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msay Hunt syndrome. 이 질병은 안면부에 발생하는 대상포진으로 안면마비와 청각 손상이 주요한 증상이다. 슬상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 시스템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안면신경과 귀 주변의 신경을 침범해서 극심한 통증과 염증을 일으킨다. 8년 전, 나는 뜻하지 않게 Ramsay Hunt syndrome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보름이 넘게 머리가 쪼개지는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오른쪽 얼굴은 마비되었다. 눈은 감기지 않았고, 입은 비뚤어져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내가 겪은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물을 마시면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마비된 얼굴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입원 기간 내내 나를 엄습했다. 거기에다 대상포진의 엄청난 통증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뉴론틴(Neurontin). 1973년에 나온 이 약은 원래는 뇌전증(예전에는 '간질'이라고 불렀던 질병) 치료제로 개발되었다. 그러다가 뉴론틴은 신경병적 통증에 효과가 부수적으로 입증이 되면서 당뇨병으로 인한 신경통을 비롯해 대상포진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극심한 대상포진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원 기간 동안 나는 고용량의 뉴론틴을 복용해야만 했다. 뉴론틴을 콩알 먹듯이 먹어도 도무지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가톨릭 재단의 병원이었다. 나는 병실에 있는 것이 답답하면 성당에 가서 앉아있곤 했다.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얼굴 반쪽이 마비된 내 상태가 믿기지도 않았고, 이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신자였기 때문에 원목실의 수녀님이 병실로 찾아와서 기도를 해주었다. 시간이 되면 원목실에 와서 차라도 마시라고 수녀님은 말했다. 딱히 병실에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날인가, 원목실로 수녀님을 찾아갔었다. 수녀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녀님은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한 환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환자는 암환자인데 자궁에 생긴 암이 난소까지 침범해서 결국 자궁과 난소를 모두 절제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둘, 대학생이에요. 많이 걱정되어서 자주 살펴보고 있는데, 어떻게 잘 이겨낼지 모르겠어요."

  나는 수녀님이 내온 녹차를 마시면서 계속 흘리고 있었다. 비뚤어진 오른쪽 입 때문이었다. 나는 얼굴 반쪽이 돌아간 나의 고통과 22살 암환자 아가씨의 고통을 속으로 비교해 보았다. 과연 어느 고통이 더 괴로운가? 만약 이 얼굴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남은 생을 감기지 않는 눈과 비뚤어진 입매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2살 아가씨는 자궁과 난소없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정량화된 수치로 계산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얼굴도 모르는 22살 아가씨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그 아가씨의 고통이 나의 것보다 심하고 무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는 퇴원했다. 마비된 얼굴은 점차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내 얼굴은 마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물론 완벽한 회복은 아니었다. 신경 손상은 비가역적(非可逆的)이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청신경을 침범해서 내 청각에 문제가 생겼다. 이명과 청각과민증은 좀처럼 낫질 않았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최근에 몸이 좋질 않아서 병원을 오가고 있다. 몸이 아파서 그런가? 나는 문득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투병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기억 속에는 22살 아가씨의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8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그 아가씨는 서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잘 살고 있을까? 질병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남긴다. 상실은 불안과 절망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명제이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아가씨가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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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의 일이다. 어머니를 산책시켜드리고 오는데 사고가 생겼다. 뒤에서 따라오던 어머니가 발을 헛디뎌 손목이 골절되었다. 정말이지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임을 실감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수술은 잘 되었고 이제는 깁스도 풀었다. 사고 당시에는 그저 당황스럽고 속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사고가 있기 일주일 전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나는 커다란 대바구니에서 엄청나게 큰 뱀을 꺼내었다. 그걸 본 어머니는 놀라서 뒤로 넘어지셨다. 참으로 불길하고 이상한 꿈이었다. 어머니는 심한 뱀 공포증을 갖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가 꿈에서 뱀을 보고 그렇게 놀랐으니 결코 좋은 꿈은 못되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조심해야지...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내 모친은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7월 1일의 일기에는 그날 새벽에 꾼 꿈을 적어놓았다. 내 이가 흔들거리며 빠지려는 꿈이었다. 이런 꿈도 역시 좋은 꿈은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꿈, 예지몽. 그로부터 20일 넘게 몸이 아프고 좋지 않다. 병원을 오가며 약을 먹고 있지만 좀처럼 낫질 않는다. 이게 얼마나 더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좀 좋은 꿈 좀 꾸어봐. 로또 복권 당첨될 것 같은 꿈."

