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Times(1975)
The Driver(1978)
The Warriors(1979)   
48 Hrs.(1982)
Last Man Standing(1996)



3. 여성: 월터 힐 영화의 하위 주체(subaltern)


  앞의 글에서 월터 힐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이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른바 '외로운 늑대'임을 언급했다. 그들은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별 다른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갈구하더라도 결국 그 소망은 좌절된다. 그보다 더 안좋은 경우는 타자를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월터 힐의 영화들에서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열등하고 부수적인 위치에 놓여있음을 보게 된다.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은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주변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에 대해서는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48시간'에서 형사 잭(닉 놀테 분)의 여자 친구는 잭과 안정적 관계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잭은 그러한 요구를 회피한다. 여자 친구는 잭의 직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지 못하며, 전화로 잭에게 투정이나 부릴 뿐이다. 'The Warriors'에서 지역 갱단 리더의 연인인 머시는 워리어스 갱단의 스완에게 마음을 뺏긴다. 머시는 스완의 애정을 갈망하지만, 스완은 그런 머시를 조심스럽게 밀어낸다. 스완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지 사랑이 아니다. 'The Driver'에서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플레이어'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다. '드라이버'와 약간의 인간적 교감을 나누기는 하지만, 둘 사이에는 명백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드라이버에게 감정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이 플레이어를 드라이버의 조력자이면서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월터 힐의 영화에서 여성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다. 'The Driver'에서 드라이버에게 일감을 소개해주는 커넥션(The Connection) 역의 여성은 거친 남성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커넥션이 살해당하는 방식은 꽤 충격적이다. 살인범은 베개로 얼굴을 누르고 총을 쏜다. 여성의 얼굴은 지워지고, 목소리는 제거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로서만 여성의 생존이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스트 맨 스탠딩'에서 악당 도일이 집착하는 멕시코 여성 펠리나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이 여자가 유일하게 말하고 믿는 대상은 '신'이다. 결국 펠리나는 스미스에 의해 구출되어 목숨을 건진다. 펠리나와는 달리 도일의 정부(情婦)로 스미스의 유혹에 넘어간 루시는 도일에 의해 귀가 잘린다. 자신의 일, 욕망, 목소리를 지닌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위협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안전을 위해 제거되어야만 한다.

  여기에 덧붙여 '48시간'의 여성 캐릭터들에게 투사되는 관음증적 욕망은 매우 노골적이다. 성인 전용 클럽에서 무대 위 반라의 여성은 선정적인 춤을 춘다. 형사 잭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감옥에서 범인의 동료 레지(에디 머피 분)를 잠시 빼내온다. 함께 임무를 완수한 레지가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돈을 줘서 레지가 원하는 대로 매춘부와 보내게 해준다. 그것은 인간미 넘치는 잭의 배려인가? 그도 그럴 것이 잭과 레지 사이에는 48시간 동안의 특수 임무 동안 기묘한 동지 의식이 생겼다. 미국 사회에서 하위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흑인 죄수 캐릭터가 결국은 백인 경찰과 연대하고 유대감을 쌓는 것. 그 또한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월터 힐에게 감독으로서의 활로를 열어주었다.

 
4. 긴 여정의 시작, Red Harvest

  '라스트 맨 스탠딩'이 '요짐보'의 금주법 시대 버전임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요짐보'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독자적 창작물인가? 그는 자신의 영화가 1942년작 필름 느와르 'The Glass Key(1942)'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갱단과 정치인이 얽힌 복마전과 같은 도시의 어둠을 그린다. 주인공 에드는 뒷골목 건달로 예기치 못한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살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이 영화보다 '요짐보'의 원형을 제공하는 대실 해밋의 소설은 따로 있다. '붉은 수확(Red Harvest)', 1929년에 해밋이 발표한 첫 탐정소설이었다. 매우 건조하고 명료한 문체를 특징으로 하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이 무엇인지 이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작업(지문을 지우는 일)을 반복했다. 죽은 여자의 옆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구부리고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얼음 송곳에 내 지문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도록 꼼꼼히 닦아냈다. 유리잔들, 술병들, 방 안의 모든 문들, 전등 스위치, 내 손이 닿은 가구 전부, 어쩌면 닿았을 지도 모르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했다. 그런 다음에 손을 닦았다. 내 옷에 혹시 핏자국이 남아있지 않은지 살펴 보았다. 그 어떤 내 소지품도 그곳에 남아있으면 안되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섰다. 문을 연 다음 안쪽 손잡이를 닦고, 바깥쪽도 그렇게 했다. 마침내 나는 그 방에서 떠났다.' Red Harvest, 21장  
 
  In the dining room again, I knelt beside the dead girl and used my handkerchief to wipe the ice pick handle clean of any prints my fingers had left on it. I did the same to glasses, bottles, doors, light buttons, and the pieces of furniture I had touched, or was likely to have touched. Then I washed my hands, examined my clothes for blood, made sure I was leaving none of my property behind, and went to the front door. I opened it, wiped the inner knob, closed it behind me, wiped the outer knob, and went away.

