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서덱 헤더야트 지음, 김영연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이면"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릴적 누군가 해준 설명이 생각난다. 그는 손을 예를 들어 말했는데 표면을 손등이라고 한다면 이면은 손바닥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주먹을 쥐어버리면 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손안의 것들... 숨겨진 장소, 무언가 감추고 있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사람의 삶에서도 그러한 이면이 존재할까? 분명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보여주고 싶지 않는 여러 모습들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서덱 헤더야트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과 미처 다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삶의 이면을 촘촘한 그물망과도 같은 글로써 잡아낸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 이란의 작가가 보여주는 진실의 모습은 때론 서글프고 쓸쓸할 뿐만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오롯이 한 여인만을 사모했던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채 죽는데 그가 남긴 구관조만이 남자의 사랑을 때늦게 여인에게 전하고(더그 위콜), 남편이 죽은 후 재산 다툼을 벌이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무덤에서 깨어나 돌아오자 혼비백산한다(살아있는 사자). 동생에게 경쟁의식을 가졌던 언니는 동생이 먼저 결혼하자 질투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가 하면(언니), 사랑이라 믿고 결혼한 처녀는 바람둥이 남편에게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후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남편을 잃은 여인).

  이 책에 나오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삶의 이면이 보여주는 차갑고도 쓸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란 특유의 토속적인 등장 인물들과 배경은 때론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글에는 희미하게나마 독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작가로서 이란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 현실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창 나이에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한쪽 면만을 바라보면 다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쓸쓸한 생의 이면을 응시하던 작가가 남긴 글에서는 그래서 더욱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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