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TV 시리즈 연작 '십계(1989)' 가운데 1편, 언어학자인 아버지와 그의 어린 아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1시간이 채 되지 못하는 이 짧은 드라마가 말하는 주제는 무척 무겁고 심오하다. 이 연작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당연히 '종교' 쪽이다. 예전에는 이 시리즈를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전편을 구해서 본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지금처럼 영화 공부하기 편한 시대가 아니었다. 원하는 자료 찾으려고 비디오 가게들도 여러 군데 들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십계'가 온전히 다 갖추어진 곳이 있기는 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서원이었다. 회원 가입을 하면 빌릴 수가 있어서 결국 다 보았다. 그 시리즈는 항상 인기가 있었으므로, 늘 대여 중일 때가 많았다.  

 

  "하느님을 믿어요?"

  "그럼."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언어학자 크르지스토프의 누나인 이레나는 독실한 신자다. 그는 어린 조카 파웰의 물음에 파웰을 꼭 안아주며 묻는다. 무엇을 느끼냐고 하자, 파웰은 고모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 하느님은 그런 분이야."


  신을 믿는 누나와는 달리 크르지스토프는 신이 아닌, 자연과학의 법칙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로 대변되는 현대 문물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의 아들 파웰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어느 아주 추운 날, 파웰은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말한다. 크르지스토프는 아들과 함께 컴퓨터로 연못의 얼음 두께를 계산해 본다. 그 계산의 결과는 연못의 얼음이 아들 파웰의 몸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고, 깨지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아들은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주의깊게 볼 것, 그래서 불행해지는 일을 가급적 피할 것. 인생의 어떤 고통과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약점과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크르지스토프가 완전하다고 믿은 과학의 법칙, 진리는 미세한 균열을 가진 것이었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 


  결국 아들의 시신을 연못에서 건지는 것을 보면서, 크르지스토프는 절망한다. 그는 아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 전날 밤에 직접 연못으로 가서 얼음의 두께까지 재어보고 확인까지 했었다. 그가 신봉하던 과학과 삶을 지탱하던 가치관 모두가 무너져 내린다.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을 잃었다.


  마치 과학과 컴퓨터를 물신 숭배하는 크르지스토프에게 닥친 신의 징벌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단선적 시선에서 더 나아가 깊이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신념, 확신, 사상, 가치관 그 모든 것들은 결코 확고부동한 진리가 아니며, 지상의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 '신'의 지위를 부여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키에슬로프스키는 황량하고 암울한 폴란드 바르샤바의 풍경 속에 담아낸다.



*사진 출처: prezkroj.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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