  소설의 주인공은 콘티넨탈 탐정 사무소의 요원 Op(operative, 사립 탐정을 의미하는 속어), 그는 이름이 없는 인물로 나온다. 'Personville'이라는 도시에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서 온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의뢰인 도널드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널드의 부친 엘리후는 유력한 거물로 도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엘리후는 Op에게 도시를 장악한 갱단들을 쓸어버릴 것을 요구하며 사건 해결을 일임한다. 퍼슨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Poisonville'로 부른다. 폭력과 범죄가 공기처럼 스며든 악의 도시,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Op는 더러운 도시를 청소할 수 있을까?

  '붉은 수확'에서 Op는 악인들과 대적하는 동안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되어간다. 거짓말, 협박, 사기. 그는 도시의 악덕을 체화하고 그 공기를 들이키며 포이즌빌의 사람이 되어간다. 갱단들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부패한 경찰로 하여금 그들을 치게 만든다. 계속해서 시체가 쌓이는 동안 Op는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그는 그 죽음들에 일말의 부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퍼슨빌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낸 정보원이며 조력자인 디나가 살해당했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그가 디나의 시신을 발견한 후 한 일은 현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실 해미트가 묘사한 그 부분의 문장들을 한 번 보라. 마치 칼로 잘라낸 것처럼 군더더기도 없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선과 악, 그 어느 편에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배회하는 '붉은 수확'의 Op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대실 해미트가 창조한 이 인물이야말로 이후 등장한 '고독한 늑대'의 원형(archetype)이 되었다.    

  '붉은 수확'의 Op는 영화 'The Glass Key'의 에드, 그리고 '요짐보'의 산주로가 된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월터 힐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물을 재창조했다. 'Hard Times'의 채니에서부터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까지, 힐이 만든 캐릭터들에는 모두 컨티넨털 탐정 사무소 요원 Op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시, 이 글의 시작을 열었던 영화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이미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월터 힐의 경력은 급격한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이후 그가 찍은 영화들은 혹평을 받으며 관객들에게도 외면당했다. 말 그대로 '죄다 말아먹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라스트 맨 스탠딩'을 두 번 보았다. 분명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왜 이 영화는 망했는가? 때로 어떤 실패한 영화는 그 원인을 복기하기 위해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과했다. 영화가 관객에게 매혹을 선사하는 지점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럴듯한 핍진성(逼眞性)이 생겨날 때이다. 그런데 '라스트 맨 스탠딩'은 그 지점을 넘어선다. 과도한 폭력, 과도한 클리셰(cliche), 심지어 음악과 사운드 마저도 과도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며, 관객은 곧 이 영화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사실과 직면한다. 물론 우리가 보는 영화는 재현된 가공의 현실일 뿐이다. 그것이 진짜 현실이 아님에도, 관객은 언제나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 월터 힐의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철저히 배반한다.

  나에게 '라스트 맨 스탠딩'은 마치 잘못 탄 기차처럼 여겨졌다. 때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엉뚱한 목적지에 내려서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곳에서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을 발견했고, 월터 힐이 자신의 영화 여정을 시작한 곳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복기하면서 비슷한 길을 걸어간 다른 감독들도 알게 된다. 홍콩 느와르를 이끌었던 오우삼 영화의 미학은 월터 힐과 닮아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마틴 스콜세즈, 스티븐 스필버그, 코엔 형제, 그리고 타란티노까지 그들은 하나의 강에서 흘러나온 지류들이다. 월터 힐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폭력과 고독의 서사를 써내려 갔다. 그의 영화적 지류를 탐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Red Harvest(1929)' 초판본 표지



**월터 힐의 영화 'The Driver(197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1970.html


***다큐멘터리 'Mifune: The Last Samurai(2015)'는 영화 'Yojimbo(1961)'의 배우 미후네 토시로의 영화 인생을 돌아본다. 일본 영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다큐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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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 Times(1975)
The Driver(1978)
The Warriors(1979)   
48 Hrs.(1982)
Last Man Standing(1996)



