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속 - 환속한 다섯 사람의 이야기
김나미 지음, 민운식 사진 / 마음산책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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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만이 나의 길이라 믿고서 한눈팔지 않고 그 하나의 길만을 올곧게 걸어간 사람에게 어느날 문든 엄청난 회의와 두려움이 찾아든다. 정말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일까?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갔었다면, 아니 지금 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보다도 난 이 길을 걸어온 세월을 놔두고 이제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밑도 끝도 없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밀려들 것임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의 길이 아님을 인정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용기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떠날 용기가 없어서 걸어온 길을 습관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구도의 길을 걸었던 다섯 사람이 세상에 돌아오기까지의 쉽지 않은 여정을 물처럼 바람처럼 풀어놓는다. 그 시작은 당사자들과 인터뷰한 저자의 질문이다. 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곧 그네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나온 것이다.

  각각 승려, 비구니, 수녀, 신부, 수사로 살았던 그들은 어떻게 그 길을 돌아서 세상에 나와야했을까? 비단 이 책의 저자 뿐 아니라, 바깥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으로 물어볼 법한 일이다. 저자는 그러한 질문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특정한 사건이나 원인으로 몰아가는 일반화의 오류를 피해갈 줄도 안다. 그대신 환속한 다섯 사람의 서로 다른 삶의 여정 속에서 그렇게 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마음의 갈등과 고통에 촛점을 맞추고, 길을 돌아선 후의 세상에서의 삶에 대해서 밀도있게 다룸으로써 구도와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삶은 진리를 찾는 계속적인 여정이며, 그것이 비록 형태와 방법이 달라질지라도 본질적으로는 한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섯 사람 가운데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홀로 살지만 그들이 가는 길의 목적지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며 세상 속에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그 삶의 몫을 다하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환속한 그들을 측은하거나 유별나게 바라보는 대신에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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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거위와 보낸 일 년
콘라트 로렌츠 지음, 유영미 옮김 / 한문화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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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인 콘라트 로렌츠를 떠올릴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는 바로 "각인(Imprinting)"이다. 나는 아직도 아동 심리학 강의 때 보았던 그 사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뒷짐을 진 콘라트 로렌츠의 뒤를 일렬로 따라가는 어린 야생거위들이 있는 사진이었다.

  알에서 깨어난지 몇분이 되지 않아 시도하는 새끼 거위의 고개들기는 엄마와의 첫번째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 때 이루어지는 단 한번의 눈길만으로도 갓 태어난 거위는 엄마가 되는 대상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각인이라고 부른다.

  언뜻 생각해보면 새끼 거위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보살핌만을 원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로렌츠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엄마가 되어준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토한다. 그것은 새끼 거위의 매순간의 모든 필요에 응답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끼 거위가 다니는 곳마다 늘 함께 다니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책에는 비가 오는 풀밭에서 우비를 뒤집어 쓴 연구원 보모가 거위들과 함께 있는 사진이 있다. 말 그대로 엄마는 새끼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

  내게는 그 부분이 인간관계를 새삼 돌이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 사랑받는 존재로 자리잡고 싶어하지만 거기에는 그에  합당한 의무와 책임도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곧 무너질 것이며 지속되더라도 빈껍질과도 같은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이 책에는 각인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야생 거위의 생태에 대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로렌츠와 연구원들의 야생 거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의 결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 뿐 아니라, 생명과 자연,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잔잔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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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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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사람의 마음과 세상살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질곡들을 참으로 정밀하게 써낸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감상적이지는 않으나 연민을 담고 있으며, 냉소적인 것 같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산시로"는 소세키가 그러한 눈으로 바라본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억압적인 고등학교 시절에서 벗어나 동경의 대학에서 만난 독특하고 기이한 사람들, 그들이 사는 모습과 세계관은 산시로에게 때론 찬탄을,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 혼란 속에서 만난 첫사랑의 매혹은 그를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 그러는 동안 산시로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과 함께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존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간다. 물론 상처와 고통이 수반된다. 산시로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좌절과 슬픔을 안게 되는 것이다.

  산시로가 사랑했던 미네코가 자신도 산시로처럼 방황하는 청춘임을 마음으로 호소하는 단어인 "스트레이 쉽(Stray sheep)"은 마치 모든 청춘들을 지칭하는 말처럼 들린다. 양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몰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어지러운 발자국들을 남긴다. 이 소설은 그 예민하게 떨리는 발자국들을 포착해낸다. 그러한 발자국들이 끝나는 지점은 바로 청춘의 길이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은 지속되는 것이기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에는 떨림과 묘한 우수가 존재한다. 비록 시대적인 배경이나 공간이 다를지라도 그 본질에는 시련과 고통이 관통하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그러한 이야기들로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조셉 콘라드의 "청춘", 토마스 하디의 "석공 주드"가 있었다. 이제 "산시로"의 이야기가 새롭게 더해졌다. 이것이 전해준 마음의 울림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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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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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책을 빼어서 읽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쯤 되었을까? 정말로 눈길 한번 다른데에 주지 않고 몰입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간 것 같다. 중간 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도 있었고,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마지막 귀절에 다다랐을 때, 나의 가슴에는 일종의 희열이랄까, 벅차오름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랬다. 이 책에는 참으로 보기 드문 흡인력과 감동이 존재한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을 활자 하나 하나에 절절하게 녹여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할 때, 사람은 얼마나 진실해질 수 있을까? 좀 더 그럴듯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적당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란 직업을 지닌 이들은 참으로 스스로에게는 가혹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글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은 보여주고, 무엇은 숨기고, 무엇은 말하고 싶지 않고, 무엇은 적당히 꾸미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진실한 글이란 그 자체가 전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박완서의 젊은 날의 전부를, 아니 미처 말하지 못한 그 이면의 것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작가가 스스로와 가족,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그 꼿꼿함과 치밀함이 후에 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생각났다. 그 책이 조이스의 문학 여정의 입문기에 관한 자전적 고백이었듯,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라는 한 작가가 있기까지의 신산하고 고단했던 역사적, 개인적 체험의 이야기를 담아낸 문학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출판년도와 판본에 대해 확인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에 초판 1쇄를 찍은 책이 2000년을 넘기면서 28쇄까지 찍어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삶이라는 그 영원한 드라마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그 드라마 한편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존재했을지라도 말이다. 박완서는 자신의 삶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그 여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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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스케치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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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리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처절히 응시하기까지 작가가 감내해야했을 시간과 노력들을 쉽게 가늠할 수 없었기에 충격이랄까, 한편으로는 연민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작가 자신의 가족과 가족사에 관한 성찰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가족 스케치는 유미리의 자전적 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다지 주목할만한 작품은 아닌듯 싶다.  전반부의 짧은 리포트 형식으로 쓰여진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이 이채롭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 자신의 가족사는 "풀하우스"나 "가족 시네마", "물가의 요람"에서 수차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와 놀라움을 떠난 폐부를 찌르는 서늘함으로 남는다. 그것은 작가가 보고 느끼고 쓰는 가족의 실제의 모습들이란 따뜻함과 보살핌으로 묶였다기 보다는 상처와 비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과 부서지기 쉬운 연대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극단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 있는 점을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나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행복한 가족에 관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 유미리의 글쓰기가 서있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독자가 그곳을 바라보는 것이 충분히 고통스러울 때에야 작가의 글은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족스케치는 극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외와 경계선에 위치한 이들을 향해 보내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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