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름의 무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The Separation of Nader from Simin, 2011)'
 


*이 글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결말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이혼 법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내 씨민은 딸 테르메의 교육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 살고 싶은데, 남편 나데르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나 살 수 없다며 거부한다. 결국 씨민은 집을 나와 친정으로 가고, 나데르는 낮 동안 아버지를 보살펴 줄 간병인 라지에를 고용한다. 라지에는 임신을 한 무거운 몸으로 어린 딸 소마예를 데리고 힘든 간병일을 하는데,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 남편 호얏이 실직자인 데다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며칠, 라지에가 일하는 도중 잠깐 외출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나데르가 딸 테르메와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침상에서 떨어진 채 의식이 없다. 겨우 응급 처치를 해서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나데르의 라지에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마침 돌아온 라지에에게 아버지를 묶어 놓고 어디 갔느냐며 추궁하고, 안방에서 없어진 돈까지 언급하며 닥달한다. 일당을 달라는 라지에와 못준다는 나데르가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라지에는 현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이 일로 유산하게 된다. 라지에의 남편은 나데르를 살인죄로 고발한다.


  이후 이어지는 재판 장면들에서는 그곳에 소환된 주변 사람들의 증언, 어떻게든 자신의 윤리적 우위를 입증하기 위해 때론 거짓을 말하는 인물들의 모습들이 담긴다. 이 과정에서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두 부부의 모습이다. 씨민과 나데르 부부, 라지에와 호얏 부부는 그들이 속한 계층, 가치관, 삶의 방식, 그 모든 것에서 이질적이다. 학교 선생인 씨민과 은행원인 나데르 부부, 전형적인 하층민으로 독실한 이슬람 신앙을 고수하는 라지에와 전직 구두 수선공 호얏 부부. 이 두 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닥친 예기치 못한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들은 분명 서로 다른 편으로 나뉘어 있지만, 부부 사이에서도 균열과 상처가 드러난다.


  어쨌든 라지에의 유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건을 무마해야 할 거 아니냐고, 라지에 부부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끝내자는 씨민에게 나데르는 비난을 퍼붓는다. 라지에가 유산된 것은 자신이 밀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은 그것이 명확히 해명될 때까지는 합의를 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나데르를 씨민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라지에의 남편 호얏이 딸 테르메의 학교 앞에서 매일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딸의 안위 보다는 자신의 윤리적 정당성 확보를 우선으로 하는 나데르의 행동은 이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더욱 불거지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갈등처럼 라지에와 호얏 부부 또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라지에는 자신의 유산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전날 집을 나간 나데르의 아버지를 찾다 차에 부딪힌 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불같은 성미의 남편은 일자리를 잃고 상심한 데다가 빚쟁이한테 시달리며 고통을 받고 있다. 오직 합의금 받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씨민에게 찾아 가서 합의금을 주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어느 부부의 불화로 시작해서 그것이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사건의 이면을 면밀히 살핀다. 거기에는 결별에 처한 부부가 만들어낸 소통의 불협화음 뿐만 아니라 이란 사회의 종교, 계층적 갈등 또한 묵직한 배경으로 깔려 있다. 감독은 또한 어른들의 갈등 뒤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내면도 세심하게 포착한다. 특히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딸로 나오는 테르메의 연기가 정말 뛰어난데, 명민할 뿐만 아니라 단아한 얼굴을 가진 테르메 역은 감독의 딸이 맡았다. 또한 라지에의 딸로 나온 귀여운 '소마예'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어린 아역 배우는 지금은 이란의 잘 나가는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혼 법정에서 판사는 테르메에게 부모 가운데 누구와 살 것인지 묻는다. 테르메가 판사에게 대답하는 동안 씨민과 나데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관객은 테르메의 대답을 결국 듣지 못한다. 테르메는 과연 누구와 살기로 결정했을까? 그건 단지 아빠와 엄마,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굴 더 좋아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테르메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빠인 나데르를 택한다면 테르메는 자신의 나라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딪히고 직면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반면, 엄마 씨민과 사는 것을 택한다면 갈등을 가급적 피하고 타협하는 삶의 방식을 수용할 것이다. 이제 14살인 테르메에게 그 선택은 가혹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 선택을 강요하는 부모 씨민과 나데르. 부부라는 이름의 그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가 아이의 삶에 깊고도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dreamlabfil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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