1. 월터 힐의 영화 속 방랑자들

 
남자는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차를 운전 중이다. 낮게 깔리는 남자의 내레이션이 이 영화가 그의 시점에서 진행될 것임을 알려준다. 운전을 하며 술을 들이키다 내린 그는 술병을 땅바닥에 놓고 돌려 본다. 술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시 차를 모는 남자. 그렇게 존 스미스(브루스 윌리스 분)는 멕시코 국경 근처 제리코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째 이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무리의 갱단원들이 몰려와서 스미스의 차를 망가뜨린다. 근처 술집으로 들어간 그는 술집 주인으로부터 대강 이 마을의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게 된다. 밀주업을 하는 두 개의 갱단이 서로 물어뜯으면서 마을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 보통 사람 같으면 오금이 저려서 떠나련만 스미스는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갱단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존 스미스, 그는 제리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Last Man Standing(1996)'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Yojimbo, 1961)'에서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따왔다. '요짐보'에서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낭인(浪人, ろうにん) 산주로는 긴 막대기로 자신의 갈 길을 정한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의 초입에서 그는 비쩍 마른 개가 사람의 손목을 들고 있는 것을 본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월터 힐은 산주로의 막대기를 스미스의 술병으로, 개는 백마의 사체로 대체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월터 힐의 경배에 가까운 모방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The Warriors(1979)'에서 워리어스 갱단의 스완이 자신의 적대자와 대결할 때, 그는 총을 든 상대방의 손목에 단검을 던진다. 이 장면 역시 '요짐보'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차용한 것이다. '48시간(48 Hrs.,1982)에서 형사 잭(닉 놀테 분)은 흉악범에게 자신의 총을 뺏긴다. 이 설정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Stray Dog(1949)'에서 신참 형사(미후네 토시로 분)가 소매치기에게 총을 빼앗기고 고전하는 것에서 따왔다.

  월터 힐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가 헐리우드 필름 느와르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일본 시대극(時代劇,  じだいげき)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갖 불의와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홀로 떠도는 인물. '요짐보'의 떠돌이 무사는 'The Driver(1978)'의 '드라이버(이 영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로, 'Hard Times(1975)'에서는 대공황 시대 길거리 복서 '채니(찰슨 브론슨 분)'가 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거나 악인과 응징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월터 힐이 창조해낸 세계의 '고독한 늑대(Lone Wolf)'들은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들이 외부 세계의 타자와 관여하는 경우는 아주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사소한 감정적 유대가 얽혔을 때이다.

  'Hard Times'의 가난한 막노동꾼 채니는 그저 여비나 벌려고 길거리 복서로 나선다. 그런데 그의 매니저가 된 스피드는 허랑방탕한 인물로 도박빚 때문에 채니를 갱단에 넘기려 한다. 분노한 채니는 떠나려 하지만, 스피드가 갱단의 손에 죽을 위험에 처하자 마음을 바꾼다.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또 어떤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 구하려고 목숨을 내건다. 그들의 관심사는 돈도, 정의도 아니다. '요짐보'에서 산주로가 마을 악당에게 유린당한 불쌍한 아낙네를 구하기 위해 결투에 나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악의 구렁텅이 같은 세계, 고독한 방랑자. 법과 정의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 뿐이다. 'Hard Times'의 채니는 강한 맨주먹, 'The Driver'는 신기에 가까운 운전 솜씨,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자신의 총을 가지고 불의한 타자, 세상과 맞선다. 월터 힐은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는 '서부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Hard Times', 현대 대도시의 밤 풍경 속에 펼쳐지는 'The Driver', 금주법 시대의 '라스트 맨 스탠딩', 그 영화들의 주인공은 결국은 서부 시대의 방랑자들인 셈이다. 남북 전쟁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전설적 강도 제시 제임스가 나오는 'The Long Riders(1980)'야말로 힐의 진짜 서부극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월터 힐의 영화들 속의 방랑자 캐릭터들은 모두 방향성과 목적성을 상실했다.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무지막지한 피의 결투를 치룬 후, 악당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인 마을에서 최후의 1인이 된다. 그의 차가 지평선을 향해 가며 작은 점이 되듯, 스미스도 사라진다. 악당들이 죽어도 세상은 결코 변한 것이 없으며, 스미스는 황량한 풍경 속의 소실점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Hard Times'의 채니는 자신의 싸움에 판돈을 모두 걸어서 딴 돈을 스피드에게 던져 주고 떠난다. 'The Driver'의 드라이버는 받기로 한 돈을 사기당해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그러한 필연적 소멸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유랑은 그 자체로 삶이 된다.    


2. 반영웅의 서사와 결합한 폭력의 미학

  그렇다면 월터 힐의 영화는 사회 구조와 체제에 철저히 무관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The Warriors'는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준다. 솔 유릭(Sol Yurick)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The Warriors'에서는 뉴욕시를 배경으로 도시의 지하 세계를 장악한 청년 갱단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솔 유릭은 뉴욕시 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에 발표한 소설이 'The Warriors'였다. 10대 청소년 갱단은 영화 속에서 20대 청년들로 바뀌었고, 폭력과 성에 대한 과도한 묘사도 수위가 낮춰졌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갱단들끼리 맞붙은 싸움에는 야구 방망이에 뼈와 살이 쉴 새 없이 으스러진다.

