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방송반 애들이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했던 '명상의 시간'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5분 정도의 짧은, 뭐 별 의미없는 미사여구의 나열 같은 원고를 읽었더랬다. 요새 시쳇말로 하자면 뭐랄까, '영혼 없는' 대본 읽기 같은 그런 거. 아무튼 그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은 당연히 '타이스의 명상곡'이었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 쥘 마스네의 3막 오페라 '타이스'에 나오는 곡이다. 오페라는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오늘날에도 그다지 많이 상연되지는 않는다. 오직 이 음악만이 유명한데, 이 곡이 가진 서정성과 평화로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오페라는 원작이 있다. 아나톨 프랑스의 장편 소설 '타이스(Thais)'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환락의 삶을 사는 아름다운 무희 타이스는 수도승 아타나엘을 만나 회개하면서 수도자가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타나엘은 타이스에게 반하게 되고... 그 뒤의 이야기는 책을 직접 읽으면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아니, 이거 생각보다 꽤 재밌는 걸."


  재미있는 글이 반드시 좋은 글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좋은 글은 재미가 있다. 어제, 무슨 다큐를 볼까 검색하다가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2006)'가 걸려 들었다. 러닝 타임이 무려 2시간 반. 너무 길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이 다큐를 어떻게 보았나 검색해 본다. dvdprime 사이트에 2010년에 누군가 쓴 감상기가 있었다. Figure8, 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이가 쓴 리뷰가 있었는데, 참 글이 재미있었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았고, 좋은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큐의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쓴 글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좋은 문체를 볼 수 있는 글이었다(괜찮은 리뷰 글이므로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렇다. 글쓰기에서 문체(style)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를 잘 나타낸다.


  내 문체는 진정성에 있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재미'라는 요소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다소 건조(dry)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정도의 자기 객관성도 없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재미'라는 요소를 갖지 못하면 글의 확장성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 점이 늘 고민되고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다지 재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도대체 그 '재미'를 어떻게 뽑아낼 것이냐, 그게 참 어렵다.


  '재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B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소설 창작 수업에서 알게 된 B는 나와는 꽤 나이 차이가 있었다. 비록 이십대 초반의 어린 친구였어도 그 생각의 깊이는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B는 지독한 골초였다. 자기 말로는 전에는 두 갑씩 피웠는데, 줄어서 한 갑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나가다 보게 되는 B의 모습은 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 학기 중에 폐렴에 걸렸었다.


  "이렇게 담배 피우다가는 일찍 죽어요."

  "그럼, 그냥 죽을게요."


  의사의 말에 그렇게 말했다는 B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막 웃었다. B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B는 부잣집 딸로 백화점에서 몇십만원 하는 옷만 입고 다녔는데, 그건 B가 직접 이야기해서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참 밉상이었을 텐데 내게는 그런 것조차 B의 솔직함으로 보였다. 그 B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그 창작 수업의 종강 모임에서였다. 강의를 맡은 소설가 선생이 고깃집에서 밥을 샀다. 수강생들이라고 해봐야 10명 안팎이었고, 뭐랄까, 문학 수업과 그쪽 사람들에게서는 인간미 같은 것이 있었다. 아무튼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는데, B가 마침 내가 있는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게 되었다.


