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다. 햇살이 뿌옇다.
더듬어보면, <인터내셔널가>를 처음 들었던 건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 학번이던 당신의 학창시절 시위 속 한 장면: 집회를 마칠 때 즈음하여 <애국가>를 부르고 나면 그 곡 자체에 포함된 어떤 '느림과 처짐'의 정서 때문에 오히려 힘이 쭉 빠졌다는 것. 반면 <인터내셔널가>나 <라 마르세예즈> 같은 노래를 부르면 알 수 없는 힘이 솟았다는 것.
곧, 한 노래의 정치적/미학적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분 역시 세계사 선생님과 '동시대인')으로부터 나는 "보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작하는 송창식/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를 배웠다(이 수학 선생님은 나중에 <원리를 찾아라>,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등의 책의 저자로 '유명'해지게 된다...).
뜬금없이 메이데이에, 오랜만에 이 두 선생님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 속에서 <인터내셔널가>와 <내 나라 내 겨레> 사이, 그 기묘한 불화와 합치의 '공존'을, 가장 '국제적'인 것과 가장 '민족적'인 것 사이의 어떤 '만남과 헤어짐'ㅡ이는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PD와 NL 사이의 어떤 '역설적 마주침'이라 해야 할 것인가ㅡ을 다시 곱씹어본다.
비단 이 두 가지 예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러고 보면 나는 전혀 음악이 아닌 것으로 음악을 배웠던 것 같다.
(혹은, 역으로, 음악으로 전혀 음악이 아닌 것을 배웠다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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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어 가사 오리지널 버전 <인터내셔널가(L'internationale)>:
http://www.youtube.com/watch?v=pB5x6cDMjao
2) 켄 로치(Ken Loach) 감독,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에서(에스파냐어 가사):
http://www.youtube.com/watch?v=bNX02G7m9KU
3) 대학 1학년 때의 어느 봄날(그러고 보니 딱 이맘때쯤이다), 나는 동숭동에서 미클로시 얀초(Miklós Jancsó)의 <붉은 시편(원제: Még kér a nép)>을 관람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 <인터내셔널가>는 나오지 않지만 내게 <인터내셔널가>와 얽혀 있는 어떤 인상들은 이 영화의 장면들과 극도로 '상동적'이다(덧붙이자면, 이 영화 안에서 중심적인 대립의 축은, 그 자체로 또한 가장 '국제적'이며 동시에 가장 '민족적'이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와 음악/소리들의 조합을 달리 설명할 길은 없지만, <붉은 시편>의 이 한 장면(무참하리만치 집요한 이 롱테이크를 보라)이 그 설명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단, 이 장면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이해하지 말고, 하나의 '음악극', '소리극'으로 이해할 것:
http://www.youtube.com/watch?v=UbCmg7bul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