  힐은 이 폭력의 서사에 불평등한 체제와 계급 갈등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워리어스 갱단원 스완은 자신을 따라온 빈민가 소녀 머시와 지하철에 탔다가 잘 차려입은 같은 또래와 마주친다. 아마도 흥청거리는 파티에서 방금 빠져나온 것 같은 그들은 스완과 머시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두 계층의 젊은이들은 심야 지하철에서 조우한다. 그들이 내리면서 떨어뜨린 꽃을 스완은 주워서 머시에게 건넨다. 그 장면은 'The Warriors'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프게 느껴진다. 월터 힐은 구조적인 빈곤 속에서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하층민 계급의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보여준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The Long Riders'에서 다소 퇴행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강조된다. 재건 시대가 끝난 후, 남부는 북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들의 이전 세계와 가치관을 복구해 나가기 시작한다. 제시 제임스(Jesse James)는 그 힘의 공백기를 휘젓고 다닌 악당이었다. 그는 남북 전쟁 이전에는 노예제 반대주의자들을 응징하는 잔혹한 민병대 부대에 몸담았다. 뼛속 깊이 남부인이었던 제임스는 자신의 강도 행각을 남부의 정치적 입장과 결부시켰다. 그는 남부인들에게는 패배한 전쟁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영웅으로 떠받들여졌다. 물론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제거해야할 범죄자들이었다.

  월터 힐은 제시 제임스 갱단의 범죄 행각을 반영웅의 서사로 그려낸다. 무고한 인명을 뺏지 않으며, 서로 끈끈한 의리로 맺어진 의적 집단. 갱단이 은행과 열차를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장면은 반복적인 슬로 모션으로 재현된다. 그들이 입고 있는 긴 외투는 실질적으로는 불편한 것이 분명하지만, 질주하는 말 위에서는 너무나도 멋지게 휘날리며 인위적으로 의적의 이미지를 덧칠한다. 그들과 대립하는 핑커톤 탐정 사무소의 행각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부각된다. 사무소 직원들이 제임스의 본가에 불을 질러 어린 막내 동생을 죽게 만들었을 때, 갱단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놓인다. 이 전복적 대립의 구도는 갱단이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시대의 불운으로 돌리며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퇴행적이다.

  "만약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우린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죠."
  (If it weren't for the war, we might have been something else.)


  남북 전쟁이 자신들을 강도로 만들었다는 이러한 자의식은 남부인의 상처받은 자존감과 북부에 대한 반감을 내포한다. 영화는 무자비한 갱단의 강도 행각을 낭만적 남부 의적단의 신화로 은밀하게 포장한다. 이것은 프랭크가 형제 제시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기 위해 자수를 하는 결말로 완성된다. 비극적인 막내 동생의 죽음에 이어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최후. 박해받는 반영웅의 서사에서 시대와 정치의 희생양이라는 그럴듯한 도금칠은 극대화된 폭력의 미학과 단단히 결합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월터 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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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필름 느와르 영화를 보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조연 배우들이 있다. 스튜디오의 저예산 제작 영화인 B movie, 리처드 콘테(Richard Conte)도 그 영화들에 단골 출연한 배우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Conte'라는 성이 말해주듯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대개 유명인들의 이름 발음은 위키피디아에 표기되어 있는데, 콘테는 이름과 관련된 특별한 표기가 없다.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콘트, 이태리식 발음은 콘테와 콩티의 그 중간쯤 될 것 같다. 나는 '콘테'로 표기하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본 콘테의 출연작은 '잠자는 도시(The Sleeping City, 1950)'였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이 독특한 필름 느와르에서 콘테는 형사로 나온다. 형사 프레드는 살인 사건 조사를 위해 의사 신분으로 병원에 잠입한다. 자칫 신분이 탄로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그런데 프레드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강인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매력적인 간호사 앤의 유혹에 흔들리는가 하면, 상당한 도박빚도 지게 된다. 과연 그는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런 그의 인간적인 약함이 일종의 연막 작전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콘테가 연기하는 프레드의 모습에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심리적 갈등과 불안이 감지된다.

  '잠자는 도시'의 프레드가 그러했듯 콘테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콘테의 얼굴에는 선과 악의 양면이 절묘하게 감춰져 있다. 배우들이 자신의 경력을 거듭하게 될수록 겪게 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캐릭터의 고착화일 것이다. 선인과 악인, 그 두 캐릭터 중에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게 되는데 콘테는 그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갔다. 프리츠 랑 감독의 'The Blue Gardenia(1953)'에서 그는 신문기자로 나온다.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케이시는 살인 용의자로 의심되는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직업 윤리와 사랑의 감정 사이에서 케이시는 갈등하고 고뇌한다. 콘테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않는 정의로운 신문기자를 연기하면서,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의 면모도 보여준다.