  내가 꾼 그 두 개의 꿈 이야기를 동생에게 들려주자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좋은 꿈은 꾸고 싶다고 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안좋은 일에 대한 예지몽은 기가 막히게도 잘 꾼다. 그런데 한편으로 어떤 꿈은 슬프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발인(發靷) 날 아침, 나는 잠깐 졸다가 꿈을 꾸었다.    

  그것은 마치 동양화의 풍경 같았다. 어슴푸레한 새벽 무렵이었다. 한복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가 산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자의 앞쪽으로는 높다란 산들이 물결치듯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뒷모습만 보였다. 그는 허허로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 남자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아, 아버지가 저렇게 길을 떠나시는구나.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날 때면 그 꿈이 생각나곤 한다. 잘 계시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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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몸이 좋지 않아서 종합병원에 다니고 있다. 올해 들어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다 보니 이래저래 몸이 지치고 힘이 든다. 병원에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어딜 가나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예약 시간에 가도 환자들이 밀려있어서 제 시간에 진료받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얼굴을 보면, 실제로 말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에 대한 압박감은 의사는 물론 환자인 나도 느낀다. 그러니 나도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증상을 말하려고 한다. 진료실에서 나오면 다음 진료 예약과 원무과 수납, 그리고 약국 방문이 이어진다. 이렇게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뭔가 진이 다 빠지는 느낌마저 든다.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작은 책자를 좀 들여다 보다가 방문객들을 관찰하곤 한다. 신경과 옆에는 신경외과가 자리하고 있다. 내 앞의 의자에서 기다렸던 젊은 엄마와 아이가 신경외과 진료실에 들어갔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그 엄마와 아이가 진료실에서 나온다.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3, 4학년 쯤으로 보였다. 아이 엄마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의 병이 뇌의 기능적인 문제라면 엄마도 아이도 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신경외과를 찾은 또 다른 환자는 80대 할머니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그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처음에는 그 여자가 딸이나 며느리인가 생각했는데,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니 그런 관계는 아니다. 아마 요양보호사나 임시로 동반하는 일을 맡은 사람인듯 했다. 여자는 노인에게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썼다. 노인이 무슨 서류에 대해 여자에게 말하니, 여자는 그건 아드님이나 따님에게 부탁을 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옷매무새가 깔끔하고 꼬장꼬장한 말투의 그 할머니는 그래도 병원에 데려올 사람이 있으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수납 창구에서는 노부부가 수납 직원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몸 여기저기가 아픈데 어느 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이 처음에 다리가 아프다고 하자 직원은 정형외과를 이야기 했다. 그런데 노인은 가슴 쪽도 아프다고 말을 보탰다. 그건 흉부외과 같은데요? 아, 허리도 아파 죽겠어. 그러면 어르신, 여기 진료 예약번호를 적어드릴 테니까 전화로 상담을 하고 예약을 하세요. 노부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겨우 수납 창구에서 돌아선다. 많은 노인들에게 종합병원의 예약, 진료 시스템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병원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약국을 방문한다. 그리 넓지 않은 약국 내부는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찼다. 나는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의 관찰기는 계속 된다. 약국에서 일하는 사람은 네 명. 주인 약사와 관리 약사, 이렇게 두 명의 약사가 있다. 직원도 2명이다. 처방전을 든 환자들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는 이 약국의 월매출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했다. 약을 지은 약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70은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약을 받아가는데, 6개월분의 약이 커다란 종이 쇼핑백에 담긴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런저런 지병으로 고생하셨던 부친은 때가 되면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셨다. 아버지도 저 노인처럼 그 많은 약을 받아오셨겠구나 싶었다.

  인사성은 밝지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여자 직원이 중년의 남자 손님에게 묻는다. 몇 개 과의 진료를 보신 거에요? 3개요. 남자는 처방전 세 장을 건넨다. 체격은 건장해 보이는데 어디 아픈 데가 많나 보네. 내 차례가 되어 약을 받고서 약국을 나선다. 병원에 올 때는 모처럼 해가 났었는데, 어느새 밖에는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나는 가방 속에서 우산을 꺼냈다. 이 우산은 몇 년 전, 커피 회사의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당첨이 되어서 받은 것이다. 빨강색의 이 우산에는 송중기의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 인기절정의 남자 배우는 이제 애아빠가 되어 있다.

