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네 서점에서 한 달 전에 출간된 쳇 베이커(Chet Baker)의 전기를 한 권 구입했다. 사실은 다른 책을 구해볼까 해서 떠난 '사냥'이었지만ㅡ이 '작은 시골'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못 구하는 일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인데ㅡ얼마 전 뜬금없이 연습용 트럼펫을 하나 구해 독학하기 시작한 이후로 '부는' 악기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과 같지 않게 예사롭지 않은 기운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쳇 베이커의 전기가 '때마침' 출간된 것은, 말하자면,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지만 짜릿한 우연의 한 사례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실은 '책 읽기'라고 하는 하나의 기나긴 여행 역시나, 확고한 일정이나 잘 짜여진 계획표와는 무관하게, 하나의 책이 내놓은 여러 갈래 길들, 그 길들이 만들어낸 '돌발적'이고도 '임의적'인 하이퍼텍스트들을 따라가는, 마치 거미줄과도 같은 우연성으로 점철된 여정이라는 것. '읽기'의 여정은, 적어도 내게는, 이렇듯 소중한 우연들이 만들어낸 필연성들로 가득 차 있는 '길 없는 길', '성채 없는 성(城)'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올해의 책들' 중 번역서 다섯 권을 뽑아본다:
1.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2. 마루야마 마사오,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김석근 옮김), 문학동네, 2007.
3.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07.
4.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1, 2, 3권(변상출 옮김), 유로, 2007.
5.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7.

▷ 미셸 푸코, 『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 Michel Foucault, L'herméneutique du sujet.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1-1982,
Paris: Gallimard/Seuil(coll. "Hautes Études"), 2001.
1) '주체의 해석학',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 '존재의 미학' 등 푸코의 후기 사상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여러 어구들은 이미 인구에 회자된 지가 오래이므로 이에 관해 재론할 필요는 따로 없을 것이다. 다만, '나의 언어'를 차용해서 말하자면ㅡ내 자신의 언어조차도 '차용'해야 하는 나의 언어 '미학'에 1초 정도 회의를 느끼며ㅡ,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헤겔의 자리에 선 푸코'의 초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존재의 미학' 혹은 '자기 배려'라고 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례가 가리키는 것ㅡ어쩌면 나는 여기서 "역사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붙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ㅡ, 그것이야말로 특수성이 쟁취하는 보편성의 '한' 사례가 아니겠느냐는, 그런 생각 한 자락이 나를 오랜 시간 동안 푸코 읽기에 빠지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아닌 역사학자' 푸코의 초상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 곧, 첫째 '특수성을 통한 보편성의 쟁취', 이어서 둘째, 이를 넘어선 '특수성을 통한 보편성의 파괴',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특수성을 통한 보편성의 재고/[재]확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세 개의 과정은 지극히 '변증법적'으로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 있는데, 말하자면 내가 뜻하는바 '헤겔의 자리'란 이러한 것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는 동시에, 그 모습 그대로, '한계를 확인하는 위반'의 운동, 바로 그 모습을 닮고 있는 것이 아닌가(아마도 푸코에게 미친 바타이유의 영향이란 단순히 '스캔들적'인 것으로 해소되거나 환원되어서는 안 되고 바로 이러한 '사상의 내재적 운동' 안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는 푸코에 대한, 혹은 철학사 전반에 대한 들뢰즈의 '방법론'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빙자한 짓궂은 질문 몇 자락). 이는 또한, '헤겔의 자리에 선', 동시에 '헤겔의 자리를 벗어난' 푸코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것, 푸코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비변증법적 변증법'에 관한 나의 문제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 프레데리크 그로 外, 『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심세광, 박은영, 김영, 박규현 옮김), 길, 2006.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IV: 1980-1988,
Paris: Gallimard(coll. "Bibliothèque des sciences humaines"), 1994.
심세광의 번역으로는 작년에 출간된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97년에 동문선에서 『자기의 테크놀로지』가 번역 출간된 이후로 실로 10년만에 우리는 푸코의 '후기 사상'을 독해할 수 있는 '기본 구성 요소' 번역본들을 갖게 된 셈인데, 그의 『말과 글(Dits et écrits)』 전 4권ㅡ몇 년 전에 Quarto 총서로 재출간되면서 두툼한 두 권으로 다시 묶인 바 있다ㅡ, 특히나 위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그 중 4권이 어서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함께 첨부해둔다.