  그런데 선인 역할 보다 콘테에게 더 많이 주어진 것은 악인 역할이었다. 1955년작 영화 'The Big Combo'에서의 콘테는 그야말로 진짜 악당으로 등장한다. 온갖 비리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갱단 두목 브라운은 매우 잔혹한 인물로 묘사된다. 브라운의 사디즘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장면은 한때는 자신의 보스였으나 이제는 부하가 된 맥클루어를 조롱할 때이다. 그는 귀가 안좋은 맥클루어를 괴롭히기 위해 보청기에다 악을 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콘테가 지닌 연기 역량을 확인한다. 브라운은 수족처럼 부리던 부하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리낌없이 폭사시켜 버린다. 이 난폭하고 잔인한 악당은 형사에게 잡히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소리지른다.

  "이 짭새야, 차라리 날 죽여. 죽여 보라구! 난 감옥 따위에 들어갈 위인이 아니란 말이다!"
  (Go ahead! Kill me! Kill me!  ...  I won't go to jail!)

  그 장면에서 콘테가 연기하는 브라운의 패악질을 보고 있노라면, 성질 급한 형사 같으면 총을 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악인 역할은 'Somewhere in the Night(1946)'에서도 볼 수 있다. 전후 미국의 혼란과 불안이 반영된 이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콘테는 조력자를 가장한 악당 멜 필립스를 연기한다. 그는 배포가 넓은 뒷골목 클럽의 소유주로 어려움에 빠진 주인공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하지만 뭔가 의뭉스러운 이 인물은 막판에 가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주인공을 협박한다. 양면성을 지닌 교활한 악인을 연기한 콘테는 분명히 이 영화에서 조연임에도 주연보다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역을 맡은 존 호디악(John Hodiak)에게 이 영화는 처음으로 따낸 주연이었다. 상대 여배우 낸시 길드(Nancy Guild)는 이 작품이 첫 출연작이었다. 이미 1939년부터 경력을 시작한 콘테는 안정적인 연기로 주연 배우들을 뒷받침함으로써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B movie 출연 전문 배우라고 해서 연기 역량도 B급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화 공장처럼 돌아가던 당시 스튜디오의 제작 시스템에서 다양한 역할로 다작을 소화해내는 재능있는 배우들이었다. 리처드 콘테의 긴 필모그래피는 그가 스튜디오의 신뢰를 받는 배우였음을 보여준다. 어느 역할이 주어지든 콘테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나름의 존재감이 있었다. 나에게 그 대표적인 작품은 1948년작 영화 'Call Northside 777'이었다. 이 영화는 금주법 시대에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복역한 Joseph Majczek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 인물이 영화 속에서는 콘테가 연기한 프랭크가 되었다.

  프랭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는 신문기자 역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스튜어트의 경직되고 거들먹거리는 연기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고전기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스튜어트가 가지는 상징성은 상당부분 신사적 이미지의 외모에 기대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좋게 평가하는 스튜어트의 영화 연기는 앤소니 만의 'Winchester '73(1950)'이다. 영화에서 스튜어트는 그야말로 신들린 총솜씨를 보여준다. 뛰어난 총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스튜어트는 죽으라고 사격 연습을 했고, 그것이 영화에 그대로 나온다. 그 작품을 제외하고 나에게 스튜어트의 연기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다큐멘터리적 구성으로 짜여진 'Call Northside 777'의 러닝타임 111분 동안 주연 배우 스튜어트의 존재감은 매우 적은 분량으로 나오는 콘테에 미치지 못한다. 나는 감옥에 갇힌 콘테가 나오는 장면을 기다릴 정도였다. 콘테가 연기하는 프랭크의 얼굴에는 모호한 선량함이 존재한다. 정말로 경찰 살인범인지,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인지 관객은 끝까지 의문을 품게 된다. 마침내 프랭크가 석방되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 콘테가 보여주는 미소는 진실된 한 인간 그 자체이다.

