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풍경 <마라, 사드>의 공연 포스터: 2009년 10월 8~18일,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i) 연극 <마라, 사드>가 엊그제 10월 8일 처음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10월 1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쉬는 날 없이 계속된다. 이 연극 역시 내가 음악을 작곡한 작품인데, 악단이 실황 연주를 통해 직접 연극 안에 참여하는, 국내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형태의 작품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밴드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의 全 멤버가 2006년에 공연했던 새러 케인(Sarah Kane)의 연극 <새벽 4시 48분>(원제: <Psychosis 4. 48>) 이후로, 밴드가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연극 공연은 내게도 실로 오랜만이다. 이번에 나는 직접 연주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조민기, 허철주, 김윤호라는 어리지만 걸출한 세 명의 연주자들을 만난 것은 이번 공연이 내게 선사해 준 소중한 인연들 중 하나이다. 이들 연주자들이 없었다면 내 음악은 지금의 이 형태로 '실현(實現)/실연(實演)'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덕분에 내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 이 연주자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관극의 재미를 더욱 톡톡히 배가시킬 수 있는 '관전 포인트'임을 지나가는 길에 꼭 언급해둬야 할 터, 또한 올해 중순에 있었던 박근형 연출의 <마라, 사드>를 보았던 관객이라면 이 두 연극의 연출과 음악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해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라는 점을 첨언해둔다. 

 

▷ 사드와 마라: 배우 남명렬 선생(左)과 홍원기 선생(右)[사진: 정형우].

ii) 개인적으로 연극 음악 작업을 지금까지 대략 7년 동안 해오면서 언제나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멋진 배우들과의 소중한 만남이다. 이번 연극을 통해 얻게 된 소중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배우 남명렬 선생과 홍원기 선생과의 만남을 말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남명렬 선생의 '사드'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는데', 연극에 임하는 그의 자세와 예술에 대한 태도를 통해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배울 수 있었다. 하여 이 자리를 빌려 또한 남명렬 선생과 홍원기 선생, 두 배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밝혀둔다.

iii) 덧붙여 한 마디 첨언해둔다. 이 연극의 드라마투르그(혹은 드라마터그)는 팸플릿에 수록한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연출가 박정희는 프로덕션을 정식으로 구성하기 이전에, 더욱 분명히 말하자면,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필자를 드라마터그로 섭외하였다. 덕분에 필자는 공연의 시의성과 의미를 탐구하고, 연출 개념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어 '드라마투르그'와 영어 '드라마터그'의 차이점을 각주를 통해 세밀히 밝히면서까지 자신의 위치와 입장에 대한 장문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이 '드라마터그'의 '실제' 작업 안에서, 이른바 그가 쓰고 있는 문자 그대로 "연출 개념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실체가 정작 목격되지 않고 실종되어 있다면?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 설정이 동요하고, 작품의 '시의성'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부재하며, '연극'이 어떤 정치성 위에 있으며 또한 어떤 정치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채로, 무언가에 대해 '아니다'라는 정해진 답변만을 남발하고 권위만을 세우는 '나이브한' 태도는, 그 자체로 비겁하고 치졸하다. 곁가지를 치자면, '드라마투르그'는 한국의 연극 판에서 너무도 자주 '드라마트루그'라고 잘못 표기되곤 하는데, 이러한 오기(誤記/傲氣)에는 '트루(true)'에 대한 어떤 종류의 뒤틀린 '강박관념'이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해보게 되는 것이다. 진정성이란 단순히 확고한 '이론'에서만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그러므로 이론 자체가 '확고하지' 못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더 더욱 자명하지 않은가). 연극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무대 위의 결과'만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와 배우의 관계', '배우와 연출의 관계'이듯이,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기반이 되었을 때에만 궁극적으로 '연극과 관객의 관계'가 설정되고 결정되듯이. 

iv) 이 연극은 말 그대로 배우와 연주자들의 힘이 전적으로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을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배우들과 연주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른 작품보다 배로 힘든 연습의 과정이었을 텐데, 여러 가지 어려움들 속에서도 좋은 작품을 이루어준 이들에게, 그 감사의 인사를 소중히 담아 전하는 마음으로, 이하에서는 연극 팸플릿에 수록한 작곡의 글을 옮겨놓는다. 더불어, 당연하게도, 관극(觀劇)과 일람(一覽)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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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 사드>의 극작가, 페터 바이스(Peter Weiss)의 모습.

 
혼돈 혹은 축제: 말하기와 노래하기 사이에서
 

최 정 우 (작곡/음악감독)

1) '사드'와 '연극'의 만남? 『소돔 120일』,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규방철학』 등 사드(Sade)의 외설스럽고 잔혹한 소설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혹은 떠도는 풍설로만 사드의 '악명'에만 익숙한 분들에게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어쩌면 지극히 생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는 사드가 말년에 샤랑통(Charenton) 병원에 수용되어 환자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사드가 『옥스티에른』, 『에르네스틴』 등 스무 편에 달하는 연극 작품들을 남기고 있는 '희곡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 역시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포베르(Pauvert) 출판사의 전집판을 기준으로 할 때도 그 분량은 책 세 권에 달합니다). 

 

▷ 하나의 '익숙한' 시선: 다비드(David) 作, <마라(Marat)의 죽음>.

2) 바이스(Weiss)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작가는 사드가 마라에 대한 희곡을 쓰고 그것을 환자들과 함께 연극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역사적 상상, 역사적 가정을 합니다. 이러한 상상과 가정 안에서 서로 대면하고 논쟁하는 마라와 사드,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싼 인간군상이 직조하는 하나의 '총체성'은 극중극의 형태로 우리에게 '혁명'의 자리와 '정치'의 자리를 새삼 되묻습니다. 

