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힘
한때 <쟁반노래방>을 즐겨보았었다. 한 소절 한 소절 우리 동요를 따라 부르다 보면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우리말의 정겨움과 순진함이 가슴속으로 배어들어와서 아무도 옆에 없어도 혼자 즐거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는 <과꽃>을 따라 부르다가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아니 실제로 난 잠겨 있던 슬픔을 몰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다 아는 1절에서가 아니었다.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어언 삼년 소식이 없는/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1절만 열심히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왜 과꽃을 좋아하는 누나를 그토록 애절하게 부르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꽃밭 가득히 피어 있던 과꽃은 실은 시집간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누나는 아마 기저귀를 갈아주고 얼러준 사람이었을 것이며 과꽃이 핀 계절에는 아예 동생을 업고 들어가 꽃밭에서 나오지 않고 즐겼을 것이다. 그렇게 온몸으로 누나와 과꽃은 하나가 되어 기억의 덩어리로 뭉쳐 있는데 지금 그 누나가 시집을 가고 소식이 없다. 올 가을도 꽃밭에 과꽃은 어김없이 피었건만 누나는 여기 없었다. 그리워하는 대상은 부재하지만 그와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꽃을 노래하는 그 애절함이란! 순간 난 말을 잊었다.
1절이 아니라 2절에서 다시 화들짝 놀랐던 동요는 바로 <달맞이>였다. “비단물결 넘실넘실 어깨 춤추고/ 고개 숙인 수양버들 거문고타면/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냇가가 그림처럼 내게 다가왔다. 달빛에 어른거리며 반짝거리는 물결과 그 옆으로 달밤의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이 소금쟁이와 함께 어우러져 춤추고 맴돌고 연주하는 그 정경이 내 주위를 감싸면서 나도 어서 저 달밤의 냇가로 달려나가고 싶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과꽃이 가득 핀 꽃밭, 비단물결과 거문고 타는 수양버들과 맴도는 소금쟁이를 내게 알려준 것은 단지 가사의 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 속에 묵혀져 있던 어린 시절의 리듬과 멜로디의 힘이기도 했다.
<우리 동요 80년>을 보면서 난 그 힘이 무엇보다도 어른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우유쏭’과 ‘당근쏭’에 익숙해 있으며 더이상 <반달>이나 <꽃밭에서>를 부르지 않는다. 뛰어노는 놀이터를 잃어버린 우리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키우고 있는 어른들이 진정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동요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간절한 그리움도 그에 동반되는 순수한 동심도 아득히 멀다.
그러나 티베트고원을 고향으로 가진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수한 그리움이 있었다. 돌아갈 고향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들의 눈동자에서 순진하고 티없는 진심을 보았다. 티베트의 어린 망명자, 다와가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콧물을 쓰윽 닦으면서 신발을 벗고 앞뒤로 구멍난 양말을 신은 발을 들어올리면서 짓던 미소를 난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박형준 시인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 우리의 상심한 가슴이 덥혀지듯이,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여진 오래된 가구야말로 추억의 힘이며 전통의 힘”(<가구의 힘> 중에서)이라고 하면서 ‘가구의 힘’을 규정했다. 난 그 추억의 힘과 전통의 힘을 ‘동심의 힘’으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가슴에 묻혀 있던 추억이 빛바랜 사진들처럼 구멍난 양말과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콧물로 상기되듯이 동심의 힘은, 지난 세월을 닦아 지금의 황폐함을 덮어주는 것,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추억하게 해주는 것이다. 손때가 묻어 생채기가 나고 얼룩이 져 있어도 새롭고 화려한 가구에서는 결코 위로받을 수 없는 데면데면함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흐뭇한 웃음과 뿌듯함이 밀려오게 하는 것, 바로 그런 것이다.
해마다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는 미명 아래 어린이들을 위하고 어버이들을 위하고 스승들을 위한 쇼핑이 상점가를 휩쓴다. 게임기에, 화려한 옷가지에, 온갖 상품들이 우리의 주머니를 유혹하고 평소에 등한시하던 ‘가정’에 잠시 봉사할 구실을 마련해준다. 음반가게 옆을 지나다 나는 어느 해쯤이면 아름다운 우리 동요가 훌륭하게 편집되고 제작되어 기꺼운 마음으로 선물할 수 있는 상품이 되나 하고 기대해본다. 진정한 동심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지난한 문제를 끙끙대기 전에 80년의 전통을 가진 우리 동요를 먼저 살려주는 것이 도리이지 않겠나 싶어서이다.
素霞(소하)/ 고전연구가
씨네21 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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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섬집아기'라는 노래를 아이에게 들려주길 좋아한다.
아주 귀에 익은 곡이지만, 내용은 듣는 이에 따라 슬프기도 하다.
가사를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한없이 아름다운 노래인데,
이 동요에는 삶이 담겨 있다. 고단한 삶과 엄마의 한없는 사랑.
우리 옛적 동요에는 이렇게 우리 어버이들의 삶이 묻어 있다.
귀가 닳도록 들었던 동요를 지금에 와서야 그 참맛을 안다.
오늘도 아이에게 이 노래를 들려준다.
섬집 아기
한인현 작사 / 이흥렬 작곡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