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 세자는 '의대증(衣帶症)'이라는 병을 앓았다. 일종의 강박증으로 옷 입는 것을 고통스러워 했던 병이었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조지 3세도 정신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의 기록은 왕의 질병에 '광기(madness)'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꺼려했던 탓인지, 가계의 유전병인 '포르피린증(Porphyria)'의 다양한 증상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조지 3세가 앓았다고 추정되는 병이 '포르피린증'인지도 불분명하며,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일종인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았을 거라고 본다. 조지 3세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말을 멈추지 못했으며, 흥분한 상태로 궁정을 질주하거나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행동들은 '조증(躁症)'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간주된다.

  앨렌 베넷이 쓴 희곡 'The Madness of George III'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조지 왕의 광기(1994)'는 조지 3세의 재위 후반기에 발병한 광기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왕의 광기가 발병한 이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왕세자와의 권력 다툼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조지 3세의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던 왕세자는 부친의 병을 기회로 삼아 왕의 자리를 넘보려고 한다. 물론 사치스럽고 방탕한 왕세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다. 의회는 조지 3세의 정치적 동반자인 피트 수상이 잡고 있다. 비밀스럽게 의회의 지지자를 모은 왕세자는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시켜나간다. 한편 피트 수상과 샬럿 왕비는 왕의 치료를 위해서 의사 윌리스를 초빙해 온다. 과연 윌리스는 조지 왕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
 
  언젠가 EBS의 세계 테마 기행 영국 편을 보는데, 조지 왕이 말년에 정신질환으로 연금 상태로 지냈던 별궁이 나왔다. 궁전이라고는 하나, 생각보다 비좁고 단촐한 일반 주택처럼 보였다. 응접실은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는데, 저런 곳에 갇혀있으면 없던 병도 생길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영화에서 미쳐버린 조지 왕이 유폐된 별궁은 그것과는 달리 상당히 넓다. 아무튼 초빙된 명의 윌리스는 자신의 조수들과 함께 왕의 '치료'를 시작한다. 그런데, 말이 치료이지 당시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란 처참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잭 니콜슨이 주연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에서 묘사된 정신 병동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영화의 원작 소설(1963) 작가 켄 케이시는 당시 미국에서 만연하던 정신 병동의 비윤리적인 치료와 억압적 행태에 대해 비판했고, 그것은 정신 의학계에 반성과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20세기에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1788년 무렵에 윌리스가 쓴 방법은 학대에 가까운 감금이었다. 왕이라서 얻어맞지 않았다 뿐이지, 당시 광인들은 폐쇄된 곳에서 폭력과 감금으로 죽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윌리스가 나무로 된 구속(拘束) 의자에 조지 3세를 강제로 앉히고 묶는 장면에서 헨델의 '대사제 자독(Zadok the priest)'이 장엄하게 흐른다. 영국 왕실의 대관식 음악이 그 장면에서 쓰인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은유라 오히려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고증에 따라 재현된 의상, 영화 전편을 흐르는 바로크 음악들, 촬영 장소로 쓰인 영국의 멋진 궁전들, '조지 왕의 광기'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조지 3세를 연기한 나이젤 호손의 열연은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자신을 사로잡은 광기로 고통받는 왕의 모습을 호손은 처절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영화는 조지 3세가 광증에서 벗어나 다시 권좌를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의 병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을 유폐 상태에서 지내다 삶을 마감했다.