  콘테의 필모그래피 끝자락에서 우리는 잘 알려진 영화를 발견하게 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The Godfather, 1972)', 그 영화에서 콘테는 돈 콜레오네와 대립하는 마피아 보스 바지니 역을 연기했다. 겉으로는 갱단들 사이의 휴전을 외치면서 음흉한 수를 쓰는 바지니는 콘테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콘테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다. 65살이라는 나이는 배우로서 충분히 더 활동할 여력이 있는 나이였다. 가끔 인생이 B급 영화 같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에 나는 리처드 콘테를 떠올린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에서 그는 배역의 경중을 떠나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콘테는 B movie의 진정한 스타였다. 그처럼 우리들도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별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cm.com      'The Big Combo(1955)'에서의 리처드 콘테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 리처드 콘테의 출연작 리뷰

영화 '잠자는 도시(The Sleeping City, 1950)'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sleeping-city1950.html

영화 'Somewhere in the Night(1946)'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somewhere-in-night1946-doa1950-no-wa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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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영화의 눈부신 전성기, 호주 뉴 웨이브(Australian New Wave) 영화들 4부


호명된 국민, 재조명된 호주인 서사:

Breaker Morant(1980), Bruce Beresford
Gallipoli(1981), Peter Weir



  "이 친구야, 우린 피 묻은 제국의 희생양이야!"
  (Harry Morant: George! We're scapegoats to the bloody empire!)


  1881년, 남아프리카에 살던 보어인(Boer, 당시 그곳에서 살던 네덜란드인을 일컫는 말)들은 영국과의 싸움을 통해 자신들의 땅에 대한 우선적 권리를 확인받았다. 그래봤자 그들도 원주민의 땅을 뺏은 침략자에 지나지 않았다. 평화는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땅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와 금이 문제였다. 그건 대박이 아니라 피바람을 몰고 올 재앙이었다. 영국은 보어인들에게서 다시 땅을 뺏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1899년에 시작된 2차 보어 전쟁(Second Boer War)은 결국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은 남아프리카에 새로운 식민지를 구축했다.

  보어 전쟁은 침략자들끼리 식민지를 두고 피 터지게 싸운 제국주의의 냉혹한 단면이었다. Bruce Beresford의 1980년작 영화 'Breaker Morant'는 바로 그 2차 보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모랜트는 호주인으로 보어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02년, 세 명의 군인이 군사 법정에 회부된다. 모랜트와 핸콕, 위튼은 보어인 포로와 독일인 선교사를 적법한 절차없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들을 변호하는 임무를 맡은 토마스 소령은 상부로부터 어떻게든 유죄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언질을 받는다. 영화는 법정 재판 장면과 사건의 발단이 된 전투 장면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전쟁 영화의 외피를 입었으나, '파괴자 모랜트'는 의외로 차분한 군사 재판 장면이 내러티브의 주를 이룬다.

  실존 인물이었던 모랜트(Harry "Breaker" Harbord Morant, 1864-1902)의 초창기 일생은 불분명한 기록과 낭만적 증언들로 덧입혀져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스무 살 무렵인 1883년 경에 호주로 이주했다. 젊은 날의 모랜트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무엇보다 그는 대단한 말몰이꾼이었다. 뛰어난 승마 실력으로 호주 남부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모랜트는 시도 썼다. 영화 속에서 모랜트(에드워드 우드워드 분)는 군인이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교양인으로 묘사된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그의 과거는 시를 쓰고, 가곡을 부르는 예술가이다. 보어인들의 기습이 수시로 일어나는 전장터에서도 그는 글을 쓴다. 베레스포드는 그러한 모랜트의 예술적 정체성을 광활한 호주 자연과 결부시킨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쩌다가 전쟁 포로를 잔혹하게 죽인 혐의로 군사 법정에 섰는가? '파괴자 모랜트'는 그 이유를 전쟁의 비인간성에 둔다. 모랜트의 예술적 감수성은 전투를 거듭하면서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급기야 상관 헌트 대위가 보어인 게릴라 부대에 의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자 모랜트는 복수를 다짐한다. 6명의 보어인 포로와 독일인 목사의 죽음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다. 모랜트와 그의 두 부하 장교는 분명히 그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건은 복수심에 불탄 모랜트의 광기에서 기인한 것인가? 영화는 모랜트가 거대한 전쟁 기계의 부속품임을 드러낸다. '규칙 303(Rule 303)'이 그 증거가 된다.

  그 규칙은 당시 영국군이 사용했던 탄환의 직경(0.303인치)에서 따왔다. 새롭게 개발된 총탄은 높은 살상력으로 악명이 높았다. 명령에 내포된 뜻은 이렇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보어인들은 적으로 간주되며 무조건 사살할 것. 모랜트는 자신이 상부에서 전달받은 명령 그대로 이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영화는 집행관이 되어 포로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모랜트와 그에게 그런 전쟁 범죄를 강제하는 영국군 최고 수뇌부를 대비시킨다.

