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될 줄 알았다. 그러니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한백양은 올해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당선자이다. 그러니까 신춘문예 2관왕인 셈이다. 1986년생으로 국문과 출신인 이 당선자는 당선 소감 첫 문장에서 자신이 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 세계일보에 실린 당선작의 제목은 '웰빙'이다.
웰빙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
읽으면서, 또 이렇게 한 번 옮겨서 써보니 시가 참 괜찮다. 이 시와 시인의 삶은 단단히 결합되어있다. 문학이란 결국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일이다. 당선자 한백양은 자신이 당선될 줄 알았다고 당선 소감글의 첫문장에 콱 때려넣는다. 어찌보면 기쁨에 넘친 자의 자만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글짓기 과외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쓰기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에게 건네진 축배를 받아들었다. 한백양은 자신이 된 것처럼 그대들도 언젠가 될 거라는 격려도 함께 덧붙인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뭔가 울컥해지는 말이지 싶다.
물론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만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말로,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희망을 가지고 세월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룬다.
나는 글쓰기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작가는 배를 저어가는 사공과도 같다. 자신이 써내는 글로 노를 저어가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외롭고 힘든 길이다. 좋은 글을 써야겠지.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글을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생면부지의 신춘문예 시 당선자의 당선소감을 읽으면서, 이 시인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에 가만히 와닿는 그런 좋은 시를 써주길.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한백양의 당선 소감글 기사 링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218518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