  '조지 왕의 광기'는 왕실과 의회 사이의 권력 암투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정치 드라마가 아닌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헬렌 미렌이 연기한 샬럿 왕비는 미쳐버린 남편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왕비는 왕이 끔찍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영화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게 될 때 주변 사람들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과 현실적 문제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광기'는 왕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최고 권력자인 왕에게는 권력의 상실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조지 왕의 광기'는 왕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홀로 견뎌야만 하는 어둡고 긴 고통의 시간과 그 가족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출처: pics.alphacod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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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대회 출신인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왕자님 같은 남자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짧은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여자는 결혼을 꿈꾸었다. 그런데 몰몬교도인 남자는 선교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파송된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영국으로 남자를 찾아 떠났다. 여자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경호원까지 채용한 여자는 남자를 찾아내 납치한다. 데본 지역의 시골 오두막집으로 남자를 데려간 여자는 3일 동안 남자를 감금하고 함께 지낸다. 여자는 런던에서 진짜 결혼식을 올릴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돌아온 남자는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납치와 감금, 강간을 당했다고 여자를 고발했다.

  에롤 모리스의 2010년작 다큐 '타블로이드(Tabloid)'는 1977년에 영국과 미국을 뒤흔들었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주인공인 여자는 미인대회 출신의 조이스 맥키니, 자신이 사랑한 남자 커크 앤더슨의 고발로 맥키니는 정식 재판까지 3개월을 감옥에서 지낸다. 보석으로 겨우 풀려나서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맥키니는 재판 전 청문회에서 앤더슨과 보낸 3일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맥키니 사건은 황색 언론에게 둘도 없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온갖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넘쳐났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하이에나 언론의 사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큐는 맥키니의 인터뷰,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 타블로이드와 TV 영상 자료들, 맥키니의 주변 인물들과 전직 몰몬 선교사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크 앤더슨은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관객은 맥키니가 일방적으로 진술하는 인터뷰 내용으로 사건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여자의 말솜씨는 정말이지 대단해서 배우, 성우, 만담가를 뺨친다. 맥키니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라고 강변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에 대해 전직 몰몬교 선교사였던 이는 하나의 단서를 던져준다. 맥키니가 주장한 합의에 의한 관계, 앤더슨이 고발한 강압에 의한 범죄, 아마도 그 둘의 이야기가 섞어진 중간 지점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이미 맥키니 기사로 돈맛을 본 영국의 신문들은 미국의 맥키니를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한다.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가 맥키니의 협조하에 이벤트와 설정 사진과 같이 흥미롭고 다채로운 뉴스를 쏟아냈다면, 데일리 미러(Daily Mirror)는 맥키니의 과거를 파헤치며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합성 사진으로 맞불을 놓았다. 신문의 전면 2페이지가 맥키니의 누드 사진과 불미스러운 과거(맥키니는 영국행 여비를 모으려고 콜걸로 일했다) 기사로 도배되었다. 맥키니는 절망했고, 거의 정신이 나가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

  에롤 모리스는 황색 언론의 추악한 보도 행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당시 기사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 마이크로 필름으로 저장된 기사들은 자료 복사 신청을 하고 돈만 부치면 대서양을 건너 모리스에게 배달되었다. 관객들은 너절하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기사 제목과 사진들로 도배된 당시 신문들과 시간을 뛰어넘어 마주한다. 그 기사들은 한 여성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부고장 같다. 물론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감독인 에롤 모리스조차도 맥키니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나중에 토로했다. '타블로이드'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관객들 또한 감독이 맥키니에 대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불신을 공유할 수 밖에 없다. 과장과 허풍이 섞인 이 여자의 진술은 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다큐의 후반부는 언론에 의해 수난을 겪은 여성이 중년에 이른 현재 이야기를 담는다. 외딴 근교의 거주지에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낸다는 맥키니는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이 아끼던 개가 죽자, 맥키니는 한국의 유전 공학 사업체에 개 복제를 의뢰한다. 타블로이드는 맥키니를 잊지 않고 있었다. 여자는 가명을 쓰며 부인했으나, 결국 정체가 드러난다. 다큐의 마지막, 여자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 한다면서 개들만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쓸쓸히 말한다. 과연 맥키니가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 때문일까? 이 괴상하고 특이한 한 인물의 연대기를 에롤 모리스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찬찬히 펼쳐 보여준다.

