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러시아의 유명한 애니메이터 유리 노르슈테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친숙하게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일단 그의 작품을 보고나면 작가와 러시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이 작품은 정교하고 유려한 일본의 셀 애니메이션이나 최근에 헐리우드가 내어놓는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3D 애니메이션과는 다소 다른 지점에 서있다. 빛과 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의 그림체는 마치 샤갈의 그림이 보여주는 환상성과 베르메르와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타난 빛의 역동성을 영상으로 담아낸듯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전원 풍경에 대한 소박하지만 섬세한 묘사인데 이것은 러시아의 문학 작품과 예술 세계에 드리워진 회화주의적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아기의 요람을 잔잔하게 흔드는 잿빛 늑대의 고요하고 투명한 눈망울, 축제에서 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 모닥불과 어우러진 숲 속의 어두움과 같은 이미지들은 잊고 있었던 꿈 속의 노래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3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잊혀진 꿈의 기억을 불러 내기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 살펴보면 제작년도가 1979년임을 알 수 있다. 울림과 깊이가 있는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고 매번 새롭게 누군가의 가슴에서 피어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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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의 딸로 태어난 키키. 13살이 되면 마녀가 되기 위한 첫수련을 받아야한다는 관습에 따라 키키는 부모님 곁을 떠나 자신이 머물 마을을 찾아 빗자루를 타고 떠난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정착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램대로 마침내 바닷가 항구 마을에 도착해서 수련을 시작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는 세계에는 언제나 꿈과 희망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유효한 가치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도 그러한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넘쳐난다. 영화는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성장의 과정을 순순히 풀어놓으면서 그것이 13살의 키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기를 지나온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키키가 마을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배달부 일을 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과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키키에게 이전과는 다른 눈뜸의 기회를 제공한다. 빵집 주인 오소노, 화가 우르술라, 남자친구 돔보, 온화한 노부인과의 교류를 통해 키키는 "수련"이라는 말에 걸맞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직관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키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키키가 하늘을 나는 능력을 잊어버리고 상심해있을 때, 오소노와 우르술라는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키키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매우 섬세하고 따뜻하게 드러나는 이러한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의 대사는 제한되어 있으며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야오는 여성이 가진 독특함과 뛰어난 특질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더 나아가 생명, 그것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세계에 대해 보여준다. 키키가 위험에 빠진 남자친구 돔보를 구하기 위해 다시금 하늘을 날아올라 마침내 무사히 땅에 내려왔을 때, 아이를 가진 오소노가 산통을 느끼는 것은 그런면에서 보면 우연한 설정만은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고통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고통과 시련이 우리 자신의 몫이 되었을 때 그것은 분명 아프고 괴로운 일이며 피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디어 내었을 때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열린다. 13살 소녀 키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성장의 첫 관문을 사뿐히 넘어 들어간다. 키키는 1년 뒤,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그 마을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그곳이 너무 좋다고 쓴다. 키키가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던 데에는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키키에게 온 행운을 모든 이들이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더 혹독하고 기나긴 시간이 되기도 하며, 더러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려는 하야오가 보내는 선물 상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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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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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누군가와 만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분이 물었다. 그 일을 목숨을 걸고 할 수 있겠느냐고, 그 일을 할 때마다 매 순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목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서였을까, 새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일이 과연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추구해야할 가치인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목숨까지 내놓고 열정적으로 매달려야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은 아마도 한 사람의 생애를 바꿔놓을 것이며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라면 그 위대함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전이 기술하는 체의 삶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한 인간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 말 그대로 목숨까지 내어놓고 걸어간 좁고 험한 길이 떠오른다. 한번쯤 한눈을 팔 수도 있으련만, 또는 더 편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도 그는 오로지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걸어갔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의 방법론은 지금의 시대와 사람들에게 통용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의 삶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고 남는 것은 그가 택했던 방법론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유와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는 세상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던져버렸다"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분명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열정의 최대치를 살다간 사람이다.

