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스케치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유미리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처절히 응시하기까지 작가가 감내해야했을 시간과 노력들을 쉽게 가늠할 수 없었기에 충격이랄까, 한편으로는 연민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작가 자신의 가족과 가족사에 관한 성찰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가족 스케치는 유미리의 자전적 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다지 주목할만한 작품은 아닌듯 싶다.  전반부의 짧은 리포트 형식으로 쓰여진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이 이채롭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 자신의 가족사는 "풀하우스"나 "가족 시네마", "물가의 요람"에서 수차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와 놀라움을 떠난 폐부를 찌르는 서늘함으로 남는다. 그것은 작가가 보고 느끼고 쓰는 가족의 실제의 모습들이란 따뜻함과 보살핌으로 묶였다기 보다는 상처와 비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과 부서지기 쉬운 연대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극단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 있는 점을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나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행복한 가족에 관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 유미리의 글쓰기가 서있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독자가 그곳을 바라보는 것이 충분히 고통스러울 때에야 작가의 글은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족스케치는 극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외와 경계선에 위치한 이들을 향해 보내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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