 

Œuvres complètes du Marquis de Sade, tome 13: théâtre I, Paris: Pauvert, 1991.

3) 작곡의 측면에서는 이 '음악극'이 결코 '뮤지컬'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배우들은 노래할 때 노래만 하고 말할 때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들은 노래하듯 말하며 또한 말하듯이 노래합니다. 이러한 '말하기-노래하기'의 형식이 오페라의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다른 점은 사실 이 작품이 '연극'이며 또한 '연극'일 수밖에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대하면서 작곡자로서 품었던 기본적인 생각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극중극의 형태를 포착하기 위한 음악적 언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정상성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는 비정상성의 카오스적 에너지를 포착하기 위한 음악적 언어는 결코 말과 노래의 엄밀한 구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이는 또한 '연극 안에서 노래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말과 노래 사이의 모호한 구분은 어쩌면 제가 음악적으로 이 작품의 내재적 혼돈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하나의 '상동적' 전략일 것입니다. 

 

Œuvres complètes du Marquis de Sade, tome 14: théâtre II, Paris: Pauvert, 1991.
 
4) 이 작품의 작곡은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의 어법에 기초하여 진행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음악적 장르가 아니라 극 안에서 그 장르가 형성할 수 있는 '연극적 효과'일 것입니다. 음악을 통해 이 작품이 지닌 지독한 '혼돈'의 성격과 동시에 또한 흥겨운 '축제'의 측면도 포착할 수 있었다면 제 의도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극중에서 사드는 루이 15세 시해미수범 다미엥(Damiens)에 관해 말하는데(이 이야기는 사실 푸코(Foucault)가 『감시와 처벌』의 초입에서 신체형의 '화려함'에 관련해 들고 있는 인상적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 처형의 잔혹함은 처형을 하나의 '스펙타클'로 지켜보는 군중의 들뜬 열기와 겹쳐져 역설적으로 하나의 '희생제의', 하나의 '축제'가 되기도 합니다. 혁명이 불러일으킨 수천수만 명의 죽음과 '화려한' 신체형 속에서 드러나는 한 개인의 '아름다운' 죽음 사이의 간극, 아마도 마라와 사드 사이에는 저 죽음의 숫자와 형태 사이에 놓인 간극이, 그러나 또한 단지 숫자와 형태라는 기술적 술어로만 치환되고 소급될 수 없는 그런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연극이 그런 '심연'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또한 동시에 그런 '축제'의 자리에 값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Œuvres complètes du Marquis de Sade, tome 15: théâtre III, Paris: Pauvert, 1991.

5) 연극은 '연출의 연극'이며 특히 제게는 '음악의 연극'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연극은 '배우의 연극'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여기서 새삼 환기하고 싶습니다. 이 사실이 '기본적'인 이유는, 배우가 연극의 필수적 요소라는 기초적이고 소극적인 규정 때문이 아니라, 연극의 시작도 끝도 모두 배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배우에 의해서 구현된다는 가장 적극적이며 숭고하기까지 한 사실 때문입니다. 제가 특히나 이 연극의 배우들에게 개인적으로 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제게 새삼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리의 정치'는 어쩌면 가장 낡은 형태의 정치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또한 현재 이 자리에서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정치가 아닐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혁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이 연극이 묻는 궁극적 질문은 바로 이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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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생경한' 시선: 보드리(Baudry)가 그린 마라와 코르데(Corday)의 모습.

*) 덧붙여: 마라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단연코 다비드의 그림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런데 보드리의 그림은 그 장면의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보드리는 마치 카메라를 회전시키듯 다비드의 그림이 '확고하게' 지니고 있던 시선과 관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마라의 '욕조'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드리의 그림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살해된 마라보다는 마라의 암살자, 곧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의 모습이다. 그녀 자신과 어떤 이들에게 코르데는 그 자체로 '유디트'의 현현이었을 것이다. 연극은 때때로 이러한 '관점의 [동시적] 이동'과 '시차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그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의 정치성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나이브한' 정치적 충정과 울분 혹은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통해서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질문은 연출이ㅡ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ㅡ가장 치열하게 던져야 할 물음이며, 이 질문을 소홀히 하는 것은 연출에게 거의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연극은 이 질문에 연극 그 자신으로써 답해야 하는가? 반드시 '대답할' 필요는 없다('장르' 자체와 그 장르가 빚어낸 어떤 '결과물'이 언제나 하나의 '대답'일 수는 없다). 모든 철학과 예술이 그러하듯, 연극에서도 또한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질문을 잘 던지는 것' 혹은 '질문 하나를 모든 관객이 소중하고도 고통스럽게 품게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연극적 실천'의 끝과 시작이 아니겠는가?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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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rial88 2009-11-23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한수 배우고 갑니다! 님의 글솜씨에 감격해서 실례지만 안면도 없는 제가 한 자 남기고 간다는~:D
역시 순수 문학분야 출신분들은 못 이기겠네요. (__)// 전공이신지 취미신지는 모르겠지만요. 제 졸렬한 글솜씨에 님께 머리가 숙여집니다...;

람혼 2009-11-24 17:00   좋아요 0 | URL
지나친 겸양에 오히려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음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 같은데요, 무척 반갑습니다.
'출신'으로 따지자면 저는 '순수문학' 분야 출신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글을 잘 읽어주셨다니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모딜리아니 2010-04-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브룩이 했던 마라 사드를 봤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람혼 2010-04-27 03:07   좋아요 0 | URL
저는 Peter Brook의 <마라/사드>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YouTube에서 몇몇 부분들을 확인했을 뿐이죠. 부럽습니다.^^
희곡의 영역본은 읽어보았는데, 당시 공연 때 Brook이 썼던 음악의 악보들도 몇 장 함께 수록되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