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강에서 잡아온 작은 물고기를 수줍게 내어 보인다. 카메라에 담긴 이 마을의 시간은 매우 느리고, 평화롭게 흐른다. Naomi Uman의 증조부는 1906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나오미 우만은 증조부의 고향 마을 Legedzine(Kyiv에서 250km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여러 해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관찰자로, 마을 구성원으로 Legedzine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러닝타임 55분의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Unnamed Film', 이름없는 이 소박한 다큐는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다.

  이제 막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 가난한 시골 마을의 삶은 그저 팍팍하기만 하다. 집단 농장의 땅은 주민들에게 다시 나누어졌다. 땅에 의지해서 사는 주민들은 매일 들판에서 고된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감자, 토마토, 옥수수, 생선 튀김... 식탁에 차려진 식재료들은 그곳의 자연에서 주민들이 힘겹게 얻은 것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근처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오미 우만은 Legedzine의 풍광을 결코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마치 민속지학자처럼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의 많은 것들을 정밀하게 담는다. 중간중간 들어간 해설 자막은 이 마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농작물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외래 유입종 해충을 설명할 때에는 벌레를 자세히 비춰주며 뭉그러뜨려 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시간은 꽤 흥미롭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교사를 따라 영어 문장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얼어붙은 강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벽돌 공장의 노동자들, 시골 장터의 시끌벅적한 모습... 나오미 우만은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우유를 짜는 여인의 옆에 있는 작은 고양이, 마당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개, 비를 맞는 염소도 나온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소리들이 풍경 속에 흐르도록 놓아둔다. 벌들의 소리, 빗소리, 노동요, 지글지글 끓는 라디오 소리, 정신없이 우는 닭과 새소리도 들린다.

  그 모든 풍광에서 가난이 묻어나지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담뱃가루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노인은 친구들과 들판에 천 한장 깔아놓고 카드 놀이를 한다. 여성 제작자는 마을의 나이든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친밀함과 유대감을 표시한다. 피클 제조법을 알려주는 할머니의 강의는 사뭇 진지하다. 작은 술잔을 부딪히며 서로 즐거워하는 할머니들의 식탁을 찍은 장면에서 관객은 마치 그곳에 초대된, 아니 주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Unnamed Film'은 단순히 나오미 우만의 Legedzine 체류의 결과물이 아니다. 자신의 근원에 대한 탐구심은 그곳 마을 사람들의 심성, 삶과 공명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그곳에서 보낸 세월은 감독에게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자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나오미 우만은 우크라이나어 사전의 단어들을 시처럼 낭독한다. 낯선 외지인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편안하게 머물도록 도와준 마을 주민들은 어떤 면에서 이 다큐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감독은 고마움을 표시하며 엔딩 크레딧에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올렸다. 이토록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은 지금 전쟁의 포화 속에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사진 출처: lightindustry.org



**이 다큐는 lecinemaclub.com에서 이번 주 동안 무료로 상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