  '타블로이드'가 개봉된 뒤에 맥키니는 2011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서 에롤 모리스를 고소했다. 다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모리스는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에서 살인범으로 몰린 남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런데 남자는 모리스가 다큐로 부당한 이득을 취득했다며 소송을 냈다(그는 제작사와 합의해서 돈을 뜯어갔다).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인물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숙명인가? 어쨌든 맥키니의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다큐 제작자가 아무리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과 인물에 접근한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에롤 모리스는 실제적으로 입증한다. 지리한 소송으로 에롤 모리스를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던 맥키니는 노숙자로 매우 곤궁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출처: movieste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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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 속에 '남쪽'이란 영화는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역시 제목이 '남쪽'으로 번역되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Víctor Erice)는 1983년에 'El Sur'를 만들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는 정관사 el이 없는 'Sur(1988)'로 표기된다. 빅토르 에리세는 프랑코 정권의 폭압적 지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대 스페인 역사는 '프랑코'란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코는 1975년에 사망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국립 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서 그의 유해를 이장시킨 것은 2019년이었다. 독재자의 그림자는 죽어서도 스페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에서도 프랑코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영화는 어린 소녀 에스트렐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별'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소녀는 별 모양의 반지를 늘 끼고 있다. 에스트렐라는 의사인 아버지 아구스틴, 평범한 주부인 엄마 줄리아와 함께 스페인 북부에서 살고 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신비한 비밀과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진다. 진자로 수맥을 알아내 마을 사람들이 우물을 파도록 돕는 아버지는 에스트렐라에게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부분 다락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딸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프랑코 충성파였던 할아버지와 싸우고 '남쪽'의 고향집을 떠났다고 일러준다. 어느 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의 다락방 서랍에서 '아이린 리오스'라고 써진 종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시내 영화관 앞을 지나다 본 영화 포스터에 그 이름이 적혀있다. 소녀는 영화관에서 나오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아가씨가 된 에스트렐라는 어렵게 아버지에게 여배우와의 관계를 묻지만, 아버지는 답해주지 않는다. 예기치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은 과거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남쪽'으로 떠난다.

  놀랍고 허망하게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아니, 무슨 영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중간에서 그렇게 끝나는가? 그렇다. 이 영화는 미완성작이나 다름없다. 에스트렐라가 남쪽으로 떠난 이후의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를 채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작자는 도중에 제작 중단을 통보했고, 빅토르 에리세는 그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제작비 부족'이었지만, 에리세는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후 여러 번에 걸쳐서 불만을 토로했다. 영화의 원작은 에리세의 부인이 쓴 소설이었다. 굳이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면, 에스트렐라는 '남쪽'에서 이복 오빠를 만나게 된다. 여배우는 아버지의 과거 연인이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삶의 이야기는 결국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에리세는 이미 찍어놓은 전반부를 가지고 편집을 해서 '남쪽'으로 내놓았다.