  약국에서 걸으면 10분 정도의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내가 타려는 버스는 20분 뒤에야 왔다. 버스 노선에는 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 하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버스에 우르르 탄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내릴 때 미리 뒷문에 가있어야겠네. 내리는 문 옆에는 앳된 표정의 남학생이 서있다. 그 남학생은 내가 내리려는 기색을 비치자 미리 자리를 비켜주려 애를 쓴다. 착한 아이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약부터 챙겨서 입에 털어넣는다. 통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다음 진료는 2주 후에 있다. 그때까지는 몸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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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는 시나리오 소재가 하나 있었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주연 배우도 나름 생각해 두었다. 만약 시나리오가 완성되어서 영화화될 수 있다면 유해진과 송중기를 캐스팅해야지. 여배우는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아직까지 정해놓지 못했다. 물론 나는 아직 그 시나리오의 첫 문장도 쓰지 않았다. 대충 시놉만 짜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면은 아주 상세하게 구상해놓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스페인을 배낭 여행 중이고, 여자 주인공은 멀리 떠난 그 남자를 그리워한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에 음악 신청을 한다. 그렇게 라디오 디제이에게 선곡이 되어 흘러나오는 노래는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이다.


  1992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가요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수 박정운은 남자 가수로는 흔하지 않은 매우 청아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가사도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언젠가 박정운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는데, 인터뷰에서 박정운은 이 노래의 작곡 배경을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과 떨어져 외국에서 지내던 아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에 담았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오늘 같은 밤이면'은 그해에 국어학자와 평론가들이 뽑은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에 선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튜브에서 내가 이 노래를 들을 때 선택하는 영상은 올림픽 공원에서 그가 라이브로 부른 버전이다. '토요 대행진'이라는 가요 프로그램인데, 박정운은 어스름이 깔린 여름 저녁 무렵 탁 트인 잔디밭에서 노래를 부른다. 의외로 관객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 영상에서 박정운은 그야말로 가수의 절창(絕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만의 절절한 감성에 뛰어난 가창력이 어우러진 노래는 여름 저녁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야외 무대의 그리 좋지 않은 음향 상태 따위는 이 가수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박정운은 오로지 자신이 부르는 노래만으로 진정한 가수 그 자체임을 입증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990년대는 우리나라 가요계의 제자 백가 시대와도 같았다. 새로운 세대의 가수들이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들을 들고 나왔다. 어떤 면에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참으로 행복하게 대중가요를 향유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댄스 음악의 열풍 속에서도 발라드의 아성은 참으로 견고했다. 박정운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발라드 가수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노래에는 다른 발라드 가수와는 차별되는 그만의 감성과 애절함이 있었다. 대표곡 '오늘 같은 밤이면'과 '먼 훗날에'를 들어보면 이 가수가 지닌 강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가끔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1980년대와 90년대에 활약했던 발라드 가수들이 트로트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히트곡을 가진 이진관, '젊음의 노트'를 부른 유미리도 트로트 가수로 진로를 바꾸었다. 나는 내 기억 속의 발라드적 감성을 지닌 그 가수들의 모습과 TV 화면 속 트로트 가수로 변한 모습이 서로 이질적으로 충돌하고 겹쳐지는 것을 목도한다. 가수도 직업인이며, 먹고 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발라드를 들어주던 팬들은 다른 새로운 음악을 찾아 떠나가 버렸다. 1990년대의 가수들은 2000년대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파고 속에서 몸부림쳐야만 했다. 박정운은 그 속에서 서서히 잊혀진 가수가 되었다.

  몇 년 전인가? 나는 박정운의 근황이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를 아는 누군가가 박정운이 기획사를 차려서 아이돌 그룹을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써놓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새로운 음악 인생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가수로서의 박정운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어떻게든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가수로서,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고달픔은 그를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데려가 버렸다. 작년 가을, 나는 인터넷 뉴스로 그가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향년 56세, 참으로 안타까운 나이였다.    