  나는 B가 고기를 굽는 것을 보면서, 회식 자리에서 고기 굽는 것은 이른바 '핵인싸'가 해야하는 일임을 실감했다. 우선 고기를 잘 구워야 했고, 잘 익은 고기를 나름대로 균형있게 배분해 줘야 했으며, 또 중간중간 이야기를 끌어가며 사람들이 고기에만 집중하는 '지루한 순간'을 메꾸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B 자신은 고기를 거의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먹는 내내 B의 그 신기(技)에 가까운 고기 굽는 솜씨를 보면서 감탄했다. 그랬다. B는 진정한 '인싸'였다. 사람들의 관심사를 꿰뚫는 통찰력, 집중력, 배려, 유머, 그 모든 것은 아웃사이더의 감성으로 살아온 '아싸'인 나에게는 머나먼 것들이었다. B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감각을 지닌 B라면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나는 B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우린 너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이런, 명상의 시간에서 어쩌다 고기 굽는 이야기까지 왔을까. 이런 것을 영어로는 'red herring'이라고 한다. 시선을 돌리는 의미없는 단서나 이야기 같은 것. 스릴러 영화나 오래된 흑백 '필름 느와르'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들 대사에서 가끔 그 단어가 튀어나온다. 말하자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의미없는 단서, 시선을 빼앗는 쓸데 없는 것이란 뜻이다. 이 말의 어원에 대해 쓰자면 좀 길다. 관심있는 이들은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다시 명상으로 돌아와서, 내가 요새 명상을 하게 되면서 느낀 것들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약간의 불면증이 있어서, 명상을 하면 좀 나아질 수도 있다기에 시작한 것이다. 불교 단체인 정토회에서 온라인으로 주말에 한번,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 일반인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 가능하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정토회와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다. 다만, 그 명상 프로그램이 초심자가 접하기에 가장 좋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할 뿐이다. 요새는 무슨 상품명 언급하는 것도 '뒷광고'니 뭐니 너무 말이 많아서, 글을 쓸 때도 항상 신경을 쓴다. 일종의 자기 검열 같은 거랄까, 그런 부분에 철저한 것이 좋다고 생각도 하지만 답답할 때도 있다.


  명상을 하게 되면 가장 크게 느끼는 불편함은 몸의 감각, 예를 들면 가려움증과 다리 통증, 졸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히 '가려움증'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가만히 있으면 여기 저리 가렵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안가렵다가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가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바쁘게 사느라 평소에는 몸의 감각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다가, 명상을 하면서 고요해지는 순간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우연히 '가려움증'에 대한 1시간 짜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 의과 대학의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다. 일종의 '시민대학'이라고나 할까, 미국은 그런 좋은 프로그램도 많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웹사이트를 타고 들어가서 듣게 되었는데, 물론 자막은 없었다. 그런데 그 교수 아재는 적당한 속도로 말을 했고, 화면에 뜬 파워포인트 자료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강의를 듣는 일반인들의 수업 태도도 아주 좋았다. 필기를 해가며 열심히 들었다. 아, 미국이란 나라에 저런 모습이 있구나, 감탄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교수 아재는 '가려움증(Pruritus)'를 강의하는데,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까지 감각 지각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 역사부터 훑는다. 내게는 그 점도 참 신박했다. 교수 아재는 가려움증의 원인의 95%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해서, 또 한번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나머지 5%가 특정 질병과 연관된 가려움증이라고 했다. 그의 강의를 듣고 나니, 뭔가 '가려움증'에 대한 작은 소책자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가려움증 치료에 쓰이는 약부터 일반 영양제 이야기도 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같으면 영양제 회사에서 돈 받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중에 질문 답변 시간에 수강생 시민 한명이 진지하게 영양제 브랜드 좀 알려달라고 했는데, 교수 아재는 좀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참 재미있는 강의였다.


  나는 자기 전에 명상을 하는데, 보통 25분 정도 한다. 하다보면 졸음이 말도 못하게 쏟아진다. 가려움, 다리 저림, 졸음, 이렇게 3단계를 겪고, 온갖 생각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기 때문에 마음은 무슨 시장통 같다. 법륜 스님이 했던 비유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있다. 명상할 때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시장통을 지나가는 사람에 빗댄 것이다. 시장통을 지나가다 보면 이곳 저곳 가게에서 호객 행위를 하면서 사람을 잡아 끄는데, 명상을 하는 이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끌려서 가게에 들어가지 말고, 그냥 쭉 가던 길을 가라고 했다. 설사 어느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나와서 가면 된다고. 나는 그 비유가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명상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들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명상의 시간에는 그조차도 집착이고 망상이 된다. 나는 글쓰기에서도 그런 욕심과 나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좋은 글이란, 그런 비움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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