  미완성작이 반드시 실패작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영화를 이야기 중심의 서사로 파악한다면, '남쪽'은 분명 불완전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녀 에스트렐라가 아버지의 비밀스런 과거와 조금씩 조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이 영화의 서사는 충만하다. 무엇보다 사물 그대로의 색감을 온전히 살리면서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킨 촬영이 무척 빼어나다. 에스트렐라가 살고 있는 북쪽 마을의 풍경, 에스트렐라의 첫 영성체와 파티 장면을 비롯해 '남쪽'은 풍성한 회화적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가 절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완전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그런 영화적 요소들 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나머지의 이야기들, 에스트렐라의 남쪽 여행과 아버지의 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 없이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남쪽'을 반드시 스페인 현대사와 연결지어서 해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물론 에스트렐라의 아버지는 공화파로 프랑코 지지자인 할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난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에스트렐라와 아버지의 관계, 한 소녀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와 관계를 맺는 방식, 그것이 한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어린 에스트렐라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다. 표현하기 보다는 속으로 감추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인생에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아닌 타인의 삶에는 말해지지 않은 것, 알지 못하는 접혀진 시간들이 존재한다. '남쪽'은 관계와 삶의 불완전성에 대해 넌즈시 일러준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남쪽'을 실패작이라고 느끼지 않는 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그러한 인생의 진실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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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우 감독의 1966년작 영화 '초우(草雨)'에는 서로의 신분을 속이고 만나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주불 한국 대사의 딸인 영희(문희 분)는 비오는 날 나갔다가 우연히 부잣집 아들 철수(신성일 분)를 만난다. 둘은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은 각각 서로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다. 영희는 대사의 딸이 아니라 식모였고, 철수는 자동차 세차일로 먹고 사는 건달 같은 남자였다. 블라디미르 멘쇼프(Vladimir Menshov) 감독의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 1979)'에도 그와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 공장 여공으로 일하는 카챠는 교수인 삼촌으로부터 여행 간 사이에 집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삼촌의 집은 혁명 광장 앞에 있는 부유층의 아파트이다. 카챠의 친구 류다도 함께 집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는다. 류다는 카챠와 함께 교수의 딸들로 자신들을 속이고, 알고 있는 인텔리 계층의 남자들을 불러모아 아파트에서 파티를 연다. 과학자, 유명한 운동 선수, 방송국 직원,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카챠와 류다. 그러나 짧은 쇼타임은 끝나고 그들에게는 다시 팍팍한 현실이 기다린다. 그런데 카챠는 그로부터 3개월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198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해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소련 영화로 기록된다. 영화는 헐리우드 멜로 드라마의 내러티브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모스크바의 하층 노동자로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들은 각자 다른 삶의 행로를 걸어간다. 여자의 인생은 좋은 남자를 붙잡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류다는 잘 나가는 운동 선수와 결혼한다. 미혼모가 된 카챠는 어려움을 이기고 학업을 마친 후 공장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다. 순박한 토샤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산다. 영화의 전반부는 1958년의 시점에서 카챠, 류다, 토샤가 어떻게 사랑을 찾아가는지를 보여주고, 후반부는 20년 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중심 캐릭터는 카챠이지만 류다와 토샤의 삶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여자 인생 뒤웅박 팔자'라는 옛속담이 있다. 뒤웅박은 박을 쪼개지 않고 작은 구멍만 내어 그곳에 씨앗이나 곡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는 그릇이었다. 한 번 잘못 들어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뜻으로 여자의 일생도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으로 쓰였다. 류다는 그런 신념을 신봉하는 매우 세속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빵 공장 여공은 교수 딸로 위장해서 유명한 운동 선수를 하나 나꿔챈다. 그리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남자는 젊었을 때부터 있었던 술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알콜 중독자가 된다. 결국 류다는 이혼녀로 세탁소 점원으로 살아간다. 카챠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 루돌프에게 버림받는다. '야, 네가 조심했어야지, 뒷일은 네가 알아서 해'를 시전하는 찌질한 마마보이한테 데인 뒤로는 괜찮은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카챠는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시골 아낙으로 살아가는 토샤는 행복할까? 농사일이 대박 터질 일도 없고, 힘들게 아들 셋 키우며 그냥 저냥 살아간다. 20년이 지난 후, 세 명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남자가 드리운 그늘 아래에 놓여있다.

  과연 여자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여성의 연애와 일에 대해 꽤나 구식의 관념을 강하게 투사한다. 제대로 된, 괜찮은 남자를 만나야만 여자는 비로소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고 외친다. 카챠는 전문직 여성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결혼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한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이혼남 고샤와 새출발을 꿈꾸는데, 이 남자는 마초 기질이 있어서 카챠가 자기 주장하는 꼴을 못본다. 그런데 고샤의 이런 기질이 영화 속에서는 '남자다운 것'으로 아주 잘 포장된다. 고샤는 카챠의 딸 알렉산드라의 남자 친구 문제를 주먹으로 해결한다. 그런 방식을 반대하는 카챠에게 '그런 딴지는 접어두지 그래'하며 훈계한다. 집안의 중심인 남자로서 카챠에게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길 요구하는 것이다.