  독일인 목사의 죽음이 독일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자,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모랜트와 두 명의 호주인 장교에게 부과된 마지막 임무는 그것이었다. 그들이 실제적으로 목사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랜트와 핸콕은 즉결 처형을 받았고, 위튼은 살아남았다. 그는 그 이야기를 '제국의 희생양(Scapegoats Of The Empire)'이란 책으로 남겼다. 그 책을 통해 모랜트는 호주인의 영웅으로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제국주의에 의해 억울하게 스러져 간 모랜트는 호주인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일깨우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호주인, 호주인 됨. 영화 '파괴자 모랜트'는 그러한 '호명(呼名, interpellation)'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명백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예를 또 다른 호주 뉴 웨이브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피터 위어 감독의 '갈리폴리(Gallipoli,1981)'는 1915년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희생당한 ANZAC(호주-뉴질랜드 군단)을 재조명한다. 호주 청년 아치(마크 리 분)와 프랭크(멜 깁슨 분)의 순수한 우정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영화는 호주 군인들을 무시하는 영국 군인들의 오만함, 영국군 지도부의 끔찍한 무능과 독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애국심의 발로에서 자원 입대한 아치와 프랭크는 하나의 제국에 대한 기대와 이상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는다. 본국 영국은 연방국 호주인들을 전쟁의 손쉬운 도구로 여겼을 뿐이었다.

  '파괴자 모랜트'와 '갈리폴리' 같은 영화들은 호주 뉴 웨이브 영화가 지향했던 주된 방향성을 드러낸다. 호주인으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고양시킬 수 있는 서사를 그려내는 것. 호주 정부의 강력한 영화 육성 정책 덕에 호주 뉴 웨이브는 지역적 색채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결합을 시도해 나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호주'라는 공간에 펼쳐진 영화 실험실이었다. 헐리우드는 그 가능성을 눈여겨 보고 호주 출신의 감독들을 끌여들었다. 미국으로 진출한 피터 위어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를, 브루스 베레스포드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 질리안 암스트롱은 '작은 아씨들(1994)'을 찍었다. 호주 배우인 샘 닐과 멜 깁슨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마치 블랙홀처럼 헐리우드는 호주 뉴 웨이브를 자양분으로 빨아들였다. 1970년대에 시작된 물결은 1980년대 후반에 잦아들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호주 영화 산업은 다시 새로운 파도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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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hemoviedb.org




***
Harbord Morant(1864-1902)에 대한 사료를 집결해 놓은 사이트
www.cs.mcgill.ca/~rwest/wikispeedia/wpcd/wp/b/Breaker_Morant.htm

****
영화 속 묘사와는 달리 모랜트가 영웅이 아님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전쟁광으로서의 모랜트를 부각시킨 칼럼이다.
www.theage.com.au/national/echoes-of-monster-breaker-morant-in-dark-deeds-of-sas-forces-20201123-p56h35.html


*****호주 뉴 웨이브 영화들 특집

1부 호주 뉴 웨이브의 신호탄, Walkabout(197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walkabout1971.html

2부 호주인의 정체성과 자연: Sunday Too Far Away(1975), The Last Wave(1977)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sunday-too-far-away1975-last-wave1977.html

3부 발굴된 호주 여성의 서사, My Brilliant Career(197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australian-new-wave-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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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영화의 눈부신 전성기, 호주 뉴 웨이브(Australian New Wave) 영화들 3부


  작가 지망생인 아가씨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상상력을 좀 보태어서 소설 한 편을 써냈다. 몇 군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궁리 끝에 이름 있는 작가에게 원고를 보내 보았다. 소설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행운이 따랐다. 소설은 곧 책으로 나왔다. 모국 호주가 아닌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의 출판사에서였다. 스무 살의 Miles Franklin은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 소설의 제목은 'My Brilliant Career'. 소설은 꽤 잘 팔렸고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작 소설 속의 17살 아가씨 시빌라는 예쁘지도, 그렇게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시빌라는 소젖을 짜며 집안의 농장일을 돕는다. 시빌라의 어머니는 주정뱅이 남편 뒤치다꺼리하기도 버겁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 입이라도 덜게 딸이 얼른 시집이나 가버렸으면 싶다. 그러던 중에 친정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온다. 시빌라의 부자 할머니가 외손녀딸을 불러들인다. 시빌라를 잘 단장시켜서 부잣집에 결혼시켜 보낼 심산이다. 별 볼 일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인생이 망가진 딸의 전철을 외손녀가 밟게 할 수는 없다. 과연 선머슴 같은 시빌라는 결혼으로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을까?

