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데믹 시대의 인간 관계, Language Lessons(2021)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Cariño는 온라인 수업의 새로운 학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업을 등록한 사람은 윌인데, 윌은 그 수업을 들을 사람은 자신의 파트너인 아담이라고 알려준다. 아담은 윌이 자신을 위한 깜짝 선물로 100회의 스페인어 수강권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카리뇨와 아담의 스페인어 수업이 시작된다. 영화는 웹캠 화면 속의 작은 대화창이 뜬 상태로 시작해서 내내 그 화면이 이어진다. 감독으로 카리뇨 역을 연기한 Natalie Morales는 아담 역의 Mark Duplass와 각자의 지역에서 촬영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나중에 편집 작업을 했다. 'Language Lessons(2021)'는 Covid-19으로 이동이 통제된 시기에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카리뇨와의 첫 수업에서 아담은 자신과 윌이 동성 부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는 매우 영리하게 앞으로 진행될 스페인어 수업이 연애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오로지 아담과 카리뇨의 대화를 통해서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아담은 5년 전, 현대 무용가인 윌의 공연을 보고 반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사는 부유한 동성애자 아담과 코스타리카에 사는 중하층의 스페인어 선생 카리뇨의 언어 수업은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사랑이 아니라면 우정? 영화는 그 흥미진진한 줄타기로 관객을 유인한다.

  갑작스런 윌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던 수업은 다시 이어지고, 아담과 카리뇨는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의지한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만이 이어질 것 같았던 수업은 어느 날, 아담이 카리뇨의 얼굴에 생긴 멍과 상처를 보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카리뇨는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인가? 영화는 인간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호기심, 친밀함, 갈등과 거리감을 맛깔나는 대사 속에 풀어놓는다.

  마크 듀플라스는 나탈리 모랄레스와 이전에 함께 한 작업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감독은 모랄레스가, 제작은 듀플라스가 맡은 이 영화에서 대본 작업은 두 사람이 같이 참여했다. 잘 이루어진 협업의 케미스트리는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웹캠 화면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쇼트 구성에도 불구하고 Language Lessons에서는 그 어떤 지루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인간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의 역동성이 이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이제 전염병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일상과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과제가 남았다. 재기발랄한 젊은 여성 감독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팬데믹 시대의 소통과 교류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소박하고도 따뜻한 코미디 영화에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2. 로버트 에거스의 실패한 신화 서사, Northman(2022)


 에단 호크는 급전이 필요했던 것일까? Robert Eggers의 2022년작 'Northman'에서 에단 호크가 연기한 아우반디르 왕은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정도 될 때 죽는다. 대사도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정말 괜찮은 배우를 저렇게 밖에 쓰지 못하다니... 에단 호크는 더 나이먹기 전에 좀 좋은 영화나 부지런히 찍을 것이지, 그냥 한숨이 나왔다. 더 황당한 건 영화에서 주술사 역으로 잠깐 나왔던 윌렘 더포였다. 긴 수염에 알아볼 수 없는 분장을 해서 그랬나, 나는 그 배우가 나온지도 몰랐다. 나중에 출연 배우들 명단을 보고 알았다. 로버트 에거스는 헐리우드의 탑급 배우들을 그냥 마구 소모해버린다. 영화 'Northman'은 바이킹 왕자 암레스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세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암레스 왕자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기 895년, 아우반디르 왕(에단 호크 분)은 해외 정복을 마치고 자신의 섬 왕국 흐라프니로 돌아온다. 구드룬 왕비(니콜 키드먼 분)와 어린 암레스 왕자가 그를 반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왕은 동생 푤니르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푤니르는 구드룬 왕비와 왕국을 차지하고, 암레스 왕자는 바이킹의 땅으로 도망친다. 소년은 세월이 흘러 바이킹의 전사로 거듭난다. 암레스는 푤니르가 왕국을 잃고 아이슬랜드에서 망명자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수를 위한 출정길, 노예로 신분을 위장한 암레스는 노예선에서 마법사 올가를 만난다. 드디어 원수인 숙부의 땅에 잠입한 암레스, 그는 복수로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언어'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 영어로 제작된 영화에 주연 배우를 비롯해 대다수 출연 배우들은 북유럽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영어 대사의 처리가 썩 매끄럽지 않다. 지독한 자막 기피증을 가진 미국 관객들은 이 영화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영어 대사들은 칠판에 거칠게 긁히는 분필 소리처럼 들렸다. 니콜 키드먼은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느라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발음을 하는데, 그것이 마치 학예회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로버트 에거스는 북유럽의 신화를 나름대로 성실히, 온전히 복원하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고고학자와 민속학자가 제작 과정에 참여해 조언을 했고, 그런 부분들은 영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술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암레스의 성인식, 바이킹의 마을 축제, 짜임새 있게 배치된 고대 가옥들의 마을 세트, 바이킹의 전투 장면 같은 것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Northman'이 펼쳐놓는 북유럽 고대 신화의 서사는 너무나도 거칠고 잔혹하다. 영화 속 바이킹의 시대는 야만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죽음과 폭력, 근친상간에 대한 암시, 강력한 주술사의 예언과 마법, 그런 묘사가 이 시대의 관객과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화 'Northman'이 판타지 게임의 서사와 다른 점은 비싼 출연료의 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신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이 영화는 그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Northman'은 거대하고 허황된 영화적 낭비라는 인상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내포한 삶과 죽음, 미움과 사랑, 어리석음과 악덕, 젊음과 늙음에 대한 성찰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인도의 감독 Vishal Bhardwaj의 2014년작 'Haider'는 카슈미르 분쟁을 배경으로 인도식 햄릿을 그려낸다. 서구의 서사는 인도 영화의 특징인 춤과 노래 속에서 독창적인 하이브리드로 재탄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전을 대하는 창작자의 태도이다. 과거의 텍스트에서 어떻게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다른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로버트 에거스의 'Northman'은 그런 점에서 철저히 실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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