  영화는 당시 소련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사회학적 자료로 쓰이기에 충분하다. 엘다 라쟈노프 감독의 'Office Romance(1977)'에서도 이와 비슷한 설정을 볼 수 있다. 통계국의 최고 책임자에 오른 나이든 독신 여성 루드밀라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 불행하다. 그나마 루드밀라가 뒤늦게 찾은 연인으로 나오는 아나톨리는 부드럽고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소탈한 남자다. 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의 고샤는 매우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카챠는 그런 고샤를 인생에 둘도 없는 배필로 여긴다. 그것은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억압적 틀이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련 영화 당국은 '통속적인 멜로 영화'라며 마뜩잖은 반응을 보였지만, 영화는 9천만명의 관객 동원을 이뤄내며 소련에서 개봉된 영화들 가운데 역대 2위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세르게이 니키친이 작곡한 영화의 주제곡 '알렉산드라(Александра)'의 아름다운 선율이 큰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부르짖는 소련의 구식 멜로 영화, 오늘날의 여성 관객이 '이런 걸 봐야해?'라고 물을 수도 있는 영화. 그럼에도 카챠와 류다, 토샤가 보여주는 인생의 행로들은 여성의 삶에서 남자와 결혼이 가지는 의미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유리구두 들고 찾아와서 신겨줄 왕자님은 현실에 없다. 영화 속 카챠가 보여주는 현실판 '짚신 찾아 삼만리'의 눈물겨운 여정은 어딘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다. 고샤를 두고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어'를 외치는 카챠,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카챠의 행복을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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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는 것이 때론 도박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평점이나 리뷰도 괜찮은데 막상 보니 싱겁고 별 내용도 없는 시시한 영화인 경우, 뭔가 사기당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Blaxploitation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데, 1970년대의 정서를 잘 담았다는 평이 있어서 마이클 슐츠의 'Car Wash(1976)'를 보았다. 정말이지 처참한 영화였다. 화장실 유머와 개연성 없는 설정이 너절한 시나리오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 영화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에 대해 누군가 한 말을 믿었어야 했다. '당신의 아이가 더럽게 말을 듣지 않을 때, 벌을 주려거든 이 영화를 보게 하십시오' 그랬다, 벌 받는 심정으로 영화를 끝까지 다 봤다. 그러고 나서 본 영화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데드 엔드(Dead End, 1937)'였다.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이름이 등장한다. 각본을 릴리언 헬만이 맡았다. 원작은 시드니 킹슬리의 브로드웨이 연극(1935)이다. 짜임새 있고 극적인 서사를 잘 써내려가는 헬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매카시즘에 맞서서 의회 증언을 거부한 공산주의자답게(헬만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영화는 좌파주의적 시각으로 도배되어 있다. 사실 제작사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걱정했던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 헤이스 코드(Hays code)에 따른 검열이었다. 영화는 등장인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다.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Baby Face' 마틴은 악명높은 갱스터이지만 영화 내내 직접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틴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예전 여자 친구 프랜은 '매춘부'인데, 거기에 대한 언급도 검열에 걸리기 때문에 분위기로만 제시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수수께끼 풀어가듯 막연한 암시들을 하나하나 짜맞추면서 보아야 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검열에 통과했음'이라고 자랑스럽게 자막이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촬영을 누가 했는가 하면 그레그 톨랜드가 했다. 그렇다.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의 그 위대한 촬영 감독이다. 톨랜드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촬영은 그야말로 눈을 정화시키는 느낌이다. 빛과 어둠을 명징하게 조화시키는 톨랜드의 촬영은 예술로서의 영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장면이 일종의 수미쌍관을 이룬다. 뉴욕의 화려한 고층 건물에서부터 수직으로 하강하는 크레인 쇼트는 East River의 빈민가에서 멈춘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 반대로 빈민가에서 화려한 빌딩이 보이는 공중으로 상승하는 쇼트이다. 톨랜드는 이 영화에서 크레인 쇼트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런 쇼트들은 부자와 빈자, 고층 고급 주택과 더러운 슬럼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뉴욕의 퀸즈보로 다리 근처의 빈민가, 그곳은 강이 보이는 좋은 전망 때문에 부유한 이들의 고급 고층 주택과 맞닿아 있다. 그 거리의 아이들은 미래 갱단의 후보자들이다. 폭력과 욕설이 일상인 아이들 무리의 리더 토미는 누나 드리나와 살고 있다. 드리나는 빈민가의 좋지 않은 환경에서 동생과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경제 공황의 무거운 그늘 속에서는 하루하루가 버거울 뿐이다. 역시 그곳의 주민인 데이브도 불경기에 간판 그림을 그리며 연명하고 있는데, 그는 바로 코앞의 고급 주택에 사는 케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그곳에 낯선 남자 두 명이 나타난다. 데이브는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마틴을 기억해낸다. '베이비 페이스'란 별칭으로 불리는 그는 어머니와 여자친구를 만나러 그곳에 왔다. 그러나 마틴의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며 저주를 퍼붓고, 여자친구는 병든 매춘부로 나타난다. 마틴은 상심하고, 떠나기 전에 부잣집 아이를 납치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그 와중에 토미는 아이들과 함께 부잣집 아이의 옷을 빼앗고 때린다.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토미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일은 커져가는데...