▷ 마루야마 마사오, 『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김석근 옮김), 문학동네, 2007.

▷ 丸山眞男, 『 「文明論之槪略」を讀む, 上 』, 岩波書店, 1986.
▷ 丸山眞男, 『 「文明論之槪略」を讀む, 中 』, 岩波書店, 1986.
▷ 丸山眞男, 『 「文明論之槪略」を讀む, 下 』, 岩波書店, 1986.
2) 마루야마 마사오와 근대성의 문제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내 개인적인 '병증'에 대해서는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 테지만, 특히나 올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대한 독해의 산물인 이 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만큼이나 설레고 반갑던 소식은 또 없었던 것 같다. 틈 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도 하고 또 원본을 옆에 두고 함께 또박또박 읽기도 했던 책인데ㅡ원서는 상, 중, 하 세 권으로 분책된 문고판으로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본만 해도 벌써 20쇄를 넘은 일본의 스테디셀러, 하지만 생각해보니, 마루야마의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후쿠자와의 책이야말로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가 아니었던가ㅡ올해가 다 가도록 아직 완독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울 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와 그의 책들에 대해서는 일전에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에 대한 글이라는 가면을 쓰고 간략하게나마 다룬 바 있다(http://blog.aladin.co.kr/sinthome/1384652). 결국 나는 마루야마를 통해서 다시금 '사상사(思想史)'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인데, 나의 시커먼 기억의 저장소를 검색하다보면, 한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받았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그리고 그들에 대한 마루야마의 분석에는 '열광'과 '광분'을 넘나들면서 왜 '우리의' 사상가인 퇴계나 율곡에 대해서는 그만한 '정성'을 들이지 않는가. 이는 어쩌면 지극히 '민족적'인 질문일 수도 있고 또한 오히려 지극히 '코스모폴리탄적'인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양쪽 중 어느 한 방향으로만 해소하거나 환원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하나의 '질문'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질문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 흔들리고 망설이고 있는 대답의 여러 몸짓들, 이 모든 회로가 이미 '우리의' 근대성이 지닌 하나의 '징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드는 '여담'과도 같은 생각 한 자락은, 마루야마와 같은 '중독성 있는 치밀함과 성실함'을 얻기 위해서 나의 글은 얼마나 더 담금질을 해야 할까 하는, 고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아득해지고 아찔해지는, 이 하나의 '반성' 또는 '욕망' 역시나, 다시금 얼마나 지극히 '근대적인'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반성, 또 하나의 욕망, 그것들에 대한 잡생각이 되고 있는 것.

