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거위와 보낸 일 년
콘라트 로렌츠 지음, 유영미 옮김 / 한문화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콘라트 로렌츠를 떠올릴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는 바로 "각인(Imprinting)"이다. 나는 아직도 아동 심리학 강의 때 보았던 그 사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뒷짐을 진 콘라트 로렌츠의 뒤를 일렬로 따라가는 어린 야생거위들이 있는 사진이었다.

  알에서 깨어난지 몇분이 되지 않아 시도하는 새끼 거위의 고개들기는 엄마와의 첫번째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 때 이루어지는 단 한번의 눈길만으로도 갓 태어난 거위는 엄마가 되는 대상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각인이라고 부른다.

  언뜻 생각해보면 새끼 거위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보살핌만을 원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로렌츠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엄마가 되어준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토한다. 그것은 새끼 거위의 매순간의 모든 필요에 응답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끼 거위가 다니는 곳마다 늘 함께 다니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책에는 비가 오는 풀밭에서 우비를 뒤집어 쓴 연구원 보모가 거위들과 함께 있는 사진이 있다. 말 그대로 엄마는 새끼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

  내게는 그 부분이 인간관계를 새삼 돌이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 사랑받는 존재로 자리잡고 싶어하지만 거기에는 그에  합당한 의무와 책임도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곧 무너질 것이며 지속되더라도 빈껍질과도 같은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이 책에는 각인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야생 거위의 생태에 대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로렌츠와 연구원들의 야생 거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의 결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 뿐 아니라, 생명과 자연,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잔잔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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