  빈민가와 바로 인접한 고급 주택이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겠지만, '데드 엔드'에서는 그것을 거대하고 정교한 세트로 구현해 낸다. 멋진 외관의 주택 출입구는 바로 슬럼가와 마주하고 있으며, 그곳의 출입구는 더운 여름인데도 긴팔의 정장 외투를 걸친 경비원이 지킨다. 개인 풀장이 있는 집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부잣집 아이는 칼쓰는 법에 익숙해진 더러운 빈민가 아이들과 대비된다. 생계를 이어가느라 허덕이는 데이브와 드리나의 삶과는 달리, 주택 테라스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헬만은 아이들의 대사를 통해 경제 공황 시기에도 흥청망청 먹고 노는 부자들을 비판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것은 삶의 여건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도 판이하게 가른다. 토미를 비롯해 그곳 아이들의 모습은 갱스터 마틴의 어린 시절을 연상하게 만든다. 마틴이 마주하는 비극적 현실은 이미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의 거리에서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무도하기 짝이 없으며,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있다.

  그나마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드리나와 데이브의 현실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데이브는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케이를 연모하지만, 케이는 데이브가 사는 곳에 갔다가 불결하고 비좁은 주거 환경에 경악한다. 헬만은 계급적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설정한다. 결국 데이브는 케이를 떠난다. 대신 그는 토미의 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드리나 곁에 머물기로 한다. 가난한 자들의 연대, 마치 헬만은 그것만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현실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헬만의 이러한 좌파주의적 시각은 영화가 만들어진 1930년대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강하게 공명한다. '데드 엔드'는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40)'의 대도시 뉴욕 버전 같다. 영화에 깔린 노골적인 좌파주의에 불편해할 관객들도 있겠지만, '경제 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 볼 때 그것이 결코 과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빈곤에 시달렸으며,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드리나의 직업은 나오지 않지만, 드리나는 파업(picketing)하다 경찰의 곤봉에 맞았다며 이마에 난 상처를 보여준다. 

  마틴이 맞는 비극적 최후는 아마도 그 거리의 삶이 보여주는 최악의 경우일 것이다. 그럼에도 '데드 엔드'는 희미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드리나와 데이브는 경찰에 끌려가는 토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들이 슬럼가의 삶에서 벗어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함께 견디어낼 수 있다면 무거운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거리의 끝에서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간다.



*사진 출처: tcm.com



**다음 글은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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