둔다. 벌들의 소리, 빗소리, 노동요, 지글지글 끓는 라디오 소리, 정신없이 우는 닭과 새소리도 들린다.

  그 모든 풍광에서 가난이 묻어나지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담뱃가루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노인은 친구들과 들판에 천 한장 깔아놓고 카드 놀이를 한다. 여성 제작자는 마을의 나이든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친밀함과 유대감을 표시한다. 피클 제조법을 알려주는 할머니의 강의는 사뭇 진지하다. 작은 술잔을 부딪히며 서로 즐거워하는 할머니들의 식탁을 찍은 장면에서 관객은 마치 그곳에 초대된, 아니 주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Unnamed Film'은 단순히 나오미 우만의 Legedzine 체류의 결과물이 아니다. 자신의 근원에 대한 탐구심은 그곳 마을 사람들의 심성, 삶과 공명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그곳에서 보낸 세월은 감독에게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자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나오미 우만은 우크라이나어 사전의 단어들을 시처럼 낭독한다. 낯선 외지인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편안하게 머물도록 도와준 마을 주민들은 어떤 면에서 이 다큐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감독은 고마움을 표시하며 엔딩 크레딧에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올렸다. 이토록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은 지금 전쟁의 포화 속에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사진 출처: lightindustry.org



**이 다큐는 lecinemaclub.com에서 이번 주 동안 무료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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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을 다룬 두 편의 최신작:

Petite Maman(2021), Céline Sciamma
C'mon C'mon (2021), Mike Mills



  Céline Sciamma의 2021년작 'Petite Maman(2021)'에는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어린 딸이 나온다. 꿈과 같은 환상 속에서 8살 넬리는 자신과 같은 또래가 된 엄마를 만난다.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다. 넬리는 '작아진 엄마' 마리온과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나름 소박한 감동을 주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영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왜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가... 넬리의 아버지는 배경처럼 자리할 뿐이다. 넬리가 방문한 마리온의 집에는 남자가 없다. 마리온의 아버지, 그러니까 넬리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이의 존재는 처음부터 지워져 있다.

  'Petite Maman(2021)'에 감독 셀린 시아마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동성애자 감독의 주요한 관심사가 여성의 서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넬리는 할머니를 여읜 엄마의 상심을 위로하고자 애쓴다. 이 꼬마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속이 깊다. 관객은 모친의 죽음이 넬리의 엄마가 지닌 내면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넬리에게 그런 엄마를 보는 일은 익숙했고,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돕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넬리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 그런 넬리의 바람은 어린 아이가 된 엄마, 마리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넬리가 마리온과 보낸 짧은 우정의 여정에서 넬리는 엄마의 우울과 불안의 근원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병, 아버지의 부재... 그렇게 딸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얻는다. 귀엽고 사랑스런 넬리의 환상 여행은 많은 딸들이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하다.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Petite Maman(2021)'은 바로 그 궁금증에 대해 셀린 시아마가 펼친 상상의 나래이다. 영화는 페미니즘 서사를 판타지 장르에 녹여낸다.

  딸에게 있어 엄마의 존재가 좀 더 살갑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병풍처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넬리의 아버지, 삭제된 할아버지의 존재는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시경(詩經)'의 이 오래된 문장은 오늘날 성차별적인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서 아버지는 자식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존재이다. 그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셀린 시아마는 여성의 삶에서 어머니가 갖는 비중과 그 의미를 극대화한다. 영화는 마리온의 엄마(넬리에게는 할머니가 되는), 마리온, 넬리로 이어지는 모계 혈통의 영속성과 끈끈함을 강조한다.

  'C'mon C'mon (2021)'의 Mike Mills도 자신이 발견한 모성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호아킨 피닉스 분)는 여동생 비브와 소원한 사이이다. 둘은 생전에 치매로 고생했던 모친을 보살피는 문제를 두고 극심하게 대립한 적이 있다. 비브는 조니에게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을 보살피는 동안 아들 제시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조카 돌보미가 된 조니, 하지만 비브의 체류는 길어지고 조니는 제시를 보살피는 일과 해야할 직장일 사이에서 압박감을 느낀다. 전국을 돌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조니는 제시와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이 영화에서 극명한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조니'이다. 독신남인 조니는 양육의 경험이 없다. 그런 조니에게 제시를 보살피는 일은 마치 부성(父性) 획득 퀘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감독 마이크 밀즈는 결혼과 양육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 영화에 강하게 투영한다. 자기 중심적이고 다소 권위적인 면모도 있었던 조니는 제시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아버지됨'이 무엇인가를 학습하고 체득해 나간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것은 보살핌의 모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조니의 여동생 비브가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비춰준다. 치매 어머니의 간병을 두고 비브는 조니와 극심하게 대립했다. 이 남매 사이에 어떤 언쟁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이 장면의 사운드는 소거되어 들리지 않는다). 정신 질환을 가진 남편을 책임감 있게 보살피는 비브라면 아마도 어머니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비브는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족이라는 관계망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비브가 사적 영역에서 수행하는 이러한 '보살핌'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 오늘날, 그것이 국가와 자본주의의 영역으로 흡수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여성들은 거기에 매여있다. 

  마이크 밀즈는 비브가 보여주는 그러한 노력과 희생을 모성성으로 치환하며 찬미한다. 조니의 미성숙함은 그러한 가치들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머니는 위대하며, 아이들이야말로 어른의 스승이다'를 영화는 시종일관 부르짖는다. 제멋대로인 꼬마 제시는 조니의 인생 학습을 돕는 선생님인 셈이다. 자기만 알던 독신남은 그렇게 인간이 되어간다... 조니는 감독의 분신인가? 이러한 작위적인 설정과 자의식 과잉의 캐릭터는 극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실제 아이들의 인터뷰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성에 기여하는지는 의문이다.

  셀린 시아마는 'Petite Maman'에서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이 영화에서 모성은 한 인간의 삶을 구동시키는 절대적인 원리가 된다. 마이크 밀즈의 'C'mon C'mon'은 여성의 모성이 가지는 가치를 관계 중심성으로만 한정짓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보살피는 것. 그것을 위해 여성이 감내하고 치루어야 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설익은 이해를 보여줄 뿐이다. 최신작인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모성'을 다루었지만, 절제와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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