▷ 가라타니 고진, 『 세계공화국으로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07.
3) 올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책 『세계공화국으로』의 번역 출간은 작년의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 b) 출간과 함께 최근 국내 출판계의 커다란 이슈들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일단 소위 '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불러일으킨 반향ㅡ그러한 반향이 '열광'이든 '고려'이든 '반감'이든 간에ㅡ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 책은 내게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최근의 사상 진영에 있어서 헤게모니 투쟁의 전체적 '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한 축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 말하자면, 결핍의 윤리학과 충만의 윤리학 사이, 혹은 적대의 정치학과 우정의 정치학 사이, 혹은 부정성의 철학과 긍정성의 철학 사이에 가로놓인 하나의 전선을 떠올려볼 때, 이 책이 점유하고 있는 위치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 하는 물음, 이 책은 내게 무엇보다 그러한 물음의 자격과 지위로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쉽다'고 말하는 만큼ㅡ아마도 그렇게 '쉬운' 만큼, 딱 그만큼, 이 책은 여러 가지 비판들에 대해 '취약'할 수도 있을 것ㅡ내게는 그만큼 이 책이 또한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텐데, 나의 개인적인 '아포리아'는 바로 이 책이 서 있는 '정치적 자리'에서 기인하는 것일 터, 말하자면, 이는 다름 아닌 이 책의 숨겨진 기조저음(basso ostinato)으로서의 '모스(Mauss)-바타이유(Bataille)-카이유와(Caillois)'의 정치학적 계보ㅡ이는 조금 변형시키자면 바타이유-데리다(Derrida)-낭시(Nancy)의 정치학적 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알튀세르(Althusser)-마슈레(Macherey)-랑시에르(Rancière)의 계보와도 연계될 수 있을 텐데ㅡ가 지닌 어떤 '가능성'과 결부되고 있는 것. 말하자면 이 책은 내게ㅡ마르크스(Marx)에 대한 가라타니의 '시의 적절했던[따라서 동시에 니체적 의미에서 'unzeitgemäß'하기도 했던]' 어법 그대로를 그에게 다시 돌려주자면ㅡ'가라타니, 그 가능성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1권: 출범 』(변상출 옮김), 유로, 2007.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2권: 황금시대 』(변상출 옮김), 유로, 2007.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3권: 황혼기 』(변상출 옮김), 유로, 2007.
4) 올해 출간된 또 다른 '시의 적절한' 번역본을 찾자면 그것은 아마도 코와코프스키(Kołakowski)의 이 세 권의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 중 마지막 책인 3권이었는데ㅡ바그너(Wagner)의 저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breakdown'의 번역어인 '황혼기'만큼이나 황홀한 언어가 또 있을까ㅡ구입하자마자 찾아본 부분은 역시나 당연하게도(!) 루카치(Lukács)에 대한 장(367-437쪽)이었다. 물론 루카치에 대한 코와코프스키의 이러한 '품평'을 일종의 '일반론'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루카치에 대한 보다 더욱 '징후적'인 독해이다. 그런데 '징후적 독해'를 거론하기로 한다면야 코와코프스키의 이 책만큼이나 그러한 독해 방식에 적합한 책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한 자락. 코와코프스키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무언가를] 대신한다(특히 내가 다른 색깔로 강조한 부분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종의 '명문(名文/明文)'에 해당하는 것으로, 내게는 보이는 것이다):
"루카치의 개성과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그가 행한 역할은 생생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였다. 또 이는 분명 오래 동안 계속될 문제이다. 그러나 루카치가 스탈린주의 정통파의 시대에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는 사항이다. 사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그는 이 분야의 유일한 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유일하게 그는 독일 철학 전통의 언어로 레닌주의의 기본 교의를 표현했으며, 당대 단순한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최소한 서구 지식인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그러나 그가 스탈린주의의 진정한 철학자, 즉 이 특수한 체제를 해설한 지식인이었던가, 아니면 사람들이 이런 그의 행위를 두고 말하듯이, 그리고 그 자신이 나중에 밝혔듯이 그것이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 즉 스탈린주의를 가장하고 실제로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비-스탈린주의 형태를 전파한 솔직한 정통파의 사도였던가 하는 것이 논쟁의 문제가 되고 있다. [...]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공감한 시절부터 루카치는 철학과 사회과학의 모든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해결되어 왔으며, 남아있는 유일한 과제라고는 물려받은 정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와 레닌 이념의 진정한 내용을 확신하고 선언하는 길뿐인 것으로 알았다. 그는 마르크스의 '총체성'이 그 자체로 참된 것인가, 그리고 그 진리가 증명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어떤 사상도 덧보태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지적했던 그의 저작들은 논거들의 집합이 아니라 교조적 주장들의 집합인 셈이다. 그는 진리와 적확성의 단 하나의 기준을 찾아낸 후 이런저런 대상, 요컨대 헤겔 혹은 피히테의 철학 · 괴테의 문학 · 카프카의 소설 등에 그것을 적용했던 것이다. 그의 교조주의는 절대적이어서 거의 완전히 숭고할 정도이다. 스탈린주의를 비판할 때도 그 기본 토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루카치는 이성을 사용하고 방어하는 전문가들의 이성에 대한 배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20세기에 가장 돋보이게 행했던 인물인 듯하다."
ㅡ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3권: 황혼기』, 367쪽, 437쪽.