  가끔, 나는 그가 올림픽 공원에서 라이브로 부른 '오늘 같은 밤에는'을 듣는다. 이제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던 가수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그가 부른 그 노래가 들어있다. 언젠가 나는 나의 그 머리를 땅속에 누이게 될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에서 가수의 노래는 사라지겠지만, 그 노래를 듣는 누군가에게서 노래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가수에게 있어 영생(永生)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음에도 불운했던 가수 박정운, 그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평안히 쉬길 기도한다.  


*가수 박정운이 1992년 5월, 올림픽 공원에서 라이브로 부른 '오늘 같은 밤이면'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1fiGVZAHJ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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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내 이메일의 받은 편지함에는 정기구독하는 뉴스 레터들이 쌓인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잡지들 가운데에는 미국의 과학 학술지 'Science'도 있다. 그 잡지는 과학적 연구부터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과 과학 정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이번 주 뉴스 레터에서는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일본인 아마추어 천문학자 이타가키 코이치(Koichi Itagaki)씨가 그 기사의 주인공이다.

  올해 75세인 이 노인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신성을 발견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떻게 그는 아마추어로서 그런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기사는 이타가키 씨가 '렌즈'라는 도구에 매혹되었던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렌즈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망원경으로 옮겨갔다. 이타가키 씨는 1963년에 이케야 카오루(Kaoru Ikeya)라는 일반인이 혜성을 발견한 뉴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아마추어 별 관찰자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그의 생업은 따로 있었다. 고교 졸업 후에 제과 회사에 취직한 그는 일본에서는 최초로 소포장 믹스 너트(한번에 먹을 만큼의 미니 견과류를 포장하는 형태)를 고안해내었다. 이후에 이타가키 씨는 자신만의 회사를 차렸고 회사는 잘 되었다. 예순이 되던 해에 그는 회사를 세 아들들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별 탐구에 나섰다.

  천문학에 대한 이 영감님의 열정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 내에서 천체 관측이 용이한 지역을 답사해서 세 군데의 산 정상에 자신만의 미니 천문대를 세웠다. 다양한 관측 장비도 사들였다. 그런 그가 중점적으로 관찰한 대상은 초신성(supernova)이었다. 그는 처음에 혜성을 연구했지만, 곧 초신성으로 관찰 대상을 바꾸었다. 혜성 탐색은 여러 국가와 거대 천문대의 주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탐구자로서 이타가키 씨는 새로운 초신성을 계속 발견해 나갔다. 그렇게 그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로 점점 이름을 알려갔다. 그는 자신의 미니 천문대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매일 출근해서 별을 관찰하는 일상을 보낸다.

  이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이야기는 나에게 소박한 감동을 주었다. 렌즈에 매혹되었던 중학생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초신성 발견의 대가가 되었다. 이타가키 씨는 그저 별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즐겁고 좋다고 말할 뿐이다. 그렇게 그의 생애를 추동한 원동력은 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돈이나 명예에 초연해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온전히 기쁨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가? 이타가키 씨가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가 꾸렸던 사업체가 잘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천문학에 투신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은퇴했다 하더라도, 그는 어떤 식으로든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타가키 씨의 삶을 특징짓는 별에 대한 매혹과 열정은 과학 발전이라는 고귀한 명제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아마추어 천문가로서 이런 행운을 누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러는 어떤 것에 매혹된 이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은 인생을 지난한 고통 속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영화가, 이 요사스러운 것이 결국 내 인생을 망치고야 말았지."

  만년의 오손 웰스(Orson Welles)는 오래전, 내가 본 그의 다큐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을 하는 웰스는 애써 눈물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으로 영화사에 위대한 각인을 새긴 명감독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젊은 시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눈물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The Starwatcher'. 이번 주 Science 뉴스 레터에서 이타가키 코이치 씨를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 속 사진에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마추어 별 관찰자가 있다. 매혹과 열정이 순전한 기쁨으로 감응하는 삶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될 뿐이다. 나는 나름 감동적인 과학 기사에서 기이하게도 오손 웰스의 회한에 찬 눈빛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사진 출처: science.org     이타가키 코이치 씨가 매일 출근하는 자신의 미니 천문대



**해당 기사 링크: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amateur-astronomer-may-worlds-top-supernova-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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