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을 것이다. KBS에서 보여준 아시아 특집 다큐멘터리였던 같은데, 인도 편은 인도 어느 입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육열로 치자면야 인도도 입시 광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인도에는 도시 전체가 입시 학원으로 채워진 그런 곳이 여럿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본 다큐에 나온 도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 각지에서 몰려든 수험생들이 꽉 짜여진 학원의 일정의 따라 하루를 일사불란하게 보낸다. 그야말로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이 모여서 경쟁을 하는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곳은 인도 공과대학교(IIT), 의과 대학, 교대, 이런 곳들이다. 인도 사회가 뿌리 깊은 카스트 사회이기는 해도 돈 잘 버는 안정적인 직업은 상류층으로의 지름길이다.


  자신에게 걸린 집안의 미래와 부모의 기대를 생각하며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하숙비와 학원비를 비롯해 생활비까지, 그곳에서 공부하는 자체가 엄청난 비용이 든다. 아무튼 대학 입시 시험을 치루고 다큐에 나온 학생들의 후일담까지 나오는데,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 도시에 있는 냉각탑이었는지, 아무튼 높고 거대한 구조물에 관한 것이었다. 좋지 못한 입시 결과를 받아든 학생들이 해마다 그곳에서 목숨을 끊는다고 했다.


  학력고사 세대로서 내가 지나온 시대에는 입시 끝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한 해에 꼭 몇 명씩 나왔다. 1980년대 신문에는 손주 시험에 붙으라고 찰떡 만들어 먹다 목에 걸리는 사고로 할머니가 죽는 일도 드문 드문 실렸다. 마치 영화 속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처럼, 학력고사 만점자의 인터뷰에는 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느니, 과외는 안했다느니, 규칙적으로 생활했다느니, 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요새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재수 학원은 기숙 학원을 따로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사고가 있었다. 내가 학원에 등록한 지 2개월이 되던 3월 말의 일이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학생을 나는 학원 복도에서 딱 한 번 보았다. 제법 덩치가 있는 여학생이었데, 머리를 삭발해서 눈에 확 띄었다.


  "죽을려면 지네 집에 가서 죽지, 재수없게 여기서... 참, 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학원 선생 가운데 한 명으로, 그 학원에 공동 출자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다른 곳으로 학원을 옮겼다. 새로 옮긴 학원은 들어가기 전에 시험을 쳐야했는데,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므로 나는 특별반에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50명 정원인 반에서의 석차가 이제까지 내가 받아본 적이 없는 등수였다.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전교 등수로도 그런 석차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곳에는 서울대 다니다가 과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만 두고 온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그랬었다.

 

  "내가 대학 가면, 여기 학원에서 만난 애들은 아는 척 안할 거야."

 

  같은 반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도 속으로 그랬다. 너 같이 재수없는 아이는 나도 결코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 걔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울대의 원하는 과에 간 사람도 있었고, 명문대 공대로 간 이도 있었다. 더러는 또 다시 떨어져서 후기 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공부해서 치대와 의대를 간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대는 '워너비' 인기 학과였다. 내 생각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돈 잘 버는 전문직이어서 모두다 가고 싶어했다.


  아마도 3학년 1학기였던 것 같은데, 개인 프로젝트 수업에 다큐를 만들려고 했었다. '청소년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 만드는 다큐로는 너무 버거운 소재였는데도 나는 그걸 꼭 만들고 싶었다. 기획 단계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결국은 그냥 미완으로 남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왜 나는 그런 이야기의 소재를 택했던 것일까? 아마도 재수 시절의 그 '사건'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닌데도, 그 일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보기도 어렵고, 어쨌든 나는 아직도 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머리를 빡빡 밀은 것을 보면 '흠칫'하고 놀라는 때가 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에도 수능 끝난 후에 비극적 선택을 했던 학생이 있었다. 그래도 요새는 대학 입시 전형 과정도 다양해져서 그런지, 학생들도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서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대학 입시는 인생의 많은 과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해서 학생들이 지나친 압박감에 시달리다 못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해도 그 꿈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그 직업으로 만족할 만큼의 소득을 얻는 경우는 더 드물다. 대개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 보다 더 흔들리고, 부서지기 쉬우며, 더 좌절하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 과정이 때론 혹독하기 때문이다.


  재수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이야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소설로 써야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서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걸 소설로 쓴다 해도 그 책을 누가 사서 볼까 싶다. 나와 비슷한 꼰대 세대로 재수를 했던 이들이나 사서 볼까?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런 이야기를 읽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나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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