▷ 소련 과학아카데미 編, 『 마르크스 레닌주의 미학의 기초이론 I 』
(신승엽, 유문선, 전승주 옮김), 일월서각, 1988.
▷ 소련 과학아카데미 編, 『 마르크스 레닌주의 미학의 기초이론 II 』
(신승엽, 유문선, 전승주 옮김), 일월서각, 1988.
위 두 권의 책은 '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의 서적 중에서 내가 가장 처음으로 샀던 책들로 기억하고 있다(아마도 때는 1989년이었을 것이다). 구입 당시에는 반의 반의 반도 채 다 이해하지 못했을 저 책들을 나는 아직까지도 아주 가끔씩 들춰보고 있는데ㅡ예를 들어 나는 화장실에 갈 때 꼭 책 한 권씩을 들고 들어가는 '악습'을 갖고 있다ㅡ, 이러한 책에 대한 독서야말로 '징후적 사상사 독해'에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곤 하는, 이 나라는 인간이야말로, 지극히 '독한' 징후적 독해가 꼭 필요한, 그런 인간이 아닐까 하는, 잡생각 한 자락을, 오늘도, 어김없이, 남겨보는 것. 그래서 어쩌면 나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루카치에 대한 저 코와코프스키의 평가가 일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마찬가지의 잡생각 한 자락, 역시나 어김없이, 덤으로 얹어놓고 지나가는 것일 터.

▷ Louis Althusser, Politique et histoire, de Machiavel à Marx,
Paris: Seuil(coll. "Traces écrites"), 2006.
▷ Étienne Balibar, La philosophie de Marx,
Paris: La Découverte(coll. "Repères"), 2001(1993¹).
▷ 에티엔 발리바르, 『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1995.
더불어 알튀세르와 발리바르(Balibar)의 책들 몇 권을 첨부해둔다. 먼저 첫 번째 책은 작년에 출간된 알튀세르의 고등사범학교 강의록으로서 역사철학의 문제, 마키아벨리, 루소, 홉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책은 발리바르가 쓴 '마르크스 개설서'이다. 특히나 이 책의 일독을 '강권'하는 바인데, 이는 이미 1995년에 윤소영 선생의 번역으로 국역본이 출간되었던 바 있다. 왠지 갑자기 이 순간 계간지 『이론』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은 어떤 '징후'의 일면일 것인가.

▷ 자크 데리다, 『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7.
▷ Jacques Derrida, Spectres de Marx,
Paris: Galilée(coll. "La Philosophie en effet"), 1993.
▷ 자크 데리다, 『 마르크스의 유령들 』(양운덕 옮김), 한뜻, 1996.
5) 마르크스를 읽자, 데리다를 읽자. 올해 또 한 권의 실로 반가운 번역본은 단연코 진태원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국역본이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항이겠지만, 이 책은 이미 1996년에 한 번 국역되어 나온 바 있고 또한 그 번역에 있어 이미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겨울에서 저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아마도 나는 위의 저 세 권의 책들을 함께 비교하면서 읽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여력이 된다면, 일전에 정리해두었던 『법의 힘』에 관한 단상들과 함께 무언가를 새로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벤야민(Benjamin)의 저 폭력에 관한 글과 번역에 관한 글과 역사이론에 관한 글을 또 다시 읽을 게 분명하고, 이어서 얼마 전 새로 나온 벤야민 선집 번역과의 비교 또한 시도할 것이 뻔하며, 또 아마도 올해 번역된 소렐(Sorel)의 폭력에 대한 글도 함께 읽게 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우연의 필연성들이 직조해내는 거미줄의 매력과 위험을.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1: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2: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