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운이 좋게 모교에서 교직과목 강의 두 개를 맡았다. 너무 좋은 기회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가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그런데, 내년엔 교직과목 개설시간 수가 절반으로 준다고 한다. 즉, 올해의 2개 반을 내년엔 합쳐서 강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반에 수강생을 2배로 늘리더라도 강사료를 줄이고 싶어서 그러는걸까? 한시간에 3만원 겨우 넘는 강사료 줄여서 어디다 쓰려고?  학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추가되는 돈도 없다. 학생이 늘어나면 채점에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 채점이 노동으로 변하면 강사는 될 수 있으면 다양한 평가를 하지 않게 된다. 즉,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지. 매 시간마다 숙제를 내려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뒷처리(평가)가 힘들어 포기해버린 전례도 있으니 말이다. 1학기때 40명이 넘는 학생들 데리고 수업을 하려니 힘들었다. 물론 100명 가까이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 곳도 많겠지만 그게 어디 제대로 된 수업일까? 일방적으로 앞에서 교수는 떠들고, 학생들과 교감도 별로 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의 이름은 당연히 교수가 알 수조차 없을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만 학급당 학생수가 중요한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2학기엔 1학기보다 만족도가 더 높았다. 한 반은 19명, 다른 반도 30명이 채 안되는 학생들이었다. 게다가 요즘 출석부엔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에 강사가 노력만 한다면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학생들의 이름을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강의 중간 중간에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센스는 학생들을 긴장(좋은 의미에서)시키고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건 교수 입장에서 좋은 것이고, 학생 입장에서도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기분 나쁠 리 전혀 없다.

크지도 않은 목소리에 되지도 않는 어설픈 유머를 가지고 재미도 없게 수업을 하니, 40-50명을 상대로 혼자서 떠들던 지난 강의에서는 그 졸린 1-2시가 되면 몇몇 학생들이 옥황상제님을 만나러 다녔다. 어쩔 수 없는 눈꺼풀의 닫힘은 이해한다치고, 그냥 엎드려서 잠을 청하는 학생들은 도대체가 학교에 왜 왔는지 알 수가 없다.(니가 그런 말 하면 안되지!! 니 학창시절을 뒤돌아봐~)

이번 학기엔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 진행할까 생각하다가 조별 발표를 하게 했다. 멋지구리구리한 프리젠테이션 기술로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발표조 학생들을 보고 난 희열을 느꼈다. 처음엔 토론도 안되더니 지금은 서로 말하려고 난리다. 점수에 반영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했지만, 내가 다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잘한다. 물론 자기 경험 위주로 편협한 생각을 그리 논리적이지 않게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록 나와 생각이 맞지는 않지만 정확한 맥을 짚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그리 이뻐보일 수 없다. 

이렇게 좋은 소규모 강의인원으로 수업할 수 있는 날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걸까? 그런데 사실은 내년도 과목이 주는 바람에 나처럼 투잡 또는 부업으로 강의를 하는 강사의 몫은 없어질 전망이다. 돈도 안벌고 학교에서 생활하며 공부만 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그 기회를 넘겨주고 나는 1년이란 짧은 기간의 좋은 강의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이제 기말시험을 합쳐서도 3번밖에 기회가 남지 않았다. 나는 사실 학생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데, 과연 학생들도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잘해주려 노력했는데, 그리고 학생들도 결석도 별로 하지 않고 열심히 발표준비도 했는데, 과연 이번 강의에서 많은 것을 얻었을까?

마지막 시간에는 무기명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그런 강의평가가 아니라 사람냄새 묻어나는 그런 평가. 이를테면, 강사의 유머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1) 유머란 것이 있었나요? 잘 생각이 안나서.. 2) 그런 유머는 구사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대의 대세입니다. 3) 아주 웃겼어요.. 그걸 촌철살인 유머라고 하나요? 4) 그럭 저럭 웃겼어요. 이번 강의가 마음에 드셨나요? 강사가 어느 정도로 잘생겼다고 보십니까?  강사는 중립을 지킨다고 지켰는데, 강사의 이념적 좌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등등의 수업 내외적인 질문을 재밌게 하고 싶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주관식도... 그 주관식 설문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내용 잘 배웠습니다, 모르는 내용 알게 되어 기뻐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좋습니다, 마지막 날 폰카로 같이 사진 찍어요, 화요일 5교시가 그리울 겁니다.' 라는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는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런 말이 하나라도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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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11-2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님의 글을 읽어 보건데 아마 학생들 기억에 남는 강의를 하셨을듯.^^

로드무비 2005-11-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이 울어버릴 거라고 장담합니다.^^

세실 2005-11-2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좋은 강의로 기억될꺼예요~ 또한 유머짱인 교수님으로도 기억할겁니다~~~ 서림님 화이팅~

엔리꼬 2005-11-2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제가 생각하기에 전 글은 차라리 강한데,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오프라인에선 많이 약해요.. 저를 보셨던 분들이 증언해주실겁니다.
로드무비님.. 울더라도 속으로 울어야죠.. 쪽팔리게..
세실님.. 그랬으면 좋겠지만, 유머는 사실 제가 구사를 별로 하지 못했어요... 세실님도 화이팅!

BRINY 2005-11-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시장미 2005-11-2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기명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그런 강의평가가 아니라 사람냄새 묻어나는 그런 평가. -> 으흐흐흐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 인데요? 좋은 강의 하셨으리라 믿어요. ^-^ 들어볼 수 없어서 참 안타깝네요!! 헤헤~

엔리꼬 2005-11-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아!의 의미는?
가시장미님..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요, 결과가 두려워요..

Phantomlady 2005-11-2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마지막 그 강의 청강가고 싶어졌어요.. ^^

엔리꼬 2005-11-2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강의 청강하러 오세요... 화요일 1시, 3시랍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은 기말고사라.. 같이 시험문제 풀어야 해요.. ^^

Phantomlady 2005-11-2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럼 취소.....요. ㅡ_ㅡ;;;