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네이버 <자음과모음> 카페(http://cafe.naver.com/cafejamo)에서 "드물고 고귀한, 헤프고 남루한"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부제는 "미학과 정치의 풍경들을 위한 불가능한 지도 제작법"입니다.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라는 형식을 빌려 실로 오랜만에 '규칙적으로' 써 나가게 될 글인데요, 저의 까칠하고 엉망인(!) 성격 때문에라도 이러한 규칙성이 과연 앞으로 잘 지켜질 수 있을까 제 스스로도 걱정이고 의문이지만, 아무튼 힘을 내서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 제현의 많은 관심과 질정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이에 襤魂, 合掌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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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에서, 2011년 여름, 동시대의 한 풍경.


시작의 가능조건들:
미학과 정치의 풍경들을 위한 불가능한 지도 제작에 착수하며

1) 나는 위의 저 작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나의 이 기약 없는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내가 바로 저 한 장의 작은 사진으로부터 이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이 글을 막 읽기 시작한 당신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이 글은 이렇듯 하나의 용서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무엇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면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나의 어떤 부분을 용서해야 하는가? 내가 이 한 장의 사진으로써 당신이 당신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안락한 화면을 통해 안락하게 글을 읽는 일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내가 이 한 장의 사진으로써 당신이 당신의 그 안락함에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한다. 

2) 당신이 소위 '용역 깡패'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들의 외형과 분위기를 잘 숙지하기 바란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이 언젠가 저들을 바로 당신의 생활공간 안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을 거론하며 당신을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당신이 지금 당신이 앉은 곳에서 누리고 있는 어떤 안락함의 느낌은 바로 저 덩어리의 외형과 바로 저 질감의 분위기 위에서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 때문에 [잘] 살고 있는지를 매순간 확인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저 덩치들에게 깊이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함이 가능한 이유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농담 같은 별명을 지닌 경찰이 밤낮없이 지켜주는 경찰국가 대한민국의 안정된 치안 때문이 아니라, 사유 재산 보호와 무한 이윤 창출이라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적 원리를 수호해주는 저 든든하고 건장한 용역 깡패들 덕분인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자본의 평화가 그들 때문도, 그들 덕분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발견되는 저 커다란 덩어리들은 어쩌면 조악한 조연인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다시 말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고, 구하지 않고, 나는 그러한 용서를 당신에게 요구한다고.  

3) 다시 말해 이 글은 이렇듯 하나의 용서를 '요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무엇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면서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왜 그런가? 이 나의 존재는 근본적이고 결정적으로 어떤 부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안락하게 채워지는 나의 존재란 저 사진 안에서 왜소하게 일그러진 한 부재의 존재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우리의 확고한 존재란 실은, 저 사진을 가득 채운 채 한 사람을 윽박지르고 있는 덩치들에 의해서 말소되고 삭제되고 있는 하나의 부재, 그 불편한 진실의 구심점이라는 존재 아닌 존재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저 한 장의 사진은, 곧 미감(美感)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한 장의 거친 사진은, 그 자체로 가장 외설적인 이미지이다(그러나 오히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이 사진 안에서 현재 우리의 '정치'가 발 딛고 서 있는 하나의 특정한 '미감'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진을 결코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위압적인 복수(複數)와 위협 받는 단수(單數), 윽박지르는 다수(多數)와 구석으로 몰린 소수(少數)가 가장 거칠고 즉물적인 상징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 한 장의 사진을(그러나 이 '상징'이란 또한 상징이 되기엔 너무도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현실'이 아닌가), 이 너무도 확실하고 확연한 한 장의 사진을, 우리는 결코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 사진은, 그 자체로, 딱 그만큼의 의미에서, 가장 외설적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요구하는' 이유, 마치 쉬운 용서를 베풀듯 이 외설적 장면으로부터 결코 고개를 돌리지 말고 이 외설 자체를 직시하라고 당신에게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묻는다: 당신은 이 폭력적 외설의 장면을 마주할 수 있는가?
 

4) 그러므로 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이 글은, 어쩌면 미약한 것, 가장 나약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미약하고 그렇게 나약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 끝이 결코 창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민과 노동자들을 향해 그리도 쉽게 발설되는 저 모든 권력의 헛되고 위선적인 약속들에 반대하듯, 나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시작을 미끼로 어떤 창대한 끝을 허황되게 보장하는 저 속류 기독교주의로부터 결연히 단절할 것을 또한 당신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어떻게? 다시 한 번 사진에 주목해보자. 저 하얗디하얀 순백의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은 덩치들이 약속하고 대변하는 사유 재산의 천년왕국과 이윤 창출의 창대한 끝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 나는 이러한 불가능을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과 함께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가능하게(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어떤 불가능성(부자연스러움) 위에 있는지를, 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어떤 부재하는 것 위에 있는지를, 끈질기게 물으려 한다. 그러나 이 끈질김은 아마도 지난한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내가 또한 당신에게, 당신과 함께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난한 여정이다.