  Gillian Armstrong이 영화 'My Brilliant Career(1979)'를 찍었을 때의 나이는 스물 아홉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영화 경력을 시작한 이 여성 감독에게 마일즈 프랭클린의 소설은 매우 적합한 텍스트였는지도 모른다. 결혼보다 직업적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빌라는 부자에다 잘 생긴 구혼자의 손길을 뿌리친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는 것으로 화려한 경력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대강의 줄거리만 본다면 'My Brilliant Career'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막상 읽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문체는 자의식 과잉에 유치하고 장황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일즈 프랭클린이 소설을 썼을 때의 나이가 십 대 후반이었다. 아름답지도, 별다른 재능도 없는 시골 촌구석 아가씨에게 대체 무슨 마성의 매력이 있는지, 결혼해 달라는 구혼자가 세 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한 명인 해리는 잘 생긴데다 엄청난 부자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 맞아. 그러니 거기에 걸맞는 괜찮은 여자를 찾아봐."

  소설 속 시빌라는 그 말과 함께 해리의 구혼을 거절한다. 영화에서 시빌라(주디 데이비스 분)는 해리(샘 닐 분)에게 자신이 스스로의 길을 찾을 때까지 2년을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2년이 아닌 4년이다. 그 긴 시간을 기다려줄 남자가 있을까? 자신이 대단한 무언가를 해낼 것이라고 믿는 시빌라에게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며 날개를 꺾는 일이다. 결혼이 여자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영역이라고 믿는 할머니는 시빌라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과 직업적 성공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시빌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사실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두 가지 삶의 과제를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시빌라의 관점은 1900년대 초 호주 여성이 직면한 어려움을 반영한다.

  나는 원작 소설 'My Brilliant Career'를 페미니즘 서사로 읽어내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 회의감이 든다. 마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호주 남부 여성 버전으로 살짝 비튼 것처럼 보이는 플롯은 단선적이며 성찰적인 사유가 결여되어 있다. 영화에서도 그 점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관객은 왜 시빌라가 해리의 청혼을 거절하는지에 대해 명백히 납득하지 못한다. 해리는 시빌라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시빌라를 구속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도 않다. 시빌라가 장차 무얼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도 별로 없고, 글쓰기에 대한 가능성도 영화 결말부에 가서야 미약한 단서처럼 주어질 뿐이다.

  아마도 시빌라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작가 마일즈 프랭클린의 소설적 자아, 분신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프랭클린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으나 그다지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My Brilliant Career'의 성공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프랭클린은 영국과 미국에서 글쓰기로 경력을 쌓으며 보냈다. 호주로 돌아온 것은 50이 넘어서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프랭클린에게 '글쓰기'란 여성으로서의 독립적 삶을 가능케 만든 근원이었다.

  영화는 고향 농장으로 돌아온 시빌라가 자신의 첫 소설을 완성하고 우편함에 넣는 것으로 끝난다.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대한 평원을 바라보며 시빌라는 꿈꾸듯 그렇게 서있다. 질리언 암스트롱은 소설과는 다소 다른 결말로 시빌라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한다. 소설의 시빌라는 불확실한 미래와 가난한 현실 속에서 자연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끝난다.

  "내 무용한 삶은 그들(농부들)이 그러하듯 노고의 이 대지에 파묻히겠지.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야. 그저 별 달리 쓸모도 없고, 작은, 시골 촌뜨기에 불과해. 무엇보다 나는 여자의 삶을 살아가야 해!(My ineffective life will be trod out in the same round of toil—I am only one of yourselves, I am only an unnecessary, little, bush commoner, I am only a—woman!)"

  소설 마지막 단락의 이 문장 하나가 'My Brilliant Career'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이 작품은 프랭클린 사후,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서사로 다시금 부각되었다. 생전의 프랭클린에게 이 소설은 명성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다 주었다. 그 시대의 독자들은 소설 속 주정뱅이 아버지를 실제 작가의 아버지와 동일시했다(소설과 현실이 달랐음에도). 프랭클린이 성장한 New South Wales 농촌 마을 사람들은 소설 속 시골의 삶이 편협하고 무지막지한 것으로 묘사되었다며 프랭클린을 비난했다. 스무 살 작가에게 소설의 제목대로 화려한 경력이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평생에 걸쳐 무거운 멍에이며 그림자였다. Miles Franklin이 이후 쓴 작품들은 모두 첫 소설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소설 'My Brilliant Career'는 당시 시대적 요구에 의해 신중하게 채택된 텍스트였다. 질리언 암스트롱은 잊혀진 근대 호주 여성의 이야기를 1970년대 페미니즘 서사와 결합시킨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일과 사랑의 양립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는 과제였다. 직업적 경력을 추구하기 위해 백마 탄 왕자를 내버려두고, 홀로 자신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영화 속의 시빌라는 분명 1900년대의 여성이 아니다. 시빌라의 시선이 향하는 먼 그곳을 당시의 여성 관객들은 함께 응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 'My Brilliant Career'은 발굴된 호주 여성 서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광대하고 아름다운 호주 자연의 풍광 속에 아로새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작가 Miles Franklin(1879-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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