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아침 첫 수업 시작 전, 그러니까 대략 8시 50분쯤에 '명상의 시간'이란 이름의 학교 방송이 나왔다. 방송반 애들이 하던 건데, 그냥 별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름 우아하게 늘어놓는 방송이었다. 5분 정도 되는 그 방송은 뭐 오늘 하루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보내자, 가끔은 하늘과 꽃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자, 그런 내용들이었다. 중학교 방송반 애들의 방송 원고 수준이란 것이 뭐 그랬겠지. 그걸 주의깊게 들은 애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나도 그 방송 나오면, 조금 있으면 1교시네, 그랬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그 방송이 나오기만 하면 몸서리를 쳤는데, 그건 '명상의 시간'을 읽는 방송반 아이의 목소리가 '전설의 고향' 오프닝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란 제목이 세로로 뜨면서, 음울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KBS의 오래된 드라마. 우리 집에 있던 흑백 TV는 갈색 장식장에 다리 받침이 4개 있었더랬다. 그 시절부터 봐오다가, 1980년대 초반에 금성 칼라 TV가 나오면서 칼라 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그 칼라 TV가 나왔을 때 처음 봤던 방송은 외화 '기동순찰대'였다. 아무튼 당시의 아이들에게 '전설의 고향'은 좀 무섭기는 해도, 뭔가 끊을 수 없는 마력의 드라마였다. 무슨 대단한 재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거기에 담긴 기이하고 나름 놀라웠던 이야기들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무서운 이야기들은 보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극이 끝날 때면, 성우 김용식 씨가 어디에서 전해 내려오는지 지역명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교훈도 말해준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김용식 씨의 개인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에게도 이 방송은 성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방송이었다고 했다.


  대개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들이었지만, 더러는 참신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특히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는 '구미호'가 나오는 전설이었다. 정말 구미호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나오고 그랬었다. 배우 최선자 씨가 주로 구미호, 내지는 귀신, 무당과 같은 배역을 맡아서 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는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싫기도 했겠다 싶기도 하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약점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벌을 받거나,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아주 고전적인 의미의 '인과응보'를 여실하게 보여준달까? 아이들에게 그만한 TV 도덕 교과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야기 소재도 고갈되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고전적 이야기의 드라마가 더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면서 1989년에는 중단되었다. 종영은 아니었고, 여름 특집으로 한정적으로 1996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때도 드문드문 챙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케이블 TV에서도 그 당시 그렇게 방영된 '전설의 고향'을 가끔씩 틀어준다. 그걸 보면, 지금은 인기 배우가 된 이들의 신인 시절 모습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의외로 많은 배우들의 '연기 등용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결국 그렇게 부활한 드라마였지만, 특수 효과나 분장 면에서 한정된 제작비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사실성에 비한다면야 어떤 의미에서 아이들조차도 외면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스티로폼에 암회색 페인트칠 해놓은 돌무더기가 쌓인 험준한(?) 마을 입구 세트장도 그냥 즐겁게 봐주던 1980년대 전설의 고향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외적인 문제점 이전에 어쩌면 사람들은 구닥다리 과거의 괴담에 흥미를 잃었던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런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주는 훈계를 귀담아 듣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는 시대는 경제발전의 호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중산층으로의 진입, 부의 축적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내면은 도덕과 윤리적 가치 보다 물신주의에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중장년층 세대에게 그 시대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돈이 잘 벌리던 시대'로 기억된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은 2009년을 끝으로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방송이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방송들에서 추억을 찾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요즘 세대들이야 그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도대체 저런 '후진'걸 어떻게 보냐고 하겠지만 그 드라마와 함께 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재미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전설의 고향'에는 분명, 국가가 국민의 가치관을 억압하고 강제하던 시절의 '교훈적 가치'들이 명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즐겁게 보았던 이유는 1980년대라는 그 시대가 점점 더 전통적 사회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나름대로 자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고전 드라마가 강조하는 가치들은 어디까지나 '이상향'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편의주의적이고 물신숭배적인 가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전설의 고향'과 더불어 내게는 1988년에 MBC에서 보여준 이혁수 감독의 '여곡성(1986)'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진짜 그 당시에 그걸 공중파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충격과 공포였다. '여곡성'은 한국 공포 영화를 우습게 생각하던 나에게 진정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저런 날것의, 사람의 감각을 온통 뒤흔드는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세월이 꽤 흘러서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저런 놀라운 한국 영화가 왜 언급되지 않는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 '여곡성'이 2018년에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도 그 영화를 알아봐준 사람이 있기는 있었구나 했었다. 그러나 그 리메이크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영화 '여곡성'이 보여준 한국적 공포의 세계도 놀라웠지만, 나에게 그 영화는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내면적 풍경으로도 느껴졌다. 물론 나는 당시에 학생이었고, 뭔가 그 영화를 분석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호황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그 시대의 사람들과 사회의 이면에는 뭔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영화 속 한 집안에 닥친 엄청난 액운은 가장의 비도덕적이고 불의()한 행동이 그 시작점이었다. 그런 어긋난 윤리와 파렴치한 과거의 행위 때문에 그 집안의 뿌리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 '여곡성'은 단 한번 그렇게 공중파 방송으로 나왔을 뿐이고, 다시는 그 어떤 형태로든 방영된 적이 없다. 어쩌면 그 엄청나고 대단한 영화를 내가 본 것은 행운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들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며,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릴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드라마를 안 본 것이 꽤 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지금 세대의 작가들이 쓰는 이야기들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나는 시큰둥하게 봤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 보기에 그 드라마의 핍진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젊은 세대가 보기 좋도록 잘 꾸며놓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 드라마에서 사실적인 것은 오직 '노래'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나중에 그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전설의 고향'과 '여곡성'을 추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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