5) 그러나 동시에 또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정치에 대한 글, 곧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정치만을 위한 정치적인 글은 결코 쓰지 않을 것이다. 저 한 장의 사진을 가장 외설적으로 파악하는 우리의 미감은 그 자체로 이미-언제나 가장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하나의 취향이자 취미판단으로서의 미학이 특정한 정치의 '문화적' 반영이라고 역설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지니는 미학을 반드시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함을 종용하고 강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나의 미학이 특정한 정치적 체제의 반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의 정치가 특정한 미학적 체제의 효과인 것. 나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연재가 현재적 세태의 일단을 포착하여 분석하고 평가하는 시평(時評)이나 시론(時論) 형태의 칼럼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지양한다. 또한 같은 관점에서 나는 이 연재가 일반적 의미에서 일종의 대중문화비평이 되는 것 역시 경계하고 지양한다. 나는 노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시를 쓸 것이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며, 평가하거나 분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비평을 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텍스트로써 (미)완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그 문자들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모종의 깊은 해석적 의미를 담지하는 [것으로 상정된] '내용'이라는 글이 아니라, 우리의 미학적 체제가 어떤 식으로 구획되어 있고 포진되어 있으며 분할되어 있는지를 가리키는 지도라는 '형식'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이 연재가 그러한 불가능한 지도를 제작하는 하나의 작도법이자 기호학이 되기를 바란다. 잇고 끊고 덧대는 것들의 미학, 느끼고 즐기고 고통 받는 것들의 정치. 우리가 몸담고 있고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시대와 미학적 세계에 대한 물음들이 바로 내가 이러한 지도 제작법의 시도를 통해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나의 방법론을 '이데올로기적 지도 제작법(cartographie idéologique)'으로 명명할 것이다.
 

6)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도 제작법'의 모습이 지극히 이념적인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렇듯 어떤 것이 이념적이 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적 규정을 단지 '고백'이라는 수세적인 이름으로만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념이란,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가장 고루한 유물이겠지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가장 물질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무기이다. 말하자면, 나의 질문은 가장 소박하면서 동시에 가장 거대하며(그러나 우리의 삶이 정확히 그렇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아마도 지독하게 이념적인 어떤 물음일지 모른다. 그 질문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느 정치적 시대를, 어떤 미학적 세계를 살고 있는가? 그러나 이 시대/시간에 대한 물음과 세계/공간에 대한 물음은 동떨어진 두 개의 다른 질문들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공간에 관한, 곧 미학과 정치가 교차하고 있는 풍경들에 대한 단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이 단 하나의 질문이 지닌 여러 개의 얼굴들을 또 다른 여러 개의 질문들로 되바꿔 물어보려 한다. 아마도 이러한 중첩되고 교직되는 질문들의 구름이 내가 원하고 바라는 하나의 지도를 제작해줄 것이며, 나는 그러한 믿음 아래에서 이 연재를 시작한다.
 

7)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잇고 끊고 덧대는 것들의 미학, 느끼고 즐기고 고통 받는 것들의 정치, 그 미학-정치의 지도를 그리고자 한다. 그 지도는 결코 촘촘하지 않을 것이나, 오히려 그 성긴 구조와 구멍들을 통해 어떤 불가능성 위에서야 비로소 그려지는 하나의 지도를 의도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미학이란 단순한 [현대]예술론이 아니며 또한 여기서의 정치란 단순한 [실천]철학이 아니다. 지고의 미학은 드물고 고귀한 것, 지상의 정치는 헤프고 남루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스러운 위계, 당연한 이분법 아래에서 우리는 무언가 많은 것들을 착각해 왔고 또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물고 고귀한 것은 헤프고 남루한 것과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드물고 고귀한 것은 그렇게 헤프고 남루한 것을 통과할 때에만 비로소 바로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고의 것은 지상의 나락으로 처박힌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몰락이나 전락 혹은 추락이 아니다. 나는 저 드물고 고귀한 것이 이 헤프고 남루한 것과 교차하고 충돌하는 '유물론적 미학'의 한 불가능한 형태를, 다시 말해, 시도하는 동시에 사라지지만 바로 그러한 사라짐 속에서만 오히려 가장 결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감행될 수 있을 미학-정치의 한 형태를, 이미지와 글쓰기가 병치되는 하나의 시공간 안에서 제시해보고자 한다.

8) 하여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서는, 다시금 저 마주할 수 없는 사진을 마주하며 재차 물어보는 것이다. 저 사진은 어떤 종류의 공포를 유발하는가? 또한 저 사진은 어떤 종류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저 사진은 어떤 종류의 행동을 요구하는가? 그러나 이 모든 물음들에 앞서 무엇보다 나는 가장 먼저 저 사진을 말 그대로 한 장의 '사진'으로 보기를 또한 요구한다,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과 함께. 이 일견 가장 '중립적'으로 보이는 요구 안에 어쩌면 가장 미학적이며 동시에 가장 정치적일 하나의 시선이 놓여 있을 것이며, 나는 바로 이러한 시선의 자리로부터 시작해서 또한 바로 그 자리로부터 이탈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탈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바로 이러한 시작점 위에 서 있다. 

─ 연재를 시작하며.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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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7-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가 되는데요..무더운 여름날..건필하시길.

람혼 2011-07-20 15:06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한 번 봬야 하는데요...! ^^ 힘내겠습니다. 함께 파이팅!

달사르 2011-08-0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림 잘 그리시는건 눈으로 봤고, 음악은 언젠가 기회 닿으면 들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요. 글까지 쓰시다니욧! 와우!

미학이 살아있으려면 어떻게해야하나..이런 주제의식을 살짝 엿봤어요. 연재, 잘 보겠습니다~

람혼 2011-09-11 16:34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제가 너무 여러 일을 하느라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지만, 제게는 참으로 즐겁고 신나는 폭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