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
*)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호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최자윤 기자가 상당히 공을 들여 기사를 써주셔서, 일천하고 부족한 사람으로서 송구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햇수로 따지자면 올해로 연극과 무용 등 무대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해 온 지도 벌써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어렵고 힘든 작업도 있었고, 행복하고 신나는 작업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간 작곡했던 스무 작품이 넘는 무대음악들 모두가 내게는 참 소중한 기억이자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새삼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느슨해진 발걸음에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매게 된다. 10월에도 내가 음악을 작곡한 두 연극이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새롭게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에서 10월 11일까지 유진 오닐(Eugene O'Neill) 작, 임영웅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손숙, 김명수, 김석훈 등 출연)가 '절찬 상연' 중이고, 또한 10월 8일부터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 원작의 '문제작' <마라, 사드>가 박정희의 연출로 아르코 예술극장(舊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홍원기, 남명렬 등 출연). 두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대비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 작품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내러티브에 충실한 '정극'의 형식이라면, 다른 한 작품은 일종의 파격과 비약을 겸비한 '음악극'의 형식이다. 또한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는 음악이 녹음의 형식으로 '재생'되지만, <마라, 사드>에서는 악단이 음악을 실황으로 매일 '조금씩 다르게' 연주한다. 작곡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두 작품은 서로 그 음악적 스타일이 정반대다(<밤으로의 긴 여로>의 음악이 다분히 클래식적인 요소에 기반하여 작곡한 것이라면, <마라, 사드>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에 기반하여 작곡한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음악 '안'에서조차 "모호한 경계" 위에서 일종의 '줄타기'를 즐기고 있는 것인데, 이 인터뷰 기사의 말미에 등장하고 있는 또 다른 한 단어를 차용하자면,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또 없을 것 같다. 가을 하늘, 공활(空豁)하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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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최정우
"연주자도 몸으로 리듬을 표현해요"
1998년 스페인 음악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호주, 브라질, 인도, 그리스 및 동유럽, 아프리카, 아랍 지역 등 여러 문화권의 음악을 주제로 한국의 주요 안무가 및 작품을 소개해 우리 춤과의 융합을 시도해 온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 춤>이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했다. 12년을 거쳐 올해 다다른 카리브해 음악과의 만남 중 지난 7월 22일 <아바나行 간이열차: 여섯을 위한 삼중주(Train for Havana: Trio for Six)> 이윤정 작품에서 음악 연주와 직접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 예사롭지 않은 밴드에 주목하게 된다. 무용수와 함께 등장해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 명의 뮤지션들이 날것 그대로의 신선함을 보여주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 그들이 무용수가 아닌 음악가이기에 궁금함은 더욱 커졌다.
1970년대 다방을 연상시키는 눅눅한 나무 테이블과 거리낌 없는 분위기의 카페 공간에서 밴드의 리더인 그(최정우)와 편안함으로 마주하였다.
무용과 그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술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객석을 조용히 메워왔던 그에게 무용이라는 장르는 연극처럼 언어적 텍스트(text)에 기반이 되어 있지 않기에 그것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좀 더 넓고 자유로운 음악적 영역을 표현할 수 있어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후 정영두, 장은정, 이용인 등의 무용가들과 함께 음악작곡가로서 대면해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여러 무용가와 작업을 함께 하면서 그는 '음악'을 소품과 같은 백그라운드가 아닌 공연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라이브 연주 자체가 주는 생동감과 연주자 각각의 움직임들 또한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작품에 스며든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그가 무용작품을 위해 작업한 음악들을 녹음이 아닌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연주를 하며 무용수와 관객과 호흡하곤 했다.
작품 <아바나行 간이열차: 여섯을 위한 삼중주>에서 음악과 퍼포밍
"리듬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연주자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용]음악이란 늘 무용수의 몸짓에 맞춰 '연주'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연주하는 동안 둘이 각자 다른 듀엣을 하고 이중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동안에는 나도 무용수와 같은 작품을 함께 하는 퍼포머라고 생각하죠. 그런 점에서 무용 공연에서 음악작업은 어떠한 장르보다 매력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작품과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념이 얼마 전 그를 무대에서 악기뿐 아니라 몸으로 작품에 녹여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퍼포머로서 이전에 무대에 서 본 적은 없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안무가/무용수(이윤정)와 친분관계가 있어 음악도 연습도 편안하고 재미를 느끼며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작곡가.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그의 표면적 활동 명칭은 홍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레나타 수이사이드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수이사이드?... 자살?... 레나타 자살? 자살을 동경하는 음악단체인가? 무서운 상상의 나래를 부풀이고 있는 기자를 이내 가라앉히는 말. '단지 어감이 갖는 이미지가 좋아서 선택했지 어떠한 영문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들지는 않았다' 한다. 음악적 특성이 강한 밴드음악을 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하나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잡식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무대음악은 늘 예측불허예요. 작품과 상황의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풍성히 알아야 그려낼 수 있기에 평소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접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타와 가야금 등 여러 가지 악기가 내는 소리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들을 다뤄 왔었던 그는 '예술과 철학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서울대 미학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평론가와 예술가라는 모호한 경계에 그를 서게 했다.
월간 <한국연극>에 평론 기고하는 음악가
현재 그는 철학, 문학 평론 글을 월간 『한국연극』에 매달 연재하고 있으며, 그의 블로그에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영화 등 모든 장르에 대한 관람과 그 느낌에 대한 잔상과 후기들을 빠트리지 않고 꼼꼼히 기록해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글로 토해낸 자신의 비평 작업을 모두 묶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리뷰에 그치는 평이 아닌 해당 작품이나 공연을 접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글을 통해 공감하고 편하게 읽어 내려 갈 수 있는 책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될 때 밴드의 앨범작업과 동시에 지금까지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던 무대음악들을 모두 모아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음반으로 제작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차후에는 어느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단체가 아닌 무대작품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람들로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의 작은 예술단체를 만들어 윌리엄 포사이드와 같이 소재와 영역의 폭을 확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게 될 수많은 예술적 시도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 줌과 동시에 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자(글), 미술작품, 음악, 영화, 퍼포먼스. 그가 흡수한 모든 장르의 예술적 분야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빚어지는 예술적 영역에 과히 '기대감'이란 설레임의 나무를 심어본다. '기대감'이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카타르시스적인 선물이 아닐까...
ㅡ 최자윤 기자,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호, 56-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