  두눈을 뜨고 최후를 맞은 체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스스로가 꿈꾸고 바라는 것을 위해 살 수 있겠느냐고. 오직 하나의 것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삶을 택하겠느냐고... 평생을 두고 추구해야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목숨을 걸고 해내야할 일일 것이다. 체 게바라는 그 삶의 가능성과 위대함을 직접 보여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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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상(박해일 분)은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힘든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는 착실한 대학원생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여자 친구는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뜻밖의 계기로 그 유부남이 편집장으로 있는 잡지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원상의 일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자 친구를 빼앗긴데 이어 잡지사 일로 만나게 되어 호감을 갖게 된 수의사 박성연(배종옥 분)마저 편집장 한윤식(문성근 분)과 좋아지내는 사이가 되자 원상은 편집장에 대한 질투와 선망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쯤되면 원상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원상에게서는 분노와 원한의 감정을 가진 피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한윤식에게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이며 운전기사 겸 비서 노릇까지 자청하면서까지 한윤식의 근처를 맴돈다. 물론 한윤식이 가해자의 위치에 서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분명 일탈의 경계선에 있으면서도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애인에게도 공정하게 잘 대해주면서 즐겁게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쿨해보이기까지 한다.

  이상한 것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위험한 가해자는 이원상이라고 믿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책임지지도 못할 무모한 행동으로 하숙집 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그에게 연민과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박성연에게도 자신이 보여준 말과 행동이 편집장과의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며 냉정히 관계를 끝내버린다. 원상이 지닌 모습은 분명 편집장과는 대조적으로 순수하게 보인다. 하숙집 딸이 삶의 무거운 짐으로 힘들어할 때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모습이라던가,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도 가리지 않고 착실히 하는 모습 등은 그가 세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는 먼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순수성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한 상처와 균열의 흔적들을 남기고 만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가?

  영화의 마지막에는 하숙집을 나와 한윤식의 집에 머무르게 된 원상이 윤식의 딸과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결코 가볍게 보이질 않는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윤식의 딸과는 어떤 관계에 있게 될지 또 그가 몰고올 상처와 균열은 어느만큼일지, 보는 이는 지레짐작으로 겁마저 먹게 된다.

  이 영화는 왜 순수함이 가져오는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무수한 균열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이기적이며 속물처럼 보이기까지한 한윤식의 삶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무해하다. 불확실하고 갈 곳 모르는 청춘의 순수한 모습 속에 숨겨진 파괴력과 위험을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동선으로 살려내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탁월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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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서덱 헤더야트 지음, 김영연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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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면"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릴적 누군가 해준 설명이 생각난다. 그는 손을 예를 들어 말했는데 표면을 손등이라고 한다면 이면은 손바닥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주먹을 쥐어버리면 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손안의 것들... 숨겨진 장소, 무언가 감추고 있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사람의 삶에서도 그러한 이면이 존재할까? 분명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보여주고 싶지 않는 여러 모습들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서덱 헤더야트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과 미처 다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삶의 이면을 촘촘한 그물망과도 같은 글로써 잡아낸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 이란의 작가가 보여주는 진실의 모습은 때론 서글프고 쓸쓸할 뿐만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오롯이 한 여인만을 사모했던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채 죽는데 그가 남긴 구관조만이 남자의 사랑을 때늦게 여인에게 전하고(더그 위콜), 남편이 죽은 후 재산 다툼을 벌이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무덤에서 깨어나 돌아오자 혼비백산한다(살아있는 사자). 동생에게 경쟁의식을 가졌던 언니는 동생이 먼저 결혼하자 질투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가 하면(언니), 사랑이라 믿고 결혼한 처녀는 바람둥이 남편에게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후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남편을 잃은 여인).

  이 책에 나오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삶의 이면이 보여주는 차갑고도 쓸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란 특유의 토속적인 등장 인물들과 배경은 때론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글에는 희미하게나마 독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작가로서 이란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 현실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창 나이에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한쪽 면만을 바라보면 다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쓸쓸한 생의 이면을 응시하던 작가가 남긴 글에서는 그래서 더욱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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